컬러로 말하는 작가, 이에스더

컬러로 말하는 작가, 이에스더

‘정직하다’고 느꼈다. 미사여구나 수식이 없었다. “컬러와 패턴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 혹은 아티스트예요.” 자신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에도 그녀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대답을 한다. 간결하고 소박한 대답들이 오히려 ‘겸손’이라는 꾸밈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에 돌아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가 가진 생각에 가감 없는 것임을 곧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정직함은 작업에서 보여지는 총천연한 컬러의 충돌들처럼 ‘산뜻’하고 ‘짱짱’했다. 결국 나는 컬러와 패턴을 대체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이 둘이, 이에스더와 그녀의 작업을 드러내는 최고의 수식이었던 셈이다.


취재 및 글 : 오수미 / sueme212@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이에스더 작가

경계에 서있는 아티스트의 모호함

캠퍼스에 활기가 동하는 이 시점, 이에스더 디자이너도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프로필엔 ‘홍대 판화과 재학’이라는 한 줄이 덧붙여져 있다. “판화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오랜만에 학생이 된 것 같아서 생소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그래요.” 원래 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녀가 현재 대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직함은 그래픽 아티스트와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하다. 정체를 가리기 전에, 우선 그녀에게 광고디자인에서 ‘전향’한 이유를 물었다. “전향했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개인작업을 선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인작업을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학생 때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고요. 결국 협업이 필요한 광고보다는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도 얻게 된 것 같아요.” 그녀에게 타이틀은 말 그대로 타이틀일 뿐이다. “나는 평면과 입체 속에 존재하는 시각이미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요. 아트와 산업디자인,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까지 포함해서요.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이다, 일러스트다, 따로 떼어서 이야기를 하는 건 특정분야에 규정지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뭐라고 규정되는 건 중요하지 않은데 말이에요.” 이런 ‘모호함’이 그녀가 평면부터 설치까지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는 이유이자 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편견이라 할지라도, 어떤 작업을 본 후 작가의 개인적인 성향을 내 나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단순화된 이미지들과 화려한 색 때문인지 이에스더는 직선적이고 유쾌한, 그러면서도 ‘복잡한 것 딱 싫어할 것 같다’는 ‘쿨’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의 성향은 어떨까? “성격적인 면을 본다면 우유부단하다고 할 수도 있을 듯 해요. 하지만 취향은 굉장히 분명하고,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선호도 뚜렷한 편이죠. 성격과는 다르게 이런 성향이 아무래도 작품에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색에 매료된 그녀의 세계

앞서 말했듯이, 그녀의 주요한 테마는 바로 컬러. 그녀의 작업들은 형태는 단순한 반면, 색 자체가 주는 메시지에 최대한 집중한다. 그녀에게 색이 특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본능적’인 것이었다. “단순한 형태와 단색이 만났을 때, 혹은 배색 되었을 때 컬러의 충돌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정말 좋아요. 엄청난 양의 컬러나 화면 상에 잘 조합된 컬러들을 보면 몸에서 즐거운 화학반응이 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이 때문에 그림에서 색을 가장 중요시하고, 이 색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하지만 색을 고르는 기준에는 특별할 게 없다. 그녀의 눈이 그 기준이라면 기준. 잘 어울리는 것을 그녀의 ‘본능’대로 그 때 그 때 골라낸다.

창조의 영역에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더라도 나름의 스트레스는 있게 마련이다. 아니, 끊임없이 틀을 깨야 하는 일이기에 그 고통은 더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잠, 수영, 영화를 꼽는(외치는) 그녀. 작업의 실마리를 푸는 영감을 얻는 방법도 물었다. “영감을 어떻게 얻는지에 대해 많이들 물어봐요. 전 영감은 ‘관심의 축적’이라고 생각해요. 관심이 쌓여 내제되어 있던 것들이 취향이 되고, 다시 그것들이 작업할 때 영향을 주는 거죠. 어느 날 갑자기, 번개처럼 생각지도 않던 기발한 착상들이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녀에게도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그녀도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에서 어려움을 겪곤 한다고 토로한다. 누군가를 ‘시각적 이미지’로 설득해야 하고, 그 설득이 또한 계약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니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도 배울 점은 많다. “라코스테나 카스같은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은 기억에 남아요. 콜라보레이션 작업은 마케팅적인 접근방식과 그 규모 면에서 개인 작업에서 할 수 없는 시도가 가능하거든요.” 개인 작업에서는 ’10ℓ Plastic Garbage Bag’, ‘Escape’, 그리고 가장 최근 작업인 ‘X-X-X N°30’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모두 각각의 시리즈로 이루어진 개인 작업이다. 설치작업은 평면을 넘어서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물론, 고생스러움도 배가 되긴 한다.

가능하면 빠르게 작업에 몰입하는 것이 이에스더의 작업 방식이다. 그 후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작업을 지켜보는 과정을 꼭 거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런 ‘치고 빠지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눈에 익은 자신의 작업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낯설게 작업을 보다 보면 작품에 온전히 몰입할 때와는 또 다른 점이 보이거든요. 내 작업을 객관적으로 대하게 되는 거죠. 때론 나의 시각적 선호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봤을 때도 작업이 좋다면 ‘덜 나쁜 작업’이라고, 좋은 작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바라는 삶

제인 버킨, 세르즈 갱주브르, 이세이 미야케, 알렉산더 칼더, 부르노 무나리.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묻는 질문에 ‘아주 많다’며 돌아온 ‘명단’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배울 점을 찾게 되는 인물들은 화려하지 않다. 어머니의 성실함과 부지런함, 친구의 삶에 대한 태도들이 그녀를 성장하게 했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답게, 그녀는 매회 개인 작업을 할 때마다 겪는 변화와 새롭게 얻게 되는 생각들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그녀가 현재를 여전히 ‘과도기’로 여기는 이유다. 언젠가 그 과도기가 끝나도, 강렬한 색에 경도된 그녀의 작업은 여전히 총천연함을 유지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언제나 어려운 질문이에요. 나이가 들어도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것이 제 바람인데요, 이것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일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하고 싶어요.”

‘정직하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오래’하는 것이 자신의 신조라는 이에스더의 소박한 대답이다.

프로필

Education
2006 홍익대학교 광고디자인
2013~홍익대학교 판화과 재학

Exhibitions 2011_____ “X-X-X N°30 _BMM gallery / Seoul

2012_____ “Lacoste Live x Esther Lee” ArtWall Project, Lacoste Live /Seoul
2012_____ “Ornaments” 서울문화역 284, 서울
2011_____ CASS Art Collaboration_ “Cass Escape”, Club Ellui, Cass/Seoul
2011_____ “Red Gentlemen” Doosan Art Center /Seoul
2010_____ designMADE 2010 My Dear Object “Odd Object Factory KDCF gallery/
2010_____ designMADE 2010 My Dear Object “Odd Object Factory Gallery Avenuel / Seoul
2010_____ Le Bon Marche Christmas Special Exhibition, Le Bon Marche/ Paris
2010_____ “Dance with Me” Maison& Objet / Paris
2010_____”Intimate Moments”Dong-wha Univ & shanghai korean culture /Shanghai
2010_____ “Dance” / 10 colors 10 Designers of Seoul, dongdaemun history & culture Park design gallery, /Seoul
2009_____ “Fanimals” / KT olleh/ / Kumho Museum of Art/ Seoul
2009_____ “Share Your Love” / Design Cube Inchon Inernational Airport / Inchon
2009_____ “Mr.Bobo” / Tent London F.A.S.T(team) /London
2009_____GALLERY AVENUEL “Love is Rainbow” / Seoul
2009_____ ARTE FIERA in BOLOGNA Escape #2, #6,#8,#17 / Edizioni Corraini / Bologna
2008_____100% DESIGN TOKYO”Escape”/ Tokyo
2008_____LONDON DESIGNER’S BLOCK”Escape”/ London
2008_____”Planet,Diamonds,Super Glue” Doosan Art Center /Seoul
2008_____DESIGN CUBE _”Mr. Thingamabob” Hangaram Art Museum / Seoul
2007_____SEOUL DESIGN WEEK”88 Dive into Life” COEX / Seoul
2007_____FUORI SALONE SDF in MILAN _INTERNI / Milan
2006_____ Illupop “10ℓ Plastic Garbage Bag” 쌈지/ Seoul

Project
2012 “Save The Penguin” 먼싱웨어 /Descentekorear
2011 CJ 캘린더 2012 작업 / 워크룸
2011 가이드덴탈클리닉, 내부벽면작품제작 “LEGO”, “FACES” / le sixieme
2010 디자인메이드 “My Dear Object” 아이덴티티디렉팅 / 한국디자인공예재단
2010 LE BON MARCHE 백화점 아트상품및 전 /Le Bon Marche, Paris
2010 Viva! My Neighbors. 홈플러스 펜스 그래픽 /가양갤러리
2010 유니클로 t-shirt 코리아아티스트콜라보레이션, /유니클로
2009 디자인메이드 “My Perfect Neighbours” 비쥬얼아이덴티티/ 한국디자인문화재단
2009 상상마당 아트스퀘어 윈도우 및 벽면일러스트레이션 / KT&G
2007 “UN SEDICESIMO” 작가 /Edizioni Corraini, Italy
2007 서울디자인위크 Information sign system /서울시


이에스더 작가 홈페이지

영감을 주고 싶은 작가. 최혜련

영감을 주고 싶은 작가. 최혜련

그녀는 영감이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영감’이라는 말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가리켰다. 전시를 할 때 반드시 영감이 오게 된 단계를 표현하는 작품을 만든다고 했고, 그 사진이 전시회에서 설치됐던 ‘영감’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그녀는 드문드문 영감이 찾아왔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전시에서 꼭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소 무표정한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특히 표정이 매우 밝았다. 자신의 설치물 안을 구석구석 보려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고, 그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조금이라도 영감을 받는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수줍게 말하던 그녀. 영감을 주고 싶은 설치 미술 작가 최혜련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취재 및 글 : 강민혜 / suremine@naver.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최혜련 작가
Q.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주세요. 언제부터 미술을 좋아했나요.

A.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워낙 자연스러웠어요. 그림 잘 그리면 칭찬을 듣고 그런 것에 익숙했어요. 슬슬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결정했죠. 하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재밌고 잘하는 것을 했지만, 입시는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재수할 때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혼자 알아서 하는 시기가 생겼어요. 그때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 1년이 괴롭지만 좋았죠. 처음 대학에 가서는 허송세월만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2학년 때 좋은 작가를 만나게 됐어요. 드로잉이랑 설치를 하는 작가셨는데 드로잉 수업에서 드로잉을 한 적이 없어요. 서로에 대한 이야기만 하게 됐죠. 수업이 통째로 계속 이야기 하는 거였어요. 2시부터 8-10시까지 계속 이야기만 했어요. 그때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작품을 하는 것에 대한,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해 나아가야 할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시작 할 수 있었던 고마운 시기였죠.



Q. 작품에 등장하는 ‘퉁샹’, 퉁샹을 설정한 이유는?

A.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하는 게 너무 쑥스러웠어요. 솔직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내 얘기를 하는 것은 좋지만. 나를 완벽히 드러내기는 그래서 나인데 내가 아닌 것처럼 뭔가를 만드는 스타일. 그게 작업의 첫 시작이 됐어요. 자연스럽게 퉁샹을 만들게 됐어요.

Q. 퉁샹의 의미는?

A. 작품에 이야기는 있었지만 이름은 없었어요. 이름을 고민하는데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중국 소수민족이 기억났어요. 그들은 말은 있는데 글이 없어서 말로 모든 것을 전달해요. 역사도 생활의 지혜모두. 근데 중국 본토에 나가서 한문이라는 문자를 알게 되죠.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하나 더 배우게 되면서 혼란스러워 하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 그 이상의 언어를 알게 되면 소통이 더 자연스러워질지 혼란스러워질지 궁금하기도 했고. 만약에 그것이 있다면 어떤 방식이 될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생각해낸 퉁샹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또 많이 들어보지 않은 이름이잖아요. 발음도 재미있고. 퉁샹이라는 애는 사람도 동물도 아니에요. 엄지도 생각을 가지고 눈, 코, 입 이런 게 다 자아를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에요.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이 서로 싸우는 이야기로 시작돼요. 퉁샹 안에 있는 눈, 코, 입, 심장, 팔, 다리 등등이 싸워요. 발언이 시작되니깐 갈등이 생기게 되고요. 자아가 여러 개 있는 하나의 생명체가 퉁샹이에요. 눈도 코도 입도 다 따로 살기를 원하지만 같이 살아야만 하는 거죠. 서로 고민을 계속해서 해요. 그러다가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찾아 가자고 결정하고, 그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 계속 갈등이 생기는 이야기예요.

Q. 사실 작품이 친절하지는 않은데요. 작품을 보고 보는 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A. 저는 주로 그 마음을 제목으로 줘요. 평범한 제목이에요. 하지만 최소한의 의미는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목을 보고 보는 이들이 생각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해요.

Q. 퉁샹에 대해 생각하면 절망적이고 슬픈 생각이 들지만, 작품을 보면 따뜻한 느낌이 드는데요.

A. 제가 그 퉁샹의 세계로 간 거예요. 막상 갔다고 생각해보니, 제가 퉁샹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상 생각하니 어떤 지 떠오르지가 않고 허허벌판만 보였죠. 결말은 항상 퉁샹이 죽어 있어요. 마냥 기다리는 모습만 상상해요. 언젠가 만나겠지, 라는 희망을 가지고 갔지만 절망하죠. 그렇게 생각하니 그 세계에 갔을 때 내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설명을 하니깐 참 유치해지는데. 따뜻한 분위기를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게 좀 회의적인 편인 것 같아요. 솔직히. 그것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아요. 내가 만드는 무언가는 굉장히 완벽하고 완전하면 좋겠어요.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소통이 뭘까. 사실 그게 쉽지 않잖아요. 자아가 여러 개 있고 하나로 모여 있으니깐, 비교적 퉁샹은 소통이 완전한 존재잖아요. 완전히 소통이 되는 생명체를 만들고 싶은 바람에서 나온 것이 퉁샹이에요. 퉁샹이 말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말을 하지 않아도 퉁샹은 한 몸이니깐 소통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죠.”

Q.완벽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A. 완전한 것에 대해 사로잡혀 있었어요. 완전히 이해되고 소통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언어가 아닌 텔레파시 같은 고차원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고 싶었죠. 나도 모르는 무언가로 만들고 싶다. 하지만 거기서 또 막혔어요. 완벽하지 못한 내가 완벽한 걸 만들 수 없다, 라는 좌절감을 느꼈고, 작품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졌어요. 작업에 대한 애착이 사라지게 된거죠.

“저는 혼자 상상하고 공상하는 것을 좋아해요. 기승전결이 있는게 아니라 의식의 흐름이에요.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어. 라고 하는 것을 계속 합치는 형식이 되는 것 같아요. 상상의 나래를 엮어가는 스타일. 이야기가 엄청 많지는 않아요.”



Q. 회화보다 설치를 더 많이 하게 된 이유?

A. 내가 생각한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게 어느 순간 어렵다고 느꼈어요. 퉁샹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그걸 보는 이의 상상에 넘겨주고 저는 그 주변의 것들을 만들어 주는게 더 좋았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설치를 하게 된 순간부터는 드로잉을 해도 설치를 위한 전개도 같은 그림을 더 많이 그리더라구요. 하지만 작업의 내용을 더 잘표현 할 수 있으면 언제든지 다른 장르의 작업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들은 설치로 하기에 부적합한 것이 분명히 있거든요.

Q. 설치 미술의 매력은?

A. 장소 특정적인 작품이잖아요. 전시가 끝나면 사라지고, 그래서 똑같은 내용의 전시를 한번 더 한다고 해도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회화 작가들보다는 전시공간에 오래 머물러야 하니까 공간에 대한 애착도 생기고 사진이나 영상 같은 기록으로만 남길 수 있으니까 전시끝나고 나면 그 기간이 꿈같이 느껴지고 허망하기도 해요. 만든 것들을 분해하면 그것들은 작품으로서의 힘이 없어지고 쓰레기나 짐이 되죠. 그걸 알면서도 만드는 과정에서는 엄청나게 에너지를 쏟아 부어요. 그래야 상상 속의 세계이긴 하지만 그것을 표현한 설치는 공간 안에서 내가 만든 것과 타인이 직접 마주 할 수 있잖아요. 그점이 짜릿한거죠.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이미 내가 다른 세계 속에 들어가 있어서 나도 작품의 일부라는 느낌도 들고요. 이건 저 뿐만 아니라 관객 또한 마찬가지 일거라고 믿고 싶어요.
작품들은 정말 보잘것 없는 것들을 재료로 사용해요. 장난감, 빨대, 이쑤시개, 솜, 천 이런거요. 주위를 둘러보면 볼수 있는 것들. 흙을 굽거나 나무를 깎거나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것들을 사용하려고 해요. 그게 제 작업에서 느낄수 있는 최소한의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죠.


“왜 하는 거지 싶을 때가 있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과 가상의 감정들이 충돌하면서 희열을 느껴요. 설치 작가들은 대부분 이런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좀 심한 것 같고요. 우울함 속에서 제 존재가치를 찾는 느낌. 점점 제가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벗어나고 싶어졌죠. 전시가 끝나고 나면 고민을 하게 돼요. 이 물리적인 짐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되나. 퉁샹 작품을 그만하고 다른 것을 하기로 최근에 결심했거든요. 퉁샹 관련 설치했던 그 짐 같은 것을 어찌해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버리기로 결심했어요. 버리니깐 더 후련하고 오히려 애착이 생겼고요. 이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죠. 잠깐 찰나 빛났던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이게 또 설치의 매력 같고요.”

“예전에 전시 했던 공간이 전시 때만 잠깐 쓰이고 전시 끝나면 집을 허물고 다시 짓기로 한 곳이었어요. 그때의 집이 없어지면서 내가 전시했던 공간, 작품이 정말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감동적이었어요. 무너지는 과정까지 봤어야 했는데, 못봐서 아쉬워요.”



Q.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뭔가요.

A. 사실 보는 사람이 퉁샹이 뭔지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현실과는 다름을 구분하려고 사람들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재료들을 써요. 흔히 쓰는 방법이에요. 거리감두기. 가상의 뭔가를 만들기. 나와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나름의 다른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영감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요. 그게 저의 바람이에요. 보러 온 사람들이 뭔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Q. 전시를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고 좋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A. 가끔 보러와 준 분들께 이야기를 해요. 제가 공을 들였던 큰 줄기 이야기보다는 구석진 곳에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장난치는 것을 좋아해요. 일부러 낙서를 해놓거나 해요. 보는 이들은 그것을 보면서 엄청난 의미가 있나 하면서 보거든요. 그런 것을 보는 사람들을 보면 좋아요. 제가 그래서 일부러 그걸 넣어요. 특히 설치물은 공간을 이용해서 만드는 거잖아요. 보는 사람들이 공간 안에 들어와서 무언가를 보는 것도 너무 좋아요. 제가 초대하고 그것을 응해서 들어와 주셨구나. 오셔서 나름의 다르지만 다양한 영감들을 느끼고 가는 구나, 하는 그 과정이 너무 좋아요.

“말을 안 할 뿐인지 사람들은 각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의 영감을 확장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크고 장기적인 바람이에요.”

Q. 퉁샹을 그만 하시고 다른 것을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해주 실 수 있나요.

A. 요즘 새로운 이야기를 또 쓰고 있어요. 섹시하다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섹시한 사진을 모으고 있는데요. 그런 섹시한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주인공을 설정했는데, 그 주인공의 별명이 ‘새 녀’예요. 새가 되고 싶은 여자. 그런데 하다보니 결국은 퉁샹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그 여자가 일상의 새를 보고 생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근데 생각보다 힘드네요. 섹시한 여자를 그리고 싶은데 잘 그려지지가 않아요. 저한테 섹시한 여자가 너무 많아서 잘 안 그려지나 봐요. 하나로 표현을 하려니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여자가 ‘새 녀’다 하면서 그리는데 아직 잘 안 되는데 이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내 작품의 새 녀가 매력이 철철 넘쳤으면 좋겠는데.

Q. 너무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힘든 게 아닐까요.

A. 사실 제 작품이랑 섹시한 이미지는 전혀 안 어울리거든요. 근데 왜 이런 이미지에 빠져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설치와 묶어서 이뤄내고 싶은 것이 제 욕구예요.

Q. 어떻게 보면 독특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새 녀’를 완벽한 느낌의 생명체라고 느꼈을 수도 있겠네요.

A. 어쩌면 그런 거 같기도 해요. 대학 다닐 때 안 친한, 오히려 싫어하는 괴짜 같은 애가 있었어요. 지켜보기만 했는데 너무 싫은 애였어요. 새를 너무 좋아하는데, 새를 그리지는 않아요. 졸업하고 나니, 그 친구의 작품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고 걔가 왜 새를 좋아했지? 만 생각나는 거예요. 그 친구가 굉장히 마이웨이 스타일이었거든요. 남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이미지였죠. 쟤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그 아이는 사람들의 시선에 무심했던 거 같아요. 어쩌면 제가 바라는 것이었던 것도 같아요. 새 녀를 멋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저런 깡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 라는 생각을 한거죠.

Q. 어쩌면 퉁샹을 또 하나 만든 거네요.

A. 새 녀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피곤하다기 보다는, 즐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자기에게 집중해서 분석을 하게 되면 너무 피곤해지고. 사실 전 나에게 집중하는 게 너무 쑥스러워요. 퉁샹이 가진 욕구가 나인데. 이거 혜련이네~ 하는 게 너무 싫어요. 거리를 두고 싶지만 결국은 내 얘기이고, 내 얘기를 하지만 내 얘기가 아닌 척 하는 것이 계속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새 녀가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바라는 욕망이죠. 근데 그걸 아니라고 하고 싶으니깐 새 녀라는 것으로 또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성격상 자유로운 것을 만끽하지 못해요. 전 좀 회의적인 편이라서, 자유로울 욕망도 없고 애매한 것 같아요. 그 애매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요.

Q. 작가님께 영감을 많이 준 작품이 있나요.

A. 「플랫 랜드」라고 최초의 SF 소설을 읽었는데 성당 신부님이 쓴 소설이래요. 저는 퉁샹의 세계를 하나씩 설정할 때 엄청 재밌었어요. 나름의 연구를 했죠. 숫자를 잘 아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그런지, 저도 그렇게 되고 싶나 봐요. 가상의 세계에서는 제가 수학자가 돼서 그 숫자로 세계를 구상해내는 것처럼 만들었어요. 구성을 할 때 제 나름의 공식을 만들어서 차근차근 그 세계를 만들었죠. 근데 그 소설을 봤는데 정말 너무너무 디테일 한 거예요. 2차원 점, 선, 도형의 세계에 대해서 여러 법칙이 있는데 그것이 굉장히 디테일하고 완벽한 느낌이었어요. 뭔가를 만들려면 이 정도는 빠삭하게 만들어야지. 나도 저렇게 디테일하고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작품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도 좋아해요. 주인공이 자기가 찍었던 영화를 다 불태우는 데 어떤 사람이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을 진짜 좋아해요. 만약에 한 번도 모나리자를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모나리자는 예술일 수 없잖아요. 발견되지 않았으면 예술인지 알 수 없는거죠. 그 발견의 순간이, 우연히 파고들어 예술을 발견한 게 정말 멋있어요. 저도 제 작품을 다 태우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하고 있어요.”



Q. 작가님의 일상은 어떤가요.

A. 쉴 때는 아무것도 안해요. 사람도 안만나고 가만히 있는 것을 참 좋아해요. 작업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문득 떠오르면 하는 스타일이에요. 무기력하게 봤던 것들이 쌓여서 그게 딱 폭발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 상태까지 가만히 있다가 하게 되죠. 안 보이는 게 보이는 순간이 생기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영감이 저에겐 소중하고 크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평소에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어느날 그냥 계단으로 내려왔어요. 거기서 아주 큰 이민가방을 발견했어요. 저게 왜 저기 있을까. 혹시 살인사건인가. 이사하는 짐인가. 저 무식하고 큰 덩어리는 대체 뭘까. 아무 생각을 안 하니깐 오히려 사소한 것이 좀 더 큰 것이 되는 것 같아요. 쌓였던 것이 떠오르는 것이 좋아요. 뭔가 하려고 하면 오히려 망치게 되거든요. 자연스러운 영감을 받는 순간이 좋아요.

Q. 자신의 설치물의 성향. 특징을 말해 본다면.

A. 그림도 좋아하는데, 설치가 더 좋아요.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설치를 하면 과학자인척 하는 스타일이에요. 과학자 이미지만 차용하는 거죠. 약간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과학실을 세팅하고 이미지를 차용하죠. 제가 아는 30대 중반 남성 작가는 실제 비행물체를 카이스트 사람들과 협업해서 만들었어요. 카메라 작동으로 떨어지면서 찍어 내려오는 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냈죠.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그렇게 해내는 성향과 저는 완전히 반대죠. 저는 실체화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차용해서 만들어 내는 소극적인 방식이예요. 그리고 미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 또한 저의 성향이죠. 예전에는 작품이 20대 여자같다는 말을 듣기 싫어했어요. 저를 폄하하는 말로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굳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20대 여자이니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걸 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요즘에 섹시한 여자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든 것 같아요.

Q. 10년, 20년 후는.

A. 지금과 똑같은 상태일 것 같아요. 사실 20-3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그때도 지금처럼 고민하고 있을 것 같아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내 작품을 정말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만들어 내고 싶은 것을 바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림을 할 때는 정적인데 만드는 게 동적이라 그 순간 집중하는 게 참 좋아요. 재료 욕심이 많아서 재료를 구하러 다니는 것도 굉장히 힘들어요. 준비할 것도 많고. 저의 예측 범위를 넘는 순간이 많아서 즉흥적으로 기지를 발휘해야 되는 상황이 많아요. 안될 때를 대비해 몇 개를 더 사야 되고, 대안을 만들어야 되고 여러 생각이 필요해요. 견고해야 돼. 무너지면 안 돼. 지금 보다는 더 능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예전보다 지금이 능숙해 졌듯이. 지금보다 더 신속하게 더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좀 더 프로가 되고 싶은거죠. 다른 것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조명이 굉장히 화려하잖아요. 그 안의 미묘한 씁쓸함을 보는 사람들이 느끼면 좋겠어요. 기쁜 느낌이 있지만 슬픈 느낌이 있음을 공감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가 제가 바라는 거예요. 세련되지 않게 이야기를 많이 해요. 수식어도 많고, 하나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주변부만 이야기해요. 세련되게 정확히 하나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제 성향이 그런 것 같아요.”

소통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야 말로 소통을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열망이 있으니, 그것을 비극이라고 느끼는 것이니까. 필자가 본 최혜련 작가는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것에 대한 추구를 작가 내부에서 구축된 다른 세계로 치열하게 표현하고자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은 작가였다. 세상을 너무 좋게 만들고 싶고, 세상을 너무 이해하고 싶어서, 그래서 세상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작가. 계속 회의적이라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가장 희망을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은 굉장히 많은데 그것을 놓치고 있다고, 자신의 설치 작품에 가까이 다가와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이들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다는 그녀. 그녀가 치열하게 만들어낼, 그리고 지속될 그녀의 작품세계가 너무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