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cate Normal, ‘비올레따그리조’ 박상국

Delicate Normal, ‘비올레따그리조’ 박상국

2012년에 했던 마지막 인터뷰였다. 꽤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인터뷰를 게재하게 되었지만, 박상국 씨의 인터뷰로 2012년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것은 어쩌면 괜찮은 마침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박상국씨는 자신의 브랜드를 걸고 가방을 디자인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 그의 브랜드 VIOLETTA GRIGIO(www.violettagrigio.com)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이다. 디자이너이자, 제작 책임자이며, 브랜드 디렉터이자 홈페이지 운영자이며, 경리이자 회사 사장이다.

아티스트들과 만나면서, 자주 화제에 오르내리는 것은 ‘안정적인 생계’ 혹은 자신이 창조해낸 디자인의 ‘상업화’ 그리고 그 일을 브랜드화하고 운영해나가는 것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이다. 그들의 재능을 보면서, 앞으로 펼쳐진 그들의 현실과 예술이 공존할 수 있는 케이스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고 응원하는 마음에서 이 인터뷰는 시작됐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박상국 작가 / 먼슬리맨션

작업 중 알아볼 게 있어서 “또” 열어버린 인터넷 창에서 마음에 드는 가방을 보게 됐다. 빅백의 사이즈 감과 컬러풀한 색감이 눈에 들어와 클릭한 가방은 나를 “또” 샛길로 빠지게 했다. 가방 디자인은 미니멀하지만, 디테일과 컬러를 쓰는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자세히 가방 사양을 읽어보니, 가죽 가방이 아니고 무게감도 훨씬 덜 하지만, 외관상 보이는 텍스처가 고급스러운 것 같아 도대체 이 가방은 어디 것인가 궁금하게 됐다. ‘비올레따그리조’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름에 다시 샛길로 들어서 검색을 해보니, 이 가방은 개인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였다. 마침 디자이너의 블로그를 발견하여 들어간 그 곳엔, 그가 처음 ‘비올레따그리조’를 만들게 된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발자취가 허심탄회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순간부터 블로그는 시작된다. 그 뒤로 회사 이름을 고민하고, CI를 만들어보고, 마음에 드는 원단을 찾으러 방황하고 첫 샘플을 어머니의 손바느질과 스테이플러로 만들어본 날, 자금 부족에 아쉬움이 남는 순간과 제작 공장을 찾아 헤매고, 원하는 디자인이 구현되어 첫 가방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짤막짤막하게 박상국 디자이너 특유의 유머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한 청년 디자이너의 창업기일지도 모른다. 박상국씨와 그의 브랜드가 나의 흥미를 잡아 끈 이유는 별도의 홍보나 마케팅 활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품이 꽤나 팔리고 있고, 특히 외국 잡지에 실리거나 혹은 촬영협찬 요청이 들어오는 점이다. 신사동에 판매 위탁을 했던 상점을 통해 구매를 한 일본, 홍콩, 중국 등 외국인 구매자들도 많다. 또 한가지는, ‘습식폴리우레탄’이라는 특이한 소재로 가방을 제작했다는 점이다. 빅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죽으로 만든 빅백은 무게감 때문에 많은 물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는, 부피와 상충된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하지만 ‘비올레따그리조’ 가방은 특별한 소재를 이용해, 색다른 특색과 아이덴티티를 부여한 점이 여타 다른 브랜드 가방을 제치고 경쟁 속에서 자리잡게 했다. 아직은 신진 디자이너의 신생 브랜드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진 않지만, ‘비올레따그리조’는 얼마 전 두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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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따그리조(VIOLETTA GRIGIO).. 이탈리아어인데 이렇게 쓰는 게 문법적으로 맞는지 아닌지도 몰라요. 원래 제가 원했던 이미지가 ‘보라빛회색’이예요. 그런 느낌의 제품을 하고 싶어서 했는데, 영어로 하다 보니 너무 직접적이어서, 구글 번역기에 넣고 온 나라 언어를 다 돌려봤죠. 걔 중에 이탈리아어가 제일 어감이 좋더라구요.”

본래 제품디자인을 전공한 박상국씨는는 핸드폰 디자인을 준비해오던 중 터치폰의 등장으로 꿈을 접었다. 디자인이 좋아서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던 그였건만, 점점 디자인 본연의 가치보다 말로 푸는 마케팅 비중이 커지는 풍조와 정답이 없는 디자인의 호불호가 싫어지던 무렵, K항공사에 가벼운 마음으로 내본 입사지원이 최종합격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차라리 정답이 있는 곳으로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디자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난 그 곳은 너무나 정답 속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곳이었다. 7개월을 채우고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형태로 승부할 수 있는 걸 찾아보니, 자동차랑 패션 쪽이 자신에게 선택으로 남았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구두였다.

“원래 구두를 먼저 하려 했는데, 제가 여자 힐을 신어본 적이 없어서요… 주위에서 만류도 많고. 그래서 가방을 먼저 시작하게 됐죠. 학창시절부터 모더니즘, 미니멀리즘을 좋아했어요. 가방을 무척 좋아했는데 마음에 드는 가방을 찾기가 힘들어서, 심지어 3개국을 다니면서 찾았는데 없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 게 쌓이다 보니 가방을 시작했는데… 제 성향이 극단적이어서 아주 심플하거나 아주 화려하거나에요. 장식보다 형태가 화려한 걸 좋아해요. 처음이니까 우선 심플하게 가자고 결정했죠.

섬세한 까칠한..식의 제가 원하는 의미가 모두 포함된 델리케이트라는 단어를 붙여서 컨셉도 델리케이트 노말이에요. 20대 초반에서 30대 직장인.. 명품 가방도 있지만, 특이한 가방도 갖고 싶은 사람을 타겟으로.. 스케치를 그려놓고 컨셉을 고려해가면서 계속 가지치기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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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비올레따그리조’ 상품 라인은 그리지오/비올라/네로 3가지로 나뉘어 있다. ‘그리조’ 라인에서 습식폴리우레탄으로 제작된 스테디 상품들이 포진하고 있다. ‘비올라’는 상위 여성 라인이 될 예정으로 아직 상품이 소개되지 않았고, ‘네로’는 ‘그리조’라인과 함께 처음부터 같이 진행되어 왔던 라인이지만 사용하던 원단 가죽들이 더 이상 한국에 수입되지 않아 보류 중에 있다. 가방을 좋아하는 그가 자신이 들고 다니고 싶은 가방을 우선으로 만들다 보니, 모델도 디자이너 자신이 되어 가방의 사이즈감도 남성 자신의 사이즈를 기준으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박상국 디자이너 가방을 구매하는 남녀 고객의 비율을 2:8로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습식폴리우레탄의 강렬하면서도, 고운 컬러감과 세련된 빅백 디자인은 오히려 여성 빅백 매니아들을 끌어당겼다.

“처음 시작은 남자 가방이었어요. 근데.. 망했죠..(웃음) 저한텐 사실 큰 문제에요. 남자 가방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제 성향이 여성스러움이 있는건지, 남자분보다 여자분들이 훨씬 많이 구매하시더라구요. 처음에 강조를 했어요 ‘남자 가방입니다~’ 근데 지금은 ‘공용입니다~’ 라고 하죠. 처음에 눈에 띄게 하려고 핑크색이랑 노란색을 넣었는데 그랬더니 여성분들이 더 좋아하시는 듯해요. 남자가방으로 만든 거여서 5킬로 추를 달아서 퀄러티 체크를 하는데, 의외로 여성분들이 많이 사시고, 제가 예상하는 것보다 여성분들은 훨씬 더 많이 뭘 넣고 다니시더라구요. 그래서 두 세번 AS가 들어왔었는데, 여자분들이 그렇게까지 무겁게 들고 다니시는지 몰랐어요. 지금은 그 경험을 살려서 가방을 업그레이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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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박상국씨의 꿈은 연봉 높은 월급쟁이 디자이너였다고 한다. 그만큼 사업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가방을 만들어온 사람도 아니었다. 디자인을 떠나 일반 사무직을 했던 몇 개월 동안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돌아와 과감히 자신의 사업을 하기로, 그것도 잘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가방을 하기로 하면서 기꺼이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다.

“제 브랜드만의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제 스스로 미니멀한걸 좋아하는데 소재까지 비슷한 걸 사용해버리면 변별력이 없을 거 같아서 소재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많은 분들이 가죽이라고 아시는데, 저는 가죽이 아닌 것 같이 보여서 이 소재를 선택했거든요. 가끔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어요. 가죽이 아니라는게. 처음에는 가죽이 아니고, 색감도 이쁘고, 촉감도 좋구나..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잘 받아들이겠구나.. 했는데 주위 디자이너들이 가죽을 사용하고 그러니까 피해의식 같은 게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이 소재를 계량하느라 바빠서요 그런걸 느낄 새가 없어요. 이 원단을 살려야 하니까, 부끄러워할 틈은 없는데… 그래도 언젠가 가죽으로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스타일리쉬한 정장에 컨템퍼러리하게 들 수 있는 라인이고, 가죽은 좀 더 다른 느낌으로 하겠죠.”

마음에 드는 소재를 찾아내기까지 신설동 원단 가게를 2달동안 돌아다녔다. 본인 말을 빌리자면 ‘무식한 질문’도 많이 하고 다녔단다.

“가죽을 계속 찾아 다녔는데 머리에 딱 오는 가죽이 없고, 우연히 폴리습식우레탄 소재를 발견하고 나서 고민이 사라졌죠. 원래 가방용 소재가 아니고 앨범이나 다이어리 커버용이어서 가방으로 불가능한건데, 추가 공정을 거쳐서 가방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됐어요. 보통 가방을 보면 와이어가 들어가서 형태를 잡는데 그게 제 가방에는 너무 굵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일이 손으로 접고 붙이고 테이핑하는, 전부다 손으로 잡아서 완성해야 나오는 가방이에요. 한 마디로 만들기 아주 까탈스러운 가방이죠.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낼 수 있는 공장을 찾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카피가 나오는 것까지 고려한 공정이기 때문에, 왠만한 정성으로는 같은 퀄러티로 짝퉁이 나오긴 힘들어요.”

실제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그리조’라인의 빅백은 이미 카피가 나왔다. 언젠가 박상국 디자이너가 블로그에 ‘내 가방도 시간이 흐르면 카피가 나오는 날이 있을까’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에 의해 카피 제품을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격이 자신의 가방에 비해 무척 낮았지만 동시에 퀄러티도 무척 낮았다. 위기감도 들었지만 짝퉁이라도 너무 신경을 안 쓴거 같아 섭섭하기까지 했단다.

자본주의 국가의 영세업자. 힘 없는 영세디자이너 브랜드

가끔 박상국 디자이너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말이다. 가장 크게는 자본의 한계 그리고 영세 브랜드로써 욕심날만한 판매 채널의 장벽이다. 특히 신진 디자이너를 지원한다는 명분과 함께 그들의 제품으로 채워진 멀티 샵을 컨셉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모 판매처에선 ‘비올레따그리조’ 가방 입점을 거절하고 나서, 얼마 후 카피 가방을 입점시켰다. 물론 퀄러티나 완성도 면에서 다르긴 해도, 개인 디자이너로써는 상처가, 힘없는 영세 디자이너 브랜드로써 화가 나지 않는 일일 수 없다.

2,30대 청년들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자본이 빡빡하기 마련이다. 녹록치 않은 자금 능력은 많은 아쉬움을 키워내지만 그만큼의 절실함이 에너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비올레따그리조’ 역시 한번의 몇 백 개의 가방을 생산해 낸다거나, 동시에 다른 라인의 신제품을 척척 선보이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알려져 이 상황이 감당이 되지 않을 때도 많다고 한다. 제품이 순식간에 품절이 되도, 다시 해당 제품에 물량을 채우기까지는 일반 브랜드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덕분에 새로운 제품에 쏟아야 할 에너지가 제작/물량 관리로 분산된다.

“브랜드 관리를 고려하는 생산과 판매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요, 제 입장에서는. 소량으로 조금씩 뽑다 보니 단가 맞추기도 힘들고, 현재 가방도 제가 원하는 가격보다 높아요. 십 만원 중반 대를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팔면 결국 운영을 하는데 탈이 나더라구요.”

‘내가 가방 하나를 팔면 다른 가방 하나를 만들 돈과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을 돈은 나와야 하지 않겠나.’ 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블로그에 써있는 글귀는 그의 심경을 잘 대변해 준다. 수익을 떠나 운영면에서 디자인, 제작은 자신이 기꺼이 원했던 일이더라도, 유통을 비롯해 손에 익지 않은 웹사이트 제작과 운영, 제품촬영까지 모든 일을 본인이 도맡아 하고, 그 모든 결정을 홀로 해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다.

“저는 이걸 1-2년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저는 브랜드로 만들려고 멀리 보고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래서 판매 채널을 늘리고 하는데 아직 주력하고 싶지 않아요.”

박상국씨는 브랜딩 관리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공부해온 터라, 왠만큼 좋은 제안이나 판매 채널도 브랜딩을 고려해서 쉽사리 결정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철옹성이다. 그리고 가방에 대한 자기 소신 그리고 미래의 자신에 대해 원하는 부분도 뚜렷하다.

[찾기 어려운데 사기는 쉬운 가방, 부담없고, 튀진 않는데, 싼티 나지 않고, 가방만 놓고 보면 예쁜 가방]

“가방은 사람보다 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가방 개별로 봤을 때 멋진 것이 좋아요. 가능하면 디테일과 장식을 줄여서 멋진 가방을 만들려고 해요. 앞으로도 박상국은 빼고 브랜드로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현재 하고 있는 잡다한 일들을 하나씩 내려 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궁극적으로는 브랜드 디렉터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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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홀로 일어서고자 하는 청년 창업인들과 디자이너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리스크를 많이 고려하고, 브랜드가 정말 많기 때문에 이젠 차별성을 갖기가 정~말 힘들어요. 예를 들어서, 어떤 가방을 봤는데 그런 가방이 하고 싶어서, 좋아서 시작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에 변별력이 없고, 제작가격을 맞추는 부분에선, 막상 닥쳐보기 전까지 잘 몰라서 그냥 우선 시작해보는 경우를 많이 봐요. 인터넷으로 판매하지 뭐.. 하고 쉽게 말씀하시는데 홍보가 굉장히 중요하구요. 타겟팅 등을 명확하게 하고… 우선 재미는 있으니까요. ㅎㅎ

정말 생각하지도 못하는 일이 터져요. 방법이 없어요 그냥 터지면 그때 막아야지. 멘붕 몇 번 겪으면, 견딜 수 있는 충격의 강도가 점점 세져요. (후훗)”

올해에는 경기가 더 안 좋아질거라는 얘기가 무성하다. 기업들은 또 다시 인원감축에 들어갔고, 퇴사지원을 받고 있다. 올해에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혼돈스러워 할 것이다. 누군가는 재능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자본이 넉넉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없어도 있어보이고 싶어하고, 있는 사람은 더 있어보이고 싶어하는 세상에서, 박상국씨는 가방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도 허세나 허풍이 없다. 몰랐던 것은 몰랐었다고 기록하고, 어려운 대로 해나가고 있는 현실까지도 터 놓는다. 몇 번 간판 내릴 뻔 했다지만, 투자를 하겠다는 투자자의 제안은 자유롭게 일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거절했다. 너무나 해보고 싶은 여성 상위라인 ‘비올라’도 남아있으니, 앞으로도 그는 열심히 달릴 것 같다. 어김없이 멘붕이 오고, 간판을 내릴 것 같은 위기들이 올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그어 놓은 브랜드의 그림을 지키며 살아남아 모두가 알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런 소박하고 건강한 성공 신화들이 있어야 경제는 어려워도 우리 모두 힘내서 살아가지 않겠나.. 2013년에도 ‘비올레따그리조’의 깔끔하고, 깔고운 신상을 기대한다.

박상국 작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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