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하늘 아래 작은 미술가를 지향한다, 김선혁

커다란 하늘 아래 작은 미술가를 지향한다, 김선혁

오랜만에 야성미 넘치는 길거리 캐스팅과 흥신소마냥 연락처를 알아내는 방법에 벗어나, 우아하게 박준상 작가(이전 인터뷰어)님의 소개로 김선혁씨를 알게 됐다. 소개해준다고 무조건 인터뷰하는 은은한 여자가 아닌 관계로 ‘제가 먼저 작품 좀 보고 싶어요!’라는 양해를 구하고, 강력한 검지 손가락으로 김선혁씨 작품을 탐구하러 www세계로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웹을 통해 본 그의 작품은 나무 뿌리와 줄기를 모티브로 거리낌없이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본인이 생각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반면, 장식성도 있는 작품들이 많아, 여자인 나로써는 작품에 바로 호감을 갖게 됐다. 그런 와중에 두 번째 개인전시가 열리는 중이라고 하니, 작품을 함께 맞대어 보면서 인터뷰를 해봐야겠다는 욕심과 함께 휴대폰을 잠금해제 시켰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김선혁 작가

비 오는 정오, 인사동 노암 갤러리에서 그의 두 번째 개인전 ‘Simple Truth’를 만났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흐린 날보다 더 어두운 실내가 관람객을 반겼다. 예상과 다른 전시장 풍경에 조금 놀랐지만 오히려 더 큰 호기심을 품고서 전시장을 스캔했다. 조소 작품이 주를 이뤘던 그의 첫 개인전과는 다르게 어두운 실내공간 이곳 저곳에 그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설치 작품들이 숨어있었다. 당근을 싫어하는 나의 고질병으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는 것에 시간이 걸렸지만, 제일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천장에 위치한 사다리였다. 바닥에 마련된 계단 같은 단상에 올라가 사다리가 에워싼 천장을 올려다 보니 그 곳엔 나무 위로 햇살 좋은 청명한 하늘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 나는 지금 땅속에 있는거구나…’ 땅속에서 그 틈으로 바라보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하지만 그러기엔 사다리는 너무나 제 구실을 못하는 듯한) 닿기 힘든 이상공간을 표현한 것이었다. 땅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나무 뿌리의 시선으로 두 층의 전시 공간을 지면 아래와 위로 나눈 것이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막막하다 어둡다고 느끼는 현실이 있잖아요, 현실에 멀어졌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상이나 꿈을 바라보는 시선이에요. 그리고 기능을 상실한 천장에 박힌 ‘사다리’가 오를 수 없는 주저하게 되는 요소에요. 나의 꿈 같은 것들이 이미 멀어진 이상이고, ‘내가 저곳에 오를 수 있을까.. 오를 수 없을거야..’라고 현실에서 타협하게 하는.. 하지만 저는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이 작품은 현재 김선혁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작품을 둘러 보고 나면, 그가 세상을 보면서 느끼는 많은 안타까움과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교차로’, ‘가로수’ 같은 생활 정보지 보관함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십자가와 ‘Like a human-being’이라는 제목 아래 비닐에 싸인 경사면을 수없이 미끄러져 내리면서도 끝없이 오르려 하는 곱등이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자본주의와 탐욕이 가득한 21세기 속, 미래에 대한 불안이 팽배한 대한민국 땅에서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한 젊은이가 마주 본 세상을 투영하고 있다.

“작업비라도 충당할까해서 소일거리를 찾으려고 교차로 등을 꽤 봤었는데 통이 비어있을 때가 많았어요. 그만큼 찾는 사람들도 많고, 힘들게 현실에 치어 사는 사람이 많구나.. 현실 이상으로 삶의 가치를 둔다면 잘 먹고 잘사는 건 문제 될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먹고 잘 사는 게 좋긴 한데, 그렇다고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진짜 가치 있는 삶이 뭘까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됐어요.
특히 청년들이 이 십자가를 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나 되돌아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원래 꿈꿨던 이상적인 삶이 뭐였는지, 현실에 치어서 오늘도 힘들다 하고 살고 있지 않은지.. 눈앞의 현실적인 근심들에 잡혀 사는 모습, 근심을 신앙적인 요소로 표현해서 그런 근심들은 헛된 믿음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죠.
곱등이 영상은 작업실 한 구석에 경사진 곳을 계속 오르려는 곱등이를 발견하고 찍어봤어요, 보면서 ‘사람의 모습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이런 이야기를 써 놓고 있었거든요.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눈 앞의 현실적인 것만 바라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작년 여름부터 이 전시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시기에 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에 많았어요.”

예고를 나오고, 조각을 전공해 석사 과정을 마무리한 그로써 진로와 삶에 대한 생각은 그의 인생에서 여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현실과 직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시선을 주변으로 돌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걸까 라는 의문으로 조금 더 진지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곤 한다.

“입시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우선 목표는 대학이고, 전공도 점수에 맞춰서 선택해요.. 요즘 우리들이 사는 삶이 지향점이 없는 거 같다는 걸 느끼면서, 오히려 나는 행복한 삶을 사는 거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미술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더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느껴지니까 돈이 좀 모자라더라도 작품을 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선혁 작가 개인은 단순하게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이 길을 가겠다’라는 결정을 했던 반면, 주변 친구들에겐 ‘먹고 살기 위한 길’과 ‘원하는 길’이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었던 현실이 이번 전시에 반영됐다. 그가 다른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던 그의 내면적 자아는 그의 작가 노트를 통해 또 한번 느낄 수가 있다.

‘나는 이처럼 작은 존재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새삼 깨닫는 이 소박한 진리는 끊임없는 경쟁, 치열한 전장과 같은 근시안적(myopia) 현실에서 벗어나, 보다 상위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모든 것의 우선순위, 즉 진리적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다…- 2011 작업노트 中 –

김선혁 작가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신의 존재 아래서 이 세상과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그리고 신이만들어낸 커다란 자연 속에 있는 자신은 작고도 작은 존재임을 느낀다.

“카메라 들고 자주 다녀요. 그런 걸 찾다 보니까 하나님을 찾고.. 하늘을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적인 변화를 좋아해요. 그런걸 보면 아주 미세한 존재처럼 느껴지면서 전 너무 평안해지더라구요. 더 작고 낮아지는 과정 그래서 땅속까지 들어와서 하늘을 바라 볼 때의 느낌을 살린 거예요.”

이번 전시 작품을 통해 그가 느끼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운 실내에서 밝고, 높은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한껏 위로 젖히면 어떤 예술 작품도 범접할 수 없는 커다란 푸른 하늘이 많은 감정을 끌어내준다. 그런 기분을 맛보고 고개를 내려 이 현실을 보면 분명 그런 기분을 느끼기 전과를 다른 눈으로 이 엉켜있는 세상이 보일 듯 함에 공감한다.

처음 ‘조각가’ 김선혁으로 소개를 받았음을 고려하면, 예상치 못한 전시이자 체험을 하게 됐다. 덕분에 조각이란 어디까지 조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표현 방법의 선택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됐다.

“조각가라는 말이 이제 불필요하다고 느껴요. 아티스트는 너무 광범위하고, 저는 미술가라고 얘기해요.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게 미술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시각미술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모두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에 묶여있는 거 보다는… 저는 미술가라는 말을 원해요.”

체험과 설치 미술 전시가 주를 이룬 이번 전시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봤던 그의 첫 개인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조각가의 전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식물의 줄기와 뿌리를 모티브로 한 [Drawn by Life]라는 첫 전시에서는 식물의 삶을 대지의 밖으로 끌어내며 인간의 삶에 대입하여 시각화 하였다.

“나무라는 형태의 조형성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나무가 끝없이 뻗어가는 걸 계속 그렸던 거 같아요. 2학년때부터 왜 내가 계속 나무를 그릴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거기서 느껴지는 생명력 그런걸 표현하고 싶어서 그때부터 나무를 쓰기 시작했어요. 기본적으로 내가 느꼈던 거 나무형태, 뿌리형태에 느꼈던 감정을 하나하나 풀어서 주제에 담았었는데, 작업하는 동안에 이번 전시보다 형태적인 거에 더 집중을 한 건 맞죠. 이게 뿌린데 사람처럼 더 잘 보여야 돼 이런 거에 더 집착을 했었어요. 뿌린데 혈관이네, 가지인데 사람이네 식으로..
교수님들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너무 설명적이다 라고 얘기해주셨는데, 고집이 있어서 나는 그래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게 하겠다라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미술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미술은 쉬워야 돼 더 쉽게 다가가고 잘 보여야 돼’ 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에게 더 여지를 주는 걸로, 상상하고 생각하게 하는 걸로 바뀌었죠.”

김선혁 작가는 첫 개인전을 열면서 사진과 글로 자신의 전시회 자료를 만들고 씨디로 구워 월간지 회사에 가서 직접 전달하고, 일간지 주간지에도 메일로 보냈다. 당시 자료를 보고 관심을 가진 기자 덕에 신문 한 면을 차지하는 보람찬 결과를 얻기도 했다. 당시 첫 전시를 통해 만났던 인연으로 노암 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각각 판이하게 다른 전시 모습이지만, 김선혁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작품을 연결하는 고리는 하느님과 자신의 신앙이다. 하느님이라는 절대자와 그의 피조물 중 하나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차이를 기꺼이 떠안고 자신의 예술을 펼쳐가고자 함은 김선혁이 추구하는 작가의 길이다.

“작품을 통해 예전보다는 지금의 신앙이 조금 더 심화된 거 같아요. 하느님이 만든 창조물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다 해서 나의 한계성이나 그런 것들을 보여주면서 하느님을 드러내야지 했던건데, 지금은 하느님을 대변하면서 작품에 넣으려고 해요. 제 자신이 하느님을 찾는 과정이랄까요.
기본적인 베이스는 다 하느님을 드러내야지 하는 게 있어요. 음악 쪽도 일반 가수가 있고, CCM가수가 있잖아요. 저도 같은 아티스트여도 CCM계열같은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나님을 안고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그에게 또 하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작가로써 사는 길이다. 자신도 앞일은 모르는 거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럽다며 말을 최대한 아끼는 김선혁 작가였지만, 예술이 인생의 주가 아닌 취미적으로 간다면 그것은 작품에서 티가 날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고로 그의 작품 욕심은 작품 활동을 삶의 주연으로 놓는 작가일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너무나 존경하는 선배 작가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꼽아보라 채근하니 이용백 작가님과 전준호 작가님을 꼽는다.

“일단 작업을 하는데 사회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작업하는 것도 그렇고, 발상 같은 것도 너무나 배울게 많아요. 그런 모습들도 그렇고, 그분들이 제가 시작하는 발걸음을 겪고서 그런 내공이 쌓인 거잖아요.. 그렇게 살아갔다는 자체가 너무 존경스러워요. 그런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계속 작업을 하고 계신다는 건, 막막한 길인데 그런 길을 걷고 계신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진지하고, 뚝심 있다. 이제 막 발 돋움을 시작한 그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미약함 속에서 출발하여, 주위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그의 모습은 거짓이 없다. 자기 세계에만 빠지기 보다는 사회가 흘러가는 흐름과 함께 하며 작업을 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앞으로도 세상을 향해 많은 이야기를 던질 포부가 느껴진다. 인터뷰 글을 정리하고 작성하는 동안에 인간으로서 작가 개인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감을 느꼈다. 오히려 만났을 때보다 그와의 만남을 글로 정리하고 작품을 보고 그가 꼼꼼히 보내준 작업 노트들을 들여다 보면서 그를 더 이해한 기분이다. 자기 생각과 철학을 고스란히 작품에 닮고 싶어하는 그이기에 다시 작품에 이해로 넓혀져 간다. 작가의 길을 걸어가며 40대가 되었을 김선혁이 무척 궁금하다.

김선혁 작가 블로그

[영화 리뷰] Now is Good

나우 이즈 굿

2012.11.08 개봉
감독 : 올 파커
출연 : 다코타 패닝(테사), 카야 스코델라리오(조이), 제레미 어바인(아담)
등급 : [국내] 15세 관람가 [해외] PG-13


: 하루
편집 : Avant-in

 


오늘도 나는 출근을 한다. 새벽 6시 알람소리에 깨어나,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고, 어젯밤 샤워 후 대충 말리고 자 꾸깃해진 머리칼을 대충 손가락으로 빗어 넘긴 다음, 차키가 어딨지? 안경은? 지갑은? 하며 결국 내가 답해야 할 질문을 쏟아내다 꽉 막힌 도로 위에 놓인다. 왜 이리 먼 곳으로 이사를 왔나 몰라…투덜대면서 어젯밤 은행 낙엽이 수북히 쌓인 곳에서 발장난을 하며, 그래도 이 곳이 좋아…라고 했던 기억을 지운다. 그렇게 일터에 도착하고, 그 다음엔…시간을 매 순간 파괴하며 버틴다.

그리고 또 나는 출근을 한다. 새벽 6시…옷, 머리칼, 차키…^)$(_@%(@^+$!

한 달에 한번 월급날 오전 9시쯤. 그래. 돈! 이라며 웃음을 슬쩍 흘리지만 그 웃음이 채 번지기도 전에, 각종 카드사와 보험사에서 내 지난 날의 소비를 털어간다.

젠장. 이게 인생이냐?

인생. 인생을…즐기다?

인생은라는 동사와 자주 붙어서 등장하는데, 이 문장이야 말로 비문 아닌가…도대체가 말이 되나 싶다.

테사는 문제아다. 무면허 운전에 도둑질, 마약까지 거침없이 저지르고 다닌다. 테사가 저지르는 이유는 초조함이다. 이 생이 끝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은 가능한 다 해보고 싶은, 백혈병에 걸린 17살 소녀의 조바심.

테사 역은 다코타 패닝이 맡았다. 세상을 다 알아버린 듯한 그 눈빛은 ‘I AM SAM’에서와 마찬가지다. 이 소녀의 영민함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듯 불완전한 육체와 아이러니하게 어울려 다 차고 넘친다.

조이 역은 그냥 봐서는 흘려 넘길 수도 있지만, 김수현의 이상형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보면, 갑자기 매력이 증폭돼 보이는 ‘카야 스코델라리오‘ 다. 단독으로 충분한 힘을 가진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제 형체를 지니고 있지 못해, 끝까지 덧붙은 존재로 보인다.

아담 역은 제레미 어바인. 전형적인 현대 미남이랄까? 이 영화에서는 ‘아담’ 이 ‘삶’ 의 아이콘을 맡은 셈인데, ‘죽음‘을 표현하는 ’테사‘ 와 엉키고 또 홀로 뻗어나가는 에너지가 마구 흔들리는 그 감정을 잘 관찰하면 재미있다.


얼마 뒤, 죽어야 한다면 나는 무엇부터 할까? 아마도 나 역시 ‘가장 나쁜 짓’부터 할테다. 그동안 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로 온갖 눈치에 억눌려, 가장 하고 싶지만, 가장 할 수 없었던 무언가부터 저지를 것 같다. 테사 역시 금기에 도전하며,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 나간다.

하지만, 또 삶의 의미라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것에 있다는 걸 이 영화는 말한다. 가장 멀리 도망가더라도 돌고 돌아 결국 회귀하는 곳은 옳다고 했던 것이 옳다는 것을 발견하는 깨달음의 장이다.

Being With You. Being With You. Just Being With You.
너와 함께 있기. 너와 함께 있기. 단지 너와 함께 있기.

테사의 이 대사는 아마도 오랫동안 내 삶을 지배하는 문장이 될 것 같다.


영화는 뻔하면서도, 뻔하지 않다.

계절이 바뀌면서 많은 사람이 죽어 간다. 거의 매일 같이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삶이 죽음과 결국 같은 동전의 양면일 뿐이란 걸 깨닫고, 그저 초조하다.

별 수 없이 삶은 또 고통으로 범벅이 될 것이지만, 그래도 장례식장에서 돌아 나오는 순간, 그리고 이 영화를 떠올리는 순간엔 섬뜩한 초조함으로 당분간의 감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그저 내게 정리된 두가지 질문과 답.

#1
Q : 테사와 나의 공통점
A : 죽는다.

#2
Q : 테사와 나의 차이점
A :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VS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야기를 만드는 디자이너, 브라운 브레스(Brownbreath) 이근백

이야기를 만드는 디자이너, 브라운 브레스(Brownbreath) 이근백

“제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메시지와 지식, 정보, 움직임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방직공이 아닙니다. 메신저입니다.”

브라운 브레스 홈페이지의 ABOUT, 즉 브라운 브레스를 설명하는 페이지에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이다. 이근백 디자이너를 만나기 전, 홈페이지에서 만난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쿵쾅거렸다. 특히 ‘우리는 방직공이 아닙니다. 메신저입니다.’라고 짧게 끊어 쓴 말에서 힘이 느껴졌다. 페이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더욱 놀랐다. 브라운브레스는 총 8가지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브랜드가 매 시즌 컨셉을 내고 스타일을 잡아가는 것은 자연스럽게 다가오지만, 여기서 보이는 캠페인과 관련된 단어들은 이러했다. The hero, Definite Answer, Relation, History, Mother Earth, Propaganda Technique, Motherland, Music. 의류 디자인과는 생소한 느낌이었다. ‘메신저입니다.’라고 말한 그들의 마음을 자세히 듣고 싶어 이근백 디자이너를 만났다.


취재 및 글 : 강민혜 / suremine@naver.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브라운 브레스

Q. 가장 궁금했던, 그러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할게요. ‘브라운 브레스’의 의미는 뭔가요?

A. 사실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단순하게 브라운은 브라운 색상을 좋아해서예요. 4명 다 브라운 색상을 좋아해요. Breath는 숨인데, 숨 쉴 때 바깥으로 호흡이 나오는 거잖아요. 배출하는 느낌을 그 단어에서 뽑아내고 싶었어요. ‘spread the message’ 메시지를 담아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생각을 퍼뜨리는 것이 배출하는 느낌의 Breath와 어울리기도 하고, 그래서 이름이 브라운 브레스가 됐어요.

Q. 브라운브레스는 4명이 공동대표를 하고 있잖아요. 4명이 적은 수가 아닌데, 어떻게 같이 시작했는지 과정을 듣고 싶네요.

A. 지금 같이 대표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원래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어요. 전혀 모르다가 알게 된 친구들이에요. 각자 티셔츠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서 만들었던 친구들이죠. 처음에 이태원 가게에 각자 납품을 하다가 서로 느낀 것 같아요. 각자 만드는 것이 소량이고 판매가 힘들다 보니 이대로는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같이 사무실 쓰고 공장 공유하는 정도로 시작했어요. 서로 돈을 함께 한다거나 그런 것이 없었죠.

Q. 4명이 공동대표를 했다면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고, 오히려 좋았던 점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런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요.

A. 제가 생각하기엔 그래서 약간 처음엔 거리감이 있어서, 서로 막대하지도 않고요. 지금은 많이 친하긴 하지만, 서로 예의를 갖추고 일을 하다 보니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아요. 싸우긴 하죠. 의견을 나눌 때, 근데 오히려 4명이 하니깐 중재가 되고 서로 의견을 조율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 이야기를 하고 맞추면서 나아진 점도 있었어요. 1년 넘게 하다가 각자 분야를 맞춰서 합쳤어요. 저 같은 경우는 디자인하고 생산, 한 친구는 재무랑 물류, 다른 친구는 영업과 마케팅, 한 친구는 온라인 쪽으로 분담을 해서 하게 됐어요. 각자의 분야를 정하기도 처음에 힘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계속 공동으로 섞여서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좀 더 효율적으로 각자 파트를 맡아 깊이 있게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지금은 이렇게 분야를 나누어서 담당을 하고 진행하고 있어요.

“각자의 파트가 있지만, 크게 함께 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브라운 브레스’ 브랜드로 모였기 때문에 그 자체를 제일 중요시해요. 회의로 생각을 같이 나누고, 그런 것을 중시하죠.”

Q. 스트리트 브랜드 중 최초로 백화점에도 입점했고, 남자 옷 브랜드 중에 잘나가고 있고. 디자이너님이 생각하시는 ‘브라운 브레스’의 성공의 비결,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저희가 시작할 때 가 2006년도였어요. 그때가 쇼핑몰 붐이기도 했고 쇼핑몰을 하면 대박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 때죠. 복합적인 것 같아요. 운도 있던 것 같고, 딱 포인트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굳이 생각해보면, 저희는 있는 것을 파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안했던 것을 하는 걸 추구했어요. 옷을 파는 것 뿐 만이 아니라, 확장해서 문화를 다루고 문화를 만들어 내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공유했어요. 제대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다, 라는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다양한 활동으로 표현을 했고요. 전시를 한다거나 파티, 콘서트를 하고. 아티스트와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것 등 여러 활동과 새롭게 하고 싶다는 마인드를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을 받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백화점 팝업 스토어 컨셉 중 ‘기초 공사’에 관한 이야기를 본적이 있어요. 컨셉도 잘 잡은 것 같고 매력적이더군요. 스트리트 패션이 백화점에서 하는 팝업 스토어의 거의 시초였을 텐데, 그 과정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A. ‘기초공사’는 2번째 백화점 팝업 스토어 컨셉이었어요. 첫 번째 컨셉은 호외였어요. 스트리트 패션의 백화점 진출이, 호외기사 느낌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저희는 뭘 하나 해도 가장 집착하는 게 ‘이야기’예요. 꼭 무언가에 이야기를 담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큽니다. 백화점이라는 큰 유통업체에서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여기서 뭔가를 해보자라는 다짐으로 해봤어요. 기초공사를 잘 닦아서 건물을 더 잘 짓듯이 말이죠. 그 다짐으로 컨셉을 잡았어요. 예전에 벽화를 그렸던 경험도 있어서 그걸 살려봤고요. 벽화를 그리고 여러 가지 공사를 시작하는 작업처럼 말이죠. 그런 느낌으로 하면 비용도 절감하고 재밌게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서 ‘기초공사’로 했고 잘 된 것 같아요. 팝업스토어가 이벤트를 통해 판매증진에만 초점을 맞춘 느낌이 드는 게 싫었거든요. 브라운 브레스는 팝업스토어에서도 우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매번 이렇게 컨셉을 잘 준비해서 만들어내고 있어요.

Q. 매 시즌 컨셉을 잡는 것은 당연하지만, 제가 홈페이지에서 봤던 8가지 큰 캠페인도 있고요. 또 이렇게 팝업스토어에서도 컨셉을 잡고 진행을 하면 상당히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할 것 같은데요.

A. 그래서 매일 시간이 없고, 바빠요. 회의를 많이 해야 하죠. 우선 디자인팀이 주축이 돼서 컨셉을 많이 이야기해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 아이디어를 함께 이야기하고 컨셉을 정하는 걸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내부적으로 성향이 비슷하다보니깐 함께 계속 이야기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캠페인과 매 시즌의 컨셉의 조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중이에요.

“캠페인을 만들게 된 이유는 각자 4명이 이야기하는 메시지가 따로 있었어요. 사회적인 문제, 자연, 음악, 역사 등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았거든요. 4명이 같이 한다고, 각자하고 싶은 이야기를 버리기는 싫었어요. 그걸 없애기 싫어서, 다 같이 가지고 가기로 했고 그래서 그것을 브라운 브레스의 캠페인으로 정했어요.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각 시즌 컨셉에 맞춰서 확대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요. 컨셉과의 조화를 이루며 캠페인을 또 이뤄내는 거죠. 그 시즌에 맞게 또 다양한 변화가 있기 때문에 트렌드도 맞춰야 하고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크게 컨셉을 정하고 끊임없이 정리를 하는 과정을 치열하게 하고 있어요. ‘Spread the message’ 메시지를 알리는 메신저가 목적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힘있게 이야기하는 부분은 단연 ‘메시지’였다. 필자가 묻는 여러 가지 컨셉이나 캠페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조근조근 이야기하던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러면서도 애환을 이야기했다. 브라운 브레스 회사가 커지면서 직원도 여러 명 생기고, 매출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상황이 오니, 컨셉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는 것에도 여러 문제들이 많았을 것이다. ‘회의를 정말 많이 하죠.’라는 말과 ‘그래도 계속 이런 것들을 유지해 나가고 싶어요.’ 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브라운 브레스가 하려는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자 그는 신이 나서 여러 가지를 더 이야기 해주었다.

Q. 최근 진행되고 있는 컨셉에 대해 듣고 싶네요.

A. 이번 컨셉은 ‘Gesture of unity’구요. 내년은 ‘Sprout for roots’예요. 우선 컨셉을 영어로 많이 하는 데요. 영어를 하는 이유는 물론 멋있어 보이는 것도 있지만, ‘뭐지?’하고 컨셉을 보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게 좋아서예요. 영어로 하면 한 번 더 뭘 말하려고 하는 지 찾아보게 되잖아요. 시대정신은 예외적으로 한글로 했지만, 시대정신 역시 보고나면 단어를 그냥 넘길 수 없죠.
‘Gesture of unity’는 연대하자라는 표현인데, 간접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녹여내고 있는 것이 좀 있어요. 사회적인 연대에 대한 의미를요. 또한 다른 의미로는 스트리트 신 자체의 연대도 의미해요. 회사가 계속 성장하다보니, 저희만 잘 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 같이 잘 되어서 스트리트 패션의 장 자체가 커지는 것이 의미가 있고, 그래야 브라운 브레스도 더 성장하겠죠. 이렇게 복합적인 의미로 컨셉을 정해봤어요.

Q. 여자 옷과 달리 남자 옷을 만드는 매력은 뭘까요. 남자옷을 전면에 내세운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과정을 듣고 싶네요. 지금은 남자옷 소비가 많이 늘고 관련 시장도 많지만, 브라운브레스가 시작될 당시에는 시장이 작았을 것 같은데, 주변의 우려는 없었나요.

A. 사실 여자 옷을 잘 못해요. 남자 4명이 모였고, 더구나 패션디자인 전공한 사람은 한명도 없구요. 저도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에요. 옷을 만드는 게 재밌어서 시작한 것이에요. 그러다보니깐 실질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여자 옷을 하기는 굉장히 어려웠어요. 사실 한번 여자 사이즈로 티셔츠를 내봤는데 잘 안됐어요. 그래서 브라운 브레스는 저희가 입고 싶은 걸 만들고 싶다는 마인드로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남자 옷 브랜드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처음에는 주변에서 다들 말렸어요. 남자 옷을 누가 그렇게 많이 사겠냐며. 근데 지금은 남성 옷 시장이 커졌잖아요. 운 좋게 흐름을 잘 타서 지금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요.

Q. 성장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이나 사건이 있나요?

A.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집안 분위기가 그림을 좋아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자연스럽게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잘 그리기도 했죠. 입시미술을 할 당시였어요. 입시 미술이라는 것이 굉장히 기술적인 건데,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누나가 학교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학교에서 사과를 그리는 숙제를 내줬는데, 눈에 보이는 것 말고 사과 안에 들어있는 여러 의미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했다는 건데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어떤 걸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한지를 그때부터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그냥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잘 하니깐 하는 것이었는데, 점점 그냥 잘 그리는 것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지를 생각하게 됐고, 지금도 그것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Q.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작품에 대한 주관을 가지게 된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이후로 여러 가지를 접하고 발전 시켜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A. 제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문화를 보고 였던 거 같아요. 나이키는 단순히 제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가지고 여러 요소를 아우르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잖아요. 그 부분이 특히 좋았어요. 물론 스포츠 브랜드라서 분야는 다르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브라운 브레스’를 통해 나이키처럼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어요. 친구들에게도 계속 어필중이구요. 저도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나이키의 다양한 활동들의 이유도 느끼게 되었고요.

Q. 대학시절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네요. 이렇게 사업을 할 생각을 그때부터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었나요. 사회에 나오기 전의 상황이나 생각들이 듣고 싶네요.

A. 처음엔 그다지 뭘 해야 할 지 몰랐어요. 그림으로 밥을 먹고 살고 싶다 정도였죠. 일단 대학을 나와 회사를 다녔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부속품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특히 그래픽 디자인 작업은 계속 보조의 느낌이 강해서 특히 뭔가를 창작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심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림이 메인이 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회사를 다녔어요. 그러던 와중에 사촌형이 자신이 브랜드 사업을 하고 싶은데 디자인을 좀 도와달라고 했어요. 로고나 틀을 만드는 거였죠. 그렇게 형을 도와주면서 그 일 자체에 대한 큰 재미와 매력을 느꼈고요. 제가 잘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맛을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사촌형은 사업을 안했어요. 그러다 또 회사에서 우연히 회사 티셔츠 업무를 맡아 만들게 됐어요. 패션은 잘 모르고, 그래도 업무니깐 해야지 하다가, 저한테 이런 일이 맞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됐고요. 티셔츠를 만드는데 돈도 별로 안 들고, 여기다가 뭔가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Q. 제품을 ‘Clothink, Bagfact, Denimedia, Headoor’ 이런 식으로 정한 것이 특이했어요. 이런 단어들은 어떻게 정한 건가요?

A. 한 친구가 쓰던 Clothink라는 이름이 참 좋다고 생각해서 카테고리로 정하게 됐어요. 가방도 하게 되고 청바지, 모자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단어들을 만들었고요. 단어들이 있으면 재밌고, 이야기 할 거리가 많이 생기게 돼죠. 디자인 할 때 생각을 더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은 콜렉션으로 진행을 하게 됐는데, 매 시즌 컨셉이 나와야 되고 콜렉션 안에서 아이템들이 어울려야 되게 됐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단어랑 어울리면서 더 재밌게 된 거 같아요.

Q. 사실 브라운 브레스를 인터넷 검색창에서 치면 관련 검색어가 백팩과 관련된 검색어가 많이 뜨더라고요. 대중들에게 브라운브레스의 이미지가 백팩으로 몰려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티셔츠로 시작을 했고, 지금도 티셔츠가 메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가방이 잘됐어요. 사실 가방이 잘되면서 회사가 커지게 됐죠. 가방을 하게 된 이유는 굉장히 단순해요. 여름에 티셔츠를 파니, 겨울에 팔 것이 필요해서였어요. 또 생각해보면 저희가 쓰고 싶은 가방을 만들고 싶은 욕구 또한 있었던 것 같아요. Definition을 처음에 디자인 했어요. Definition이 정의라는 뜻이잖아요. 가방을 한번 정의해보자. 가방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넣고 다니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전문적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 들고 다니기 편한 가방을 만들고 싶었고요. 사진, 그림, 영상, 음악 등등을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에 맞는 다양한 것을 넣고 다니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표현할 것들을 담고 다니는 가방이라고 정의를 내려서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서 어반팩이라고 위가 큰 제품인데. 지금은 변하긴 했는데 이 가방은 CD를 갖고 다닐 수 있게 CD에 맞춰서 만든 거예요. 그래서 다양한 기능을 넣고 싶다고 4명이 모여 이야기하다가 특이한 디자인이 나왔죠. 브라운 브레스 가방이 박시한 느낌의 가방의 시초라고 저희는 생각해요. 그렇게 특이한 디자인의 가방을 만들었는데 예상외로 굉장히 잘 팔렸어요. 그래서 계속 이어오게 됐죠. 처음에는 엄청 많이 팔렸어요. 저희도 굉장히 놀랐어요. 브라운 브레스 스타일, 이라고 하면서 이슈가 되는 느낌도 컸죠. 하지만 저희는 이슈가 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붐이 일어났다가 쑥 없어지는, 반짝 잘되는 것은 싫어서요. 저희는 평생하고 싶어서요. 반짝 유행은 싫어서 유명모델을 쓰는 것은 지양하는 편이에요.

“현재는 브라운 브레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백팩에 많이 쏠리고 있는 것이 맞아요. 그래도 그 안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또한 가방을 통해 저희 브랜드를 알게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가방을 통해서 브랜드를 알게 되고 다른 제품들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Q. 힙합 뮤지션들과 콜라보레이션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 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일단 힙합은 4명이 다 같이 좋아하는 분야예요. 딱히 힙합을 표현하려고 해왔다기 보단, 힙합 문화를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콜라보레이션을 같이하게 됐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스트릿 브랜드 자체가 힙합 문화에서 파생된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힙합 뮤지션들과 콜레보레이션을 자연스럽게 더 많이 해왔죠. 하지만 너무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싫어서 요즘엔 다른 인디밴드도 만나려고 많이 노력중이에요. 다양한 분야를 하고 싶어요.

Q. 브라운 브레스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를 가지길 바라시나요?

A. 사람들에게 제품으로 기억 된다기보다는, 뭔가를 계속 표현하려고 하는 집단으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떠오르는 것은 다를 수 있겠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던져주는 이미지였으면 좋겠어요. 브랜드를 성장시키면서 아이를 키우는 느낌이 들어요. 브라운 브레스가 저희의 아이 느낌이겠죠. 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브라운 브레스라는 아이가 무작정 멋내고 스타일리쉬한 애가 아니라 ‘깔끔하고 괜찮은데 생각도 있는’ 아이로 보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으면 좋겠어요.

“디자인분야에서는 패션 디자인이 특히 대중적인 분야라고 생각해요. 상업적이든 심미적이든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런지 완성도가 높아요. 아직 저희는 기술적으로 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브라운 브레스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강점이예요.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는 데 더욱 열심히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Q. 10년 후에 자신을 떠올리면?

A. 무엇보다도 브라운 브레스를 계속 하고있으면 좋겠어요. 또한 새로운 것을 많이 하고 싶어요. 여유가 있다면 공간을 만들고 싶은데요. 첫 번째 샵을 하고 지금의 자리로 이사해 올 때였어요. 그때 그 공간을 처분을 해야 할 지 말지 고민하던 중에, 작가들이 전시도 할 수 있고, 소규모 브랜드들이 팝업스토어 할 수 있는 공간을 소액만 받고 대관을 하는 게 어떨까 하고 실행한 적이 있어요. 1년 정도 하고 재계약이 어려워서 지금은 못하게 됐는데. 그때 보람을 참 많이 느꼈어요. 그런 것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서, 새로운 일을 구상하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싶어요. 지금보다 10년 후에는 다양한 활동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브라운 브레스를 기반으로 다른 일들을 많이 벌이고 싶어요.

매 시즌 기존에 가지고 있는 캠페인과 연계하여 컨셉을 잡고 치열하게 기획을 해온 브라운 브레스. 브라운 브레스를 통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자하는 그의 의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던 인터뷰였다. 컨셉을 왜 영어로 많이 하냐는 질문에, 그는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싶어요.” 라는 말을 했다. 필자가 만난 디자이너 이근백은 어쩌면 사람들이 더 많은 생각을 하길 바라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을 건네고 그 생각이 확장되는 세상을 바라는 것일까 생각한다. 옷을 좋아하고 디자인을 사랑하는 그는 그가 만드는 티셔츠와 가방 등으로 그 생각을 전하고 있다.
‘Spread the message’, 그들이 힘주어 메신저라고 했던 그 다짐들을 계속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 브라운 브레스가 제품들과 다양한 문화적 활동들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 성장점에 자극이 될 수 있길, 그리고 그 의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 브라운 브레스가 ‘깔끔하고 괜찮은데 생각도 있는’ 아이로 쑥쑥 성장할 것 같다는 확신과 함께 그 성장을 열렬히 응원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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