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힘은 제2의 탄생을 만든다, REBLANK 채수경 대표

디자인의 힘은 제2의 탄생을 만든다, REBLANK 채수경 대표

‘리블랭크’의 채수경 대표를 소개받은 것은 한참 전이었다. 당시 나는 ‘리블랭크’라는 브랜드 이름도, 채수경 대표의 이름도 생소했었다.‘까르티에(Cartier)’가 선정한 2010년 세계 여성 창업 어워드 1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그녀는, 리싸이클링 작업을 하는 친환경 디자인 그룹이자, 사회적 기업인 리블랭크(REBLANK)의 대표다. net세상을 통해 그녀에 대해 알아보다 우연히 채수경 대표가 영감을 받은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한 거장 디자이너가 남긴 명언과 리블랭크가 겹쳐져, 그의 입을 빌어 이 인터뷰의 시작을 열어본다.
“디자인은 안정된 환경과 민감한 원자재 상황에 기여해야 한다. 이는 실제 오염뿐 아니라 시각적 오염과 환경 파괴를 포함한다.” – 디터 람스(Dieter Rams)-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채수경 대표, 리블랭크



우리는 광화문 광장 같이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 건물을 뒤덮는 현수막을 자주 보곤 한다. 커다란 건물 한 면을 다 덮은 현수막을 보면서 ‘스케일 죽이는데!’ 라던가, ‘좀 더 크게 만들어서 압도해버리지!’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창피한 과거여서 주어를 빼버렸다.) 엄청난 크기의 광목 헝겊일 것이라 생각했던 그 것은 폴리가 어쩌구 우레탄이 저쩌구 하는 그야말로 플라스틱에 범접하는 재질이었다. 수 많은 미세 구멍으로 바람이 통하게 하여 건물을 덮은 상태에서도 문제가 없도록 하는 동시에, 인쇄한 내용이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어야 하는 두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고자 했던 문명적, 도구적 인간의 선택은 엄청난 크기의 비분해성 폐기물이었다. 얼마 전 빌딩을 덮고 있던 현수막 절반이 리블랭크로 도착했다. 무게는 2.5톤이다. 기업이 사용하는 현수막 하나가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로 대략 5톤 정도가 나온다는 얘기다. 태울 수도 없는 물질이기 때문에 땅에 묻을 수 밖에 없는 폐기물이다. 살면서 우리는 이러한 건물 면적 크기의 옥외 광고물을 몇 개나 보아 왔던가? 몇 백 개? 몇 천 개?

채수경 대표의 ‘리블랭크’는 대한민국 리사이클링 디자인 그룹이다. 스위스 대표적 리사이클링 브랜드인 ‘프라이탁(FREITAG)’과 같이 버려지거나 낭비되는 폐기물에 디자인 감성을 주입하여 새로운 물건을 탄생시킨다. ‘다시’라는 접두사의 ‘RE’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BLANK’의 조합으로 순환(RE)의 의미를 담아 일상에 쓰이는 모든 것을 리사이클링 작업으로 끌어옴을 뜻한다. 리블랭크의 홈페이지(http://reblank.com)를 방문하면 리블랭크의 터치를 입고 새로 태어난 제품들뿐만 아니라, 제품이 본래 어떤 재료에서 탄생했는지도 간혹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환경공해로 뒹굴고 있을 폐기물에 리블랭크라는 브랜드를 붙여 미니멀하고, 실용적인 상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창조력과 진심은 채수경 대표와 함께 해 온지 3년이 넘어간다.

‘버려질 물건을 새롭게 탄생 시켜 제품을 만들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또한 보는 사람 역시 뿌듯하고, 안심이 되는 일아닌가. 막연히 머리 속으로만 알고 있지만 내가 혹은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없음에 외면하거나, 머리 속 한쪽 구석으로 치워놓았던,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대안이 필요한 자원 낭비와 엄청난 양의 폐기물 처리 이슈를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재료를 구매하지 않아도 되니 이윤이 많이 남겠네’ 라던가, ‘폐기물을 재료로 하니 소재가 무궁무진 하겠다’, ‘재료 값이 들지 않으니 가격은 당연히 저렴해야 한다’라는 생각들..

그렇게 쉬운 길이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진작에 걸었을 것이다. 본인 평생에 ‘사업을 해야지’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디자이너 채수경이, 대표라는 직함으로 리블랭크를 3년 넘게 어깨에 지고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세상에 모든 역경을 짊어지고 불꽃처럼 승화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인터뷰 내내 자신을 향한 관대함이라고는 눈을 씼고 찾아볼 수 없는 자조적이고도 솔직한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덕분에 리블랭크의 근본 가치가 되는 “리싸이클 구현”과 디자인을 도출하고 소비자와 만나는 “기업”으로서 공존해야 하는 두 개의 무게가 녹녹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블랭크는 주로 가죽 소품을 만들고 있고, 액세서리에서 문구 류까지 만들고 있어요. 리블랭크의 경우 소재에 국한되어 있는 경향이 있어요. 그 소재를 지속적으로 얻느냐 못 얻느냐에 따라 제품이 단종되거나, 어떤 소재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개발될 아이템이 선택되거든요. 올해 비전은 이러해서 이런 아이템을 개발하고, 시즌 별로 이런저런 디자인을 뽑아내겠다 식의 과정은 회사 특성상 하기 힘들죠. 어느 기업이 그 해에 커다란 현수막을 준다, 어떤 곳에서 버려지는 가죽을 지속적으로 주는 곳이 생겼다 하면, 얻는 소재의 특성에 따라 개발하다 보니 소재에 맞춰서 가는 편이에요.”

앞서 언급했던 빌딩 전면 옥외 광고물이었던 매시 소재, 혹은 처분된 가죽 제품들이나 패브릭 등이 리블랭크에 도착하여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손길을 거쳐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한다. 메시(messey) 소재의 이 옥외광고물은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는 디자인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탄력있는 플라스틱 같은 재질의 장점이 있다. 그것을 살려 각각 다른 사이즈의 파우치로 리블랭크에서 새로 태어났다. 본래 광고 이미지가 인쇄됐던 부분이 안으로 들어가고 보여지는 겉면에 깔끔한 디자인을 입혔다. 들어온 가죽들은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사이즈에 맞춰 각각 여권지갑, 카드지갑, 필통 등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난다. 심지어 리블랭크 내에서도 간혹 가죽 두께가 기준보다 두꺼워 제품화 되지 못한 원단재고를 이용해 고급스러운 가죽 마우스 패드를 만들거나, 심지어는 거기서 또 남은 가죽들을 이용하는 ‘자투리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달-링’ 이라는 반지나, 가죽 북마크를 만들어냈다. 더 나아가 스트리트 아티스트의 페인팅 작품을 가방과 파우치로 재해석하는 흥미로운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폐자재를 전문적으로 수거하여 분류하고, 그것을 다시 리블랭크와 같은 기업이나 일반 소비자가 구매하여 리싸이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때문에 지속적인 제품 모델이나 상품 카테고리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일이 리블랭크 뿐만 아니라 업싸이클링 업체에게 난관으로 남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다. 좋은 뜻으로 세워진 기업이라도 회사의 이윤이 남지 않으면 회사의 존속이 위험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리블랭크는 업싸이클링 선도 기업으로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해쳐나가며 현재까지 왔다. 디자이너로 뿐만 아니라 기업가, 경영인으로의 역할까지 멀티플레이를 해오면서 부족함을 느꼈다는 채수경 대표는 경영 수업을 듣고 공부하며 그 부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채수경 대표는 리블랭크 이전부터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적 활동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디자인을 공부하고, 제품 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했다. 이후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기를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청소년 직업체험 센터인 ‘하자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선배의 조언에 대안 학교 선생님으로 직업을 전환했다. 그리고 어느 날 하자센터에서 ‘노리단’이라는 그룹의 퍼포먼스를 보게 됐다. 산업 자재나 재활용품을 활용해 개발한 악기로 합주를 하고 공연을 하는 독특한 공연단이었다. 산업 폐자재의 특성과 물리적 형태를 응용하여 음계의 소리를 완성하고 여러가지 폐자재 악기가 합주를 하는 그 모습은 채수경 대표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버려지는 물건에 디자인을 첨가하여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척이나 성취감과 만족감이 큰 일이었다. 그런 시작이 아름다운 가게 소속 업싸이클링 디자이너로 본격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곳에서 다시 마음 맞는 동료 디자이너들과 함께 만들어낸 것이 리블랭크의 시작이었다.

2009년 리블랭크가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되면서 디자인의 즐거움을 넘어선 회사 경영과 역할 분담 등의 현실적인 일들이 생겨났다. 버려질 물건이 자신의 디자인으로 새롭게 탈바꿈하는 것은 디자이너에겐 큰 만족감으로 돌아왔지만, 회사가 구성되고, 소속인원들이 존재함으로 인해 행정, 회계 업무 그 외 시장조사, 마케팅 그리고 수익으로 회사를 존속하고 구성원을 유지하는 책임이 생겨났다. 디자이너로서의 그녀와 경영인으로서의 자신을 분리하여 더욱 객관적이 되어야 했던 시기를 회상하며, 조금 더 꼼꼼히 준비했다면 거쳤던 시행 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덧붙였다. 또 한가지 어려운 점은 사람들의 편견과 디자인 가치에 대한 다른 생각이다. 폐기물이 자재니까 더러울지도 모른다는 편견 그리고 재활용 디자인인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거나, 동일한 색상과 디자인 제품만을 찾는 소비자의 구매 패턴 역시 예상을 뛰어넘는 어려움이었다.

“재활용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으세요. 반면에 단순 소재와 디자인에 특정 브랜드가 붙어 있는 제품은 리블랭크의 수배가 넘는 가격임에도 ‘싸다!’를 외치며 구매하시는 분들을 많이 봐요. 고가 외국 브랜드만을 무조건적으로 선호하는 사람들을 보면 허탈해요. 만드는 공정은 우리가 훨씬 더 정교한데… 무엇을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죠..”

업싸이클링 자재는 폐기물이지만 오염되지 않고, 제품을 만들었을 때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것으로 선별된다. 또한 리블랭크의 제품은 자재의 특성상 각각의 제품이 조금씩 다르고 그만큼 디자이너들의 수작업과 손길이 일일이 가는 공정을 통해 탄생한다. 업싸이클링으로 파생되는 ‘가치와 철학’을 소비자가 함께 공유하고, 그 과정에 대한 이해가 바로 서는 것이 리블랭크와 같은 친환경 기업이 더 많아지고 생존할 수 있는데 필수 요소임을 느끼게 한다. 지구에 생존하고 있는 모두를 위한 친환경 작업은 좋은 기업의 존재만으로 완성되지 못한다는 것을 한 명의 소비자로 절실히 깨달았다.

리블랭크를 해오면서 자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 수거 시스템까지 만들어보고자 했고 실제로 실행을 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경험담, 그리고 본격적으로 상품 라인을 만들며 일반 현수막과 같이 너무나 많이 생산되고 버려지는 자재의 한계를 뛰어 넘어 보고자 했던 부수적인 중간 공정의 노력들까지… 리블랭크는 최초 한국 업싸이클링 디자인 기업으로서 많은 시도를 해왔고 그만큼 노하우를 쌓아왔다. 하지만 채수경 대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얘기를 한다.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해쳐온 기업인으로서의 채수경 대표에게 현재 리블랭크는 ‘기업의 의지’와 ‘기업의 이윤’을 고려하는 중요도가 몇 대 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반 반이에요. 리블랭크는 이윤을 쫓아서 친환경적 업싸이클링에 대한 가치를 버릴 수 없어요. 하지만 이윤을 무시할 수도 없죠. 두 가지를 반반으로 밸런스를 맞춰서 가져가야죠.”

인터뷰를 떠나 대담이 되어버린 3시간 동안 현실의 벽과 넘어야 할 요소들에 대한 많은 사례들이 나왔기에 내심 리블랭크의 중심이 되는 채수경 대표가 초심에서 어느 만큼 타협했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채수경 대표는 꺾이지 않는 강건함이 있었다. 대표 자리에서 많은 일들을 처리하면서도, 자신의 본업이자 가장 좋아하는 업무인 디자인을 놓지 않고 있다. 또한 상품 생산 외에도 재활용 워크샵을 진행하거나, 관련 분야의 특강을 나가기도 한다. 판매 위탁이 넓지 않은 리블랭크의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사무실까지 찾아와 직접 구입하는 고객에게는 10% 디스카운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소비자에게 리블랭크가 보이는 작은 답례다. 소소하고 소박할지 몰라도 현재 리블랭크가 있는 자리에서 그들답게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고 있다.

요즘 ‘업싸이클링’이 하나의 트렌드로써 자리를 잡자, 대기업 역시 업싸이클링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문제를 인식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생겨난 마음 보다 하나의 마케팅 툴로써 이용되고 있는 건 아닌지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대한민국엔 진심을 담아 먼저 시작한 채수경 대표가 이끄는 리블랭크 같은 회사도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업싸이클링의 가치와 정신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무엇이 올바른 소비가 될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 정도는 우리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공평할지도 모르겠다. 미래는 모두에게 블랭크다. 채수경 대표는 그 블랭크 앞에 RE를 붙였다. 그녀의 블랭크는 RE와 함께 방향 좌표가 설정된 건지도 모른다. 그녀의 블랭크가 향한 곳은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좌표다.


REBLANK 바로가기

무스타쵸스 전시, 상수동 카페 미래광산

얼마 전 한 식구가 된 무스타쵸스 (http://www.mustachos.com) 의 전시가 8월 21일부터 약 2주간, 반응이 좋으면 3주간!
상수역 1번 출구 쪽의 카페 ‘미래광산’에서 있습니다.

 

 

무스타쵸스의 탄생 이야기 아시나요?

아래의 귀여운 플래쉬 영상으로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을거예요.

 

 

Love Story of Mustachos from EC on Vimeo.

 

 

자신의 성격을 나타내는 패브릭 DNA를 고르고 원하는 악세사리를 추가하여 마법 주문을 넣어 보세요.

그렇게 마법 주문이 걸린 무스타쵸스는 마포구 복지관의 친할머니 같이 푸근한 분들의 손으로
직접 바느질 되어 여러분의 곁으로 찾아가게 된답니다.

 

 

무스타쵸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법같은 이야기들,

시간이 되면 꼭 한번 찾아가서 직접 보고 사진도 찍어 보고
머그컵에 담긴 무스타쵸스 특별마법 수염을 코 밑에 대고 셀카도 찍어 보세요~

머그컵과 무스타쵸스는 오프라인 특별 할인가로 직접 구매도 할 수 있답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순식간에 여러분의 생활 반경에 머물고 있을지 모를
무스타쵸스!!

 

전시 기간 동안 많은 방문 부탁드립니다! ^^

장소의 약도는 아래에!!

 

 

310-12 Mapo-gu Sangsu-dong
Seoul, KOREA
————–
상수역 1번 출구 로렌스시계 뒷골목 ‘상수동 이태리’ 정문 앞 작은 골목길 윗쪽으로 올라가시면 된답니다.

 

 

패션 표현주의 작가 김영진

패션 표현주의 작가 김영진
“보는 이가 느끼는 감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느 비 오는 저녁, 김영진 작가의 작업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후둑후둑 떨어지는 비와 그의 작업실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꽤나 절묘하게 잘 어우러지는 만남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 다양한 색채와 기법을 활용하여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그려내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지레짐작으로 그의 성격도 작품처럼 톡톡 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그는 꽤나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필자가 던진 질문들을 한참 동안 곱씹고 대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괜히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그의 작품들 속에는 내가 단편적으로 본 것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취재 및 글 : 이인규 / inkyust@naver.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김영진 작가

김영진 작가를 만나기 전까진 그를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라는 수식어를 가진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 그는 패션 잡지들에 다양한 일러스트를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감각적으로 표현해내는 작가로 많은 곳에서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작업실에 있는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단순히 그가 ‘일러스트레이터’에 그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Q.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학교 다닐 때부터 일러스트에 관심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패션 일러스트에 관심이 가장 많았다. 패션을 소재로 한 그림이 그리고 싶었는데 운 좋게도 첫 작품이 소개된 곳이 패션 매거진이었다. 그 때를 시작으로 다양한 패션 매거진들과 작업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브랜드와의 작업도 하게 되었다.

Q. 패션 일러스트라는 장르가 조금은 생소하다.

A.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패션 일러스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패션 일러스트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도식화를 떠올린다. 패션 스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팔다리 길고 형태적으로 드러내는 모습들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패션의 영역이 의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데, 한쪽으로만 너무 치우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패션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전문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패션 일러스트의 영역은 단순히 우리가 패션쇼에서 떠올리는 화려한 의상들에 대한 스케치의 모습이 아니었다. 패션(Fashion)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의류’의 의미에 앞서 ‘(행동・문화 등의) 유행하는 방식, 스타일’의 의미가 먼저 나온다. 그가 표현하는 패션 일러스트의 영역은 바로 이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접하는 문화의 다양한 모습들을 일러스트를 통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그가 표현해내고자 하는 패션 일러스트의 모습이다.

Q. 브랜드는 상업적인 것을 많이 요구할 텐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A. 브랜드와의 작업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브랜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작업할 수는 없다. 나도 처음엔 이 부분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은 어떻게 해야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다. 브랜드가 가진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크리에이티브한 면모를 끌어내는 것이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해야 하는 역할이다. 따라서 브랜드와 작업을 할 때는 각각의 브랜드의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꼴라주, 합성, 회화 등 다양한 느낌의 표현 방식이 많이 활용된다.

실제로 그는 다양한 방식들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해서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면 그를 매우 단편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졌다.

Q.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A. <더블유 매거진>에 실었던 작품이 애착이 많이 간다. <더블유>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매거진이기도 하다. 그리고 <블링> 매거진과의 작업, 개인전 작업들에 애착이 간다.

그는 애착이 가는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한 뒤, 작업실에 전시된 작품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주었다. 홈페이지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작품에 대한 감흥이 또 다르게 나타났다. 아무래도 그의 작업 방식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표면의 질감 등을 눈으로 확인하니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가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개인전 작품들 또한 그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터치가 돋보였다. 개인전 진행 당시 큐레이터가 쓴 김영진 작가의 소개글을 읽어보니 필자가 느낀 감정 그대로 그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공감이 되었던 부분을 소개해 본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힘차게 스쳐 지나가는 붓의 속도가 느껴진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과감한 붓질의 흔적은 거칠지만 감각적이고 회화적이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한 후 붓을 잡으면 빠르게 끝내는 것이 그의 작업 스타일이다. 작가의 그림 속 여인들은 빠른 붓질과 강렬한 보색대비로 관객의 눈에 다가온다. 패션잡지의 사진들을 이용해 작업을 하지만 그림이 진행되어 갈수록 원래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완성된 그림 속에 남은 것은 작가의 김영진의 개성이다. 어쩌면 작가 김영진에게 있어 패션이란 자신만의 표현을 찾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지 모른다. ‘패션을 드러내는 그림’이 아닌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패션’을 생각하는 듯하다. 매혹적인 패션과 도도한 여인들. 그 속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표현을 찾고자 한다.”

그의 작품들을 함께 보면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냥 보고 느끼는 그대로 작품을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시회를 보러 가면 설명하는 것을 들으려 애쓰는데 김영진 작가 본인은 그걸 되도록이면 듣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라는 것은 작가가 직접 전달하지 않는 이상은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보면서 좋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이걸 보고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해요. 해석은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에 그걸 강요할 수는 없어요.”

이 말을 들으니 표현주의 작가들을 좋아한다는 인터뷰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 장 미셸 바스키아를 좋아한다는 그는 작품을 봤을 때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것을 가장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전 작품을 봤을 때 그게 좋은 거든 나쁜 것이든 그 사람이 느끼는 무언가가 있는 작품이 좋아요. 그래서 작가들도 의식적인 것을 표현하는 작가들을 좋아하고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봤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 영화 <다른 나라에서>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을 때 홍상수 감독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한 관객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 이자벨 위페르의 머리 모양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더니 “그냥 관객분이 받아들이시는 그대로가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라는 아주 간결한 대답을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인위적으로 정답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해석해야만 옳다는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해석에 틀을 정해두지 않는 그의 성격처럼 그의 작품들을 쭉 살펴보면 어느 한 쪽에서만 목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다. 그가 수많은 패션 매거진과 브랜드와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방면으로 다양한 색채를 표현해내기 위해 노력하며 스스로를 만들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에곤 실레와 클림트, 바스키아를 좋아하면서 동시에 앤디 워홀을 좋아하고,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과 같은 패션 디자이너들을 좋아한다. 프랑소와즈-마리 바니에, 닉 나이트 같은 패션 사진 작가들을 좋아하고, 기하학적인 디자인과 생각의 틀을 깨는 디자인을 많이 하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좋아한다. 음악 또한 좋아한다는 그의 작업실엔 제이슨 므라즈, 존 메이어 등의 팝 음악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앞으로 인종과 패션이라는 주제로 작업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영진 작가는 다양성을 표현해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 일러스트 작업을 활발하게 하면서도 화가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고, 일러스트레이션과 페인팅 작업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패션 표현주의 작가’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홈페이지 도메인명 패션익스프레셔니즘 http://www.fashionexpressionism.com 은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작품관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작업실을 나서면서 김영진 작가가 패션 표현주의 작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굳히는 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더불어 앞으로 그가 보여주는 작품의 영역이 어디까지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을지 그의 행보가 매우 궁금해졌다.

그림이 좋아 그리고 그린다, 뿌아 이경수

그림이 좋아 그리고 그린다, 뿌아 이경수

처음 이경수 작가에 대해 알아보게 된 계기는 ‘서커스’라는 테마 아래 그려진 몇몇 작품들을 본 후였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림 속에서 아련하게 풍겨져 나오는 슬픔의 향취가 좋았다. 검색의 힘을 빌려 작가의 홈페이지를 찾는데 성공! w의 3단 리듬을 타고 들어간 그곳엔 내가 본 그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까만 캐릭터 하나가 대부분의 구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웹사이트엔 그 동안 작업한 그림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보통은 작가의 홈페이지를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쉬워지거나 추측이라도 되기 마련인데, 이경수 작가의 경우는 오히려 많은 물음표가 생겼다. 올려진 작품들과 작가의 프로필을 참고하며 가장 크게 들었던 물음표는 ‘이 분은 무엇을 원하는가?’였다. 인터뷰 동안 질문에 대한 답이 예상한 방향과 상이하게 달라 한동안 바둥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뒤돌아보니 홍보 마케팅을 하며 속세에 절여진 마인드로선 이해할 수 없는, 순수 아티스트의 세계에 접속했던 것 같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이경수 작가

뿌아

이경수 작가는 본인의 이름보다 ‘뿌아 작가’ 혹은 ‘뿌아 아빠’라고 불린다. ‘뿌아’는 앞서 말한 이경수 작가 홈페이지 대부분의 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까만 캐릭터의 이름이자, 이경수 작가가 오랜 시간 정성껏 기르고, 보살펴 온 캐릭터다. 개인적으로 반한 서커스 그림을 제치고 뿌아의 얘기로 시작하는 것은 이경수 작가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의 많은 개인 작품들이 뿌아를 시작으로 하기 때문이다.

“94년부터 10년 간 (외주)일러스트 작업을 해왔었어요. 뿌아를 작업한 건 대략 8년 전이구요. 시간에 쫓기면서 실내에 박혀 하루 종일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것에 지쳐서 나만의 일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캐릭터는 원래 좋아하는 편이라, 처음엔 매일 하나씩 만들어보고 웹을 통해서 반응을 보고 하면서 근 일년간은 메인 캐릭터를 완성해내는데 시간을 들였어요. 모든 사람들이 사람이나 동물을 그려보는데, 흔하지 않은 요정이나 외계인 쪽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경수 작가에게 뿌아는 자신이기도 하면서 가상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신의 성격이 많이 반영된 캐릭터이고, 사람들의 상처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캐릭터를 지향한다. 사람들에게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도움이 되고 치유해주고 싶어하는 그런 캐릭터라 말한다. 보통은 감정 표현이 분명하고, 이미지나 성격이 강한 캐릭터가 시장엔 많다. 뿌아 역시 처음엔 발랄하고 희로애락이 명확한 시기가 있었는데, 굳이 캐릭터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너로 하는 게 낫다는 지인들의 조언을 받아 지금의 뿌아에 이르게 됐다.

“뿌아가 2008년 ‘캐릭터 페어’에 처음 나갔을 때 반응이 좋았어요. 라이센싱 하자는 문의가 많이 들어왔구요. 당시만해도 밝은 캐릭터가 많았을 때고, 모노 톤의 캐릭터와 무표정 캐릭터는 무척 독특한 거였어요. 그 다음 해부터 블랙 캐릭터가 많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구요. 지금은 뿌아의 유니크함이 많이 희석됐죠.”

뿌아가 이경수 작가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홈페이지 주소(www.puaworld.com)만 봐도 알 수 있다. 메뉴 중 하나인 [뿌아 스토리]를 클릭하면, 뿌아에 관련된 여러 가지 하위 메뉴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 ‘뿌아의 365일’ 섹션은 포스팅 수만 1100건이 훌쩍 넘는다. 3년 이상 뿌아 그림과 일상의 메시지를 적어 놓은 것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보여지는 농부적 근면성과 근본적 작업 지속성 하나만큼은 굳이 논할 필요가 없는 작가다.

“2004년 뿌아를 처음 만들어 뿌아의 일기를 썼어요. 뿌아는 옆에서 조용히 있어주는 캐릭터인데, 뿌아가 혼자인게 좀 외로워 보여서 관리인과 함께 하는 이야기 등을 만들었어요. 회사원이 출근해서 오늘의 할 일을 하듯이 저로선 당연히 오늘의 할 일처럼 그 일을 했던 거 같아요.”

십년 내공 위에 탄생한 서커스

뿌아를 보다가 ‘서커스’ 작품들을 보면 동일인의 작품일까 싶을 정도로 다른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다. 앞서 살짝 언급됐던 것처럼 94년에서 2004년까지 거의 십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경수 작가는 동화나 교과서 등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었다. 졸업 즈음에 입상한 공모전 수상으로 인해 취업 시기에 일러스트 의뢰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업으로 삼아 그쪽에서만 다져놓은 내공이 10년인 것이다. 한 분야의 10년 경력은 그 사람의 저력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기간이다. 뿌아를 성장시키는 동안 심플한 그림을 그려오다 보니, 누군가는 그거 외에는 할 수 없는 작가로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림에 있어서 이경수 작가가 가지고 있는 포텐셜은 시간이 말해준다. 당시에도 그룹전이나 출판미술협회 전시 등을 꾸준히 해왔었고, 동화책 워크샵에 참가하여 동화책을 쓰는 방법을 배웠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그림 그리는 걸 너무 싫어하셔서 혼나고 억압된 면이 있었는데 그런 게 오히려 더 갖고 싶고, 목 말라지는 것이 있었던 거 같아요. 2003년에 경기 침체를 통해 일이 많이 줄면서 캐릭터에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일러스트 일을 적극적으로 안 하게 되면서 더 캐릭터 쪽에 매진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작년부터 살짝 뿌아 외에 다른 것을 그리고 싶은 시기가 왔어요. 뿌아는 단순한 회화여서 그리는 행위의 재미가 줄어드는 면이 있어요. 좀 더 색을 다양하게 쓰면서 좀 더 회화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거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응축되어 고이 모셔져 있던 일러스트레이션 파워로 서커스 작품들을 그렸다. 특히 이경수 작가 머리 속에 있는 동화 이야기 몇몇 컷(‘나무가 된 소녀’와 ‘해피엔드’)을 그린 작품은 그림 사이즈가 무척 큰데, 부드러운 산들 바람이 옆을 스쳐가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수채화를 좋아하는데다가, 10년 일러스트 대부분을 수채화로 많이 그렸기 때문에, 아마 남들보다 잘 할거에요. 수채화를 하다가 회화 작품을 해야 하니, 아크릴로 그려야겠다 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나오는 거 같아요.”

수채화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경수 스타일의 수채화틱한 회화가 나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거의 18년을 해온 그림이고, 8년을 작업해온 뿌아를 보고 지겨울 때, 하기 싫어졌을 때 없었냐는 말에 들었던 얘기다.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싫어진 적이 없고, 그나마 뿌아에 살짝 물려 한 것이 ‘서커스’ 작품을 그린 이야기를 작가는 무척 해맑게 얘기해주었다.

“애수가 깔려있는 ‘서커스’ 자체의 느낌이 좋았어요. 삐에로 얼굴에 있는 눈물이라던지.. 은연중에 캐릭터를 하나하나 만들면서 자꾸 이런 쪽으로 그리게 되더라구요. 쓰는 동화 중에 서커스 캐릭터를 얘기하고 있는 것도 있어요. ‘서커스’라는 자체가 슬픔을 담고 있고, 전 ‘슬픈 그림을 보면 오히려 슬픔이 해소되는 면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요.”

작가 이경수가 원하는 것

작가로써의 무기를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 놓은 이경수 작가지만 특별히 뿌아가 캐릭터 사업화 됐다던지, 작업한 동화 이미지들로 동화책이 출판되었다던지 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올해로 뿌아는 벌써 8살이다. 그의 발자취를 보면 뿌아를 그리고, 뿌아가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고, 뿌아 문구/팬시 용품을 소량으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글 초반에도 잠시 얘기했었지만, 참으로 긴 시간 작품만을 해온 터라 무엇을 원하는걸까 무척 궁금했다. 무언가 이런 활동 외에 더 나아간 결과가 있을만한 시간이 아니었냐는 질문을 안 해볼 수가 없었다.

“상업적인 일러스트를 한 십 년간 하다 보니, 자신이 만든 캐릭터인 뿌아는 더더욱 상업적으로 돌리지 않았던 거 같아요. 상업 라이센싱으로 가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라이센싱하면 간섭을 받게 되고, 업체에서 원하는 쪽으로 수정을 해야 하는데.. 예전에 S그룹과 라이센싱 제의가 있었는데, 캐릭터 자체를 인수하겠다는 제의를 받아서 거절했었어요. 뿌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아는 만큼 생각이 많아진다. 이경수 작가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 그리고 그들의 세상을 지켜주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은 오랜 시간 속에 타협을 하던가, 현실에 자신이 납득하던가 하는 쪽으로 변하는데, 이경수 작가의 경우 꺾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온 셈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의 웹사이트는 엄청난 총알을 구비해놓은 아티스트의 무기고를 들여본 느낌마냥, 좋은 소재와 그림들이 이미 많다. 작가가 개인 제작한 몇몇 상품들도 귀엽고, 상품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런저런 현실을 떼어내고 현재 작품들만으로도, 팬시 브랜드 하나를 낼 수 있을 정도의 라인업이다.

지금까지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반응을 보아왔다는 이경수 작가는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결과를 낼 수 있는 여러 작업들에 착수할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내년 혹은 내후년에 준비가 되면 해외 전시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귀띔해줬다. 내친김에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을 물었다. 뿌아나 여러 동화들이 올라와 있는데, 계속 될 것이라는 설명과 다르게 끝이 나지 않은 채로 중도에 끝나고, 다시 새로운 얘기가 올라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사실 머리 속엔 그 이야기가 다 끝나 있는데… 전시나 다른 일로 바쁘다가 마음 속에서 내용이 이미 완결된 얘기는 그리기 싫어져요. 그리고 다시 새로운 얘기가 머리 속에서 생겨나거든요. 그러면 그걸 빨리 그려보고 싶어서요.”

사실 세속적인 나의 추측으론, 출판이 될 이야기여서 마지막을 아껴놨다던지 류의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은근히 허무한 이유였다. 그리고 이경수 작가다운 이유일 수도 있겠다. ‘더 그려보고 싶어서’라는 건 너무 순수하게도 느껴지지만 그림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에겐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순수한 마음과 함께 이경수 작가가 아끼고 보호하고 싶어하는 존재가 더 있다. 자연과 동물이다. 인터뷰 당일 날도 3점의 그림으로 참가한 동물보호소 건립을 위한 전시회 오프닝 날이기도 했다.

“뿌아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해 사람에 대한 관찰, 환경 동물 쪽으로 넘어갔어요. ‘위로해주는 느낌에서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게 뭘까’로 넓어졌구요. ‘북극곰 이야기’도 작품 중에 있고, 저 역시 소중한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 건널 때까지 많은 위로를 받고 정을 나누었어요.”

때문에 그의 캐릭터 뿌아는 반려동물이 옆에 있어서 위로 받는 것처럼, 치유도 친구도 되는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또 앞으로 뿌아에게 고민을 얘기하면 응원의 코멘트를 보내주는 코너도 웹사이트에 추가할 계획이다. 별거 아닌 작은 위로라도 좋은 뜻으로 하는 말과 위로는 힘이 있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처음 서커스 작품 전시를 볼 때 작품이 인쇄된 엽서를 너무 사고 싶었는데 전시장에 아무도 없어 구매하지 못했었다. 누가 훔쳐가도 모르겠더라는 구박에 다시 멘탈이 흔들리는 순수한 대답을 들었다.

“제 생각은…정말 좋으면 가져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 정도로 갖고 싶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까지 좋아서 가져가는 거니까 전 괜찮아요.”

“이 인터뷰 보면 다들 정말 좋아요~ 라는 마음으로 가져가겠어요? (훗!)”

“어~ 엽서는 대량생산 된 거라서 괜찮은데, 그림은 안돼요. 진짜 큰일나요.”

아~ 이경수 작가여….

얼른 얼른 그 동안 적금 모으듯 비축해둔 작품들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뿌아 캐릭터에 날개를 달아주길…
뿌아가 유명해지면, 그 때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가져가는 인쇄 제품도 순식간에 동이 나 버리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호기심으로 새겨지는 작업을 하고, 움직이는 작가. novo

호기심으로 새겨지는 작업을 하고, 움직이는 작가. novo

인터뷰 내내 같은 표정과 어조였다. 그는 담담했다. 크게 웃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인터뷰 내내 그의 미세하지만 강한 열정을 느꼈다. 스스로를 타투이스트라고 칭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작업 중 자신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매력적인 작업은 ‘타투’라고 말하는 그의 담담함에서 슬픔과 기쁨,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느꼈다. 절실한 그의 고백이었다. 타투에 대한 따가운 시선과 편견이 아직은 너무도 많은 이 나라에서 타투를 하며 느꼈던 그 슬프지만 기쁜 감정. 타투를 열렬히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찐하게 듣고 왔다.


취재 및 글 : 강민혜 / suremine@naver.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novo 작가

“저는 ‘새겨지다’라는 말이 참 좋아요. ‘새기다’라는 예쁜 말이 있는데 왜 문신을 박다. 파다. 라는 거친 단어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새겨지는 작업을 하는 작가로 불리고 싶어요.”

담담한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리면서 ‘새기다’라는 단어를 이야기 할 때, 필자는 그가 얼마나 타투작업을 사랑하는지 느꼈다. novo는 ‘새기다’라는 말을 하고는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타투를 새기는 작업을 너무도 사랑하는 작가 novo와의 대화는 그렇게 근원에 강한 열정을 두고 담담하게 시작됐다.

Q. 작가님에게 타투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저를 존재하게 해주는 것이죠. 바디페인팅,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하지만 제게 가장 매력을 주는 것은 타투예요. 사람의 몸에 새겨지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 제게 가장 큰 감동을 줍니다.

Q. 타투 작업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A. 타투는 자기 몸에 새기는 거잖아요. 그런데 너무나 무책임하게 타투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가장 슬퍼요. 무분별하게 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의미 있는 타투를 새기는 작업을 하는 것이 제가 가장 중점을 두는 바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타투를 받으려는 사람과 충분한 대화를 해요. 그리고 그 대화를 위해 많은 연구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욱 타투를 받는 분과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그 분의 매력과 특징을 얼마나 잘 살려낼 수 있을지, 대화를 하면서 교감을 해 나가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나오는 타투의 결과물이 가장 제게 큰 만족감을 주죠.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타투들이 제게 가장 소중한 포트폴리오입니다.

novo작가의 손에는 1419라는 타투가 있다. 손가락에 숫자가 하나씩 적혀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손에 있는 숫자들은 청소년 시절을 뜻한다고. 그 시절동안의 혼란들을 씻겨 내는 과정에서 타투를 만났다고. 내가 던진 질문은 매우 간단했다. ‘조소과 출신이시던데요.’라는 형식적이고 간단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novo의 히스토리를 들을 문을 연 열쇠가 되어 주었다.

Q. 조소과 출신이시던데요.
A. 사실 전 조소과를 끝까지 다니지도 않았어요. 어릴 적에 좋아하는 건 딱 두 가지였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과 운동. 어릴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했던 것 같아요. 어머님도 미술을 하셨고, 저도 재밌어했죠. 중학교 선생님께서 고등학교에 가면 더 재밌게 많이 그릴 수 있다고 하셨고, 전 기대를 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생활 동안 저는 제 안의 에너지를 삭히는 데에만 에너지를 썼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교육과 환경은 제게 너무도 폭력적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것을 억누르고 부모님께 좋은 아이가 되고 싶었어요. 제겐 미대를 가는 것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일이었어요. 피난처였죠,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그래서 조소과에 갔어요. 하지만 그 역시 제겐 혼란이었어요. 방황의 시간은 지속됐죠. 군대를 마치고나서 저는 프랑스로 갔어요. 30살 전엔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그럼 프랑스에서 타투 작업을 시작하신 건가요.
A. 네, 프랑스에서 전 타투를 만났어요. 사실 프랑스에 가서 저만의 작업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그리는 것 자체를 정말 즐겼던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의 그림 스타일을 다시 그려보기로 했어요. 지금 저의 novo 스타일은 어린 시절 제가 즐겁게 그림을 그리던 스타일을 발전시킨 것이에요. 그때의 저는 가장 예술적이고 창의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 이름을 novo라고 지은 것도 novo라는 영화에 나오는 순수함을 뜻하는 의미인데, 그래서 저도 그 순수함, 어린 시절의 스타일에서 나오는 작업을 사랑하기에 novo로 제 이름을 정한 거예요.

novo는 그 시절이야말로 가장 열심히 자신의 스타일을 발전시킨 시절이라고 말했다. ‘와, 그림이 느는 거구나!’라는 것을 느낀 시기. 종일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이 느는 맛을 느꼈다고 했다. 그 때가 지금의 novo의 예술 활동을 만든 결정적 시기였을 것이다. 그 노력의 시기에, novo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타투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결합하고 창조해 나가는 것이 그때 시작된 것이다. 순수한 스타일. 그래서인지 novo 작가의 타투의 이미지는 예쁘고 감성적인 매력이 있다.

Q. 어쩌다 한국에 다시 오시게 된 건가요.
A. 네, 예정보다 일찍 돌아왔어요. 제 스타일이 잡히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기니깐 한국에 와서 이러한 저의 작업과 생각들을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것 같아요. 와서 스승을 찾고 싶었지만, 찾을 순 없었고 열심히 개인적인 작업을 통해 여러 활동을 해 왔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타투가 넓게 확산되기는 어려웠죠. 제가 처음 여기 와서 ‘타투’라고만 하면 그냥 사람들이 막 몰려들었어요. 저의 활동 보다는 ‘타투’라는 단어의 강함에만 단편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몰려드는 거요. 그래서 저를 ‘타투이스트’라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예술적인 활동보다는 타투 자체에 그냥 단순하게 흥미를 가질까 봐요. 저는 여러 작업을 하고 생각을 하는 작가로 불리고 싶어요.

Q.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죠. 타투 이외에도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해 오셨는데, 그 얘길 듣고 싶네요.
A. 앞서 말했다시피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그런 덕분에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친숙한 소품과 연결하여 쿠션, 안경, 옷 등을 만드는 데 저의 작품을 쓰는 활동을 했어요. 영상작업도 하고 전시회도 많이 했죠. 사실 이렇게 여러 개를 하면 또 사람들은 왜 여러 개를 하냐고 묻더라구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요. 다양한 형태로 여러 가지가 나오는 데 그게 다 저의 스타일이 담긴 작품인 거죠. 그게 사람 몸에 새겨지면 타투고, 다른 데서 나타나면 다른 형태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Q. 그래도 가장 매력을 느끼는 작업은 타투라고 하셨죠.
A. 저는 그 느낌이 참 좋아요. 타투는 특히 타투를 주고받는 그 순간이 참 좋아요. 타투 받는 사람에게 손이 닿는 순간, 그 교감의 순간이요. 그리고 타투는 서로의 신뢰감을 통해 완성되는 작업이거든요. 나는 평생 그 사람을 기억하고, 타투를 받으시는 분도 저를 기억하겠죠. 저는 그런 순간의 교감, 공감이 너무 소중해요. 그래서 타투가 제게 가장 큰 스릴이고 큰 매력이에요.

타투 이야기를 할 때, novo는 그 미세하지만 강렬한 떨림으로 타투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내게 내뿜었다. 그렇게 타투를 사랑하는 novo에게 나는 부러움을 느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시는 것에 대한 멋짐에 대해서, 나는 인터뷰 중간임을 잊고 흥분한 어조로 멋지다고 외치고 있었다. novo는 약간의 미소를 띠고 듣다가 이내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근데, 참 어렵네요. 우리나라에서 타투를 하는 것이요. 시선이 생각보다 정말 차가워요. 동네만 벗어나도, 지하철을 타도 대다수의 분들은 저를 보고 찌푸리세요. 아이의 눈을 가리고요. 사실 우리나라는 유교문화가 강한 국가고, 보수적이라 타투에 대한 인식이 더 안 좋죠. 고정관념도 너무 심해요. 타투가 하나의 문화인데, 타투를 저급하게 보고 무섭고 혐오감이 든다, 정도의 단편적인 생각에 그쳐있죠. 타투를 하는 저에겐 굉장히 폭력이에요.”

하지만 novo는 이런 이야기를 하며 그동안의 힘듦을 이야기하다가, 그래서 의미 있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신이 타투를 좋은 방향으로 확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어렵지만 신나는 일이 되지 않겠냐면서 이야기를 했다.

타투는 문화다.
최근 타투의 경향이 타투문화의 일부일 수는 있지만, 전체일 수는 없다. 지금 잠깐 유행하는 타투가 타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해이다. 타투는 아주 오래전부터 유행이 아닌 문화로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타투도 제 역사를 만들어 왔다. 타투는 잠깐 유행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_ novo, 『타투를 말하다.』 중

novo 작가는 타투에 관한 책을 발간하고 전시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이 활발한 활동들이 우리나라에서 타투가 좋은 방향으로 인식되고 문화로써 담론을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앞으로의 작가의 활동이 궁금해졌다.

Q. 작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알고 싶어요.
A. 일단 그동안 책 작업을 하면서 너무 좋았어요. 그동안 작은 책들이 몇 권 나왔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내고 싶어요. 책을 통해서 타투가 문화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올해 말 쯤에 사진 집이 나와요. 물론 작업도 열심히 할 거예요. 열심히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니 제 것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경제적 활동도 할 수 있다는 것, 굉장히 감사하고 있어요. 더 열심히 하자. 스스로 더 철저하게 여러 약속을 지켜가면서 노력하며 작업하자, 고 다짐해요. 지금 5년 정도 해 왔는데, 앞으로 5년 후면 10년이 되거든요. 5년 후가 기다려져요.

Q. 저도 기다려지네요. 계획, 미래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이것은 꼭 하고 싶다.’하는 장기적인 인생 목표를 자세히 좀 더 듣고 싶네요.
A. 타투관련 서적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요. 도서관이라고 말은 붙였지만, 와서 타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와서 타투에 관련된 책도 보고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공간이요.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 타투에 대해서 말하기 힘든 분위기여도,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움직이면서 점차 타투를 문화로 인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계속해서. 그래서 이러한 공간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다음 세대가 그것을 좋은 의도로 계속 해 나가는 것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요. 이것이 제 최종 목표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 목표들을 말하며 작가는 그 담담한 표정에서 웃음이 약간 보였다. 크게 하하하 웃지는 않을 것 같은 시크한 외모의 그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음속에 있는 어린 novo가 그의 내면을 폴짝폴짝 뛰어다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듣고 있던 나는 그의 계획들을 들으며 계속해서 응원했다. 담담한 대답들 사이에서 나오던 그의 간절함이 마구 느껴지는 대화들. 그동안 그가 받아왔던 그리고 대면해 왔던 편견들과 고정관념에서 지치고 힘들겠지만, 그가 계속 표현하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은 이러한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들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작업실에서 novo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작가는 내게 자신의 작품이 인터넷에서 왜곡되고 또한 사용 허락을 전혀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되고, 경제적으로도 이용되고 있다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웹진의 인터뷰여서 그런지, 그러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도 모르게, 저작권이 있는 건데, 마음대로 작품을 사용하는 건 불법 아니냐고 외쳤다. 작가님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타투라는 영역 자체에 ‘불법’이라는 단어가 말이 안되는 거라, 보호 받을 수는 없단다. 함부로 자신의 작품을 이용하는 게 마음이 아프고 슬프지만, 결국 자신이 그 권리를 잘 주장하려면 자신의 작품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novo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수밖에 없다고. 더욱 열심히 자신의 스타일을 알리고, 타투를 문화로 잘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이야기 하였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나는 초반 나눴던 이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novo 작품임을 알고, 타투도 문화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환경이 오는 그 미래,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투에 대한 진심과 사랑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길. 그의 노력들이 차근차근 결실로 맺어지길 빈다.

novo는 차근차근 자신의 목표들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만큼 열정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을 하게 된 좋은 인터뷰였다.

novo 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