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된 고전미를 생활 속에 심다, [the meeets] 황지현

진화된 고전미를 생활 속에 심다, [the meeets] 황지현

요즘 필자는 무척 뻔뻔해졌다. 인터뷰 일을 하면서 작품이 마음에 들기만 하면 들이댄다. ‘차 한잔 하시죠’라는 말 대신 ‘인터뷰 한번 하시죠’라는 말로 아티스트에게 ‘작업(interview)’을 거는 태도가 넉살좋게 자리잡았다. (개인 연애 사에 이런 적극적인 태도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들이대기만 했는가…. 이번 인터뷰는 심지어 카톡과 페북을 통한 밀당을 극복해가며 성사시켰다! 작품에 반하고, 사람에 반한 필자는 ‘쉬운 여자’임을 자처하며 오산이라는 도시로 향했다. 황지현 교수님이 재직 중인 오산대 안으로 들어가는 빨간 버스에서 내려 그녀의 연구실에 점차 가까워지자, 활짝 열린 문밖으로 음악소리가 호탕하게 흘러나왔다. 문패를 보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곳이 그녀의 방임을. 이제 중요하고도 수줍은 첫 데이트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황지현 작가 & the meeets (http://www.beeeen.com)

황지현 교수님을 만난 건 작은 모임에서였다. 첫 만남에서 굳이 자신은 ‘nobody’임을 강조하던 그녀가 순식간에 페북 친구를 맺고, 며칠 후 필자를 [the meeets]로 초대해주었다. 초대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의리와 화답의 like’를 누를 만큼 성격이 유하지 못한 필자는 [the meeets]의 한지 공예 작품을 보고, 페이스북에 like가 아닌 love it 단추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개인적으로 한국 시장을 대표하여 외국 정부사에 소속되었던 6년 동안, 한국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한국적이면서도 외국인들이 침을 흘리며 반할 수 있는 품목에 대해 갈증을 느껴왔었다. 인사동 전역에 깔려 있는 물건은 민망하고, 외국인들 눈에 일본 것인지 중국 것인지 아리송할 물건은 선물하고 싶지 않고 하지만 한국의 한방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을 채워줄 만한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그런 면에서 [the meeets]의 한지 공예 품목들은 유레카!와 같은 설레임을 안겨주었다.

[the meeets]는 한국적 전통 디자인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생활에도 실용적이면서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라이프 스타일 제품을 선보이는 브랜드다. 브랜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한지 바스켓, 한지 단청문양 브로치, 한지 단청 오브제, 카드, 민화 벽지, 꽂이볼 등]으로..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한국 전통미가 쉬크하게 되살아나 상품화되었다. 요즘 한지를 이용한 소품이 흔하다고 섣불리 얘기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에겐 [the meeets] 상품 사진 한 장으로 그 말이 쏙 들어갈 것임을 확신한다. [the meeets]가 작품에 적용하는 한지는 일반 한지가 아니다. 전통 기법의 재해석을 거친 [the meeets]만의 특별한 한지다. 그렇기 때문에 [the meeets]의 한지 제품은 신비한 한지의 힘에 더욱 탄력을 받았을 뿐더러, 특유의 한지 발색은 물론 물에 젖어도 되돌아오는 내성을 가지고 있다. [the meeets] 제품 소개에 있는 이 문구를 보고 반신반의하여 필자가 묻자, 황교수님은 불신지옥의 꾸지람 대신 웃는 얼굴로 눈 앞에서 예쁜 한지 바스켓에 생수를 좔좔 부어버렸다. (순간 비명을 질렀으나, 인터뷰가 끝날 때 즈음에 말라서 본래 모습 그대로 유지된 것은 물론이다.)

황지현 교수는 오산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이자 [the meeets]의 디자이너이며, 한지 공예 작품의 공동 작업자 중 한 명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외에는 잘하는 게 없었다는 황교수는, 국영수 잘하는 아이가 천재 라는 편협한 80년대 교육 환경 속에서도 “천재는 모든 분야에 따로 있는 거고, 하나라도 잘하는 게 있으면 넌 그 분야의 천재다!”라며 자상하고, 떳떳하게 미술 편식을 시켜주신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방목하는 자유로운 집안 분위기와 집단주의에 물들어 개성을 잃지 않기를 바랬던 부모님의 에피소드를 듣다 보면, 현재 그녀의 호연지기(?)와 전통미에 접근하는 개성적 태도의 근원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많지 않은 나이에 정교수 자리에 올라섰지만, 미술을 시작하고 계속해온 것은 미술학원을 다니지 않았음에도 미술대회 수상이 많으니 미대를 가겠구나 란 막연하고 순수한 발상이 발판이 됐다. 순수예술 쪽이 더 맞을 수도 있었지만, 서바이버적인 면모를 발휘해 당시 유망 학과로 꼽히는 시각디자인을 선택했다. 졸업 후, 막상 취업을 하고자 들여다 본 세상은 고용인과 고용주 사이에 너무나 강압적이고 무례한 태도가 판을 쳤고 그렇게 강요하는 사회에 머뭇거릴 무렵, 지도 교수님의 권유로 석사를 했다. 지도 교수님께서는 칭찬을 비롯한 많은 걸 그녀에게 베풀어주시며 자연스럽게 박사의 길까지 이끌어주셨다. 그 과정에서 황지현 교수는 아르누보 대표작가인 ‘알퐁스 마리아 뮈샤’가 19세기 당시 작업한 포스터를 연구하고, 첫 개인전에서 그것을 우리나라 공연 ‘명성왕후’와 ‘황진이’ 포스터에 대입시킨 작품을 선보였다. 포스터 안에 그 시대를 상징하는 마크와 심볼을 엮어 한국 전통/역사 이야기를 담은 공연 포스터를 통해 재탄생 시킨 것에 의미가 있는 첫 개인전이었다. 두 번째 개인전은 ‘방구연’을 전시했다. 2008년 개인전에선 ‘한국의 민담, 민화, 색깔’이라는 주제로 민담과 민화에서 가져온 모티브를 4계절 테마 아래 작업한 아트 벽지를 선보였다. 현재 만날 수 있는 한지 외에 다른 [the meeets] 제품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족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전통미’와 황지현 교수와의 접점이 그녀가 브랜드 [the meeets]에 어느 만큼 바탕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황지현교수가 수많은 단체전과 5회의 걸친 개인전을 통해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연구 해왔던 작업들이 [the meeets]의 브랜드와 만나면서 그동안의 평면작업에서 벗어난 융합적인 상품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특히 [the meeets]의 한지 작품들은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원장상’을 수상하고 ‘2012공예트렌드페어’와 2012년 1월 ‘Maison et Objet, Paris’ 전시를 시작으로 유럽과 북미 등의 해외 진출의 포문을 열었다.

제품에 반하고 사람에 반했다고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황지현 교수 개인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꽂이볼’이다. ‘꽂이볼’이 무엇일까? 말 그대로 무언가를 꽂는 물건이다. 온양 민속 박물관 곳곳을 촬영하며 조그마한 곳을 놓치지 않고 캐치했던, 낫을 꽂아두곤 했던 이름 모를 도구를 모티브로 탄생한 ‘아이’이다. 꽂이볼은 물건 말하듯 할 수가 없다. 매번 칼라를 조합하여 아름답게 꾸며주는 황지현 교수의 ‘아이’와 다름 없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무슨 십대 감수성 폭발하는 얘기냐고? 세계 곳곳을 꽂이볼과 함께 다니며 찍은 황교수의 사진들을 보면 지금 하는 말이 오버가 아님을 느끼게 될 것이다. 황지현 교수 사람 자체에 반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사진들이다. 사진 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감성 그리고 각 도시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꽂이볼들의 색감이 ‘황교수님’이라는 호칭 보다 ‘이 언니’ 마음에 드는데?라는 기분을 당겨주었다. 꽂이볼은 양모 팰트를 사용하는데 일반적 팰트 인형이나 제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펠트 공예를 하는 사람들도 의아해하는)으로 만든 것으로, 양모 자체의 매력을 한껏 살린 작품이자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맛이 있다.

“나는 펠트나 한지나 전문으로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서, 무(無)에서 새롭게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황지현 교수 마인드에 반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앞서 잠시 언급한 “단청 색칠책”이었다. 말 그대로 색칠하는 책이다. 하지만 단청을 주제로 어린이를 위해 제작한 아주 특별한 색칠공부 책이다. 기존의 단청책은 두껍고, 어렵고, 큰 책뿐이어서 아이들이 보기엔 어려움이 많고, 대학생이나 성인 대상이 아닌 아이들한테 단청을 보여줄 책이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황교수가 직접 만들었다. 본인이 그 동안 직접 카메라로 찍은 다양한 단청 사진과 함께 경복궁과 단청에 대해 쉽게 풀어 놓은 이야기, 우리나라 색의 의미, 문양에 대한 개별 소개와 그 안에 들어가는 다양한 색을 보여주고 같은 색을 칠해보는 연습 그리고 자유롭게 원하는 색을 선택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단청을 탄생시켜보는 연습. 여기에서 더 나아가 단청이 응용된 디자인의 예시까지 다각적으로 아이들이 전통 단청을 통해 상상력과 영감을 키울 수 있는 그림책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필자에게 조카나 아이가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가장 멋진 책”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해본다.

“아이들한테 전통문화를 맛 보여 주는 게 중요해요. 인간은 결국 원류로 눈을 돌리게 되어 있거든.. 하지만 어렸을 때 원류를 많이 맛 봐야 보는 눈이 생기는 건데 말이죠.”

이 말을 듣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한국적인 것에 많은 매력을 느끼는 자신이 머리로 이해됨과 동시에 화가 나고 분했다. 유년시절 ‘색칠공부 덕후’였던 필자가 색을 채워 넣었던 색칠책엔 대부분이 드레스를 입은 서양여성과 유럽 왕실 귀족들의 현란한 액세서리와 드레스가 대부분이었다. 꼬집어 말하자면 그런 여성을 그린 ‘베르사유의 장미’틱한 일본 만화체 그림의 색칠 공부가 많았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이런 멋진 생각으로 한국 어린이들이 전통의 미를 만나고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매개체가 거의 없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동안 우리 원류는 소위 촌스럽다 구식이다 라는 식의 말들에 묻혀 소외 당하고 업신여겨졌음에 대한 새삼스러운 분노, 또한 지금이나마 이런 멋진 책을 통해 말랑말랑한 어린 감성으로 전통 빛깔의 감각을 키울 수 있는 현대 어린이를 향한 질투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the meeets]상품도 단청 모티브가 많고 심지어 그 전부터 단청 색칠 책을 내고… 교수님은 ‘단청 패티쉬(?)’인가봐..라며 왜 하필 단청이냐 라고 물었다.

“단청을 들여다보면서 볼 수록 매력을 느꼈던것은 단청이 디자인의 기본요소와 색을 탄탄하게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교육과정에서 배워볼 수 없었다는 점이 억울한 생각이 들더라고”

인터뷰는 길었다. 두 여자의 폭풍수다도 만만치 않았지만, 황지현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비롯한 어떤 것을 얘기해주던지 처음부터 소상히 풀어가 주는 ‘인터뷰이’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나왔던 여러 가지 소스들과 인물에 대해 인터넷, 본인이 가지고 있는 책과 논문을 그때 그때 들고 와 시각자료와 함께 직접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이해시켜 주었다. 그녀의 ‘본투비 선생님 블러드’ 덕분에 인터뷰 중에 알게 된 많은 것들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정말 신나게 과외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남아있다.

[전하고(傳), 이어지게(流) 하고, 새롭게(新) 하다.]

[the meeets]의 브랜드 정신이자, 황지현 교수의 마인드를 대변하는 듯하다.

“가끔은 너무나 폐쇄적이고, 큰 벽이 존재하는 전통문화예술 분야가 안타까워요. 개방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예술로 폐쇄적으로 가면, 특히 전통문화와 아름다움은 흐르지 않게 되고 전해지지 않으니까. 나라의 전통 문화가 특수 분야로 치부되고, 끊기는 건 문제에요. 전통문화 원류는 그 원류대로 가되, 응용과 발전은 사람들과 함께 뻗어나가야 한다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 동안 한국적인 미와 전통 모티브를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고, 건강한 의지와 함께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아티스트를 만나보았다. 황지현 교수님과 [the meeets]는 그들만의 철학을 통해 진화된 전통미를 탄생시켜,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진취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불어 교육자라는 위치에서 황지현 교수는 이 멋진 마인드를 젊은 학생들에게 바이럴 시켜줄 것 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통문화와 아름다움 그리고 계승에 대해 한번 더 고찰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명맥이 끊기고 있는 전통문화에 대해 막연한 걱정보다 조금은 안심할 수 있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오산대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은 정말 좋겠다, 이런 멋진 교수님이 계셔서!

사랑 아니었나 – Fromm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작곡, 작사 능력을 갖추고 있는 싱어 송 라이터 프롬.
그녀는 소소한 하루하루의 일상을 독특한 시각으로 어떠한 틀에도 규정되지 않은 채 멜로디로 나열시킨다.
절제된 보컬과 솔직한 감성으로 만들어내는 ‘프롬’만의 언어는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게 자신만의 색채로 청자들을 위로한다.

 

 취재 및 글 : 김호준 Roll Sp!ke  (dafunk@daum.net)
사진제공 : 쇼머스트
편집 : Avant-in

 

 

이제 막 데뷔를 했습니다. 활동을 시작하면서 어떤 기분인가요?

내가 가진 이야기를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공감해줄까 하는 막연한 기대요. 물론 걱정도 조금되지만요.

 

 

이 곡을 ‘송 토크’ 곡으로 고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얼마 전 싱글을 갓 발매한 신인이라 음원으로 들어보실 수 있는 노래가 두 곡 밖에 없으니까 선택의 폭이 많지 않았어요. (웃음)
첫 싱글의 대표 곡을 골랐어요.

 

제목 외에 다른 가제목이 있었나요?

보통은 제목을 짓는다기보다는 기억하기 좋게, 만든 노래의 막연한 느낌으로 가제를 붙이는데 최초에는 ‘New World’ 라고 적어뒀었어요.
사랑이 끝나고 나면 모든 게 새롭게 보이잖아요. ‘New World’ 하면 긍정적인 의미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이 깨어지고 난후의 참혹한 세상인거죠.
그런 의미로 붙여뒀었어요.

 

첫 디지털 싱글의 곡으로 결정 된 이유가 궁금하네요.

멜로디나 가사나 처음으로 저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노래였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보컬스타일도, 음악스타일도 인디 씬에서 익숙한 스타일은 아니니 누가 들어도 프롬의 색깔이 극대화 된 노래를 고르려고 노력했어요.

 

 

 

이 곡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처음 한 장소와 시기가 궁금하네요.

꽤 오래 전에 친한 친구의 이별 후 이야기를 듣고 적어 놓은 메모가 있었는데,
이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그게 시초가 되었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곡이 완성 되었나요?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게 된 과정이 궁금하네요.

그 메모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서 떨어져 나갔는데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다더라…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뭔가 허탈하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분으로 멜로디를 써나갔던 것 같아요.
밤하늘에 조각난 별을 보며 절대 놓고 싶지 않은데 놓아야하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며 멜로디를 만들다보니 가사까지 쭉 연결이 되었어요.
질척거리는 기분은 질색이라 ‘니가 떠나서 슬퍼죽을 것 같아’가 아니고 ‘너 그러는 거 아니야’ 하고 타이르는 쪽에서 쓰려다보니
의외로 경쾌한 멜로디가 나왔던 것 같아요. 이별의 배신감만도 힘든데 노래까지 힘들고 쳐지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너무 자존심상하잖아요.

 

가사 중에 어떤 부분이 제일 와 닿나요. 

어떤 한 부분이란 건 없고, 시작부터 후렴까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담겼다고 생각해요.
굳이 꼽아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후렴의 ‘저기 쏟아지는 별만큼 우리얘기가 너무 가까이 있어’라는 부분인데요.
별이란 게 바로 눈앞에 실사로 반짝거리고 있지만 사실은 몇 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거잖아요.
혹은 이미 죽은 별일 수도 있고요. 같은자리에 있지만 다른 모습이거나 환영인 것과 같은, 이 둘은 그런 관계였던 게 아닐까 해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추억이 되는 순간도 그런 모순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보았던 것과 기억하는 것 그리고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 다 다르니까요.
그런 모순을 별이란 단어에 슬쩍 포함해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눈앞에 있는 것 같지만 이미 몇 억 광년 멀어진 관계에 대해 말이죠.

 

녹음 중 에피소드가 있다면?

프로듀서였던 피터팬 컴플렉스의 전지한 오빠가 바빠서 혼자 녹음한 날이 있었는데
전체볼륨을 너무 크게 틀고 노래를 해서 전체적으로 목소리나 발음에 힘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근데 의외로 들어보고 레이블 식구들이 좋다고 해서 그대로 진행했어요.

 

피터팬 컴플렉스의 전지한씨가 프로듀싱에 참여하였는데 자세한 설명 부탁드릴게요.

오빠의 도움으로 전체적인 방향성과 색깔 그리고 제 목소리의 매력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덕분에 좀 더 밝은 노래도 만들 수 있게 되었고요. (웃음)

 

사용하는 어쿠스틱 기타 소개 혹은 공연 때 다루는 악기들을 소개해주세요. 공연 때 보니 실로폰도 연주를 하시던데.

기타는 테일러기타를 써요 소리가 찰랑거려서 좋아요.
공연할 때는 벨이나 실로폰을 좋아하는 편인데 사실 데모작업을 할 때는 좀 자연스러운 소리들이 좋아요.
꼭 악기가 아니더라도 사물들을 두드려서 나는 소리들이 다 질감이 틀려서 의외로 재밌는 것 같아요.

 

공연 때 이 곡을 연주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좀 더 다양한 사운드를 내지 못해 아쉬울 때가 많지만 데뷔곡이라 뿌듯하고 재밌어요.

 

직접 ‘사랑 아니었나’ 이 곡을 가지고 뮤직 비디오를 연출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곡을 만들 때 생각했던 이미지들이 있어요. 애니메이션으로 상상했는데, 주인공은 그림자로만 표현되는 아이디어에요.
걸음걸이, 숨소리만으로도 감정은 다 전달이 되잖아요. 달려가다가 지치는 장면들이 나오고, 시간은 낮에서 밤으로 바뀌죠.
그러면서 별이 쏟아지는 장면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거예요.

 

아이디어가 좋네요. 다음 타이틀 곡은 직접 연출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웃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주세요.

29일 에반스 라운지에서 공연이 있고, 7월에는 지산 락 페스티벌 오픈 스테이지에 서게 되었어요.
평소 락 페스티벌에 서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기회가 일찍 와서 기분이 좋네요. 그리고 더 열심히 공연하고, 작업해서 앨범도 준비해야죠.

 

 

 

나중에 정규 앨범이 나올 때 어떤 컨셉이나 아이디어가 담겼으면 하나요?

아직은 비밀!! 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는 많지만 첫 앨범이라 아직은 좀 막연해요.
곡들을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처음이니 컨셉은 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본연의 프롬이 될듯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맘껏 해주세요.

노래 한 곡으로 이야기를 풀다보니 저도 몰랐던 제 생각에 대해 정리하게된 것 같아요. 진심으로 재미있었어요.
아방인 감사합니다!!!

 

 

 

http://youtu.be/E1KsxmutM1E

 

 

 

http://www.soribada.com/#/Music/Album/?TID=KD0005935

 

 

 

 

 

I Am a Shadow – No Respect for Beauty

 

KBS의 ‘탑밴드’가 이들을 16강 아니 30강까지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면,
다양성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일은 지난일.
힙(hip)하디 힙한 ‘아방인’은 트리플 토너먼트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
‘노 리스펙트 포 뷰티’에 주목해 보려한다. 

 

 

 

많은 밴드들이 탑밴드 출연을 쉽게 결정 하지는 못한 걸로 압니다.
노 리스펙트 포 뷰티는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우영) 많은 고민을 했지만, 저희 밴드는 경연이나 오디션에 큰 거부감이 없어요.
저희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어디든지 다 괜찮다고 생각하니까요.
탑밴드 시즌1을 봤을 때 장르적 특성을 타는 TV 프로그램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파급력을 생각했을 때 나가도 좋다는 판단을 했죠.
기회가 있는데 포기하는 것보다는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었어요.

 

노 리스펙트 포 뷰티가 트리플 토너먼트에서 떨어진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탑밴드의 다양성에 대한 한계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본인들은 떨어지고 어떤 기분이었나요?

한신) 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떨어지면 “탈락했지만 좋은 경험이었어요.”라는 식의 방송 멘트를 하잖아요.
막상 떨어지니까 그런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우영) 사실은 큰 기대를 하고 나간 건 아니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것보다 실망이 컸어요.
인디 씬에서 열심히 하는 밴드들이 출연했다고 이슈화를 시킨 것에 비해
밴드에 대한 존중이 거의 없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희도 많은 오디션을 보고 경연을 한 경험이 있는데, 탑밴드 만큼 분함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분함이라면 어떤 부분에 관한 분함인가요?

우영) 아침에 오게 해서 새벽까지 기다린 뒤 촬영을 하면서
떨어지면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탈락한 결과보다 과정에 있어 심사위원들의 태도와
스텝들의 존중 없는 상황이 복합적으로 반영이 돼서 분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트리플 토너먼트에서 통과를 하셨으면
전문심사위원단 제도가 있기 때문에 30강에도 들고 16강에도 들었을 것 같은데요.

한신) 실제로 유영석 심사위원이 저희에게 평론가들이 사랑하는 밴드라고 하더라고요.

 

 

이제 본격적인 송 토크 인터뷰를 진행해 볼까요? 이곡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신) 아무래도 저희 앨범 수록곡 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라고 생각해서 이곡으로 정했어요.

 

제목 외에 다른 가제목이 있었나요?

한신)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어요. 그리고 앨범 타이틀 곡으로 하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곡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어서 다른 곡이 타이틀이 되었네요.

 

노 리스펙트 포 뷰티의 음악이 상대적으로 긴 편이긴 하죠. (웃음)
이런 장르의 음악을 하기 위해 멤버들이 모인 건지
아니면 모여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건지 궁금하네요.

우영) 포스트 록 음악을 멤버들이 모두 좋아해서 이런 음악을 해보자고 모였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이런 장르의 밴드들이 아직까지는 많지 않기 때문에
앨범 제작 과정에서 여러 어려운 점이 생기더라고요.

 

예를 들면 어떤 점이 그랬나요?

우영) 보컬이 있는 음악과 저희의 음악은 접근 방법 자체가 다르잖아요.
보컬이 없기 때문에 세 가지 악기로 가득 채워야 되는데, 믹스할 때 문제점이 생기더라고요.
정말 잘하시는 엔지니어 분이랑 작업을 했으나 저희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요.
결국에는 저희가 직접 믹스를 했죠.
이쪽 음악의 대가가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면 큰 도움을 받으며 작업을 했을 텐데
아직은 그런 수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한신) 우영이 형이 믹스를 직접하고, 저희는 모니터를 하면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노 리스펙트 포 뷰티가 개척자가 되어서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우영) 장르를 개척한다는 느낌보다 저희 스스로를 개척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저희에게 맞는 사운드 저희가 원하는 곡을 계속해서 만들어가야겠죠.

한신) 일단 이런 장르에서는 저희가 제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긴 해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저희의 길을 개척해 갈게요.

 

결국 믹스나 녹음 모두 음악에 대한 이해도의 문제인데 공연장에서는 좀 더 나은 상황인가요?

준석) 엔지니어에게 기타 소리 줄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죠. (일동 웃음)

우영) 예전에는 정말 많이 들었는데, 최근에 조금 나아졌어요.

준석) 개인적으로는 엔지니어를 존중하는 게 맞기 때문에 일단 줄이고 공연 도중에 조금씩 올려요. (웃음)
관객들에게 들리는 소리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무대 위의 모니터 상황도 신경이 정말 많이 쓰이거든요.
저는 무대 안에서 소리가 좋아야 공연이 만족스러우니까요.

 

공연 때 이곡을 연주하면 각자 어떤 기분이 드나요?  

준석) 가슴 한 켠이 뭉클해져요.

우영) 슬프고 애절한 기분이 들죠.

한신) 저 같은 경우는 20년 전 추억이 떠올라요.

 

이곡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처음 한 장소와 시기가 궁금하네요.

우영) 2010년 가을의 한 야심한 밤에 곡의 기본 테마가 처음 만들어졌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곡이 완성 되었나요?
멤버들끼리의 의견이 달랐던 부분이나 아니면 작곡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듣고 싶네요.

준석) 합주와 공연을 하면서 계속해서 꾸준히 편곡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초기 데모와 비교했을 때 전체적으로 템포는 느려지고 구성은 빠르게 변화하는 쪽으로 수정되었어요.

 

 

녹음 중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한신) 아침이 되기 전에 녹음을 끝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앰프 접촉 불량 문제가 생겨서
기타 녹음 중에 멤버들이 앰프 연결선을 손으로 붙잡고
문제가 없을 때를 기다렸다 재빨리 녹음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어요. (일동 웃음)

 

음악 스타일상 이펙터를 다양하게 사용하실 텐데 애착이 가는 것을 소개해주세요.

준석) 곡 구성상 여러 대의 기타 소리가 동시에 나와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이펙터인 BOSS사의 루프스테이션(Loop Station)이요.
이 이펙터로 인해 생긴 공연 중의 추억들이 많아서 애착이 가요.

 

개인적으로 앨범 커버 디자인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데 설명을 부탁할게요.

우영) 일반적인 디자인보다 그림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저희 회사 파스텔을 통해 화가 분들을 알아봤어요.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했죠.

 

아, 화가 분의 그림이었군요. 만약 뮤직비디오를 멤버들이 예산에 제약을 받지 않고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어보고 싶나요?

한신) 동굴 속이나 거대한 폭포수, 빙산 같은 곳에서 연주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겠죠? (웃음)

 

 

이 질문은 사실 제일 처음에 했어야 되는데 지금 하게 되네요.
밴드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고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준석) “Time has no respect for beauty.”라는 영화 카운테스의 대사 중에서 따왔어요.

우영) 저희는 시간만이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생각되어져서 ‘No Respect for Beauty’라는 밴드 명을 선택했어요.

 

그렇군요. 오늘 인터뷰 즐거웠고 긴 시간 수고하셨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주세요.

일동) 저희도 인터뷰 즐거웠어요. 앞으로 꾸준히 공연 활동하면서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네요.

 

 

 

 

 

http://www.melon.com/cds/song/web/songdetailmain_list.htm?songId=3723059

 

James Walsh of Starsailor Live Concert

 

 

아방인에 즐거운 내한 공연 정보가 날아왔습니다.

꼭 다시 오겠다고 공언했던 스타세일러..

드디어 스타세일러의 보컬 James Walsh가 다시 찾아왔답니다.

공연 정보는 위에 정말 자세히~~

예매와 문의는 인터파크 페이지에서 직접~~`

8월 4일 그 즐거운 만남의 자리에서 함께합시다~요~

 

 

예매는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2009681&Point=N

 

 

 

 

 

무한도전 열정의 생활 서예가, 최루시아

무한도전 열정의 생활 서예가, 최루시아

‘캘리그라피’……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캘리라는 사람이 뭔가 그래픽 적인걸 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한 것은 나 뿐인가? 아… 역시 나는 많은 독자를 대신해 눈높이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임이 분명하다!! (개인의 무식을 정당화 시키는 이기심 가득한 이 문장을 관대하게 받아주시라…) 최루시아님을 만나기 전에, 캘리그라피가 무엇인지 살짝 알아보기 위해 ‘위키피디아’보다 정감있는 네이버의 백과사전을 참조해본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란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라는 뜻이나, 조형상으로는 의미전달의 수단이라는 문자의 본뜻을 떠나 유연하고 동적인 선, 글자 자체의 독특한 번짐, 살짝 스쳐가는 효과, 여백의 균형미등 순수 조형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뜻한다. 서예(書藝)가 영어로 캘리그라피(Calligraphy)라 번역되기도 하는데, 원래 calligraphy는 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된 전문적인 핸드레터링 기술을 뜻한다.

그렇다, 이런 것이다! 얼마 전 예술의 전당 디자인아트페어(DAF)나 아니면 홍대에서 열리는 주말 프리마켓에서 한지 카드에 원하는 문구를 멋들어지게 붓으로 써주시는 분을 본적이 있다면 그 분이 최루시아 작가이며, 그 글씨가 최루시아의 캘리그라피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최루시아 작가

우리는 먹과 붓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서예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서예활동 특화 초등학교에 다녔던 필자는 서예를 떠올리는 것 만으로 매스꺼움이 몰려온다. 무거운 서예도구와 귀찮은 뒤처리 그리고 곧 죽어도 손에 익지 않는 붓에 모자라, 요렇게~ 그대로 쓰라며 칠판에 붙여진 서체 견본은 내가 쓴 글씨의 개성(희대의 악필)을 인정해주지 않고 내 글씨는 견본 서체와 동일하지 않다며 서예 열등감을 창출해줬다. 물론 선생님은 나쁘지 않다고 한번 더 써보라고 했지만, 그 연기력이 형편없었다. 이렇게 서예라는 존재에 일찌감치 날 멀어지게 한 것은 전통서예 파트였다. 그에 비해 캘리그라피는 생활서예 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조금 더 형식에 벗어나 붓으로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글자의 모양을 써나가면서, 관대하고 즐거운 서예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분야다.

최루시아 작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하던 때, 나는 그 동안 인터뷰어의 작품을 대하는 마음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글씨와 그 모양의 개성을 보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루시아 작가가 10여 년간 해온 작품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붓터치’ 블로그를 보면서 나의 질문 리스트는 가장 많은 질문 수를 기록했다. 단순히 붓으로 쓰는 예쁜 모양의 글씨 이상이 느껴지는 그녀의 작품과 활동 발자취가 나의 호기심 스위치에 on버튼을 또 누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최루시아…
서예가로 만난 사람치고 참 언발란스하게 서양 냄새가 물씬 나는 이름이다. 이름에서 오는 반전만큼이나 톡톡튀는 의외성으로 역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니까…!! 라는 생각이 든 인터뷰였다.

25년간 서예에 몸을 담아온 캘리그라피스트 최루시아씨는 서예를 전공했거나 한국화 배경이 있는 인물은 전혀 아니다. 그녀는 전혀 관계없는 전공을 하면서, 서예 동아리를 했을 뿐이다. 그녀는 인하대 서예 동아리 ‘양현재’ 출신이다. 그렇다고 열혈 동아리 부원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동아리 사람들이랑 노는 건 너무 즐거웠지만, 학교축제나 동아리 전시회 때는 겨우겨우 작품 한, 두점을 내고 헉헉거리는 마이너 부원이였다. 졸업할 즈음 더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할걸 그랬다는 후회를 남기고 최루시아 작가는 사회로 나가 취업을 했다. 취업 후 6개월 그녀는 자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자신은 사회 생활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후로 그녀는 2년 반을 자발적 백수로써 시간을 보내오다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핀잔을 주며 서예 강사 자리가 난 학원을 알려준 언니의 소개로 면접을 보러 갔다. 인생에는 결정적인 기회가 3번은 찾아온다고 하던가… 면접을 보러 간 그 서예 학원 원장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그냥 이 학원을 인수하지 않겠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리고 그 제안을 그녀는 받아들였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 학원을 인수하고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는 공간 속에서 자신 역시 서예에 매진하는데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또 서예에 국한하지 않고 미술, 서각, 한글, 유화 등 다양하게 공부해서 작품에 적용했다. 정말로 많이 많이 배우고 연습했다는 최루시아 작가의 말에 나는 너무나 순순히 수긍이 갔다. 블로그에서 내가 본 그 많은 작품들은 그녀의 노력과 열정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전통 서예 단체나 조직에서 이런 저런 직책도 맡고, 전시회도 활발히 해오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어쩌다 생활 서예로 넘어와 캘리그라피스트가 되었냐는 질문에, 최루시아씨는 호탕하게 자신의 대의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스스로에게 물었죠. 내가 전통 서예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을 수 있느냐.. 자문해본 결과, 나는 그 정도까지 그릇은 되지 못한다, 그럴거면 생활서예로 나가서 사람들이 서예를 더 일상적으로 느끼고, 그 매력을 접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화끈한 방향 전환처럼 들리지만, 전통 서예도 생활 서예도 소중했던 그녀는 10여년 간 양쪽을 매진하며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고 한다. 해서 연간 진행되는 많은 전통 서예 공모전에 빠짐없이 참가하면서, 들어오는 캘리그라피 의뢰 역시 놓지 않고 해왔다. 한 가지를 정해 조금 더 집중해야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중 최루시아 작가에게 재미있는 제안이 들어왔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스캔들’ 주연의 전도연 씨의 붓글씨 손 대역을 하는 일이었다.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한 그녀가 방문한 영화 현장은 새로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 서예를 통해 이렇게 새로운 일을 해볼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흥미로운 가능성이 머리 속에 싹을 틔웠다.

글씨를 통해 할 수 있는 다양한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런 서예를 알려주고 생활서예를 조금 더 보급시켜보자고 가닥을 잡았다. 그런 그녀는 스스로의 대의를 안고 사람들과 서예의 접점 포인트를 찾다가 홍대 ‘프리마켓’을 발견했다. 이거다! 라는 생각에 등록을 마치고 주말마다 홍대 놀이터 프리마켓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다. 하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간 그녀는 프리마켓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투명인간처럼 외면 받았고 그런 시간들이 계속됐다. 서예의 다양한 응용과 생활 서예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들고 간 작품들(한지로 만든 책갈피, 연필통 등에 서예 글씨체를 넣은 소품들)은 사람들의 흥미를 전혀 끌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최루시아씨는 사람들이 저절로 자신의 부스에 찾아 올만한 게 무엇일까 고민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이름을 써주자는 생각이 딱 들더라구요. 독특한 서체로 본인의 이름이 쓰인 그 종이를 간직하면서,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에 대해서 더 신선한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렇게 변화를 주면서 부스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한국 사람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너무나 흥미로워 했죠.”

그렇게 첫 발걸음을 성공적으로 옮겼고 4년여 동안 최루시아씨는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인연을 이어나갔다. 많은 외국인들이 자신의 이름이 한국어라는 낯선 글자로 써지는 과정을 보면서 즐거워했고, 동양 서예 붓을 통해 한지에 올라오는 특별한 서체의 매력에 또 한번 감탄하고 좋아했다. 듣고 보니 나는 이미 최루시아 작가를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었다. 홍대 프리마켓에서 사람들이 그녀에게 붓글씨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그 광경을 기억한다. 실제로 이번 예술의 전당 DAF전시장 앞에서도 작은 부스에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거나 파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 중 최루시아 작가의 공간도 있었다. 한지 카드 커버에 메시지를 써주는 것이었는데, 예시로 카드에는 ‘엄마 딸이라서 행복해요’라는 사랑스러운 마음이 한껏 느껴지는 특별한 카드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녀에게 ‘캘리그라피’는 드로잉(drawing)인가, 라이팅(writing)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 질문에 대해 최작가는 무척 흥미로워했다. 우선 ‘라이팅’ 으로 그녀의 마음 속에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셨는지, 인터뷰 이후 이 질문에 대해 다시 대답하고 싶다고 말을 꺼낸 것도 최루시아 작가였다.

”라이팅은 한 획으로 끝나는 거예요. 드로잉은 몇 겹 겹치기도 하고, 선을 이어서 그리기도 하잖아요. 서예는 한 획의 예술이에요. 그러니까 서예는 써야(writing)하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 곁에서 소박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최루시아 작가지만 그녀의 활동은 그리 소박하지 않다. 우선 드라마 타이틀, 광고 카피, 상품명이나 상호명 서체 등을 작업했을 뿐만 아니라, 붓글씨 손 대역과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댄스팀과 함께 콜라보레이션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서예가의 마지노선을 가뿐히 넘어 내달리고 있다.

“전 원래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

일반 서예가가 이런 말을 했다면 무척 놀라웠겠지만, 두 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며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필자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응수했다. (그랬다면 ‘친절한 금자씨’의 주인공은 이영애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싶은 아티스트로 힙합 계 유명인의 이름을 말한 그녀다. 또한 한국 TED의 강연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감동적인 강연을 위해 맹렬히 준비 중이기도 하다. ‘글씨를 통해서 다양한 걸 해보고 싶다’ 라는 마음으로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수용했던 것이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얼마 전엔 업사이클을 하는 학생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이 다니는 축제에 지원을 나가서 함께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보통 저는 서예를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학생한테서도 뭔가를 배우고 싶어요. 배우러 오는 분들이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고 다양한 연령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알려드린 서예의 기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며, 생활 속에서 어떻게 응용하고 싶은지 듣고 싶어요. 과연 나랑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서예 학원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의 길에 들어섰던 최루시아 작가는 오래 운영해오던 학원을 생활 서예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놓게 되었다. 아이들이 부모님 손에 억지로 이끌려와서 그 아이들은 배워야 하고, 자신은 그 댓가를 받아서 가르쳐야 하는 현실은, 그녀가 생활 서예 쪽에 더 열정을 가지게 되는데 알게 모르게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반 성인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생활서예와 캘리그라피를 접목하여 경험해 볼 수 있는 수업 등을 개설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생겨서, 수업 소개를 보고 등록할 수 있는 곳에 기웃거려 보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수업은 최소 수강인원이 1명 이었다. 보통 다른 수업은 최소 수강 인원이 4명 내지 5명인데, 그녀의 수업만 유독 1명으로 등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 서예를 알리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물론 듣긴 했지만, 우연히 보게 된 이 숫자로 느끼게 된 그녀의 진정성은 무척 깊고 진했다.

“하하~ 우선 서예에 관심이 있다는 거잖아요~ 서로가 시간이 맞는다면 전 무조건 해요.”

최루시아 작가의 서예 전파는 서울에 국한되지 않는다. 강원도 철원 월하리에 있는 마을의 나이 많은 어르신들께 한글과 서예를 가르쳐드렸다. 서울에서 월하리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가 함께 서예를 배우고 한달 후 수업을 마칠 땐, 어르신 모두 자신이 직접 이름을 쓴 명패를 남길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기회가 있다면 물리적 거리는 그녀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그녀답게 그녀의 향후 계획은 해외 진출이다.

“세계에 나가고 싶어요. 능력이 된다면 그 나라 사람의 언어를 배워서 한글 서예가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그래야 듣는 사람들이 더 호감을 느끼고 많은 것을 알 수 있거든요. 그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면서 친밀하게 얘기하고 싶은 거죠.”

서예 계의 잔다르크 같은 그녀, 최루시아.

검 대신 붓을 들고 갑옷대신 활짝 열려있는 마음과 호탕한 웃음으로 무장했다. 그런 그녀를 진군하게 할 수 있는 건, 말(horse)대신 무엇이든 해보고 싶다는 뜨거운 열정이다. 한류가 K-POP으로 끝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붓과 한글을 두 손에 쥐고 저 먼 곳으로 나가려 하는 그녀가 있으니 말이다.

‘최루시아여, 공격 앞으로~!!!’

4人 4曲 – Daybreak

 

지금 현재 가장 ‘핫’한 밴드 한 팀을 고르라고 한다면 대부분 이 이름을 대지 않을까?
그렇다! 이번 Song Talk의 주인공은 3집 ‘SPACEenSUM’을 들고 돌아온 ‘데이브레이크’다.

취재 및 글 : 김호준 Roll Sp!ke  (dafunk@daum.net)
사진제공 : 해피로봇 레코드
편집 : Avant-in

 

먼저 화제가 되고 있는 탑밴드에 관해 몇 가지 질문 드릴게요.
데이브레이크에게 탑밴드에 나간다는 건 어떤 의미였나요?

원석) 계기, 도전이란 단어로 설명할 수 있죠.
멜론 루키나 헬로 루키에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경연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밴드에게는 위험부담이 있을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두 경연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었고, 밴드가 한 단계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더군요.
탑밴드는 TV 방송이라 더 큰 위험부담이 있지만, 멤버들끼리 더 단단하게 뭉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니까
출연에 대해 이견이 없었어요.

 

실제 방송에서 만나보고 싶은 결승 상대가 있나요?

원석) 솔직하게 다 안 만나고 싶어요.
지금이야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감정이라 밴드끼리 동질감도 느끼고 부담도 덜 하지만,
4강과 결승은 분위기가 다를 것 같아요. 심사에 대한 이견 차이도 많을 것 같고요.
그런 상황이라면 어떤 밴드와도 경연을 해서 이기고 지는 것을 가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전에 피터팬 컴플렉스 지한이에게 만약 16강 이후에 두 팀이 붙으면
한 곡을 같이 편곡해서 연주하고 내려오자 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죠.
불가능하겠지만, 진심이에요.

 

경연, 대결 구조라는 방식이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나요?

원석) 앞에서도 말했지만, 물론 부담이 되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심해질 거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고 있는 음악이 이런 거라는 색깔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확실히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느 라운드에서 떨어지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거기다 멤버들의 음악적 능력 역시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연주력이든 가창력이든 편곡 능력이든 말이죠.

 

데이브레이크의 탑밴드에 출연한 궁극적인 목표군요.

원석) 그렇죠.
이런 것들이 탑밴드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밴드 음악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돼서
단독공연에 사람들이 더 찾아오고 3집 앨범이 더 들려지는 게 목표에요.
지금이 데이브레이크의 양적인 팽창이 이루어져야 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각자 작사, 작곡한 노래에 대해 얘기하는 4인 4곡 인터뷰 전에
이번 3집 ‘SPACEenSUM’ 앨범의 의미를 들어볼게요. 

원석) 앞으로 밴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설정했다고 생각해요.
기존에 알려졌던 저희 이미지를 넘어서 뮤지션에서 아티스트로 가기 위한 시작점을 보여주는 노력입니다.
3집이 교두보 역할을 해주고 있고, 데이브레이크는 과도기에 있는 거죠.
다행히 기존 팬 분들과 새롭게 저희 음악을 들으신 분들 모두가 좋아해주시고,
저희 역시 결과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해오면서 3집이 처음이라 감동적이네요. (웃음)

 

 

회전목마

작곡 이원석 / 작사 이원석
http://www.melon.com/cds/song/web/songdetailmain_list.htm?songId=3773035

 

이 곡은 멜로디부터 나왔나요? 아니면 가사부터 나왔나요?

원석) 멜로디부터 나왔어요. 그리고 이 곡이 3집 작업을 하면서 가장 처음에 만들어진 곡이에요.
이번 앨범은 전반적으로 공간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계기는 이번 여름 유럽여행을 다녀왔을 때 들었던 일렉트로닉 앨범들이었어요.
인상 깊었던 사운드들은 전부 공간계열 이펙터를 잘 활용하고 있어서
데이브레이크의 새 앨범에 접목시켜보고 싶었죠.

 

데이브레이크에 있어서는 의미가 큰 곡이네요. 어떤 이유로 회전목마라는 소재를 선택했나요?

원석) 좀 전에 말한 유럽 여행 때 달력이 아닌 하루하루 사진으로 표현된 일력을 사왔어요.
이유는 사진 하나씩 소재로 삼아 가사를 쓰면 365개의 다른 곡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중 회전목마 사진이 있었던 거죠.

 

앞으로 364개의 곡이 남았네요. (웃음)
만약 이곡의 뮤직비디오 감독이 된다면 어떻게 만들어보고 싶나요?

원석) 사실 뮤직비디오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지만,
생각해본다면 결국 회전목마의 이미지를 살리지 않을까 싶네요.
회전목마를 탄 사람의 시각에서 앞 사람과 뒷사람을 촬영하면 정적인 느낌이 되고,
돌아가는 옆모습을 촬영하면 빠르게 돌아가는 동적인 장면이 되어 대비가 되니까 재미있을 것 같아요.
몽환적인 분위기도 연출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본인이 생각하는 데이브레이크에서의 이원석은 어떤 사람인가요?

원석) 정리하는 사람? 혹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인 것 같아요.

 

반대로 다른 멤버들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원석) 선일이는 평화주의자, 유종이는 철부지, 장원이는 필요한 사람 이렇게 정리가 되네요.

 

개인적인 뮤지션으로서의 꿈과 데이브레이크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뭔가요?

원석) 체조경기장이요.
단독공연을 체조경기장에서 하는 게 데이브레이크의 목표에요.
사실 음악을 하면서 이런 목표를 정했던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밴드를 하면서 제 자신이 공연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다시 깨닫게 되었고,
앨범은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레파토리가 되는 거란 생각을 해요.
반대로 얘기하면 과정이 좋아야, 앨범이 발전이 있어야 목표점에 이를 수 있겠죠.

 

 

da capo

작곡 김선일 / 작사 이원석
http://www.melon.com/cds/song/web/songdetailmain_list.htm?songId=3773037

 

‘da capo’가 무슨 뜻인가요?

선일)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음악 기호에요.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음을 표현한 노래죠.

 

이전까지는 작사 작곡 데이브레이크로 표시되었는데, 이번 3집부터 개인 이름이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선일)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면서 시작했어요.
막상 해보니 뮤지션으로서의 자부심이랄까 멤버 개개인의 면모가 더 드러나는 것 같아 긍정적이에요.

 

이 곡의 특징은 뭔가요?

선일) 7/8박 곡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많지 않아요.
비트나 리듬, 멜로디가 7/8박인 것이 들어나는 순간 기교를 위한 음악이 되기 때문에
쉽게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잘 만든 7/8 곡을 데이브레이크 멤버들과 만들고 싶었고,
앨범에 싣게 되었죠. 생각보다는 쉽게 잘 써져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고 성취감이 있네요.

 

가사는 왜 직접 쓰지 않았나요?

선일) 일단 그동안 데이브레이크가 시도하지 않았던, 동떨어질 수 있는 곡이라 생각했기에
가사를 원석이가 쓰는 것으로 통일감을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때까지 밴드를 하면서 제가 들고 온 아이디어 중에
원석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쉽게 부탁할 수 있었죠.

 

이 곡을 만들거나 녹음하면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선일) 오히려 다른 곡에 비해 에피소드가 없었던 게 에피소드네요.
왜냐면 처음 제가 들고 간 데모가 거의 그대로 실렸거든요.
그만큼 멤버들과 소통이 잘 된 곡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유종이가 기타 편곡을 했는데 듣자마자 바로 마음에 들었고, 가사 역시 원석이가 써오자 마자 좋다고 했죠.
모든 면에서 물 흐르듯 진행 되었던 곡이에요.

 

만약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만든다면 어떻게 찍고 싶나요?

선일)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계절이 바뀌면서 피고 지는 꽃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왠지 꽃이 이 곡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마지막으로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 가요?

선일) 죽을 때까지 즐기다가는 할아버지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멋있어지는 뮤지션이요. 포지션은 물론 베이스고요.

 

 

Sunny Sunny

작곡 정유종 / 작사 정유종
http://www.melon.com/cds/song/web/songdetailmain_list.htm?songId=3773039

 

이번 3집부터는 작사 작곡에 개인 이름이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했나요?

유종) 사실은 기존 방식을 유지하자고 제가 제일 강력하게 주장했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모두가 데이브레이크일 수 있지만,
데이브레이크가 누구도 아닌 제3자가 될 수도 있더라고요.
직접 해보니 새롭게 결정한 방식이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 자신의 이름이 작사 작곡으로 적힌 앨범을 보니 어땠나요?

유종) 편곡으로는 몇 번 있었지만, 작사 작곡으로 크래딧에 오른 건 처음이에요.
기분이 새롭고, 다음에는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제 노래지만 만족도는 80점 정도 주고 싶어요.

 

가사를 써보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유종) 머릿속에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지만, 표현 방법에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좀 더 위트 있고, 재미있게 쓸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가 좀 남네요.
그래도 처음치고는 괜찮았다고 위로를 하죠. (웃음)

 

직접 뮤직비디오 감독이 된다면 이 곡을 어떻게 찍고 싶나요?

유종) 제 고등학교 2학년 때가 많이 생각나요.
그래서 짝사랑이라는 소재로 촬영해보고 싶어요.
남자 주인공은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이고, 여자 주인공은 무관심한 편이 좋겠네요.
영화 클래식인가요? 조승우가 가로등 밑에서 기다리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최종적으로 정유종은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가요?

유종) 슈퍼 밴드의 멤버들은 나이가 들어도 에너지를 잃지 않는 모습이 있어요.
저 역시 늙어서도 게을러지지 않게 자신을 닦고 노력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처럼 철이 들지 않은 모습도 계속 간직하고요. (웃음)

 

 

내려놓다

작곡 김장원 / 작사 김장원
http://www.melon.com/cds/song/web/songdetailmain_list.htm?songId=3773043

 

이번 앨범부터 데이브레이크가 아닌 개인 이름이 작사 작곡에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장원)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모두가 더 열심히 하자라는 관점이죠.
하지만 밴드음악은 각 파트의 편곡과 악기 소리 하나하나가 작곡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조율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측면은 멤버들이 자극을 받고 개개인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된 점이죠.

 

자세히 얘기한다면 어떤 부분을 돌아보게 된 거죠?

장원) 특히 가사의 중요성에 대해 모든 멤버들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원석이형이 대부분 맡아서 쓰고 제가 나머지를 맡았는데,
작업 방식의 변화로 모든 멤버가 가사에 참여를 하거나 채택되지 않았더라도 시도를 했다는 게 달라진 점이에요.

 

이 곡은 멜로디가 먼저 만들어졌나요, 아니면 가사가 먼저 나왔나요?

장원) 피아노를 치면서 멜로디가 먼저 나왔어요.
가사는 ‘today of all days’라는 문장에서 부터 파생된 건데,
어떻게 보면 제목 ‘내려놓다’에서 멜로디와 가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내용은 ‘들었다 놨다’, ‘쉘 위 댄스’의 그녀 얘기에요.
‘들었다 놨다’로 만났고, ‘내려놓다’로 헤어지고, ‘쉘 위 댄스’로 꿈을 꾸는 거죠.

 

나름 삼부작이네요. (웃음) 

장원) 헤어지기 직전 두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마주보고 카페에 앉아있는데,
그날따라 모든 게 특별해 보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노래 제목이 ‘오늘따라’였어요.
그래서 ‘today of all days’라는 문장에서 시작했죠.

 

직접 경험한 얘기라서 그런지 할 말이 많겠네요.

장원) 원래 제가 제목으로 하고 싶었던 건 ‘수고하셨습니다’였어요.
멤버들이 너무 싫어해서 그렇게 못했지만, 말 그대로 헤어지는 순간 바로 남이 되는 거잖아요.
‘수고했어’도 아니고 높임말을 써야 되는 사이로 돌아간다는 게 아이러니하더라고요.

 

뮤직비디오를 찍는다면 그 카페가 배경이 되는 건가요?

장원) 사진, 그러니까 스틸 컷으로만 구성을 할 건데, 접사라 그러죠?
아주 가까이에서 촬영한 소스들로만 나열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때 카페에서 시선에 들어왔던 모든 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김장원의 뮤지션으로의 꿈은 뭔가요?

장원) 일단 데이브레이크가 더 잘 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데이브레이크로 이루어 놓은 상태에서 각자 다른 활동을 해야 시너지가 있을 것 같아요.
자세히 말하면 우리 엄마 친구 분이 절 데이브레이크로 알아봐야 된다는 거죠. (웃음)
개인적으로는 작, 편곡을 비롯해 영화음악을 꼭 해보고 싶어요.

 

 

 

http://www.melon.com/cds/album/web/albumdetailmain_list.htm?albumId=2112506

 

 

 

 

 

 

 

 

유쾌한 디자인 삼촌, 정규혁

유쾌한 디자인 삼촌 정규혁

“안녕하세요!”
“어, 또 만나네요?”
“엇, 여기서도 뵙네요?”

필자의 첫 인터뷰 대상인 디자이너 정규혁씨와는 인터뷰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였다. 올 봄, 필자가 담당하고 있던 아티스트의 앨범 디자인을 정규혁씨에게 의뢰했고, 나는 닦달하는 클라이언트,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 디자이너로 함께 일을 했다. 좋은 결과물을 내는 과정에서 목소리가 하이데시벨을 기록한 적도 있었지만, 유쾌하게 웃고 떠들며 작업을 마쳤다. 작업을 마친 이후에도 많은 장소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쳤다. 홍대 거리에서,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보러 가던 길에, 얼스윈드앤파이어의 음악에 맞추어 흥겨운 댄스를 추었던 서울재즈페스티벌 현장 등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장소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리고 그 현장을 누구보다도 ‘유쾌하고 열정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디자이너 정규혁을 만드는 힘이자 에너지라는 것을.


취재 및 글 : 이인규 / inkyust@naver.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BRUDER 정규혁 작가

정규혁씨를 만나러 가기 전, 그에 대한 세밀한 정보 입수를 위해 그와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홈페이지와 인터뷰 기사 뿐 아니라 (남의 미니홈피 훔쳐보는 사람처럼)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샅샅이 뒤졌다. 물론 그와 함께 작업한 적이 있던 터라 그의 작품관이나 성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가 말하는 진솔한 모습이 궁금했다. 한참 동안 마우스를 클릭하며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어느 샌가 작가 정규혁이 만들어 내는 유쾌한 에너지에 빠져들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장소는 홍대의 한 놀이 카페. 그가 직접 선택한 그곳은 그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자유분방한 느낌의 장소였다. 카페에 들어서자 마침 친구들과 모여 프리하게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고, 진솔한 인터뷰를 위해 조용하면서도 탁 트인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림 그리는 디자이너.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의류 브랜드 ‘FUBU’의 티셔츠 그래픽 디자인을 한 적이 있었어요. 원래 전공은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이 때 처음으로 그래픽 디자인이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장으로 스토리를 보여주면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언젠가 버스정류장에서요. 우연히 어떤 여자 분이 제가 처음 디자인 했던 티셔츠를 입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너무 신기하고 눈길을 뗄 수가 없어서 그 분이 버스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쳐다봤어요. 그때 알았죠. 이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내가 해야 되는 일이구나…. 라는 걸.”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어떻게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한 아주 원론적인 질문이었다. 애니메이션 학도였던 그가 어떻게 그래픽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물론 애니메이션도 좋았지만, 그 작업 과정이 저랑은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애니메이션의 경우, 보통은 한 작품당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고, 극장판의 경우는 3년 정도 걸리거든요. 3년 동안 몇 만장의 그림을 그려 작품 하나를 만들어야 하는데 전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컨셉을 만들면서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일이 좋더라고요.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치 매일 다른 옷을 입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애니메이션은 취미로 가지고 그래픽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2006년에 첫 직장을 가지게 된 그는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총괄 아트디렉터의 퇴사로 2006년 <전주국제영화제>와 <펜타포트락페스티벌> 프로젝트를 도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는 여러 가지 툴을 모두 다루는 디자이너였기에 할 수 있는 영역이 남들보다 넓었다. 처음이었지만 무리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고, 그의 능력은 결과물에서 고스란히 발휘되었다. 덕분에 2007년과 2008년에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아트디렉팅을 담당해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다른 디자이너들과의 차별점으로 가장 손꼽히는 것은 그림 그리는 디자이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그래픽 디자이너와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는 다른 영역으로 분류되나 그는 다른 두 가지를 모두 숙련되게 다루는 디자이너이다. 컨트롤이 가능한 분야가 많기 때문에 그는 작업을 할 때 디자인 영역의 제약을 두지 않고 유연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 중에는 그가 통합적으로 아트디렉팅을 하면서 직접 캘리그라피, 일러스트, 그래픽을 고르게 활용한 사례들이 많다.

감탄과 감동의 경계에 서있던 순간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아트디렉팅을 맡았던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니, 온통 아쉬움으로 가득한 말들을 꺼내놓았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결과물 중에 스스로 가장 아쉽고 부끄러운 순간이라고. 이제야 디자인을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하게 된 작품이었는데, 스스로 돋보이고 싶은 생각에 디자인을 뽐내기 위한 툴로 사용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했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냈다는 사실에 만족감 가득한 상태로 행사 때 갔는데, 정말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어요. 관객들과 디자인이 신기할 정도로 하나도 섞이지 않는 거예요. 관객들이 공감 할 수 있는 코드가 전혀 없었던 거죠. 소통의 역할을 해야 하는 디자인이 그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신성한 영화제에 민폐를 끼친 느낌이었어요. 물론 디자인이 이상했던 건 아니었어요.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정말 멋있다는 찬사를 받긴 했거든요. 판매율도 좋았고.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고 예쁜데 그게 더 이상한 거죠. 미관상 예쁘게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된 거죠.”

무결점이 없는 건 매력이 없는 것 같아, 소통을 통해 100 만들기

”너무 완벽해 보이는 제품이 이제는 싫어요. 싫은 게 아니라 맹목적으로 그걸 좇는 게 싫은 거죠. 사람이 들어가서 사용했을 때 그 공간이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데, 사람이 들어가기 전에 이미 100이 만들어지면 사람이 들어갈 자리를 잃게 되는 거예요. 그런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면 숨이 턱 막히게 되거든요. 80을 해두고 소통을 통해 20을 사람들이 채워나가는 게 좋은 디자인이죠. 디자인으로 100을 다 표현하려고 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100을 만드는 게 이상적인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영화 <말하는 건축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故정기용 선생님이 만들었던 공간 중에 다시 한 번 들러보고 싶은 곳이 있다며 방문한 자두나무집에서였다. ‘여기는 시간이 머무는 집인 것 같아. 도시는 다 시간이 도망가 버렸는데’

정규혁씨가 추구하고자 하는 작품관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 역시 이러한 마음으로 인해 유쾌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작점이 어디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부터의 모든 작품들이 다 너무 행복한 기억으로 추억이 되어 남아있단다.

”어떤 친구와 디자인을 하고 있던 때였는데, 내가 사랑하는 디자인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내가 진행하는 사람들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신나서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러면 상대방이 또 박수 쳐주면서 아이디어를 내고요. 그렇게 주고받고를 반복하고 즐겁게 몰두하면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게 되었죠.”

좋았던 기억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는 영화 <쿠바의 연인>, <종로의 기적>, <두 개의 선>이 있고, 감독들과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그들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포스터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드러나 영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리고 단기 프로젝트로 진행된 데이브레이크 3집 <SPACEenSUM> 자켓 디자인 역시 행복한 에너지를 한가득 느꼈던 작업이었다고 한다. 스튜디오와 동트는 새벽의 빛을 담은 야외를 오가며 촬영을 진행했는데, 스태프들과 멤버들이 한 가족처럼 움직였다. 그 결과 앨범에서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아직까지도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다고 한다.

포인트는 두 개, 진짜 그리고 즐거움.

“결과물이 물론 중요하지만, 추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즐기면서 일하고, 그 안에서 나오는 시너지가 작품을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작업과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완성’이 아니라 ‘의미’에 두고 있다. 디자인별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춰 완성하는 게 중요한데, 마감일에 허덕이는 디자인이 반복되면 진심이 묻어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모든 초점을 진심을 담아 즐겁게 일하는 것에 맞추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에너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상상마당 음악영화제>이다. 작년과 올해, <상상마당 음악영화제>의 아트디렉팅을 맡은 그는 홍대라는 지역적 특성과 음악영화라는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소멸되어가고 있는 홍대문화에 음악과 영화적 요소를 동시에 보여주는 위트를 가미했다. 일명 벽화문화라 불리는 홍대 고유의 스트리트아트가 현재는 대부분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자, 작년에는 그래피티를 컨셉으로 잡았고, 올해는 스텐실을 컨셉으로 잡아 진행하였다.

“홍대라는 지역을 통해 문화적으로 많은 걸 만들어 왔는데 진짜 홍대는 지금 사라졌어요. 그래피티 하는 크루들이 더 이상 할 곳이 없어 지방에 철거하는 건물들을 도망 다니면서 하고 있고요. 그러니 더 이상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고. 레코드포럼이 그 자리에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는 것도 홍대의 일부가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복원시키고 싶었죠. 홍대를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과 영화를 접목시킨 캐릭터들을 만들었어요. 비틀즈의 존 레논이 알고 보니 조커 코스프레를 하는 영화광이었고, 스티비원더는 요다의 광팬이었다는 이런 식의 설정을 했어요. 이것이 소통의 창구가 되면서 추억을 주는 요소가 된거죠.”

올해 컨셉인 스텐실은 게릴라적인 문화를 상징하는 미술 기법으로 경찰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놓은 천을 대고 스프레이로 뿌리고 도망가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 모습들을 포스터 안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외계에서 온 네 명의 음악영화광이 홍대에 불시착해서 레코드포럼에 몰래 잠입하고, 골목에서 자유분방하게 뛰어 놀고, 그러다 도망가고. 음악영화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장의 포스터를 통해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만나고 싶은 캐릭터가 되기 위한 과정

“제 스스로가 매력 있는 캐릭터가 되고 싶어요. 또 만나고 싶은 캐릭터, 그런 캐릭터가 되기 위해 집중하고, 내 시간을 확보하고, 그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보내고 있어요. 돈을 좇는 일은 최소화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와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확보하고 싶어요.”

유쾌하게, 진심을 담은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그는 52주(약 1년)동안 디자인 셀프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시와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될 예정이고, 자세한 내용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별도의 사이트(www.52week.org)를 통해 공지할 예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당분간 아트디렉터 정규혁으로서의 이미지를 정립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을 예정인 그의 단기 목표는 기업에서 탐내는 아트디렉터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의 디자인을 볼 수 있도록 올림픽의 비쥬얼디렉팅을 담당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이다. MUJI의 아트디렉터인 하라켄야가 나가노 동계 올림픽의 디자인을 맡았던 것처럼 말이다. 또 쉰이 되어서도 예순이 되어서도 디자인을 하는 디자인 장인으로 남고 싶다고 한다. (그가 예전에 만들었던 가상인물인 드웨인 웨이드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재미있고 신나게, 즐기면서!

인터뷰 내내 진심과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거듭한 정규혁씨를 만나고 나니, 즐기면서 사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에너지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을 위해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지 못하는 요즘 청춘들에게 “그래서 지금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삶을 좀 더 즐기며 살기 위해, 나도 지금부터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그를 만나기 전에 그의 트위터에서 발견한 이 문구가 갑자기 생각난다.

“점점점점 완벽하다는 모든 것들에 관심이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