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카페 “미래광산(Future Mine)”에서 전시공간을 드립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두 분의 광부가
상수역 1번 출구 ‘상수동 이태리’ 근처에 카페를 오픈하였답니다.

이름하여 “미래광산 (Future Mine)”

 

조용한 작업장, 일터, 쉼터, 미팅장소를 찾는 분들에게 매우 적합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어요.

카페의 안쪽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넉넉한 개인공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화이트톤을 유지하며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광산이라는 컨셉에 맞게 러프하고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보여주면서도
정말 잘 캐낸 원석처럼 고급스러움을 뿜어 내지요.

 

 

그리하여 그냥 아무나, 지나가다가 수다떨러 오는, 손님들 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사색을 즐기거나
정말 맛있는 유기농 베이커리와 보드라운 드립커피를 찾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보는 순간 ‘헉!’ 소리가 나게 아름다우신 쉐프님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완성된 음식들은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광부 두 분이 직접 드립하여 내려주는 커피는 진하고 보드라와서
마치 구름위에서 차 한잔을 마시는 듯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아방인과 테이블 사운드도 카페 한 구석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자리잡고 있을 예정이니
혹시 놀러 오시거든 저 즈음의 테이블을 지켜봐 주세요.

 

 

또 왠지 화장실에 예민하고 까다로우신 분들을 위해 준비한 사진 (호호)
온통 하얀색의 화장실은 깔끔함 그 자체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카페의 문 옆에는 예술인들을 위한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전시, 홍보 등이 필요하신 분들은 아방인에 연락 (sea2500@naver.com)을 주시면
카페와 협의 후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해 드립니다.

많은 분들의 매우매우 적극적인 참여를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페에 오실 분들은 아래의 카페 명함을 참고해 주세요.

이 곳에서 종종 “미래광산” 팟캐스트를 녹음하기도 한답니다.
운이 좋으시다면 두 광부님이 열심히 녹음하시는 현장을 직접 보실 수도!! ^^

 

 

 

 

마음의 색을 그려내는 색채연구가 김보경

마음의 색을 그려내는 색채연구가, 김보경

어느 전시회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김보경 작가는 흡사 큐레이터 혹은 작품을 사러 온 바이어로 보이는 새침하고 예쁘장한 아가씨였다. 아담한 전시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동안 서로의 스타일을 탐색하며 흐르는 묘한 기류를 끊고, 지인이 그녀의 이름 뒤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 소개해주었다. 자연스레 어떤 작품을 하시냐는 대화의 흐름을 타며 사진을 통해 보게 된 그녀의 작품은 인상과는 다르게 따뜻하고 열정적인 칼라로 가득 차 있었다.‘저 이런 사람인데요, 인터뷰 할 수 있을까요?’ 라는 최초 거리 캐스팅을 했다. 마침 청담동 백운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에 ‘청담동 콜!’을 외치며 바로 인터뷰를 잡았다. 나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 그녀 역시 나에게 어떤 작품을 하냐고 물었다. 나는 ‘폭식’과 ‘과식’이라는 행위예술을 한다고 대답했다. 못 들었는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건지 반응이 미적지근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작품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아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간 인연이 되었다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정말 그런 행위예술가로 남을 뻔 했다. 다행이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김보경 작가

길거리 캐스팅을 성사시킨 후 김보경 작가를 만나기로 한 전날, 필자는 아이폰이 초기화되는 비극을 맞았다. 정녕 백업을 멈출거냐는 경고문을 읽지도 않고 반사적으로 쳐버린 엔터에 폰은 쿨하게 초기화되었고, 그와 함께 나의 멘탈도 초기화되었다. 그래도 일은 일…. 소중한 자료는 날라가도 인터뷰는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승천하려는 정신을 잡고 내일 만날 김보경 작가와 그녀의 작품을 온라인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작품을 정리해 놓은 홈페이지(http://www.bkkim.co.kr)에서 그녀의 작품들을 보는 동안 문득 나의 패닉이 부드럽게 가라앉았음을 깨달았다. 다른 일에 집중해서 이 엄청난 사태를 잊었다기 보다는, 그녀의 그림과 색채에 상당히 위로 받았음을 깨달았다. 첫날 그녀는 색채를 좋아하고 색채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했었던 것이 기억에서 떠올랐다. 김보경 작가는 색채를 탐구하고 공부한 사람이다. 현재 하고 있는 그림 역시 색을 창조하고 색채조합에 공을 들이는 작품들이다. 백운 갤러리 전시장에는 그러한 그녀의 작품들이 가득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으로 본 것 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생생한 색채를 입은 그녀의 그림은 상당한 사이즈의 작품들도 꽤 있었다.

”모든 작업은 바탕색을 완성한 후에 그 위에 올려서 형태를 완성하고 패턴을 그려 넣어 작업해요. 그리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그 위에 올려진 그림과 패턴들도 이 색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색을 올려서 현재 보는 색이 완성되는 작업이에요. 지금 육안으로 보이는 색은 한번에 나오는 색이 아니고, 이 색이 보여지기까지 여러 가지를 조색해서 여섯 번에서 많게는 여덟 번을 올려 색의 깊이를 낸 거에요.”

그림을 그리고 바탕을 칠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일반인적인 예상을 뒤엎고, 이 강렬한 바탕 색 위에 다시 강렬한 색으로 그림을 채워나간다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포스터 칼라 물감(필자가 아는 강력한 물감)으로 원하는 색을 사서 한번에 팍 칠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무식하고도 솔직한 질문을 던졌다.

”색이라는 건 어떤 조색을 한다고 해도 약간의 차이가 있고, 그 미묘한 차이에서 깊이감이나 따뜻함이 달라지거든요. 제 마음 안에 있는 색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 원하는 색을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얼마나 살 떨리는 작업일까.. 큰 캔버스에 색을 바르고 발라 겨우 원하는 색이 나온 소중한 바탕에 다시 그림과 색을 덧붙여 올리는 작업은 소심한 필자로선 선택하지 못할 방법이다. 하지만 색을 좋아하고 색과 소통하는 그녀이기에 선택했을 방법이다.

”활동 초반에는 백(back)칠하고 마음이 앞서는 대로 작업하다 중도에 그만둔 적도 많아요.. 이제는 그 넘치는 마음을 조절하고 자제할 줄 알게 됐어요.”

또 한가지, 작품을 직접 보고 놀랐던 부분은 그림 형태 안에 채워져 있는 패턴들이 수작업이라는 사실이었다. 보기 전까지만 해도 원하는 패턴지에 색을 입혀 꼴라주식으로 붙여 넣었을 거라고 짐작했던 부분마저 붓으로 일일이 패턴을 뜨고 그 선에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색을 입히고 입힌 작업이란다. 때문에 큰 그림에 있는 메인 형태에 들어가는 패턴을 완성하는 것만 3개월이 넘게 걸린다고 하니 작품마다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작업이다.

”누구한테 위로가 되고, 희망이나 행복을 줄 수 있는 마음을 담아 패턴을 그려나가요. 패턴 하나하나 뜰 때 바램을 한땀한땀 빌듯이.. 패턴 뜰 때는 좋은 바램들을 불어넣어서 해요. 바탕에 뿌린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작은 점들도 붓으로 하나하나 최대한 가장 예쁜 동그란 점이 되도록 그린 거예요.”

그림을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다양한 패턴 문양은 자연을 사랑하는 김보경 작가가 동식물 결이나, 세포, 나뭇잎, 꽃잎 모양 등을 따온 것이다. 자세히 그림을 들여다 보며 패턴을 주시하면, 그 나름대로 각자의 모양을 갖추고 색을 입은 정성 100단 막노동 수공예 패턴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김보경 작가의 작품에는 색채와 패턴 말고도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림의 메인이 되는 그녀만의 상상 속 동물이다. 동물의 부분 부분이 묘하게 조합되어 형태를 이루고, 색색의 컬러를 입어 메시지가 된다. 이 동물들을 통해 김보경 작가는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든다. 이미 경험한 세계에 대한 회상과 기억의 파편을 소재로 한 [상투과자]시리즈는 과거를 얘기한다. 대부분 두 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맞닿아 있는 형태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표현한 테마다. 관계는 접촉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서로 교감하는 표현의 형태를 찾다가 탄생했다. 자신과 엄마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자 했던 것이 시작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나, 절친과 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일 수도 있는 관계들로 발전되어 다양한 작품들이 그려졌다. 현재를 얘기하는 [자유악곡]은 대부분 화려한 줄무늬 물고기가 대표적인 상징으로, 김보경 작가 자신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물고기를 그려왔던 작가는 음악적인 리듬감을 전달하면서, 자신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상상의 생명체를 역시 자연에서 선택했다. 물고기들이 줄무늬로 입고 있는 색과 곡선들이 동적인 진행 상태 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주고 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와 소통하는 매개체는 [이상시각]이라는 이름을 붙인 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과 미래에 대한 이상 표현으로, 강렬한 눈매를 뽐내는 네발 동물이 머리에 달고 있는 뿔은 현재의 고통과 고뇌의 돌파구로써 기원과 바램을 나타낸다. 용과 기린이 결합된 ‘용기린’은 긴 목을 하늘로 들어 홀로 달을 바라보며 이상향의 미래를 고독하게 기다리고 갈망한다.

모든 작업들은 상당한 리스크와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되는 작품이기에,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워놓는다. 색의 구성과 상상 속 동물의 형태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패턴, 3가지 요소 중 김보경 작가가 구상 단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색을 사랑하고 공부한 그녀답게 답은 역시 색이었다. 그녀가 만드는 그림에서 만나는 색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감정을 따라 철저한 색체계획에 의해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색채가 전달하는 이미지 스케일, 색채 전공 당시 연구했던 원하는 느낌을 고려하여 색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 동안 활동해온 시간에 따라 달라진 ‘색을 쓰는 방법’과 작업 당시 ‘그녀의 정서’를 유추해가며 작품과 소통하는 것은 꽤나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맞대고 오랜 시간 얘기를 하며 알게 된 김보경 작가는 따뜻하고 좋은 기운을 담아 작품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연이 좀 더 보호받기를 바라고, 모든 생명체를 보살펴주고자 하는 마음이 모두에게 통해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월드 피스’의 바램을 흠뻑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작가가 색과 소통하여 엮어 나가는 칼라들이 전달하는 것은 따뜻함과 위로 그리고 희망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소통은 전화기가 포맷되어 공항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필자와도 공명하여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임을 머리로 이해하게 됐다. 더 나아가 전시회 장에 걸린 작품 과반수 이상이 갤러리를 방문한 이들에게 판매된 이유일 것이다.

인터뷰 전에 그녀의 활동과 작품을 살펴보며 특별히 눈에 띈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작가 홈페이지에 자신의 작품에 관한 테마 분류와 작품 설명 등이 일목요연하면서도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점이었다. 작품 설명의 단편성을 넘어서 훨씬 더 깊고 분석적인 내용이어서 본인이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불어 많은 신진 아티스트들이 프리젠테이션 부분에 있어서 취약한 점을 고려하면 무척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누가 만들어준 건 아니냐는 의심을 숨기지 않자 수줍게 밝힌 전말은 이렇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만든 작품 설명이에요. 지금 아니면 자신이 자기 작품을 돌아볼 새가 없다는 교수님때문에 하게 되었는데, 자신을 분석하고 이해해서 글로 써놓는다는 건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런 시간을 거쳐 한 문장 한 문장 스스로 만들고 공을 들인 거에요.”

가내수공업 패턴을 만들어내는 우직함을 가진 작가답게 결국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정성스럽게 소개하고 설명해 놓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했던가… 시간을 들여 국/영문으로 정리해 놓고 난 후 오히려 해외 전시에 참가할 때 마다 자신을 명확히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며 톡톡히 효도를 했다. 김보경 작가는 경력에 비해 국내 전시보다 해외 전시가 많은 편에 속했다. 이탈리아, 벨기에, 미국, 중국, 일본에서 작품을 전시했고 올해에도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이런 특이한 프로파일이 나의 눈을 끈 다른 부분이었다. 이 특이한 경력이 생기게 된 과정을 김보경 작가에게 듣고 필자는 다시 한번 인생의 진리를 배웠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김보경 작가는 초대나 기획을 받아 전시회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계속 작품이나 진득하니 해라, 전시회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식의 얘기를 들었다. 그 말에 수긍하기 보다는 ‘전시를 하지 않으면 나를 어떻게 돌아보지?’라는 확고한 생각에 김보경 작가는 스스로 인사동 화랑을 대관하고, 개인 전시를 열었다. 동종계 지인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고독한 첫 전시였지만, 인사동 전시를 통해 김보경 작가의 작품은 반 이상이 팔려나갔고 메이저 화랑에서 작품 구매에 관심을 보이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현재 김보경 작가를 공식 소속 작가로 지정한 백운갤러리 대표님을 만나게 된다. 우연히 인사동 전시에 들렀던 대표님이 김보경 작가의 작품을 보고 그녀를 백운 갤러리 전속 작가로 캐스팅 했다. (김보경 작가는 길거리 캐스팅을 이끄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또한 벨기에 갤러리에서 일을 하는 한인 큐레이터가 이 전시장에 우연히 들렀다가 유럽 전시의 포문을 열어주었다. 해외 갤러리 전시는 그 여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양한 기회를 제공했고, 값진 경험을 선사했다. 말로는 쉽지만, 그러한 기회를 잡고 전시를 성사시키는 과정 동안 김보경 작가는 많은 노력을 쏟았을 것이다. 학부 때부터 결핍을 느껴 남들의 배로 열심히 살았다는 그녀의 말은 너무나 진실하게 다가온다. 김보경씨와 이어져있는 많은 것들이 그녀의 성실함과 노력으로 태어났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블링블링한 커다란 반지를 끼고, 화려한 머리띠에 예쁘게 옷을 입은 내 앞에 앉은 이 아리따운 처자는, 자신이 이루고자 한 바를 위해서 많은 시간을 홀로 치열하게 준비하고 채워온 사람임을 알게 됐다. 더불어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작가이기도 하다.

“작가를 해오면서 맞닥뜨린 마음과 다른 소소한 사항들에 절충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내 주장 내세우고 내 마음대로 하는 건, 내 그림 안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게 나의 일이니까…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대중을 즐겁게 해야 하는 사회봉사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행복하고 복 받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에 보답하고, 세상에 보답하면서 살고 싶어요.”

김보경 작가를 처음 만났던 날 이런 말을 들었다면 그녀의 이런 말은 내게 전혀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그저 작가인지 모를 만큼 화려하게 보이는 아가씨였기 때문이다. 야망이나 성공에 대한 욕구보다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가치와 삶의 균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가여서, 자신의 꿈인 뉴욕 데뷔와 화목한 가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화목한 가정에서 그림 그리는 삶을 살고 싶단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욕심과 아티스트로써의 포부는 명확히 서있다.

“결론적으로는 형태를 파괴하고 색으로 말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평면에서 좀 더 나아가 입체적이고 한국적인 재료를 통해 전시를 하고 싶어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책을 내보고 싶어요.”

달콤한 정조를 가진 자유악곡을 의미하는 ‘화상곡’ 전시를 5월 13일에 끝마치고, 김보경 작가는 휴식 기간을 가진 후 다시 작품 활동에 들어간다. 그리고 올해 안에 있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전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한국에 있을 개인전은 3년에서 4년 후로 생각하고 있다. 그 동안 그녀의 상상 속 동물이 얼마나 더 늘어나있을지, 그녀의 색채와 그 배합은 어떤 식으로 바뀌어 있을지 너무나 기대가 된다.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새로운 콜라보에 참여하면서 성숙했을 그녀가 따뜻함과 위로 외에도 어떤 마음을 불어넣어 색으로 꿰었을지 궁금하다. 가내수공업 패턴을 돋보기 쓰고 작업해야 할 그날까지 기꺼이 지켜보고 싶은 색채 예술가다.

디자인 에이전시의 바른 예 Weather

디자인 에이전시의 바른 예 Weather

디자이너들이 모여 옳은 디자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Weather란 이름으로 하나가 된지 벌써 6년. 디자인 에이전시 Weather 는 ‘영업을 하지 않는 영업방식’으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그들에겐 언제나 작업 의뢰가 넘쳐난다. 무엇이 이들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그 답을 찾아 Weather 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강도훈이사를 만났다.


취재 및 글, 사진 : 아방인, 고나현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weather

날씨라는 것은 그 날의 기분을 좌우한다. 사람의 감성을 흔들고 그 날의 행보를 결정하기도 한다. 디자인 에이전시 Weather 의 작업물들은 그런 날씨를 닮았다. “창업부터 같이 시작해서 벌써 6년이 되었어요. Weather란 이름을 지을 때 날씨가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들(사람의 기분이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도 생각했지만, 비하인드 스토리로는 간판을 먼저 생각했어요. 일반적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간판이 아닌 하늘을 향해 있는 투명한 프레임의 간판이요. 그 투명한 프레임에 그 날의 날씨가 그대로 투영되고요. 사람들은 간판을 올려다 보면서 그 날의 날씨를 액자처럼 볼 수 있는 거죠.”

분명 지나가는 이들이 하늘을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간판이 되었을 터지만, 아직 간판을 만들진 못했다. …

지금이야 6년이나 된 튼튼한 회사이지만 처음 창업을 생각했을 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처음 창업할 때 창업 멤버들은 한 회사의 팀원들이었어요. 하지만 디자인에 있어서 철학이 굳혀질 때 쯤 그것을 실현하려고 하니까 큰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이 많더라고요. 설득하는 과정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쉽게 진행할 수 있는 일들임에도 필요치 않은 행정적인 일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항상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지만, 방법이나 절차를 좀 더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게 됐어요.”

그래서인지, 전체 구성원들이 디자이너이지만 디자인만 하지는 않고 멀티 플레이어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기획과 디자인을 별도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을 함께 병행하여 진행하는 디자이너여야 제대로된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Weather는 그런 디자이너들이 꾸려가고 있죠.”

기획력이 있는 디자이너가 되야 한다는 이유는 단순히 이쁜 디자인이 아닌 옳은 디자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누구든 이쁜 건 할 수 있지만 올바른 디자인을 하는 것은 많은 생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기획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옳은 디자인을 대표할 수 있는 작업물엔 어떤 것이 있을까?

청첩장 디자인 1. “집”
건축을 하는 친구를 위해 이 부부가 이루어갈 집을 상징하는 모양을 만들었다. 안타깝지만 제작비의 여건상 지붕을 만들지 못했다. (웃음)

청첩장 디자인 2. “타임라인”
정말 오랜 시간을 연애하며 드디어 결혼하게 된 부부를 위해 그들의 타임라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접는 방법에 따라 친구들과 어르신들에게 모두 드릴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두 디자인은 친구들을 위해 재미로 한 작업들이다. 그렇기에 담고 싶었던 바른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더 자유롭게 녹여낼 수 있었다.

명함 디자인
처음 생각했던 간판을 대신하는 Weather의 명함은 그 날의 날씨에 맞춰 상대방에게 주고 있다.

회사의 봉투와 씨디 케이스 디자인
글씨를 못쓰는 디자이너들이 많다. 외부에는 깔끔한 이미지를 주고 싶어서 명함을 꽂아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이 디자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각각의 특성과 미션, 컨셉을 가장 최적화 시켜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사용 용도도 분명하고 아이덴티티가 있으며 원래의 목적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는 디자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옳은 디자인이예요.”

씨디 케이스와 봉투에 선명히 인쇄되어 있는 슬로건이 눈에 띄인다.

“for right and remarkable design”

“Weather를 만들기 전 일했던 웹에이전시 회사에서 영화 예매 사이트를 디자인 한 적이 있어요. 굉장히 오래전이죠. 그 당시만 해도 웹사이트가 조금은 투박한 시대였고, 뭐든지 크게크게 보여주는 것만 강조했었죠. 그 때 우리들은 생각을 바꾸어서 사이트에서 영화 정보를 보고 영상을 보고 하다가도 페이지 전환 없이 클릭 한 번으로 바로 예매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예매를 위해 메뉴를 새로 누르고 새롭게 창이 열리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거죠.”

하지만 그 일을 진행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완벽하게 뒤집는 일이었기에 해당 회사의 기획팀을 시작으로 모든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결국 그 예매 사이트에서 기획을 담당했던 분이 사이트 리뉴얼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는 일도 발생했다.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밀어 붙였고, 지금은 모든 영화 예매 사이트에서 Weather의 구성원들이 제일 처음 시도했던 그 방식을 고스란히 사용하고 있다. 지금 여러분이 영화 예매 사이트에서 손쉽게 예매할 수 있게 된 건 Weather 가 한 몫을 단단히 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어렵게 리뉴얼한 후에 영화를 웹에서 예매하는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방법이 보편화된 것을 보면 바로 우리가 정답을 제시했다는 걸 말해 주는 거죠.”

그 일이 있은 후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 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강도훈 이사는 지금도 어떤 프로젝트이든 ‘옳은 것은 무엇인가’를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한다.

“회사를 차리고 2~3년 되었을 때 즈음부터 Weather는 가장 옳은 방법의 디자인을 제시해 주는 회사라는 인식을 받게 되었어요.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법이 결국 통한거죠.”

놀라운 일은 Weather의 구성원은 모두 디자이너들뿐이다. 영업을 따로 하는 사람이 없다.

“해외 유명 디자인 전문가 그룹들처럼 디자인만 잘해도 성공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국내시장의 디자인 전문업체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옳게 바꾸기 위해선 일을 찾아 다니는 입장이 아닌 일이 찾아오게 끔 하는 입장이 되어야 했어요. 그래서 저희의 유일한 영업방식은 모든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물을 저희 웹사이트(http://www.weathe-r.com)를 통해 공개하는 것이 다에요.”

유로2008을 후원하는 기아자동차의 웹사이트를 만들 때도, 단순히 브랜드를 홍보하고 끝나는 사이트가 아닌 사이트를 방문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전세계의 유로2008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 배틀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사이트가 되었고, 이런 굵직굵직한 작업들로 인해 Weather는 기대한 것 이상을 해주는 영민한 에이전시로 인식되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돈만을 따라가진 않는다. 작업 자체로 의미가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밝힌다.

“파스텔 뮤직의 사이트를 리뉴얼했을 때가 그런 경우죠. 저희들 생각으로는 파스텔 뮤직은 개성이 강한 레이블이고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보기 드물게 정답을 보여주는 레이블이었어요. 그래서 가장 최소의 비용만 받고 진행했어요. 기존의 음반사 사이트를 레퍼런스로 하지 않고 오로지 파스텔 뮤직만을 보면서 기획했죠.”

파스텔 뮤직 홈페이지는 지금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http://www.pastelmusic.com

파스텔 뮤직의 홈페이지 리뉴얼은 센세이션했다. 단순 정보 전달에 그칠 수 밖에 없는 레이블의 홈페이지에서 듣고 보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차분하게 담겨있다.

이런 식의 단순히 이쁘게만이 아닌 가장 최적화된 디자인은 수 많은 웹사이트등 중에서 눈에 띄기 마련이다. 대기업들이 먼저 Weather의 문을 두드렸고, 한 번 같이 일을 한 회사는 오래도록 함께했다.

보통 에이전시가 2~3년차가 되어 이슈가 되면 규모만 크게 키우며 작은 일들에는 소홀해 질 수 있다. 하지만 Weather는 그런 실수를 범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철학을 추구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렇기에 지금도 들어 오는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Weather이기에 잘 해낼 수 있는 일들을 골라서 한다.

이런 회사의 철학을 정립하고 있는 강도훈 이사의 개인적인 꿈을 물어보았다.

“자동차와 관련된 공공디자인과 화폐디자인을 해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예요.

한국이 급성장한데 비해 실생활에서의 디자인은 아직 후진국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인테리어나 길거리에 보이는 디자인들 말이죠. 저는 디자이너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인 내가 좀 더 나은 삶과 좀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길거리의 공공 디자인과 매일 보고 만지는 화폐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일상생활에서 멋진 디자인을 보고 느끼면 자연스럽게 생각과 감성이 교육되어 질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의 미션은?

“당장은 지금 회사의 디자이너들을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끌어 올리는 것이예요. 아름다운 것과 철학적인 것, 이 둘의 발란스를 적절히 겸비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진정한 아티스트들의 집합소 Weather.

독특하고 폐쇄적인 형태로 일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그 누구의 것보다 자유롭고 식상하지 않으며 여러 날의 고민들이 담겨 있다. 누군가가 좋은 웹에이전시를 추천해 달라고 할 때 망설임없이 첫번째로 손꼽을 수 있는 매력적인 회사이다.

이렇게 자신들만의 철학을 담은 회사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http://www.weathe-r.com

HeyHiHello

 

지치고 힘든 귀갓길이다.

이런 무료한 일상에 귀여운 미국의 인디밴드를 소개해 드릴까 한다. (후후)

HeyHiHello는 미국의 일렉트로 팝밴드로 5명의 실력파 젊은 뮤지션들로 구성되어있다.
2010년 메이져 음반사 소니 뮤직에서 앨범 계약을 제의 받았지만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고 싶다는 멤버들의 의지에 따라 HeyHiHello는 인디 밴드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켜가며 밴드활동을 하고 있다. YouTube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해 유니버셜 뮤직에 픽업된 Owl city와 일렉트로 팝스타일의 음악이란 점에서 자주 비교되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인디밴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HeyHiHello의 음악적 지향점은달라 보인다.

 

 

 

이들의 음악은

인디 밴드이기에 가능하기도 한 난해한 음악이라거나
재기발랄함이 통통튀는 개성 강한 음악………………..은
어쩌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의 색 너무도 분명하고,
방법론적으로 보았을 때 그 누구의 입김에도 휘둘리지 않기 위해 독립적인 노선을 택했으며,
결과론 적으로는 지금 하고 있는 음악에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아직 어리고
순박한 동네 청년들 분위기에
착해 보이기까지 하니
참으로 가능성이 많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훈남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런 주관적으로만 열린 결론을 내려서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막 근거없이 들이대는 아방인은 아니다;;
이들의 유쾌함을 느껴보려면,
자작곡을 듣기전에 유투브 채널에 꾸준히 올리고 있는 커버곡 영상들을 먼저 보아야 한다.

 

 

 

 

 

 

그들의 오리지널 곡도 한번 들어 볼까~

 

 

자유롭게 활동하는 다섯명의 젊은이들이 참으로 보기 좋다.

그리고 이런 다듬어지지 않음이 모래 속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는 듯한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아직은 동네에서 음악하는 젊은이들로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이 곳 저 곳의 페스티벌과 공연장에서
신나는 무대 함께 즐겨 볼 수 있길 바란다.

그 전에 해체하지만 말아줘..,,,

 

PS> 국내에서 앨범 한개가 이미 소개되어 있으니 음원사이트에서 heyhihello를 검색해 보자!

 

[책소개] 오늘의 일러스트 X 1

아방인 추천 도서

오늘의 일러스트 X 1

저자 : 김윤경 / 출판사 : 북노마드

이것이 대한민국 오늘의 일러스트다!
네이버 ‘한국의 일러스트 작가들’, 그들이 그린 세상

 

주위를 살펴보면 일러스트레이터로 살고 싶은 소망을 내비치거나, 한 장의 그림만으로도 따뜻한 위로를 받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러스트레이터의 경계는 굉장히 모호해서 파인아트와 일러스트를 넘나드는 작가도 있고, 종이와 사이버 공간은 물론 가방, 신발, 소품, 건물 외벽 등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많다. 어떻게 하면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 있는지, 라는 막연한 질문처럼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일러스트의 양상은 이처럼 무궁무진하다.

‘네이버 오늘의 미술 – 한국의 일러스트 작가들’에 소개되어 많은 네티즌의 사랑을 받은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책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43인 중 23명(가나다 순)을 먼저 추려 모은 작품집이자 인터뷰 모음집이다. 왜 그림을 그리는가, 그림을 그리는 데 어떤 공부가 필요한가, 무엇을 통해 자극 받는가, 그림을 수놓는 주된 도구들은 무엇인가, 좋아하는 주제, 소재, 색감은 무엇인가, 그림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화두는 무엇인가, 자신만의 창작 방식은 무엇인가 등 순수하고 개성 넘치는 그림쟁이들의 작업의 뿌리에 관한 질문과 대답을 만날 수 있다.

장래 일러스트레이터로 살고 싶은 사람, 현재 그림으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사람은 물론 평소 일러스트에 대해 몰랐던 이들에게도 행복을 전해주는 책이다. 작가들의 과거와 현재가 오롯이 담겨 있는 ‘화보’ 페이지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그림들의 향연은 이 책의 존재 이유이다.

 


 

네이버 ‘한국의 일러스트 작가들’에 소개된
젊은 미술가들의 생생한 현장을 만나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뭔가요?”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데 어느 학교가 좋은가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은데 뭐부터 하면 될까요?”
 

인터넷 검색창에 “일러스트레이터”를 치면 나오는 질문들이다. 주위를 살펴보아도 일러스트레이터로 살고 싶은 소망을 내비치거나, 한 장의 그림만으로도 따뜻한 위로를 받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일러스트레이터의 경계는 굉장히 모호해서 파인아트와 일러스트를 넘나드는 작가도 있고, 종이와 사이버 공간은 물론 가방, 신발, 소품, 건물 외벽 등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많다. 어떻게 하면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 있는지, 라는 막연한 질문처럼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일러스트의 양상은 이처럼 무궁무진하다. 분명한 건, 단 한 장의 그림만으로도 우리 안의 차갑고, 비뚤어지고, 딱딱한 것들을 ‘뜨겁게’ 전복시키는 에너지가 넘치고, 느슨해진 두 눈과 정체된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전방위적, 탈경계적 아름다움을 내뿜는 그림들이 우리 곁에 넘쳐난다는 것이다. 모든 그림은 아름다운 법이다.

패션 저널 《보그》미술 담당 기자였고, 현재 독립 칼럼니스트로 살고 있는 저자 김윤경도 같은 궁금증을 품었던 것 같다. 다른 이들에 비해 유난히 그림을 아끼던 그는 순수하고 개성 넘치는 그림쟁이들의 작업을 볼 때마다 자신을 매료시키는 이미지가 어디에서부터 생겨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물었다. “당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 작업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려보는 것’, 즉 자유가 주어질 때, 작가들은 행복하다고 했다. 명분에 길들여진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를 감동시키는 작품이 탄생할 때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바로 그때,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놀랄 만한 제안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46인을 소개해달라는 것,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작가들을 만나고 싶었으니까. 그 독창적이고, 다양한 미감의 세계를 소개한다면 자신은 물론 그림을 마주하는 세상 사람들이 분명히 행복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저자의 예감은 틀리지 않아서, 매주 한 명 한 명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소개될 때마다 인터넷 공간은 후끈 달아올랐다. 장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이들은 물론 그림 한 장으로 위로와 치유를 받았다는 메시지가 저자와 작가들의 마음 깊숙이 전해졌다. 그림 한 장이 갖는 힘은 이처럼 위대했다.

『오늘의 일러스트 1』은 장래 일러스트레이터로 살고 싶은 사람, 현재 그림으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사람은 물론 평소 일러스트에 대해 몰랐던 이들에게도 행복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대한민국 오늘의 일러스트를 상징하는 43인(1권 23인, 2권(근간) 20인)의 작가들이 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무엇을 통해 자극받는지, 좋아하는 주제와 소재, 색감 등은 무엇인지, 자신만의 창작 방식이 있는지,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등 독자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작가들의 과거와 현재가 오롯이 담겨 있는 대표 작품들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화보’ 페이지는 이 책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당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 작업은 무엇이었습니까?”

보그 예술 기자이자 독립 칼럼니스트인 김윤경 저자가 작가들에게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결 같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려보는 것” 작가들은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질 때 유일하게 행복하다고 했다. 이제 무엇이든 표현해낼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가득한 그들의 세계를 만나볼 차례다.
 

작가들의 말

경연미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존재인 인간의 깊은 지점을 움직이는 작업”
권민호 “감동을 주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작업”
김시훈 “말이나 설명 없어도 뇌에 곧바로 전해지는 바로 그 느낌”
김영수 “작가만의 세상살이가 자연스럽게 표현된 독특한 작품”
김재희 “어떤 면에서 작업은 외롭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닐까”
노석미 “달콤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달콤한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
노준구 “절대로 변하지 않는, 항상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
두식앤띨띨 “완성된 작품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 그 순수한 순간을 위해 그린다”
박정은 “분절된 생각들, 문화에 대한 관심, 호기심 가득한 관찰력, 민감한 시각”
박형동 “일상생활의 공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졌을 때의 통찰력”
박혜림 “?엇하나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밥장 “내가 어디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진다”
백두리 “그림이란 언어가 아닌 또 다른 대화 수단”
봄로야 “누군가 듣고 말해주길 바라는 대화의 욕망”
부창조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파트너십의 소중함”
정크 하우스 “시대성과 감각에 뒤떨어지지 않기, 늘 깨어 있는 정신력 갖기”
소윤경 “스타일이 아닌, 철학을 가진 작업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아메바피쉬 “만화, 일러스트, 전시, 디자인, 책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
아이완 “세상에 존재하는 참으로 다양한 생명과 삶”
앤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
오기사 “일러스트레이터와 건축가로 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즐거움을 누리는 나만의 방식”
오정택 “작품의 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민, 자기검열, 그리고 시기”
와이피 “창작에 대한 젊은 마음가짐, 무모한 도전정신”

 

작가 소개

경 연 미 |

런던 킹스턴 대학과 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미국 펭귄출판사에서 출판한 어린이 책 『Silly Chicken』은 2006년 ‘’를 수상했고, 독일 타셴에서 출판한 『lllustration now!』에 선정됐다. 뉴욕타임스, 펭귄 바이킹, 월러스, 엡슨 프린터, 아시아나 기내지, 홍디자인, 삼성, 딤채 등의 클라이언트와 일을 했다. 광고, 책 표지, 잡지, 그림책 등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중이고, 조각, 페인팅, 판화 작업으로 개인전을 준비중이다.

권 민 호 |

1979년생. 2002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 디자인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영상을 공부했다. 통일 후 쇼핑 센터로 리노베이션된 평양 만수대를 가상도면으로 작업해 ‘‘Jerwood Drawing Prize’를 수상했다. 졸업 후 런던에서 드로잉을 주축으로 한 일러스트레이션 매거진 《Monday Morning Says》를 창간해서 2년간 일러스트레이터 & 에디터로 일했다. 영국의 미술가 마크 퀸의 스튜디오에서 에어브러시 페인터로도 일했다. 2009년 귀국해 일러스트레이션 계간지 《U》를 창간해서 편집장을 맡고 있고, 현재 00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글래스고 헤럴드》와 《Art Work, 《그래픽》 《n/1》 《CA》등에 소개되었다. 지금은 다시 학생이 되어 런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공부하고 있다.

김 시 훈 |

1980년 서울 출생. 서울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살고 있다. 《에스콰이어》 《보그》 《에비뉴》 《무비위크》 《나일론》 등에서 작업했다. 유니클로 티셔츠 콜라보레이션과 티머니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했다. 2009년 스폰지 하우스 개인전을 비롯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다. 프로젝트팀 ‘Natural Born Losers’의 일원으로도 활동중이다.

김 영 수 |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와 파슨스 디자인 학교에서 공부했다. 뉴욕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 보물 1호 티노』 『실험실 꼬마 흰 쥐』 『하마의 가나다』 『악어 연필깎이가 갖고 싶어』 『내 동생 싸게 팔아요』 등에 그림을 그렸고, 『창작 면허 프로젝트』라는 책을 옮겼다.

김 재 희 | 

1975년 경남 진해에서 출생했다. 계원조형예술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학과를 중퇴했다.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으며, 『GO』 『나이브 수퍼』의 표지 작업, 《씨네 21》 ‘베이직 하우스’ ‘SSAM’ 등에서 일러스트를 그렸다. 플래시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을 연출했으며, 애니메이션〈슈가파이오즈〉, 〈앨리스 와일드〉 등을 기획하고 연출했다. 그 이외에도 카툰 작업과 기업의 캐릭터 디자인, 게임 기획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노 석 미 |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95년 데뷔 이후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고, 10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잡지, 단행본, 그림책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다. 자잘한 일상을 그림과 함께 풀어낸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해』 『스프링 고양이』, 그림책 『냐옹이』 『왕자님』, 독립출판 형태의 『still life』 『상냥한 습관』 『용기가 대단하세요!』 등이 있다.

노 준 구 |

1980년에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광고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런던 킹스턴 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애니메이션 석사 과정을 마쳤다. 단행본 『꿈꾸는 행성』 『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백화점』 등에 그림을 그렸다.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으며 런던 디자인 뮤지엄 전시 디렉터 돈나 러브데이에 의해 전시 하이라이트 10인에 선정되었다.

두 식 앤 띨 띨 |

이고은은 홍익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과를, 이정헌은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다. 두식앤띨띨은 2003년부터 일러스트레이션, 페인팅, 그래픽 디자인, 사진, 영상, 인테리어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 정 은 |

1980년에 태어났다. 계원조형예술대학교 전시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 디자인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Levi’s, Wieden +Kenndy, 창비, 한겨레출판, 시공사, 마음산책, 웅진씽크빅, 위즈덤하우스, 《한겨레 21》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등과 작업했다. 영국의 Laurence King에서 출판된 『The 3D Type book’ ‘lllustration』에 작업이 소개되었다. 독립 출판물《Monday Morning Says》 『Ciccionlina the Cat』『Herb』를 펴낸 바 있다.

박 형 동 |

1975년에 태어났다. 단국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 일러스트레이션과에 재학중이다.『플라이 대디 플라이』 『리버 보이』 『바보 빅터』 『패티의 초록 책』 등 여러 소설책의 표지와 삽화를 그렸고 《맥심》 《팝툰》 《판타스틱》 등 다양퇇 잡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대학 시절 만화잡지 《나인》을 통해 데뷔한 만화가이자 TV 시리즈 〈내 친구 우비소년 2〉26부작을 만든 애니메이션 연출가이기도 하다. 만화 단행본으로 『바이 바이 베스파』가 있다.

박 혜 림 | 

1980년에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8년부터 다수의 책 표지의 일러스트 작업을 했다. 2009년 〈트러블 메이커〉 전시에 참여했다. 아이리버 딕플 TV 광고 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 프리랜서로 활동중이다.

밥 장 |

대학에서 마케팅과 기획을 전공했고 대기업에 입사하여 넥타이 부대원으로 10년간 살았다. 현재는 일러스트레이터 및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클라이언트, 전문 마케팅 회사와 함께 중장기 아트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조선일보》, 상상마당 매거진 《BRuT》 등 다양한 매체에 글도 쓰고 있다. 회사원으로서의 경험과 작가로서 현재 모습을 바탕으로 ‘설렘과 상상’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낭창낭창하게 살고 있다.

백 두 리 |

1984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씨네 21》 ‘나의 친구 그의 영화’, 단행본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의 일러스트 작업과 뱅주 조디악 와인 라벨 전갈자리 일러스트 작업을 했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플러스 에디션』 『컴백홈』 『달팽이들』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 『코벤트리』 『명탐정은 밀항중』 등의 표지 작업을 했다. 《중앙일보》 ‘백두리의 가까운 진심’을 연재했다.

봄 로 야 |

숙명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그림소설 & 앨범 『선인장 크래커』를 펴냈다. 2009년 마카오와 홍콩에서 개인전과 공연을 갖는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매거진 《BRuT》에서 인디 뮤지션의 노래를 그림으로 표현한 ‘Roya’s Band Recipr’를 2년간 연재했다. 봄은 계절을 뜻하기도 하지만 눈으로 ‘보다’의 줄임말이기도 한다. 세상을 로야 만의 예민한 시선으로 마주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다. 일상과 타인, 동물, 식물에서 비롯되는 판타지 등을 모티브 삼아 작업을 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외에 큐레이터 및 뮤지션으로 활동중이다. 그러다보니 여러 사람들과 함께 전시를 갖고 공연도 한다. 요즘엔 언젠가 완성되길 바라며 두 번째 그림소설과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부 창 조 |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 작업했다. 2007년부터 스티키몬스터랩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정 크 하 우 스 |

본명 소수영. 1977년에 태어났다. 스트리트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서울에서 멀티미디어 디자인을 공부했고, 호주에서 그래픽 디자인 학사와 멀티미디어 디자인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5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오가며 많은 스트리트 아트 작업을 진행했다. 국내 및 해외에서 수많은 단체전을 가졌으며 〈Monster House〉, 〈Mosterlism〉, 〈Mutant〉 등의 개인전과 함께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소 윤 경 |

1971년에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화가로 활동하다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국립8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했다. 두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유학을 마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어린이 동화와 그림책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개성 강한 판타지 일러스트와 그로테스크한 드로잉 작업을 지향한다.1996 공산미술제 입상, 2005 년 한국일보》 일러스트레이션 부분 특별상, 2004년 한국 어린이 도서 일러스트 부분 특별상을 받았다. 책 작업으로는 『거짓말 학교』 『일기 감추는 날』 『벌거벗은 임금님』 『건방진 도도군』 등暫 있다. 창작 그림책으로 『내가 기르던 떡붕이』가 있다.

아 메 바 피 쉬 |

본명 박현수. 1975 태어났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2002 거진 《TTL》을 시작으로 다수의 잡지와 사보, 학습지, 단행본, 웹, 광고, 음반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일러스트와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했다. 〈걸리버 여행기〉전부터 〈서교난장 2009〉전까지 30회가 넘는 전시에 참여했으며, 만화가로도 활동중이다. 개인 작품집으로는 『ROBOT』과 『가면소년』이 있다.

아 이 완 | 

본명 황은주. 1973년에 태어났다.〈환타지〉전과 〈앙굴렘 국제 만화 축제〉 등에 참여했다. 《문학판》과 《계간만화》 등에 단편만화를 게재했다. 다수의 책 표지와 앨범 재킷 등의 일러스트 작업을 했으며, 만화가와 기획자들의 만남인 ‘마노’의 전시회 및 무크지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림책 『워터보이』와 『구멍』이 있다. 현재는 그림책과 만화책을 작업하고 있다.

앤 티 |

본명 박소영. 1979년에 태어났다. 상명대학교 만화과를 졸업했다. 2005년 〈꿈꾸는 하늘〉전을 시작으로 〈유쾌한 상상〉〈Trouble Maker〉 〈박소영 개인전〉 〈이태리 한국작가 30인〉전 등 다수의 전시를 가졌다. 2008년 개인 작품집 『ODDSTAR』를 발간했다.

오 영 욱 |

1976년에 태어났다. ogisadesign d’espacio 건축 사무소 대표.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 등의 여행서를 썼다. 현재 가로수길의 작은 사무실에서 건축 설계를 하고,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가끔 강의도 나간다. 알코올과 카페인과 니코틴과 색에 중독되어 있다.

오 정 택 |

1972년에 태어났다. 1998년 홍익대학교 섬유미술과를 졸업하고, 2001년 동 대학원 공예디자인과를 수료했다. 매거진 《TTL》의 표지 그림을 그린 것을 계기로 어린이 그림책 『단물고개』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책』 『구멍』 단행본 『인더풀』 『내 심장을 쏴라』 『통조림 공장 골목』 등과 잡지 일러스트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2001~2004년까지 studio gon 디자인 실장을 역임했다. 2년 연속 노마 콩쿠르 수상, 2011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수상했다.

와 이 피 |

1977년에 태어났다. 현대미술 작가이자 디자이너, 전시기획자로 활동중이다. 2001년부터 〈GENERATION GAP_New World Syndrom〉전을 비롯해 몇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사춘기 징후〉전, 〈신나는 미술관〉전, 〈상상충전〉전 등 단체전에 참여했다. YP는 작품을 통해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고, 주변의 것들을 쉽사리 아이콘화하는 의식이 부재한 시대의 유행에 동참하고 즐거워하는 젊은 세대들의 세태를 가벼우면서도 신랄하게 지적한다. 젊은 세대의 문화를 보여주는 창구의 기능에 그치지 않는 솔직한 표현 뒤에는 진정한 시대정신에 대한 고찰의 흔적이 배어 있다. 현재는 온라인갤러리 쎄 프로젝트를 운영하? 있으며 매달 젊은 작가들의 작품집 《SSE Zine》을 독립출판하고 있다.

 

 

안도현 개인전 @삼청동 aA뮤지엄

 

삼청동 aA뮤지엄 내 지하갤러리에서 5월 7일부터 29일까지 빈티지 오브제 아티스트 안도현씨의 개인전이 있습니다.

얼마전 아방인에서 인터뷰하여 소개했었지요.

대전이 아닌 서울에서 안도현 작가의 빈티지 오브제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삼청동 aA 뮤지엄 가는 길 : 

서울시 종로구 소격 55 / T.02-722-1211

 

 

 

세 남자가 함께 만드는 무한의 빛, luit

세 남자가 함께 만드는 무한의 빛, luit

‘이번엔 셋이다!’
히트 친 액션 영화가 그 두 번째 편을 내며 선보이는 포스터에 있을 법한 카피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이야기!! 말 그대로 이번에 인터뷰할 상대는 개인이 아닌 팀이다. 팀 이름은 luit, 공식 프로필을 애기하자면 미디어 아트를 지향하는 국민대 석사 출신 3인이 모여 만든 부띠끄 형태의 팀이다. 작업실은 청담동도 아닌 평창동에 있단다. 그렇다, 막장 드라마 재벌집을 배경으로 전화가 오면 도우미 아주머니가 “평창동입니다”하는 그 평창동이다. (여담인데, 드라마 속 재벌집 도우미 아줌마들은 왜 동 이름을 말하며 전화를 받는지 모르겠다.) 평창동 주택을 개조하여 회사로 쓰고 계신 몇몇 분들을 알기에, 집에서 제공해준 평창동 주택을 작업실로 사용하는 3인을 상상하며 만나러 갔다. 동 이름과 번지수 하나만 들고 도착한 주택의 철문을 통과하자, 이집트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 이런 계단을 마구 올라가 돌을 쌓았을 거 같은, 높고 좁은 계단이 나를 맞이했다. 운동부족으로 숨이 턱에 차오르지만 그렇게 안보이고자 노력하는 것도 한계에 이를 무렵 겨우 작업실에 도달했다. 헉….헉… 겨우 루잇 멤버 모두를 만났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luit

고행의 계단 등정을 마치고 작업실에 들어가니, 복층으로 나뉘어진 아담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각 각의 작업실이 방처럼 분리되어 있는 소박하면서 개성 있는 일터였다. 계단 밑으로 마중을 나와준 장정호씨가 필자의 도착을 알리자, 고은빈씨와 라경엽씨가 각자의 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셋이서 함께 하는 팀이지만, 공식적으로 장정호씨는 ‘대표’를, 고은빈씨는 ‘아트 디렉터’, 라경엽씨는 ‘인터렉티브 디렉터’라는 포지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Luit은 포괄적으로 미디어 아트를 지향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프로젝션 맵핑”, 조금 더 추가하자면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를 주 종목으로 하고 있다며 장정호씨는 설명했다.

‘프로젝션 맵핑’! 어쩌면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일 수도 있다. 실제로 외국에 비해 한국은 이제야 시작되는 단계라고 한다. (프로젝션 맵핑이 시작된 유럽의 경우 일반 소비재 상품이 처음 런칭할 때 당연히 제품 광고를 하듯, 아주 기본적인 프로모션 툴로써 자리가 잡힌 분야라고 한다.) 때문에 세 사람이 함께 Luit을 시작한지는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지만, 이 분야에서만큼은 선도자나 다름없다. 한국에서 프로젝션 맵핑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얼마 없는데다 그 중 몇몇은 외국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다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루잇은 순수 토종 프로젝션 맵핑 부띠크로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프로젝션 맵핑’이란, 프로젝션의 빛을 통해 의도한 오브제에 영사하여 보는 이들에게 해당 오브제의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이는 아트라고 할 수 있겠다. 외국에서 혹은 TV에서, 건물 자체 혹은 건물 벽 등에 빛을 쏘아 여러 색깔과 디자인이 입혀져 색다른 모습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빙고! 바로 그런 것이다. 매년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지붕이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도 좋은 예가 되겠다.

고은빈: “프로젝션 맵핑은 3D 안경이나, 별도의 디바이스 없이 보는 증강현실이라고 보면 돼요. 우리는 착시 효과를 사용해서 마치 건물이 튀어나오거나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등을 연출해내는거죠.”

루잇의 인터뷰와 함께 그들의 작품을 감상한다면 조금 더 확실히 이 분야를 알게 됨은 물론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필자 역시 아리송하지만 흥미롭다 라는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인터뷰를 시작하여, 끝날 즈음엔 루잇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프로젝션 맵핑 분야의 발전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그 동안 각각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인터뷰했지만, 이번처럼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상상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루잇의 홈페이지(www.luit.co.kr)를 통해 작품을 몇 차례 걸쳐 구경하고 나서도, 만들어낸 인터뷰 질문 리스트에는 ‘뭔지 모르겠어서 물어보지도 못하겠으니 설명해 달라’라는 류의 질문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참고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아이폰 4G IOS 업그레이드를 아직까지도 못하고 있는 기계치임을 밝힌다.) 또한 프로젝션 맵핑의 일반적 기술과 각 업체별 특화 기술의 경계에 대한 개념이 모호했던 덕분에 몇몇 질문으로 인해 산업스파이로 오해(?)를 받는 서러운 순간도 있었다. (어흑~)

프로젝션 맵핑과 루잇을 함께 이해하기 위해선 3인의 각 분야와 분업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장정호: “작품은 어디까지나 공동작업이고 딱 부러지게 분업이 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라경엽씨가 기술적 인터렉션 부분과 프로그래밍을, 큰형 고은빈씨가 영상 컨텐츠를 담당하고, 제가 3D모델링이랑 오브제 제작, 기획 업무를 보는 정도로 성향적 구분이 되어 있어요.”

루잇의 3인은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루잇의 내부적 장점이라고도 생각한다. 장정호씨의 경우 도예를 전공한 독특한 배경과 함께 비즈니스와 루잇의 아이덴티티 사이에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멀티미디어 학부를 전공하고 방송영상 쪽 모션그래픽 일을 했던 고은빈씨는 테크닉과 영상미를 혼합해 루잇의 오브제에 그림을 그려내는 역할을 한다. 프로그래밍, 인터랙티브 등 엔진 역할을 하는 라경엽씨의 경우 시각 디자인 학부를 졸업하여 예술과 상업 프로모션 영역에 대한 마인드가 발란스 있게 공존하는 팀의 막내다.

라경엽: “그 동안 미디어 아트 쪽에 관심은 있었지만, 순수 작가를 지향하기 보다는 상업성과 함께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루잇을 함께 하게 됐어요.”

고은빈: “디자인 자체는 좋아하고, 영상 일 외적으로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작업이어서 좋았어요. 캔버스가 화면에서 물체로 바뀐 것일 뿐 영상일과 유사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오브제, 대상체에 대한 고려사항이 들어간 거에요.”

각자 나이도, 공부한 분야도 달랐던 luit 3인방은 국민대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하면서 연을 맺게 됐다. 과정 중 접한 프로젝션 맵핑에 대해 이들은 작품 지향과 더불어 상업적 아트 마케팅 쪽으로 가능성을 보게 됐다고 한다. 본래 친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뜻이 모아져 지금의 luit이 탄생했다. 세 남자는 모두 30대에 들어섰다. 미개척 분야의 사업을 함께 시작해보고자 결심을 하는 것 자체가 용기를 필요로 한 일이었다. 또한 석사 과정을 하면서 매번 프로젝션 맵핑만을 한 것도 아니었다. 국민대 하준수 교수님께서 직접 거주하고 계신 주택의 지하 공간에 자리잡은 현재의 평창동 작업실을 얻기 전까진, 작업 공간을 위해 많은 짐과 함께 이곳 저곳을 전전하기도 했다. 중소기업 지원자금도 받고, 모두가 등을 맞대고 일하다 기지개를 피면 머리가 부딪히는 작은 공간에서, 점심을 먹을 땐 공간이 없어 의자를 바깥으로 다 빼놓고 식사를 하는 등 시작이 넉넉치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동안에도 다양하고 스케일 있는 오브제 맵핑 작업을 해보며 포트폴리오를 쌓아갔다.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학교를 졸업하고 나와서 더 큰 스케일을 작업해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달려들었단다. 평창동 작업실로 인해 그려진 엄친아 이미지를 얘기해주자 봇물같이 쏟아진 고생담이다.

장: “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홈페이지에 올려진 그들의 포트폴리오와 현재의 루잇을 보면, 장정호씨 말 그대로다. 처음부터 일을 벌리기 보다는 셋이서 내공을 쌓으며 자신들의 철학과 방향성을 함께 튜닝해 왔다는 느낌을 인터뷰 내내 받았다. 특히 필자가 기업과 함께 한 콜라보라고 오해했던 작품들은 루잇 준비단계에서 만들어보자 하는 취지로 시작한 것으로, 그들의 연습과 연구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폭스바겐의 경우, 작품을 다 만들어 놓고 폭스바겐을 렌트해 장비를 싣고 산속으로 엠티를 가서 시연해 본 작품이다. (프로젝션 맵핑은 빛이 없는 암전이 확보가 되면 될 수록 더욱 좋은 완성도를 볼 수 있으므로.. 때문에 회사 수익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테스팅을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창고형 암실을 갖는 것이란다.)

폭스바겐 프로젝션 맵핑

라: “웹사이트에서 본 카메라로 찍혀진 영상이랑 실제로 보는 건 정말 틀려요. 우리가 해놓고도 보면 신기해요, 아~ 실제로 이렇게 느낌이 나오네..이런 것도 있고, 의도와 다른 느낌이 나는데 그게 더 마음에 들기도 하고..”

영상으로 본 포트폴리오는 무척 인상적이어서 산속에서 보는 이런 시연은 얼마나 더 멋질지 호기심이 쩐다. 프로젝션 맵핑 쇼가 연중 끊이지 않는 유럽권과 인연이 많은 필자에게도 한국에서 본 루잇의 작품은 눈길을 잡는다. 오랜 역사와 기술을 바탕으로 화려한 맵핑을 하는 외국 작품을 보면 직접 테스팅을 하거나 시연해보는지를 물었다.

장: “너무 기술 지향적으로 가거나 신기한 걸 따라간다기 보다…… ‘프로젝션 맵핑’이라는 것이 맵핑 자체를 보면 상업 프로모션이 되는거지,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아티스트로 말하기 부끄러워지는거고, 그냥 이벤트 업체가 되는건데..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등이 중요한 요소긴 하지만 우리는 오브젝트가 가지고 있는 의미론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동안 해온 자전거, 자동차 등 오브젝트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찾고 싶다고 할까, 디자인 같은 경우는 수많은 노력에 의해서 다듬어져 나온 ‘조형품’ 임에도 불구하고 조형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냥 한 시대의 상품으로 짧은 수명과 함께 잊혀져 가요. ‘거기에 우리의 그래픽을 다시 입혀서 아트화 시켜보자, 그러면 이것의 생명력은 길어질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는거죠”

오브젝트의 의미나 성격을 먼저 생각하고 고려하는 게 루잇이 하는 프로젝션 맵핑의 지향점이라는 얘기다. 루잇 멤버 모두 디자인 공부를 했고, 자신을 비롯한 주변의 많은 동료들의 고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그들의 바탕이 이러한 철학에 동기부여를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진정성있는 루잇의 얘기를 들은 만큼, 이탈리아 PINARELLO사의 자전거를 모티브로 만든 이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자전거라는 오브제의 어떤 가치를 담아내고 싶었는지 궁금했다. 무작정 작품을 접했던 것과 다른 시각으로 다시 한번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피나렐로 자전거 맵핑

장: “자전거의 조형적인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함께하는 어떤 물건이 되었느냐..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자전거로써, 그 감정과 함께 자전거로 느끼는 것은 바람이다. 사람이 느끼는 바람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자전거에 라인이 들어가는 작품이 됐죠.”

라: “조금 더 편하게 얘기하자면 수수하게 자전거를 타는 순간 바람을 맞는 자유스러움, 그런 기분을 자전거를 타지 않더라도 우리 작품을 보고 바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거죠.”

이번엔 같은 오브제를 사용했지만, 인터랙티브 작업으로 표현했던 Drawing Bicycle Project에 대해 애길 시작해보았다. 인터랙티브가 구현되는 기술적인 부분과 설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뭔가 이해하는 얼굴로 ‘그렇군요’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역시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덕분에 나는 소가 됐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몇몇 사람은 광진교 다리 한가운데 있는 ‘리버뷰 8번가’에 전시되었던 루잇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경험해봤을 지도 모르겠다. 왜 나는 그 시기에 광진교에 놀러 가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이 흥미로운 작품은 조금 버전을 바꿔 자전거 박람회에 전시되기도 했다.

Drawing Bicycle Project

2011년 위와 같이 시동을 건 루잇은 바쁜 2012년을 보내고 있다. 주어지는 오브젝트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들이 콜라보를 이루어 도출해낼 수 있는 오브제와 그 효과를 적극적으로 궁리하고 제안하는 능동적인 아티스트 집단이기에 가능한 바쁜 스케줄이라고 생각된다.

[오브제, 공간, 소리, 영상, 기술과 하이테크, 예술과 디자인의 상호 작용에 집중하여 기이한 재미를 연구하고 만들어 냅니다.]

루잇 소개 글 중 한 부분이다. 프로젝션 맵핑이나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에 국한되지 않는 루잇의 호기심과 아티스트로써의 도전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일례로 마술사 이은결씨의 공연 중 한 부분이 루잇과 콜라보를 이루고 현재도 공연 중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비로운 마술을 펼치고자 하는 이은결씨가 빛을 이용한 작품을 고민하던 중 루잇 역시 같은 생각으로 먼저 이은결씨에게 제안을 보냈고 작업이 진행됐다.이 외에도 지금은 밝힐 수 없는 비밀 프로젝트 몇 건이 진행 중이란다. 가장 먼저 루잇이 대중을 만나게 될 작품은 병원에서 어린이 날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준비한 재능기부 콜라보 작업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조합의 협업이어서 기대도 되지만, 이런 좋은 일에 기꺼이 힘을 합하는 아티스트이기에 더욱 반짝반짝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각자가 루잇을 통해 보는 자신의 미래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오브제를 꼽아 보자고 했다.

장: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유행을 타는 부분이 커서, 이런 분야의 대기업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우리만의 색깔을 잘 만들어내서 지속 가능한 아트 컨텐츠가 되고 싶어요. 컨텐츠라 함은 오브젝트에 쏘여지는 그래픽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말하는 거고, 다른 작가나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는 거 역시 그 일부구요. 꼭 햅고 싶은 오브젝트는 딱히 없어요. (하지만 장정호씨는 바닥에 집착하고 있다고 고은빈씨가 폭로해주었다.)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 펼쳐지는 것이 재미있는 거고, 그것을 잘 하고 싶은거여서…오브젝트를 시작으로 감동을 만들어낸다기 보다, 무엇이 주어지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어요.”

라: “시각디자인 베이스여서 광고 마케팅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가 다루는 분야는 BTL의 궁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면 뛰어들어 보고 싶어요. 음.. 해보고 싶은 오브젝트를 꼽는다면 ‘살아있는 거’나 아니면 ‘움직이는 거’… 이륙하는 여객기라던지…”

(유년시절 보았던 만화 실버호크가 떠올라 라경엽씨 아이디어-이륙하는 여객기-에 상상을 덧붙이자, 장정호씨와 고은빈씨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소를 마구 지적하며 이륙하는 비행기 오브젝트의 가능성을 깔끔하게 폐기시켰다.)

고: “전 두 사람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표현법에 좀 더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기술보다는 컨텐츠화 시키는 부분에 있어서 선구자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딱히 오브젝트를 꼽는 거 말고, 현실 속에 증강 현실 효과가 있으니까, 오브젝트가 없는 곳에 실체가 있는 것 같은 역발상적인 거에 관심있어요.”

인터뷰를 마칠 무렵 장정호씨가 꼭 예고하고픈 것이 있단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즈음에 누구도 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것을 만들어 낼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재미있다고 느낄만한 것을 보게 될 거에요. 시작은 서울에서 지방 그리고 해외까지….!!”

아…이게 왠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랭귀지판 맨투맨 티저광고인가… 밝히자면 필자 역시 그게 무엇인지 1%도 듣지 못했다. 빛을 말하는 Luminance와 어둠인 Night의 불어 Nuit이 합쳐진 이름 luit, 어둠 속에서 빛을 통해 보여주는 프로젝션 맵핑의 컨셉을 그대로 따라간 이름이다. 앞으로도 어둠 속에 환상적인 연출로 보여질 빛은 그들의 프로그래밍, 예술성과 그리고 세 사람 각자의 다양한 의지가 함께 투영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뭐든 천편일률적으로 상업화, 포맷화 되어 가는 요즘의 대한민국에서 개성과 능력을 갖춘 아티스트들의 부띠끄가 많이 생겨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승승장구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luit, 흥해라!

http://www.luit.co.kr

뉴미디어를 활용한 비지니스 솔루션 업체 DAREZ

뉴미디어를 활용한 비지니스 솔루션 업체 DAREZ

3년 전, DARE란 이름으로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에 미쳐있던 디자이너 4명이 의기투합했다. 현실성을 바탕으로 전개된 생각들은 기발함과 재치를 무기로 브랜드와 매칭되었고, 지금은 20여명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DAREZ란 이름으로 확장된 튼튼한 회사가 되었다. 디자이너들의 개성이 가득한 창작력에 강력한 비지니스 브레인을 합체,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기특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 갓 서른이 된 DAREZ 의 대표 윤반석을 만났다.


취재 및 글, 사진 : 아방인, 고나현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DAREZ

“DAREZ 는 비지니스 솔루션을 뉴미디어와 함께 제안해 주는 회사예요.”

시종일관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하는 대표의 표정과 말투에서 회사와 직원들에 대한 강렬한 믿음이 느껴졌다.

처음 디자이너로 세상에 나가려고 할 때 디자이너에 대한 대우가 너무 형편이 없음을 바로 깨달았다고 한다. 거의 모든 회사들이 당장 눈 앞에 현금이 보이지 않으면 실패한 사업이라고만 생각을 했고, 그런 상황에서 ‘디자인’이라는 것은 당장 현금화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지출을 해야만 하는 애물단지였다.

“디자인에 대한 서로의 견해가 다르고 접근법이 다른 것을 설득하거나 싸워나가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만들어 가자고 생각했어요. 분명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테고 그들과 함께 해보자! 그래서 시작됐죠.”

그렇게 뛰어든 세상에서 어려운 일들이 많긴 했지만, 안될 일은 없었다고 한다. 디자인을 바탕으로 기획된 제안들에는 철저하게 다른 시각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을 인정받는 순간,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어리다는 것도 단점이었죠. 그래서 어떤 제안을 넣고 싶을 때는 무조건 만날 때까지 연락했어요. 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하고 팩스도 보내고 소포도 보내고… 그러면 귀여워서라도 한 번씩은 다 만나주셨죠.”

젊은 시절에 부릴 수 있는 모든 치기를 사업에서 부린 셈이다.

“초창기에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우리는 어리니까 뉴미디어 라는 것을 완벽히 이해하여 전문가가 되자.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제안을 해보자 였어요. 그래서 아이패드가 국내에 발매도 되기 전에 아이패드 매거진을 개발해서 잡지사들에 제안을 했죠. 매체들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현실에 맞는 가장 발 빠른 대응책이었죠. 그렇게 저희가 처음으로 ‘인스타일’, ‘슈어’ 등 잡지의 아이패드용 매거진을 진행했고, 지금은 너도 나도 하고 있는 굉장히 보편화된 매체가 되었죠.”

아무래도 회사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방향성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단순히 이쁘기만 한 디자인과 재미만 추구하던 것들은 지양하고, 현실적이고 진지한 작업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의력’을 강조한다.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무척 달라요. 아이디어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쉽게 생겨나요. 하지만 창의력은 현실성을 동반했을 때에만 자생할 수 있어요. 그런 창의력을 가지고 직원 중 누군가가 프로젝트 제안을 하면 그 직원이 총책임자가 되어 전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자신이 낸 기획을 총괄하며 운영, 관리 능력과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를 키워 나갈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 프로젝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횡단 보도 리뉴얼 프로젝트(http://darez.kr/safe-solution)예요. 특허도 있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고 성사될 때까지 계속 할 거예요.”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솔루션의 하나로 증강현실(http://darez.kr/dazed)을 도입하여 제안한 적이 있으며
이 프로젝트로 DAREZ는 여러개의 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스마트폰 기반의 자체 서비스도 만들고 있다. 피피픽, 비비빅, 팅팅팅 이란 재미난 이름의 이 서비스들은 각각 카테고라이징, 오늘 뭐먹을까, 소개팅이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있다. 현재 맹렬히 개발 중이니 완료되면 아방인에서 다시 한번 소개하겠다.

디자이너로써 느끼는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 물었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디자인이란, 아름다움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하지만 디자인에는 설계라는 부분이 반드시 들어가야 돼요. 그것도 굉장히 기능적인 설계가 필요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성에 대한 연구가 먼저 된 후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하죠. 보여지는 것이 이쁘기만 하고 유행만 따라가는 디자인은 위험하니까요.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여러가지 기회들이 확실히 많아졌고 DAREZ같은 회사가 구성되기에 수월할 정도로 환경은 좋아졌어요. 그러니 이 좋은 기반들을 적극 활용하여 이제는 진정성이 있는 디자인이 나올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밤 새 작업한 기획안들이 성사가 안되거나 다른 디자이너들이나 회사들이 기획을 따라할 법도 한데…

“우선 실패란 말을 절대로 쓰지 않아요. 어느 한 곳에서 안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만든 기획이 실패한 기획은 아니니까요. 계속 발전 시켜서 더 어울리는 다른 곳에 제안하고 있죠.

마찬가지로, 우리의 아이디어를 베낀다고 하여도 기획의 의도나 철학이 빠지면 자연스럽게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지잖아요. 오히려 왜 이렇게 어울리지도 않게, 표면적인 것만 따라 했을까.. 하고 아쉬움을 느낄 뿐입니다.”

언제나 그들 나름으로 새로운 것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만들고 제안하고 있는 DAREZ. 현 시대에 맞는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단다.

“지금의 DAREZ는 돈만을 위해 일하지 않아요. 우리 디자인과 기획의 가치를 인정받고 재미가 있으면 되죠.”

자, 그럼 사회 초년생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이제 사회로 나왔으면 적어도 2년은 미쳐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노력이나 열정없이 더구나 준비도 안되어 있으면서 회사를 단순히 돈버는 도구로만 생각하고 여유만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이쪽 일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작하길 바래요.”

DAREZ의 최종 목표는 무얼까.

“회사가 잘되어 매출액 8000억을 이룬 후 제가 퇴사하는 것이 목표예요. (웃음)

퇴사 후 해외에서 미션스쿨을 만들어 무조건적인 동정의 나눔이 아닌 배움을 통한 공정한 나눔의 기회를 창출하고 싶어요. 나눔 베품 사랑 이란 말을 통해 내가 더 우월하니 도와주자는 인식을 좋게 보지 않거든요.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울 수 있었던 기회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그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기회는 열어주되 진지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더 잘되는 것은 당연한 거니까요. 이 세상은 불공평할 수 밖에 없잖아요. 모두 다 능력의 차이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불공평한 세상에서 억지로 똑같이 동정을 베풀어 주는 것은, 능력있는 사람들의 기회를 자연스럽게 박탈하는 것일 뿐이죠.”

나눔과 베품에도 기존의 손쉬운 방법이 아닌 좀 더 근본적인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DAREZ의 대표 윤반석을 만나는 것만으로 긍정의 에너지가 샘솟았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확신과 신념이 있었고, ‘할 수 있음’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안된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절대 금물. 또, 한 번 안되었다고 포기하는 것도 금물. 다른 방법과 기회들을 항상 찾아 오니,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http://www. darez.kr

인스타그램 일러스트레이터 nu1t, 대멀리즘 발간!!

아방인에서 소개한 작가들이 전시회를 갖거나 책을 내거나 작품을 발표하는 일은
왠지 모르게 엄마미소를 짓게 합니다.

나온지 초큼 되었지만,
아방인이 공사 중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소개해 드리지 못했던 바로 그 책!!!

인스타그램 일러스트레이터 nu1t님의 책 “대멀리즘”을 소개합니다~

 

 

“[대멀리즘]은 아이폰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캐릭터,
인스타그램이 아니었다면 찍지 않았을 사진들,
그리고 SNS의 정겹고 다정다감한 소통의 교감들이 없었다면 창조되지 못할 ‘그림 이야기’들이다.” 


최근 2년여 사이 모바일 통신의 환경은 급속도로 변했고,
그에 발맞춰 SNS라 불리는 네트워크 구간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됐다.
그 확장 공간 중에서 특히 확고하고 충성도 높은 유저를 거느린 사진 소셜 커뮤니케이션 앱이 ‘인스타그램’이다.
앱이 최초로 다운로드된 순간부터
8개월 만에 8백만 유저들이 모여들었고
지금은 전세계 2천5백만 명이 넘는 아이폰 유저들이 이 앱을 받아서 사진으로 소통하고 있다.

1억 5천만 장의 사진이 소통되는 세계 최대의 사진 기반 SNS다.
초당 10장 이상의 사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업로드되고 있다.
아이폰에서의 인기몰이에 이어 최근 안드로이드 앱도 제작되어 배포되고 있고,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을 전격 인수하는 빅딜로 이루어졌다.
이를 계기로 확장성은 더욱 힘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인스타그램은 트위터나 페이스북과는 다른 개성을 가졌다.
소통의 주요 도구가 활자가 아니라 ‘사진’이다.
이곳에서는 프로 사진가와 아마추어 사진가와의 차이도 없다,
그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나 아이폰에 저장된 사진만 있으면 소통할 수 있으며
유저들은 자신의 감성을 팔로워들로부터 동의받을 수 있다. 시쳇말로 활자는 그저 거들 뿐이다.

기획 의도
그런 사진 데이터의 공간에 사진이 아닌
대머리의 작달막한 아저씨 한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다.
이름하여 멘션 프로젝트 [#n1_mentionproject].
이것은 유저들이 업로드한 사진들에 그림을 입히는 작업인 이미지 합성 창작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 @nu1t의 팔로워들은
자신들이 찍어 올린 사진을 기꺼이 제공하며
인스타그램 안에서 소통하는 또다른 즐거움을 공유하게 되었다.

@nu1t는 아이폰의 무료 앱인 ‘스케치북 모바일’을 사용,
터치펜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손가락의 중지만으로
한땀 한땀 사진 위에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히는 작업을 해왔다.
그 결과물로 ‘대멀’이라고 많은 유저들이 자가발전으로 이름 붙인 흥미로운 캐릭터가 태어났다.
것은 [대멀리즘]의 매우 흥미로운 창작 포인트이자 동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그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려왔던 8백여 점에 가까운 그림들 중에
사진을 제공한 유저들에게 출판을 허락받고 특히 반응이 좋았던 것들을 선별한 것이다.
대멀 아저씨와 사진 속에서 호응했던
많은 고양이들, 강아지들 그리고 곤충, 벌레들과 피사체의 사람들이
새로운 창작물로서의 생명감을 부여받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고정화된 사진의 이미지에 대멀 캐릭터가 녹아들어가며, 경쾌한 몸짓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몸짓을 표현하기 위해선 몇 개의 작은 곡선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선 몇 개로 살아나는 리듬과 몸놀림이 있다.
거기에 동물, 사람,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감성이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그 감성의 변주곡은 인스타그램 유저들과 소통하며 SNS의 이야기 샘물이 됐다.

대멀 아저씨는 팔로워들의 사진에 스리슬쩍 스며들어 꼼지락거리며 몸짓을 한다.
때론 황당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멋쩍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모습의 이면에선 ‘소셜테이너’로서의 뛰어난 자질이 엿보인다.
한 컷의 그림이 올라가면 전 세계 만 명 이상의 유저들이 사진을 공유하고
또 많게는 천 명 이상의 유저들이 하트를 날린다.
그렇게 SNS에서 태어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다가온 캐릭터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대멀’이다.
데이터로만 존재했던, 아이폰 앱, 인스타그램의 한정된 공간에서만 존재했던
‘대멀’과 그의 친구들 (서브캐릭터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책 [대멀리즘]을 통해서 비로소 유쾌하고 발랄한 대머리 중년 아저씨가
데이터의 세계를 벗어나 외출을 감행한다.

 

 

매우 흥미가 당긴다구요?

자자~ 구매는 요기! : 인터파크

 

작가의 손을 볼 수 있는 영상은 아래!!

 

 

유쾌한 웃음을 주는 nu1t의 대멀리즘~
꼭 한번 보세요~~ 🙂

 

 

옛이야기와 소통하는 빈티지 오브제 아티스트- Andorh 안도현

옛이야기와 소통하는 빈티지 오브제 아티스트- Andorh 안도현

날씨 좋은 평일 아침 KTX에 홀로 탑승하여 대전으로 향했다. KTX를 혼자 타는 것도, 대전을 방문하는 것도 처음이다. 인터뷰 상대로 소개를 받아 알게 된 안도현씨의 존재는 나의 호기심 풍선이 빵빵해지다 못해 터져버릴 만큼 강렬했고, 직접 그가 있는 대전으로 가서 온라인으로 본 안도현 작가의 실체를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이 내 정신줄을 강타했다. 83년생 안도현씨는 ‘빈티지 컬렉터’이자 ‘빈티지 오브제 아트 설치 미술가’다. 간혹 빈티지 물건들을 이용해 설치 미술이나 연출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자신의 주 종목으로 하는 한국 사람은 개인적으로 처음 봤다. 대전까지 와주었다며 역으로 마중을 나와준 안도현씨 차가 앞에 섰다. 지프(Jeep)다. 그냥 지프가 아니라 개조된 빈티지 지프다. 높다. 많이 높다.. 지금까지 타본 개조 차량 중에서 제일 높다. 이 독특한 안도현씨에게 자랑 좀 해보고자 외국에서 득템한 레어 아이템, 컨버스 부츠를 신고, 투투치마를 입었던 나는 초면인 안작가 앞에서 산을 등정하듯 바둥거리며 그의 지프에 네발로 기어 올라가는 진귀한 광경을 보여줬다. 민망함을 가득 안고 첫 지방 로케 인터뷰가 시작됐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안도현 작가

대전 목척시장 근처에 안도현씨 애칭을 딴 카페 ‘안도르(Andorh)’에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시작한 나는 안도현씨에게 ‘Who are you’가 아닌 ‘What are you’를 물었다. 물론 초면이기에 ‘하시고 계신 분야를 모두 나열해 봐주세요.’라는 사회성을 발휘했지만, 정말로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까놓고 말해서 “넌 뭐냐”였다. 이 연령 대의 청년이 이러한 빈티지(6,70년대 시기의 물건들)에 관심을 갖는 것을 넘어 수집하고, 분해/해체 작업을 거쳐 작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작품들이 여전히 빈티지 특유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작품으로 승화되는 점 등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자라거나 체류했던 배경도 전무하다. 한국의 정규 교육 속에 성장했으며, 전공은 경영이고 심지어 군대에서는 교관이었단다. 또 한가지 안도현씨를 직접 만나보고 느낀 신기함은 한국에서 잘 접해보지 못했던 고요한 순수함이다. (당신이 사람을 별로 안 만나본 게 아니냐고.. 위에 있는 이메일로 묻고 싶을지도 모를 것 같아 수고를 덜어드리자면, 성향상 직업상 적잖게 만나본 편이라고 생각한다.) 4차원적이거나 혹은 화분 속에서 자란 청순한 순수함 따위 특별히 순수하다고 표현해줄 만큼 관대하지도 못하다.

“직업상 손을 대고 있는 일은.. 대표적으로 ‘빈티지 오브제 아트’에요. 사연이 있는, 시간을 보내온 오브제들을 모아서 해체하고 다시 재결합시켜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인데요, 지금까지는 간간히 그런 식의 작업이 있긴 했지만.. 저는 완전히 시대적인 것들, 못 하나를 비롯한 모든 것이 시대를 타온 부품이나 리싸이클링 부품으로 작업을 하는 특징이 있어요. 옛날에는 빈티지 오브제나 소품을 모으는 컬렉터였고, 패션 쪽 빈티지샵을 하다가 발전이 되면서 지금의 작업을 하는 쪽으로 넘어왔어요.

연장선에서 대전이라는 지역에 ‘플리마켓’이라고 문화예술시장을 열어요. 여행 다니다 종종 보던 그 풍경이 좋았고 늘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그러다 보니 그걸 대전에서 하게 됐고, 문광부 지원을 받아서 사업을 진행했었고.. 현재는 30여명의 친구들이 스탭으로 함께 하고 있어요.

또…대덕대학교에서 디자인예술학부 패션상품 기획 강의를 하고 외부 프로젝트를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거나, 큰 전시를 할 때 같이 팀으로 움직이기도 해요.”

안도현 작가를 만나기 전에 했던 사전조사와 거의 동일하다. 이제 정말 알고 싶은 것은 30세 총각이 어떻게 이런 테이스트를 갖게 되었는가.. 그리고 얼마나 어릴 때부터 이런 쪽에 빠져 있었길래 이런 활동 영역 (빈티지 컬렉터, 빈티지 패션샵, 빈티지 오브제 아트, 자기 이름을 딴 카페, 플리마켓 주관, 교수 타이틀)까지 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현대 젊은이의 트렌드는 아웃오브 안중인 ‘자신만의 패션을 보여주는 아웃핏’과 ‘빈티지 지프’를 제외하곤, 직접 만나 본 안도현씨는 평화롭고 맑은 사람이었다. 필자의 속세적이고 현실적인 마인드로는 얼마나 풍족한 사람일지도 궁금했다. 유럽 중세 엔틱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친척을 둔 필자로선 “빈티지”라는 아이템이 얼마나 자금력을 기반으로 요하는지 잘 알고 있다. 얼마만큼이 차려진 밥상이고, 얼마만큼이 안도현의 파워일지 속물처럼 궁금했다. 물론 자금력이 받쳐준다고 모두 다 이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맨손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면 그 저력에 있어서 더욱 평가를 해주고 싶은 의지다. (쉽게 생긴 자본으로 스케일 있게 일만 벌리다,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둬 버리는 진정성 없는 사람들을 목격한 부작용일 수도 있겠다.)

“음..빈티지를 수집하고 관련 일을 한 건 25살 때부터.. 5년째에요. 이걸 통해서 작품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은 작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작년 10월에 첫 개인전을 홍대 ‘엔트러사이트’에서 가졌고, 예술의 전당 ‘신세대 아트스타’가 두 번째 전시회였어요.

가방을 좋아하는데 예전에 아버지의 샘소나이트 브리프 케이스를 보고 처음 가방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하드케이스 여행가방을 좋아하게 되면서 모은 가방이 3,40개 되었을 즈음에 사람들은 이런 가방을 좋아하나 궁금해서 대전 번화가에 가지고 나가서 팔아봤어요. 주위 사람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았어요. 그래서 한달 후 샵을 차리고, 이어서 2호점을 차리고 온라인 쇼핑몰도 하고 그랬죠. 이런 사업을 하면서 문화행사에 눈을 돌리게 되고 미국 버스를 사는 등 하고 싶은 걸 마구 해보면서 가세가 기울었어요. 해보고 싶은 게 돈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고교를 졸업하고 이쪽에 올인하여 살아왔을 것이라 짐작했는데 의외로 경력이 짧았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작가 이전 빈티지 매니아였던 안도현씨는 별 생각 안하고 바로 일을 ‘벌리는 스타일’이었다. 형편이 어려워진 찰나에 틈틈이 했던 작업에 눈을 돌려, 만들었던 작품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갤러리가 많다는 청담동에 찾아갔다. 편집매장에도 들러 보여줬다. 이 시기 안도현씨는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됐단다. 홍대 카페 겸 아티스트 전시를 여는 ‘엔트러사이트’도 이 시기에 알게 되어 전시를 하게 되었다. 날달걀로 바위를 쳐봤는데 맛있는 계란 후라이로 변해 안도현씨 앞에 돌아온 것이다. ’운이 좋았거나, 바위에 내려친 날달걀이 보통 달걀이 아니었거나’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빈티지 오브제 아트를 하는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전환점이 된다. 넓은 곳으로 와서 사람들한테 자신을 알려보니, 역으로 새로운 직업 타이틀을 되돌려 받은 형세가 된 것이다.

빈티지 샵을 했던 과거사진과 모은 물건들을 홈페이지에서 보고, 학창시절부터 빈티지에 푹 젖은 일본 구제 덕후 스타일을 상상했다고 말하자 그러고 보면 자신이 빈티지를 접근한 방법은 일반 사람들과 달랐던 것 같단다. 빈티지를 좋아하는 성향이 처음 패션 쪽으로 드러났던 25살, 샵이나 패션 관련 일을 할 땐 자신이 빈티지 패션 연출을 좋아하고 막연히 오래된 의상이나 시대적 의상을 좋아하는지 알았단다.

“밀리터리를 입으면 밀리터리 패션에 어울리는 바이크를 타던지 하는 연출을 좋아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패션을 좋아한 게 아니라 사연이 담겨져 있는 물건을 좋아한거구나.. 집이건 물건이나 자동차도 그렇고 무엇이든지… 그걸 패션이라는 걸로 표현을 했었던 거였구나 하고 나중에 알게 됐어요.”

하지만 안도현 작가의 작품을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취향이거나 감각이기엔 무언가 진한 농도를 느끼게 된다. 현재 안도현 작가의 바탕이 되는 근원은 서로의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나온 개인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안도현과 빈티지 사이엔 고3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있다. 안작가의 아버지는 새벽에 아들을 깨워 동대문 시장 구경을 가거나, 오늘은 학교 가지 말고 아빠와 놀러 가자며 아들의 손을 잡아 끌었던 친구 같은 분이셨다고 한다. 아버지 친구들끼리 자식 자랑의 배틀이 붙었을 때 딱히 말할게 없으면 우리 아들은 무척 건강하다고 자신을 자랑해줬던 아버지였다. 반면 학창 시절의 안도현씨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사람들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아이였다. 의기소침하고, 친척집에 가도 말 한마디 안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런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와는 고교시절까지 함께 쇼핑을 다닐 만큼 돈독했다. 이제 성인이 되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써 회상해보면 아버지는 감성적이고, 여리고, 꿈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감성적 성향이 자신에게 이어져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도현씨가 손을 대는 빈티지는 1960~70년대 물건이다.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었지만, 아버지가 보아왔을 풍경과 교련복을 입는 등 아버지가 살았을 때의 시절 그 당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안도현 작가, 그가 빈티지를 통해 소통하는 근원은 그리움이었다. 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내성적인 소년은 취미가 앨범보기가 될 정도로 더욱 심약하고 섬세해졌다. 이랬던 안도현씨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계기는 군대였다. 군대 입소 전날까지 신경성 질환으로 병원 신세를 졌던 안도현씨는 교관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고 당당해질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됐다. 추억을 먹고 사는 취미가 잊혀질 정도로, 제대 후 성향이 여유로워지고 바쁘게 살게 됐다. 전역을 하고 난 후에는 음료수 장사, 교회 물건 납품 영업 등 이것 저것을 많이 해봤다. 어떤 순간에도 재치가 있어 좋았던 ‘인디아나존스’의 모습을 닮아 가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예전 기억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고, 자신을 잡아당기지 않게 됐다고 한다. 때문에 어제 일 조차도 오늘이 되면 잊고 오늘 할 일만 집중해서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일에 빠져있게 되고 주위에 사람이 생겨났다.

현재(집필 당시 기준) 안도현 작가는 서울에서 두 개의 전시를 하고 있다. 하나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DAF (Design n Art Fair)’에 자신의 작품이 4월 29일까지 전시되며, 이태원 갤러리 ‘골목’에서 자신의 개인전을 5월 6일까지 선보인다. 또 얼마 안 있어 삼청동Aa뮤지엄에 전시가 있을 예정이다. 작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있었던 전시회를 통해 안도현씨는 내 나라 그리고 고향 대전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으로써, 좀 더 한국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동기부여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빈티지가 없다면 리터칭을 통해서, 한국적인 빈티지 영역을 구축하고 싶어요. 요즘은 디자인보다 메시지나 의미에 좀 더 치중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의 작품은 언뜻 보면 정말 멋있는 빈티지 물건으로 보이지만,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있다. 아직 작가경력이 길지 않은 안도현씨의 소탈함으로 가타부타 많은 설명을 글로써 전달하지 않았을 뿐이다.

샤넬 로고가 찍혀있는 ‘The Value’라는 작품은 장인이 만든 기술이나 물건 자체에 대한 경의감 없이, 명품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소유욕과 과시욕으로 일그러진 사람의 마음을 기울어진 탑을 통해 표현했다. 언뜻 보면 기타 틀로 만들어진 빈티지 오브제로 보이는 ‘Victor Jara’는 군부와 맞서 싸운 칠레의 민중 가수 빅토르 하라를 나타낸 작품으로, 자신의 총은 기타고 총알은 음악이라며 군부에 맞섰던 그가 군부에 잡혀 손이 부러진 상태에서도 피크를 끼고 연주하다 총에 맞아 죽은 인생을 표현했다. ‘Money Grinder’라는 이름의 작품은 음료가 아닌 핫 아이템이 되어버린 커피로 인해 오히려 순수한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표현했다. 작품 ‘Time2’에 이용된 나무 도마는 재래 시장 닭 상점에서 쓰던 버려진 도마였다. 수많은 닭이 이 도마 위에서 죽어가고 잘리는 동안 파이고, 피가 고이고 지나갔을 수많은 시간들이 도마 위 갈라진 틈을 통해 강렬하게 녹아있음을 느낀 안도현 작가는, 도마 위에 시계를 넣은 전구를 올려 사람의 일생을 표현했다.

이렇게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안도현씨의 인생에 아버지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한 분 더 있다. 바로 카페 안도르의 김산 대표님이다. 군산 전시를 보고 느꼈던 강렬함을 지울 수 없었던 김대표님은 안도현 작가에게 밤 12시에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셨다. 그 날 안작가 인생의 첫 양주를 사주셨던 대표님은, 현재 카페 건물을 개조하고 안도현씨에게 작업실을 제공해주셨고, 카페에 그의 이름(Andorh)을 붙여주셨다. 그리고 안도현 작가는 이 카페의 주인이니 이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라고 하셨단다. 50이 넘은 대표님은 언제나 안도현씨에게 ‘작가님’이라는 존칭을 붙여주신다고 한다. 카페가 바쁘더라도 안작가가 직접 쟁반을 들고 일손을 도우려 하는 것을 보실 수 없는 분이다.

“제 작품을 인정해주시고 제가 가려는 길이 언제나 맞고, 저보다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다. 교만할 것도 작아질 것도 없다라는 걸 가르쳐 주셨어요.

아침엔 고물상 사장님과 애들이랑 작업하고 밥 먹고, 낮엔 대전 시장님을 뵙고 이런 행사가 있으니 도와달라며 설득하고, 밤에는 서울 청담동 갤러리 행사에 초대받아 천 억대 자본가와 유명 작가들과 만나면서도 제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누군가에게 뭘 기대할 것도 없고, 뭔가 기대하게 되면 바로 나는 약해지게 되는 거니까.. 나는 나일 수 있도록 힘을 주신 분이자, 작품 활동에 있어서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신 아버지 같은 분이세요.”

카페 안도르에서 김산 대표님을 직접 뵙고 잠시 대화를 나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표님이 안도현씨를 예술가로써 그리고 순수한 청년으로써 아끼시는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안작가가 서울에서 자꾸 러브콜을 받는다며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시며, 이제 카페 마당이 자유를 찾아 속이 시원하겠다는 마음에 없는 말씀으로 언젠가 올 수도 있을 이별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감추시는 듯 했다. 대표님은 처음 안작가의 작품을 마주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당신이 느낀 것을 필자와 공유해주시면서 안도현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으며, 이곳 대전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려주셨다.

“안도현 작가를 보면서 어울리는 우리들끼리 간혹 얘기해요. 우리는 지금 천재를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본인이 많은 부분을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하며 받는 많은 스트레스를 안도현씨를 통해 치유받으신다며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카페 안도르는 안도현 작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어울리는 평화롭고 마법 같은 곳이다. 그리고 아티스트들의 전시 공간이 제공되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대전에 거주하거나 방문하신 분들은 꼭 방문해보시라!) 카페가 위치한 곳은 5,60년대 대전의 번화가였던, 안도현 작가의 할아버님이 한정식 집을 운영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민 분들에게 (알고 보니)‘한정식 집 손자’ 라고 불리거나, 우연히 아버지를 아셨던 분을 만나기도 하는 의미있는 동네다. 현재는 재개발 지역이 되었지만 그만큼 옛 건물들과 옛 정취가 흠뻑 남아있어 그 어느 곳보다 안도현 작가에게 잘 어울리는 곳이다.

당시 안도현 작가가 주관하는 플리마켓이 주말에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대전에 직접 와서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곳까지 발걸음을 한 이상 준비 과정도 보고, 안작가의 작업공간 외에 작품들을 보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더랬다. 안도현씨 역시 필자를 차에 태우고 이곳 저곳 자신과 관련된 곳을 보여줄 계획이었단다. 하지만 인터뷰와 대화 사이의 모호한 경계 안에서 많은 얘기가 오고 간 후 20분간의 짧은 점심을 함께 먹으니 대전 일정은 어느덧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처음 대전에 와, 역에서 15분 거리인 카페 안도르로 이동하여 얘기를 나눈 후 카페 바로 앞에 있는 밥집에서 밥을 먹고 다시 역으로 돌아와 서울로 온 격이다. 누군가 강요한 출장이었다면 서러운 일정이고, 어찌 보면 허망할 수도 있었지만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와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안도르와 안도현 작가, 그를 아끼는 주위 사람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대전의 따뜻한 연결 고리는 오지 않았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수수한 마음과는 다르게 커다란 포부를 품고 있는 안도현 작가를 발견하게 됐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작가, 사회에 이슈를 만드는 인물로써, 크리스찬으로써, 대전 사람으로써 앞으로 이런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아무도 걷지 않았던 방법으로 이렇게 다채로운 일을 해내는 동안 분명 안도현 작가는 많은 장벽에 부딪혔을 것이다.

“저는 나이도 어리고, 학력도 없고, 연줄도 없고, 돈도 없고..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가 많은 것들을 경험한 사람으로… 꼭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솔직 담백해서 좋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해도 인터뷰 때는 입 밖으로 안 냈을 수도 있는 얘기다. 더더욱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써 유명해지고 싶고, 영향력을 갖고 싶다는 말은 (마음은 있을지언정) 대놓고 잘 하지 않을 것이다. 안도현씨와 많은 얘기를 나눈 필자는 안작가가 느끼는 그 마음은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진실한 마음이라고 인정한다.

여담으로 한국 사회 특유의 정형화 된 삶과 달리, 지금처럼 사는 현재의 안도현씨 모습을 아버지가 보면 뭐라고 하셨을 것 같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있었음… 남이 쓰던 걸 주워와서 뭐 하는 짓이냐고 정말 반대했을거에요. (웃음)”

http://www.bluedodg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