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안녕 – 포니

 

잘 놀 것 같은 대도시 청년들의 이미지를 가진 ‘포니’. 다른 이들의 시선이나 말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에 매진할 듯 한 모습이 매력적인데요. 그런 모습들이 팬들에게 긍정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것은 2009년의 데뷔앨범에서 세련된 음악과 스타일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죠. 3년만에 EP <Little Apartment>를 발표하며 돌아온 그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취재 및 글 : 김호준 Roll Sp!ke  (dafunk@daum.net)
사진제공 : 파스텔뮤직
편집 : Avant-in

 

“안녕”이란 곡이 이번 EP의 타이틀곡인데요. 아이디어 스케치를 처음 한 장소와 시기가 궁금하네요.

송광호) 음, 합주실에서 상민이형이 기타로 치는 걸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권우석) 아무 얘기도 없이 상민이형이 기타치다가 파트 하나씩 자연스럽게 만들었어요. 포니의 거의 모든 노래들이 그런 형식으로 만들어진답니다. 어느 정도 골격이 잡힌 후에야 상민이형이 예전에 만든 데모였다고 말해줬어요. 어떤 방향으로 어떤 색깔로 재탄생 되는지 두고 보는 것 같아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대충의 골격이 잡히기 전까진 어떤 노래인지 구분도 잘 못해요.

최상민) 밴드 시작하기도 훨씬 전인 5,6년 전에 집에서 친구가 준 드럼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다가 만든 노래에요. 처음에는 완전 일렉트로닉 음악이었고, 합주 후에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바뀌게 됐습니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를 정체불명의 곡들이 집에 쌓여있는데, 이 곡도 멤버들이 발견해서 빛을 본 곡이죠. 밴드 홈페이지에 (http://club.cyworld.com/thepony) 들어오시면 이 곡을 처음 만들었던 즈음의 데모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제목외에 다른 가제목이 있었나요?

송광호) 글쎄요? 상민이형이 알겠죠?

최상민) 파일명으로 처음부터 안녕이었어요. 처음 노래 시작하면서부터 나온 단어가 안녕이었구요.

권우석) 포니 노래 가제목들은 그 노래 특정 가사나 파일명으로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예로 맨 마지막 트랙 ‘누구의 방’은 앨범 작업 전 까지도 파일명이 런이라서 ‘RUN’으로 불렸어요. 원제목이 확정되면 그 제목에 적응하는데 또 시간이 걸려요.

‘누구의 방이 뭐야?? 아… RUN….’

 

 

가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권우석) ‘안녕 정말 미안해 둘이어서 혼자인거야’… 노래에서 자주 언급하는 부분인데요. 대표적인 상민이형 스타일의 가사죠. 저 구절을 뱉을 때와 노래 분위기야 말로 ‘안녕’이란 노래에서 전달하려는 부분의 정점인 것 같아요. 사실 상민이형이 가사에 대해서 문학적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많은데, 리스너분들은 많이 간과하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워요.

송광호) 저는 ‘제비꽃만 흩날리겠지’ 부분인데요, ‘안녕’이란 노래 분위기와 ‘제비꽃’이라는 단어 만큼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는 것 같아요. 그 소절을 들을때면 제비꽃이 만개한 멋진 봄날의 이미지가 떠오르죠.

최상민) ‘둘이어서 혼자인거야.’ 이 부분이죠. ‘혼자든 둘이든 셋이든 인간은 누구나 외롭게 죽는데 뭐 어쩌라구?’ 라는 정서가 그 구절에 있어요.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200년전에 끝낸 얘기지만 좀 뻔하고 진부하게 문장으로 만들어봤죠.

 

“안녕”이 타이틀 곡이 된 이유가 궁금하네요.

최상민) 원래 타이틀 곡 후보는 마지막 트랙 “누구의 방”이었는데요, 주변 사람들한테 들려준 결과 “안녕”이 제일 좋다고 해서 타이틀이 됐어요. 특별 이유는 없었어.

권우석) “너의 집”이라는 노래와 “안녕”의 각축전 끝에 “안녕”의 승리였어요. 사실 “안녕”은 훅이 있으면서도 아련한 느낌이 강해서 이미 작업 전부터 타이틀 물망에 있었구요. 주변 사람들한테 노래 들려주고 한곡 골라달라는 식으로 바를 정자 썼더니 “안녕”이더군요.

유승보) 글쎄요. 오래두고 봤을 때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명곡일 것 같아서?

 

가사가 먼저 나왔나요? 아니면 멜로디부터 나왔나요?

최상민) 가사 멜로디가 동시에 나왔지만, 후에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서 지금의 곡이 완성됐요. 예전에는 수첩에 ‘이미지’들을 적고 그거를 요리조리 오려붙여서 ‘가사’를 완성했는데, 지금은 그냥 노래 이미지에 말들을 붙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사와 얽힌 에피소드가 있나요?

최상민) 안녕은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이 있는 노래에요. 대략적으로 말하면, 인생이 절대적으로 무가치하고 지겹다고 생각한 사람이 내일 아침 일어나면, 죽으려고 마음 먹죠. 그리고 그 사람은 독백하듯이 편지를 씁니다. 자기 연인이나 친구나, 기타 등등에게. ‘안녕 온 몸을 흐르는 모든 말이’ 어쩌구 뭐 그렇게 편지를 쓰면서 ‘이젠 봄이 오니까 제비꽃이 흩날리겠지. 아니 아침이 오면 그냥 전부 똑같아.’ 이런식으로 혼자의 의식을 쫒으면서 계속 써내려가는 얘기에요.

가사 쓸 당시에 너무 바빠서, 주로 버스를 타고 왔다갔다하는 시간에 짬짬이 썼어요. 반쯤 졸면서 아침에 서강대교를 건널 때 쯤에, ‘아침이 오면 모든 것은 그냥 그대로’ 라는 가사로 곡이 완성됐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몽롱한 기분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권우석) 저는 상민이 형이 합주 때 맨 처음으로 완성된 가사 불렀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교정한 지 얼마 안돼서 인지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고, ‘안녕’만 들렸던게 기억나요. 사실 가사 모두 앨범 작업할 때 되서야 알게 됐어요.

 

녹음 중 에피소드가 있다면?

유승보) 음.. 보컬녹음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코러스의 비는 부분을 걱정했어요. 어떤 맬로디의 허밍을 넣어야 할지 녹음내내 계속 흥얼거렸고, 바로 여러분들이 듣고 계신 ‘안녕’의 허밍부분은 녹음 당시에 흥얼거렸던 바로 그 부분이에요.

또 기타노이즈 녹음이 재밌었는데요. 하루 날잡고 스튜디오에서 기타노이즈만 녹음했었어요. 차음폰을 끼지 않으면 청각장애나 그동안 아껴오던 고막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룸 안에서 말이죠. 준비라기 보단 거의 다 빌려오고 제공받았던 기타, 이펙터, 마이크, 앰프들을 가지각색으로 조합을 맞춰가며 녹음한 부분도 기억에 남네요. 믹싱은 여러가지 소스들을 거치면서 나오는 재미있는 효과들 때문에 즐겁게 녹음 했었어요. 특히 후반부에 나오는 기타 노이즈 부분에서는 물방울 소리같은게 나는데요. 기타노이즈에 스프링 리버브라는걸 쓴건데, 가만히 듣고있으면, 전율도 돋고 향수에 잠기기도 하고, 뭐.. 그래요.

송광호) 앞에 승보형이 얘기했지만 녹음 자체가 다 좋았고 재미있었어요. 다만 한여름였던지라 악기 들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더웠던거 말하다 보니까 지금 생각나는데, 제가 부스안에 들어가서 녹음을 하고 다음 차례가 상민이형이 였어요. 상민이형이 들어와서 모니터 헤드폰에 묻은 제 땀을 보고 더럽다고 한 것에 작은 상처를 입었죠….

권우석) 아무래도 기타에 공들인 부분이 많아서 저 또한 기타 관련 에피소드가 많아요. 주변 뮤지션들과 프로듀서인 호원이 형을 통해서 고가의 기타를 빌렸었는데요. 막상 녹음해보니 버징이 심하다던가, 노래와 잘 묻지 않더라구요. 결국엔 광호 자기 기타, 상민이형 15만원짜리 자기 기타로 녹음했습니다. 좀 허무했었어요. 다들 기타 노이즈 레코딩 때가 기억에 남을 텐데, 호원이 형이 성향이 다른 마이크 3개를 세팅한 후에 풀 볼륨으로 미친듯이 긁어댔었는데요. 엠프 터지는 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EP 녹음 중 제일 멋진 작업이였던 것 같아요. 당시 영상은 짤막하게 밴드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어요.

넘어가서 제 파트인 드럼 녹음 관련해서 얘기를 좀 해보면, 일단 첫 녹음 때 아는 동생한테 스네어 빌리는 약속이 엉켜가지고 한시간 늦어서 산뜻하게 욕먹고 시작했구요.  들어가서 드럼 세팅하고 녹음 하기 전에 리듬 한번 쳐보는데, 스튜디오에 있던 하이헷이 너무 날리더라구요. 난감했죠. 가지고 있는 심벌이래봤짜 16인치 크래쉬, 22인치 크래쉬 라이드밖에 없는데…

그래서 실험 삼아 스튜디오에 있는 16인치 크래쉬는 좀 두꺼우니 바텀으로, 제 16인치 크래쉬는 비교적 얇으니 탑으로 겹쳐서 하이헷으로 만들어 녹음했어요. 엔지니어 재긍이 형이 크래쉬 심벌을 하이헷으로 만드는거 보고 의아해했었는데 막상 녹음하고나니 소리가 너무 좋다고 하셔서 뿌듯했죠. 결과적으론 밸런스 상 하이헷 소리를 많이 죽였는데, 개인적으로 되게 재밌는 에피소드 였어요.

최상민) 앞에서 “안녕”에 대한 에피소드는 다 언급한거 같구요. 하나 생각나는게 있는데… EP 녹음 당시 믹싱할 때 돈이 없어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강남의 한 교회 전용 옥탑방까지 가서 믹싱하게 됐는데요. 약속된 시간에 가봤더니, 어떤 교수님이랑 제자라는 분이 옷을 주섬주섬 챙기면서 나오길래, 멤버들이랑 키득키득 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EP 녹음하는 중에는 굉장히 행복했습니다.

 

이 노래에 사용된 악기나 이펙터 등등 애착이 가는 것을 소개해주세요.

송광호) 좋은 악기를 많이 빌려서 녹음했었어요. 그 중 녹음부스에 있던 VOX 엠프가 기억나는데요. 엠프에 내장되있는 리버브를 사용했었는데 정말 무지무지하게 좋았어요.

권우석) 광호 말대로 이펙터,마이크 등 고가의 좋은 물건들을 호원이 형이 많이 제공해주셔서  그 장비들을 마치 소꿉놀이 하듯 가지고 녹음 했어요. 결론은 호원이 형이 가장 애착이 가네요.

최상민) 전1년전에 제가 입던 점퍼랑 친구가 쓰던 15만원짜리 스콰이어기타랑 바꿨는데,

제 모든 기타 파트는 그 기타로 녹음이 됐어요. 싸구려 기타라 그런지 얼마전 공연 전에 장렬히 전사했는데, 그 다음주에 좀 비싼 기타를 사고 나서, 제가 여지껏 얼마나 쓰레기 기타를 가지고 연주했는지 깨달았죠. 덕분에 다음 앨범은 쌔끈하고 돈빨 날리는 기타 사운드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멤버외에 참여한 뮤지션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최상민) 티비옐로우의 호원이형이 프로듀서로 참여해줬어요. 아무런 조건이나 요구 없이 노페이로 프로듀서를 맡아주셔서, 아직까지도 고맙고 은혜를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이 있어서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내가 그 상황이면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이 분도 정규교육을 통해 프로듀싱을 익힌게 아니라서, 완전히 자유롭게 녹음이 진행될 수 있었어요. 굉장히 극단적인 방식으로 녹음을 하셨는데, 예를 들면 기타 엠프에 게인과 볼륨을 10까지 해놓고 녹음을 한다든가.

‘형 이래도 되는건가요’ 물어보면

‘응 요즘 다 이렇게 해’ 그러시고…

집에 와서 찾아보면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나오고… 그런 과정이 되풀이 됐어요.

그냥 이거저거 떠나서, 아주 민주적인 방식으로,

‘오 이거 죽이네요 좋은데요 !’

‘그래? 이건 어떠냐.’

이런 식으로 왁자지껄하게 완성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뮤직비디오를 멤버들이 예산에 제약을 받지 않고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어보고 싶나요?

송광호) 글레스톤베리에서 공연하는 걸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유승보) 음.. 예산에 제약받지 않는다면 심형래 감독과 함께 뭔가를 해보고 싶어요. 디워에 나오는 이무기가 등장해 뉴욕을 침략한다던지…

권우석) 저는 현대무용하시는 여자 무용수 분들 여섯분 정도로 짜여진 무용을 가지고  뮤직비디오로 만들고 싶어요. 우리는 구석에 찌그러져서 연주하고 있구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카메라 워크라던가 씽크라던가 여러면으로 까다로운 작업이 되겠죠. 사실 이번 프레드페리 뷰직 뮤직비디오 컨셉 미팅 때 잠깐 말했었는데 아무래도 여건 상 불가능해서 증발됐죠. 기억도 못할꺼에요. 음, Blur의 Crazy beat 다른 버전 뮤직비디오 보시면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 가실꺼에요.

최상민) 글쌔요. 포니 뮤직 비디오는 어떻게 만들어도 100만원 이상은 들지 않을거 같네요. 실제로 “안녕” 뮤비는 제가 만들었는데, 카메라 렌트비 빼고는 아무것도 안들었거든요. 300만원 정도 받을 수 있으면, 카메라, 조명 렌트비, 세트비 등 빼고, 그냥 멤버들이랑 회식이나 하고 나머지는 분배해서 용돈으로 쓰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주세요.

유승보) 2집 앨범을 계획하고 있구요. 현재는 곡 선정과 편곡 중이고, 주말마다 멤버들과 모여 데모녹음에 열중할 생각이에요.

최상민) 사실 최대한 빨리 앨범 녹음에 들어 갈려고 했는데요. 개인적으로 바쁜 일들이 생겨서, 집에서 작업만 하고 있어요. 그래도 운 좋은 날에는 하루에 3,4곡도 만드니까, 그냥 집에서 녹음해서 바로 앨범 발매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있습니다.

송광호) 네, 2집 준비하고 있구요. k팝 팬들을 더 양성했으면 해요.

권우석) 앞서 광호가 잠깐 언급했는데, 외국분들 중 K팝에 관심을 보이다가 한국 인디까지 관심가지고, 우리 밴드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꽤 있으시더라구요. 오히려 외국분들이 훨씬 반응이 커서 좀 놀라워요. 확실히SNS가 무서워요. ‘아이튠즈에도 없고 없고 도대체 앨범을 어디서 사야하냐‘ 물어보는 팬들도 있었어요.

일단 밴드 계획이야 뭐… 공연하고 앨범 작업이죠. 프레드페리 서브컬쳐 뷰직 세션과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공연이 기다리고 있구요. 개인적으로는 소개팅 한다 해놓고 몇개월 째 미뤄지고 있는데요. 소개팅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주 이용하는 음원사이트가 있나요? 이 곡을 해당 사이트에 링크할 예정이에요.

최상민) 벅스뮤직 이용합니다. 이따금씩 차트도 한번씩 보구요.

유승보) grooveshark.com이라는 해외 무료 스트리밍 사이트를 자주 이용해요. 인터페이스가 간단해서 이용하기 편합니다.

권우석) 스마트폰으로 들을 때는 멜론 이용합니다.  동생이 꼽사리껴서 같이 사용하는데, 두명이 동시에 들을 수가 없다 해서 자꾸 엠넷으로 바꾸라네요. 아침 출근시간에 듣다가 동생이 들으려고 접속하면 가차없이 내칩니다.

 

 

 

 

http://www.melon.com/cds/album/web/albumdetailmain_list.htm?albumId=2083786

 

 

 

 

 

 

일당백 비주얼 아티스트 Dizi 유대영

삥뽕! 인터뷰를 할 아티스트의 연락처가 폰으로 도착했다. 어라..? 연락처와 함께 딸려온 이미지가 무척 낯익다. 마음에 드는 엽서를 모아놓은 묶음 속에 분명 같은 이미지가 있다는 걸 기억해내고 찾아보았다. 몇 년 전 한국 쿤스트할레에서 있었던 전시 중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달마 그림 앞에서 몇 분간 전율하며, 이 그림과 작가를 기억하고자 고이고이 간직했던 유대영 작가의 일러스트 엽서였다. 마음 속에선 흥분 가득한 삼바 축제가 시작되었고, 기세를 타고 그의 다양한 작품을 인터넷에서 감상했다. 캬~역시 좋다!! 마음 속 삼바 축제의 열기가 절정을 치닫고 있을 무렵, 저장한 전화번호를 따라 류대영 작가의 카톡이 떴다. 프로필에는 유도복을 입은 그의 사진과 함께 이렇게 적혀있었다. ‘I’ll kill you all’ ….마음 속 열광의 축제는 잠시 얼어붙었다.. 괜찮아! 괜찮아! 유재석과 잠시 접신 한 후, 다시 축제의 불씨를 되살리며 섭외를 위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1920년 근대가요 만요… 축제는 그대로 막을 내렸고, 처음으로 인터뷰 상대에게 공포감을 느꼈다. 섬세한 나에게 극단적인 기분을 안겨 준 유대영씨와의 인터뷰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유대영 작가

비주얼자키(VJ) . 애니메이터 . 일러스트레이터 – 유대영씨가 자신을 가리키는 3개의 직업이다. 어느 하나 어설프게 손댄 이력으로 가볍게 ‘붙은’ 혹은 있어 보이게 ‘붙인’ 타이틀은 더더욱 아니다. 이 세가지 분야에서 부딪히고 끊임없이 결과를 만들어 오랜 시간 달려온 유대영 작가의 작품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시각 비주얼이란 공통 분모가 있지만 어찌 보면 조금은 다른 분야다. 각 분야에서 보여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유대영 작가에게 각 분야는 어떤 식으로 다른 지 그의 시각에서 들어보고 싶었다.

“일러스트는 평면에서 표현하는 거지만 나머지는 어떤 미디어 포맷에서 보여지는 영상으로, 우선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다만 영상의 경우 사운드와 맞물려 하는거라 음악을 알아야해요…. 눈과 귀는 하나라서 음악하는 사람은 보는 것에 관심이 많고, 그림 그리는 사람은 듣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애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맞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보고 듣는 두 개의 감각에 대한, 참 쉬우면서도 인터렉티브하게 상관지어보지 않았던, 하지만 맞물리는 두 요소의 궁합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분야는 어떤 과정으로 넓혀져 갔는지가 궁금해진다. 인터뷰 질문 덕에 의도하지 않게 유대영 작가에게 듣는 그의 이야기가 두괄식이 되어버린 꼴이 됐다.

이렇게 된 이상 그의 출생부터 시작하련다. 유대영 작가의 말에 의하면 당시 붓 구하기도 힘든 시골이었던 충북 괴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는 화가 삼촌이 계셨다고 한다. (참으로 아티스틱한 성장 배경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던 삼촌은 언제나 그를 데리고 그림을 그리러 이곳 저곳을 다녔고, 덕분에 붓밖에 몰랐다고 한다. 붓만 잡고 수채화와 동양화를 하다가 미술을 전공해야 할 시기가 오자 그는 어색한 입시 미술과 잠시 계약 동거를 하게 되었고 그 동거는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아 입시 과정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설상가상 순수 예술과 공식적인 혼인을 맺으려는 그의 결정은 아버지의 이론(순수미술=가난)에 부딪혔고 이래저래 찾은 합의점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억지로 맺어준 혼사의 결과가 그렇듯 전공 공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전공을 애니메이션으로 바꾸었지만 그것 역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 서양화나 동양화를 전공해 그림을 그렸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대안은 캐릭터 디자인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캐릭터 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했다. 김국진이 라디오 스타에서 종종 언급하는 화려했던 과거의 상징 ‘국진이 빵’‘애니콜 박쥐 캐릭터’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캐릭터 산업이 각광을 받을 때부터 하향세를 걸을 때까지 유대영 작가는 그 시간을 함께 했다. 캐릭터 사업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떼게 된 건 책상을 쓸어버리고 회사를 관 둘 수 있게 해준 상사 덕분이다. 그 뒤 홀로 캐릭터를 가지고 모션그래픽으로 넘어가고 또 다시 캐릭터 애니메이션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초반에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플래쉬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블로그에 작품을 올렸는데, 그것이 사람들 눈에 띄어 상영제의를 받았다. 또 디지털 필름 페스티벌에 출품한 것을 계기로 이름이 알려지고 작업요청이 들어오는 등 영상디자인까지의 길을 걷고 있다.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분야가 조금씩 이동하고 넘어갔다는 유대영씨 말에 나의 팬심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도해간 걸 수도 있죠’ 라고 응수했고 유작가는 살짝 수줍어했다. (모두를 kill해버리겠다던 그의 무시무시한 메시지는 나에게 잊혀진지 오래다…)

“누군가를 일부러 이끌어가고 싶거나 그러고자 하지도 않아요. 요즘은 대놓고 그러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홍보나 트렌드, 돈 포장에 점철된 거 말고 나 혼자 조용하게 끝까지 할 수 있는 건 그림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혼자서 그림 그리고 작품하고 있는 거에요.”

캐릭터를 시작으로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지고, 그래픽 아트를 하며 프리랜서라는 외로운 이름으로 15년간을 지켜왔다. 그 동안 다양한 활동과 전시를 해온 유대영 작가이기에 작품 수도 많지만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거나 혹은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꼽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를 하는 인터뷰어의 몇 안 되는 특권이니 샘내지 마시라…. 5분 정도 늦을 거 같아 예의상 보낸 문자에 옳다구나 하고 엔진오일을 갈러 가버린 인터뷰이 때문에 40분간 방치 플레이를 당하기도 하니 말이다. 딱히 누구라고 밝히진 않겠다…) 유대영 작가의 팬이 된 달마 시리즈부터 소개한다.


처음 이 달마를 만난 곳은 유대영 작가에게 주어진 작은 전시 방에 헤드폰을 쓴 달마 그림 하나가 임팩트있게 걸려 있는 공간이었다. 달마의 특징과 유대영 작가가 부여한 캐릭터 그리고 유머스러움이 붓을 통해 어우러진 꽤나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자꾸 발걸음을 잡았다. 앞에 놓여 있는 일러스트 엽서 몇 장을 집고 지나가는 스텝에게 가격을 물었다. (무료 배포였다.) 혹시나 주위에서 서성거리면 그림의 작가가 오려나 싶어 한참을 기웃거렸던 기억이 있다. 만나기 전엔 영상이나 그래픽 아트를 하는 사람이 달마의 작가라는게 아이러니 했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듣고 나니 수수께끼는 쉽게 풀린다. 달마 시리즈는 그리기 전에 팔릴지 안 팔릴지 모르는 미정의 그림을 프레임까지 해서 15점을 완성해내야 하는 리스크를 안고 시작한 작품이다. 붓을 놓은지 오래되어 손이 굳었던 상태였기에 이틀 동안 붓으로 계속 선만 그어 감각을 살리고 난 후, 지하 작업실에서 일주일 동안 죽죽 열 다섯 점을 모두 그리고 나왔단다. 음악을 좋아하는 자기 자신을 투영시킨 “음악을 좋아하는 달마”가 시리즈의 테마다. 그림 중 한자가 있는 배경은 달마가 듣고 있는 혹은 해당 달마 모습의 모티브가 된 팝송이 중국말로 번안된 가사란다. 번안 사이트를 겨우겨우 찾아내서 해당하는 팝송 가사에 맞는 한자를 깔아 그 분위기를 한껏 살려 놓은 것이다. 달마의 동양적 느낌을 나타내는 단순 비주얼 장치라고 생각했던 한자가 팝송 중국어 번안 가사였다니… 더 좋아졌다!

“노래를 모르니까 사람들이 모를 수도 있지만… 제가 하는 순수 예술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도 목적 중 하나로 있어요. 혼자 작품이나 작업에 빠져있는 거 말고… 사람들이 보고 재미있어 해주면 그걸로 좋아요.”

유대영 작가 본인에게도 엄청난 애착과 집착이 있는 작품이어서 판매할 생각을 못하고 잡아놓고 있다가 지인의 권유로 판매의 장을 열자 이 달마 시리즈는 바로 솔드아웃이 되었다. 조만간 유대영 작가가 붓과 함께 지하 작업실에 한번 더 갇혔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유대영 작가의 일러스트 중 또 하나 마음을 당기는 것은 화투 시리즈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와 민화투의 맞상대가 되어주던 필자와 달리 화가 삼촌이 성장기에 자리잡은 유대영 작가는 화투라는 걸 무척 늦게 알았단다. 늦게 안 만큼 더 신비로웠고 오히려 그 그림의 오브젝트들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끼게 되어 화투의 시초부터 철학까지 파게 됐다.

“화투를 보면.. 영화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신문 속에 움직이는 사진을 보듯 화투 안에 있는 그림들을 움직이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보게 돼요. 화투에 계절과 12달이 있는 것도 신기했고, 왜 동식물만 있는 것이며, 비의 선비는 누구일까… 화투 안에는 스토리가 있더라구요. 영상으로 자개빛깔을 내고 싶고 그래서 화투에 나오는 동식물을 가지고 정원을 만들었어요.”

클라이언트와 함께 진행된 것을 제외한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유대영 작가만의 요소는 대부분 동양적 코드가 들어갔다는 점이다. 화투를 좋아하게 되어 한중일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관부인전 주장군전 등 이야기를 알게 되어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양한 소재가 정말 많음에도 건드리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게 시발점이 되었다. 한국적인 걸로 선을 긋기 보다는 동양권 전체에 흐르는 미학과 역사를 파게 된단다. 일제 시대에 말살된 민화에 흥미를 느끼고, 사라져버린 근대 가요인 만요를 좋아하는 취향도 유대영 작가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싹했던 컬러링의 자초지정이다.) 유작가 자신이 꼽는 일러스트의 특징은 여러 칼라를 안 쓴다는 점이란다. 화려한 여러 색보다 얼마 안 되는 색깔로 화려하게 보이는 게 좋아서다. 색깔을 섞어서 쓰지 않고 오렌지 블랙 흰색 정도를 쓴다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정적이 이어졌다. 일러스트에서 꽤나 화려한 느낌을 받아온터라 동의하지 않고 뚱해있자 유작가는 아이패드를 켜고 증거를 제시했다. 함께 그림을 보며 면면히 짚어 보니 화투도 다섯 색 안되고 색이 진짜 적었다. 뚱했던 반응이 수궁으로 돌아서고, 결국 유작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가 성공했음을 증명해주는 실시간 마루타가 되었다.

이제 영상 작품으로 넘어가 볼까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영상 쪽으로 문외한이다 보니 궁금한 것 보단 감상이 더 많아지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가 또 도래하고 말았다. 유대영 작가가 손을 댄 뮤직비디오 중 눈길이 가는 작품 중 하나는 이권 감독과 함께 작업한 슈프림팀의 ‘스텝업’ 뮤직비디오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담임 선생님보다 먼저 만나는 철수와 영희 캐릭터를 주요 모티브로 쓴 영상으로, 동양적이면서 독특하고 철수와 영희 비쥬얼 외에도 음악과 슈프림팀의 개성이 잘 반영된 뮤직비디오라는 느낌이 든다. 페이스북이였다면 Like를 날리고도 남았다. 천안함 사태 직전에 릴리즈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기회를 잃어버렸던 시대를 잘못 탄 작품이란다.

그 외에도 뜨거운 감자2의 ‘아이러니’ 플래쉬 무비 형식의 MV도 독특하다. 김C가 라디오에서 이 곡을 소개하며 이 영상을 만든 사람은 분명히 이상한 사람일거라고 그랬단다. 이 작품을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애니메이션 쪽으로 흘러갔다.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요.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시장의 열악한 환경을 아는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래도 애니메이션은 놓지 말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애니메이션은 내 무기니까 이걸 놓아버리면 내 감이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이걸 만들고 나서 역시 난 애니메이션이 맞아 계속 해야지 하고 마음을 잡았어요.”

미지의 세계인 비주얼 자키 분야에 들어가기 전, 유대영 작가는 사실 이곳이 아닌 W호텔에서 만날 생각이었다며 작품 하나를 보여줬다. W호텔과 아트센터 나비에서 주최한 전시 “Driving Though Mirror City”를 위한 미디어 애니메이션 클립으로 W 우바(bar)에서 현재 전시되고 있다. 한국 음식점과 캬바레 전광판을 모티브로 왜곡시켜 만든 영상 안에 비즈니스 호텔과 중화반점 메뉴 등이 보인다.

“괜찮죠? 이제 이걸 움직이게 만들어 보려구요.”

VJ – 우리가 흔히 아는 비디오 자키와 혼동되는 비주얼 자키는 음악을 좀더 재미있게 보여주고자 했던 윈도우 플레이어의 비주얼라이저를 시초로, 사람의 감각과 예술성이 복합적으로 들어간 직업이라고 설명하면 조금 더 쉬워질까? 사운드와 영상의 유기적 연결이 포인트다.

“아까 귀와 눈은 하나라 그랬잖아요? 음악을 듣다 보면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게 있어요. 아니면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걸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오브젝트, 시각은 어떻게 보면 객관적이라서 사운드가 주관적이지만 시각으로 잡아줄 수 있는 상호작용을 해요.”

일본 클럽에서 처음 보고 이게 뭐지 하고 알아보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사람이 없나 궁금해 했던 것을 시작으로, 유대영 작가는 아직도 e클럽 레지던트 VJ로 활동하고 있다. 클럽에서 DJ가 음악을 지배하고, 그 음악에 맞는 영상으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것이 비주얼 자키가 하는 일이다. DJ는 음반과 턴테이블을 도구로 하듯 VJ는 노트북과 영상 믹서기를 도구로 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비주얼 자키라는 직업 군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이 분야의 개척자이자 오래 시간을 쏟아온 유대영 작가에게 특별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기계에 대한 이해를 간과하고 덤볐던 초짜 VJ시절 문제가 생기고 나서 친구들의 조언과 도움에 힘입어 재도전한 이야기부터 현실적으로 페이 문제, 기술 문제, 노동 문제들이 부딪히는 상황, 아티스트보다 작업자로 남게 되어 많은 지망생들이 돌아서는 현실, DJ와 함께 가는 동료라는 개념이 정착되지 않고 DJ를 서포트 해주는 조명 같은 존재로만 여겨지던 시절과 DJ와 같은 아티스트라는 개념을 이해시키고 정착시키고자 애쓴 VJ 첫 세대로써 여러 노력들까지…. 6시간을 플레잉하는 레귤러 레지던트로써의 자긍심과 상황에 맞게 연출하며 특정 이미지가 필요하거나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없으면 현장에서 바로 바로 만들어 영상으로 올리는 경지에 이른 현직 VJ 유대영의 모습이다.

다양한 비주얼을 창조해내는 일을 업으로 해온 유대영 작가에게 손에서 나온 그림과 컴퓨터로 나온 영상 두 작업의 차이를 물었다.

“영상은 움직인다에 중점을 두고 그림은 내가 알리고 싶은 걸 응축해서 보여준다는 점이 차이에요. 영상은 흐름이 있기 때문에 순간 자극으로 사람들에게 쾌감을 주고 또 나 역시 쾌감을 받지만, 그림 같은 경우는 생각을 하게 되죠. 내가 알리고 싶은 메시지를 순간 정지된 그곳에서 방출되어야 하는 에너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어요. 둘 다 사람들한테 말로 설명해줘야 할 필요는 없어요.. 영상에서는 전달할 수 있는 에너지 조건이 많지만 그림은 힘들어요. 그래서 그림은 조심스럽고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되요,”

각 분야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씩 꼽아 달라는 말에 과거의 작품이 마음에 든다기 보다 새롭게 작업하는 것에 애착이 더 크다는 신선한 답변을 들었다.

“‘이걸 할거야’ 라는 생각을 하면 그게 제일 좋아요.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했던 작업을 끄집어 내서 ‘더 해야지’ 라는 생각이나, ‘새로운걸 해야지’ 라고 하지만 했었던 걸 끄집어 내서 더 새로운 걸 만들게 되기도 하니까요.”

결국, 유대영 작가는 앞으로 계속 가장 마음에 드는 작업을 하는 일만 남았다.
행복한 비주얼 아티스트다..

유대영 작가 홈페이지


남의 글을 또 다른 남의 글로 읽는 법 – 남의 사랑 이야기

세상엔 글이 참 많다.

그 중 남의 작품을 글로 풀어 설명하거나 평론하는 글 역시 분야별로 정말 다양하다.

영화, 미술, 음악, 무용, 연기 등..  모든 작품 활동들은 그것을 소개함에 있어 항상 글이 동반된다.

그러던 중 참으로 신선하고 생소한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남의 사랑 이야기”.

 

 

부제는 ‘어쩌면 나의 이야기’.

 

“서른은 예쁘다”의 작가 김신회의 에세이이다.

아니.. 소설을 이야기하는 글이다.

평론도 아니고 단순한 소개글도 아니다.

유난히 소설을 좋아하는 작가가 고르고 고른 30편의 소설들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다시 보듬어 낸 글이다.

 

덕분에 그가 좋아하는 소설들의 문장도 책 속에서 함께 만날 수 있다.

 

 

잘 쓰여진 글속 에서나 또는 좋아하는 작가가 언급한 작품은 자연스럽게 찾아 보게 된다.

그처럼, 김신회 작가가 소개하는 서른편의 소설들을 읽은 여부에 관계없이 고스란히 꺼내어 쌓아 놓고 차근차근 읽어 나가고 싶어진다.

작가는 “남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의 실마리를 잡아 내기도 하고,

그 언젠가의 새벽에 미간을 찌푸리고 얉은 한숨을 흘리며 읽었던 알 수 없는 느낌을 정갈하게 정리해 준다.

결국엔 남의 이야기들이지만, 그 글을 읽은 이에게도 다양한 면에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

 

보거나 듣는 것과 달리 읽는 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읽어내는 데 드는 절대적인 시간 플러스,

그 내용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노력이 그것이다.

더구나 그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이 간직한 이야기의 중심을 흔들림없이 기억해 낸다는 건 고역일지도 모른다.

작가도 사람이니 이 책을 쓰면서 지난 소설들을 수도 없이 뒤적였겠지.. 하는 위안은 가능하지만,

그렇다 한들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을 똑같이 재현해 낼 수 있다는 건 소설 읽기에도 프로의 세계가 따로 있을지 모른다는 체념을 하게 한다.

접하고 읽고 감상하고 기억하고 재현하는 고통의 시간들은 오롯이 그들만의 몫이니,

소설읽기의 아마추어들은 경건히 두 손으로 책을 받들고 행간의 뜻을 이해하는데 몰두할 일이다.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 하지 않으면 1년에 100권 이상을 읽는다는 이 작가의 존재조차 믿을 수 없을테니까.

 

반가운 건 이 책을 읽음으로 하여 30개 소설의 요약본을 읽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작가의 담백한 해석까지 더해서.

이런 책이 4개월에 한 권씩만 나와도 덩달아 나 역시 100권 읽기에 어줍잖게 발을 들이밀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

독서근육을 간지럽히는 독특하고 신선한 책.

 

봄이 오는 요즘, 이 한 권으로 파생될 풍성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http://www.yes24.com/24/Goods/6267251?Acode=101

 

 

 

출판사 책소개 ——————————–

 

『서른은 예쁘다』의 김신회가 전하는 서른 편의 소설, 서른 개의 남의 사랑 이야기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남의 인생, 삶, 사랑 이야기를 통해 맛보는 소.설. 테.라.피.

당신이 유독 소설을 읽고 싶은 때는 언제인가? 하루 종일 일과 씨름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냥 잠들긴 싫고 TV 소리는 시끄럽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그때,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소설 한 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도쿄 싱글 식탁』과 『서른은 예쁘다』의 저자 김신회가 소설을 탐독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소설 속 남의 인생과 남의 사랑 이야기가 좋아서였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할 때면 유디트 헤르만의 『단지 유령일 뿐』을 읽었고,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에는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떠올렸고, 직장 상사가 이유도 없이 나를 괴롭힐 때면 아멜리 노통브의 『두려움과 떨림』이 땡겼다. 저자는 소설 속 타인의 인생에 끼어들고 싶어졌고, 소설 속 남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이라는 문학이 지닌 힘을 깨달았다.

저자에게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상대의 마음과 그 뒤에 감춰둔 진심을 헤아리는 법을 깨우치는 일. 『남의 사랑 이야기』는 소설에 대한 단순한 감상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사건에 대한 직간접경험, 그리고 남의 사랑과 인생에 대한 깊은 공감을 통해 내 인생을 위로하는 ‘독서 테라피’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안도감, 나와 다른(혹은 비슷한)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적당한 쾌감. 남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니까.

 

 

 

 

#11. 첫사랑 – 피터팬컴플렉스

 

변화란 쉽지 않다.
많은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이들이 ‘제로’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5집을 발표하며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피터팬컴플렉스를 만나보았다.    

 

취재 및 글 : 김호준 Roll Sp!ke  (dafunk@daum.net)
사진제공 : 쇼머스트
편집 : Avant-in

 

첫사랑은 어떻게 작업을 시작한 곡인가요?

지한) 피터팬컴플렉스가 신스팝, 일렉트로닉으로 변화를 하는 과정에 있어 ‘자꾸만 눈이 마주쳐’ 외에는 미니멀한 곡이 너무 없었어요. 그래서 하루 날을 잡고, 종일 작업실에 앉아서 미니멀한 편곡에 부합되는 리프를 계속 만들었는데, 특히 첫사랑 도입부가 너무 맘에 들게 나왔어요. 코드 진행도 복고적인 느낌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단순하게 ‘C, Am, F, G’로 갔어요.

 

가사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어딘가요? 

지한)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해당되는 ‘영원한 사랑을 겁 없이 약속했던’ 이 부분이요. 첫사랑의 엑기스를 예쁜 향수병에 담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뚜껑을 ‘뽕’하고 따면 첫사랑의 향기가 퍼질 것 같은. 그리고 ‘모든게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네 시간은 빠르게 빠르게 흘러가네’ 이 부분 멜로디도 군더더기 없이 경쾌하게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혹시 가제목이 있었나요?

지한) ‘Pumping Blood’이었어요. ‘빱 빱 빱 빱’하는 인트로가 피가 끓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지었죠.

 

이 곡은 멜로디부터 나왔나요?

지한) 멜로디부터 만들긴 했는데, 가사가 어렵지 않게 바로 나왔어요. 예전에는 유음으로 잘 이어지는 ‘영어스러운’ 가사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매일, 마을, 마음’ 같은 단어들이요. 하지만 이 곡은 과감하게 딱딱 끊어지는 ‘첫. 사. 랑.’ 이렇게 시작해요. 소재이자 제목인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시도를 했죠.

 

‘감정을 삼키고’와 함께 ‘첫사랑’이 타이틀곡이에요. 결정한 이유에 대해 듣고 싶네요.

지한) 사실은 만들면서 타이틀곡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인트로가 짧고 경쾌한데다가 ‘첫사랑’이란 단어는 누구나 공감하잖아요. ‘자꾸만 눈이 마주쳐’도 타이틀로서 적합한 곡이지만, 이미 디지털싱글로 선보인 노래니까 발표 안됐던 곡으로 결정했죠. 음,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이번 5집이 만약 잘 된다면, 오랫동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잘 된다는 가정이 반드시 붙지만요. (웃음)

 

 

이유는 뭔가요?

지한) 새로운 시도를 대중적 코드로 풀어냈기 때문이죠. 홍대 밴드 중에 전자음악적인 요소를 음악에 녹여 내는 팀은 많아도 이렇게 100% 전자음악으로 나온 팀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거의 없는 몇 팀 중에서도 무거운 분위기가 아닌 팝(pop)적인 밝은 느낌으로 소화하고 있는 건 피터팬컴플렉스가 유일한 것 같고요. 이런 변화가 받아드려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말이죠.

 

피터팬컴플렉스 5집은 ‘변화’가 가장 큰 화두에요. 일부 팬들에게는 ‘배신’으로 다가갈 수도 있는 부분인데, 왜 신스팝, 일렉트로닉이었나요?

지한) 글쎄요… 왜 일렉트로닉이었을까요? 첫 번째는 기존의 방식이 심심해서였고, 두 번째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에요. 피터팬 컴플렉스가 일반적인 형태의 밴드였을 때, 각종 기타 이펙터를 엄청나게 사서 소리에 대한 실험을 많이 했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죠. 기타 다음으로 빠지게 된 것이 신디사이저였어요. 기타 이펙터 대신에 다양한 신디사이저를 모으다보니 자연스럽게 일렉트로닉으로 넘어오게 되었죠.

 

그렇군요. 신디사이저가 또 다른 접근을 하게 해줬군요. 

지한) 일렉트로닉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 편곡에 있어서 변화 가능성이 많다는 거죠. 드럼이라든가 기타 같은 악기 연주는 틀이 있기 때문에 한정적인데, 신디사이저는 변화의 폭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어제까지 마음에 들었던 편곡을 오늘 쉽게 바꿀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곡마다 다른 스타일의 버전이 많은 거죠. 어쨌든 새 앨범에 실리는 노래들은 모두 엄청난 변화와 고심 끝에 선택된 결과입니다.

 

신디사이저도 그렇지만, 녹음 스튜디오를 작업실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지한) 그렇죠. 100%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큰 장점이죠. 반대로 단점은 관리를 해야 된다는 거죠. (웃음) 작업실이라는 공간 안에 아이디어 스케치를 할 때부터 우리의 결과물이 누적이 되는 거고, 그것은 정리되지 않은 악기와 선들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죠. 피터팬컴플렉스라는 밴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데에는 공간의 힘도 분명 크다고 생각해요. 독립된 공간이다 보니 편곡을 하다가 합주를 할 수 있고, 합주를 하다가 갑자기 녹음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녹음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지한) 녹음이라기보다는 편곡의 문제일 수 있는데, 드럼 녹음을 할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많은 시도를 하고 얻은 결론은 어쿠스틱 드럼 사운드에 전자드럼을 입히는 게 아니라 전자드럼의 비트가 부족한 부분을 어쿠스틱 드럼으로 보완하자는 거죠. ‘첫사랑’ 뿐만이 아니라 전체 앨범의 컨셉이 그래요. 이건 라이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드러머 경인이는 항상 전자드럼 패드와 ‘머신드럼’이라는 드럼머신, 어쿠스틱 드럼 등등 많은 것을 컨트롤해요.

 

전자음악에 밴드적인 요소를 가미한 거군요. 이 곡에는 드러머 김경인의 보컬도 들을 수 있어요.

지한) 다른 여자가수에게 부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 앨범의 컨셉이 ‘O’, 제로 즉 처음으로 돌아 가자여서 우리 안에서 해결을 했죠. 처음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돕는 인간이 없다’잖아요. (웃음)

 

녹음에 사용되었던 악기 중 애착이 갔던 것이 있나요?

지한) 여러 빈티지 신디사이저도 잘 사용했지만, 이 노래의 숨겨진 포인트는 드럼 비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드럼머신인 ‘머신드럼’이 핵심 악기였죠. 인트로 역시 ‘머신드럼’의 비트가 받쳐줘야지 그 느낌이 제대로 나거든요.

 

‘감정을 삼키고’는 뮤직비디오가 있지만, ‘첫사랑’은 만들지 않았네요. 혹시 뮤직비디오를 찍을 계획이나 아이디어가 있나요?

지한) 이 노래 부를 때 추는 제 춤을 일명 ‘손바닥 춤’이라고 팬들이 말하더군요. (웃음) 나중에 춤을 넘어선 참여 예술로 승화 시켜볼 계획이 있어요. 큰 페스티벌이나 공연장에서 컬러풀한 장갑을 나눠주고 다 같이 ‘손바닥 춤 퍼포먼스’를 한다면, 좀 더 고차원적인 액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는 거죠.

 

 

손바닥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꼭 보고 싶네요. 이제 마지막 공통 질문을 할게요. 혹시 자주 이용하는 음원사이트가 있나요? ‘첫사랑’을 해당 사이트에 링크하려고요.

지한) 저는 대부분 음악을 퍼플레코드에서 구입한 CD로 들어요. 물론 갑자기 찾아봐야할 때는 사이트를 이용하긴 하죠. 아! 저희 피터팬컴플렉스 5집 발매 이벤트가 멜론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링크를 그쪽으로 해주시면 되겠네요.

 

멜론에 올라온 동영상 특이하던데요. (웃음) 오늘 ‘한 곡 토크’ 인터뷰 즐거웠어요.

지한) 저도 재밌었어요. 이 인터뷰를 읽고 계신 여러분 모두 피터팬컴플렉스의 변화를 즐겨주셨으면 좋겠네요.

 

 

 

 

http://www.melon.com/cds/album/web/albumdetailmain_list.htm?albumId=2090607

 

 

 

 

 

 

#13. 당신은 내 편인가요?

#주의! : 이 글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당신은 내 편인가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My Week With Marilyn, 2011) : 드라마 / 영국, 미국 / 99분 / 15세 관람가 / 개봉 2012 .02 .29
감독 : 사이먼 커티스
배우 : 미쉘 윌리엄스 (마릴린 먼로) 에디 레드메인 (콜린 클라크)

 

 

철의 여인을 볼까?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을 볼까? 고민하다 마릴린을 택했다. 부대끼는 것이 더욱 부대끼는 것으로 느껴지는 요즘, 싸우고 지고 이기고 하는 영화를 굳이 보고 싶지가 않다. 힘들다. 영화감상은 어디까지나 나의 쾌락에 근거해야 한다. 메릴 스트립보다 미쉘 윌리엄스가 더 마음에 든다. 둘 다 Fake라면 기초적인 아름다움에 근거한 쪽이 더 좋다. 애써 내면의 아름다움을 캐내어 감상하기엔 그럴만한 정성이 작금의 내겐 없다.

낯선 동네의 영화관에 들어섰다. 낡은 빌딩이 퀭하다. 극장 안에는 초로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계신다. 서울은 참 여러 곳이다. 가끔 모두가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런 순간에는 그 모두가 얼마나 다른 문화와 환경 하에 나뉘어 각자 흩어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모두 다르다. 다른 게 맞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고, 무려 이해할 수 있고, 일생 한 두 번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마어마한 일이 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인연’을 거대한 바다 한복판에서 천년에 한번 수면에 떠오르는 거북이 등 위에 나뭇잎이 얹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았나.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은 격자로 놓인 인연에 관한 영화다. 다른 방향에서 온 인연이 우연히 한 점에서 만나고 다시 가던 방향으로 이어간다. 단지 한 점에서 머물렀고, 타인의 눈에는 띄지도 않아 두 개인의 기억에 감춰왔던 순간이다. 하지만 둘은 ‘잊지 말아요’ 라는 마지막 말로 그 순간을 평생에 남긴다.

또한 이 영화는 지독한 애정 결핍자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에서 배우로서 성공을 거둔 마릴린 먼로는 비비안 리의 남편인 로렌스 올리비에의 청을 받고 영국에 온다. 헐리우드 섹시스타의 대영제국 습격이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낯선 환경과 다른 룰에 적응하기 힘겨워 하는 나약한 먼로가 있다. 아니 다시 말하자. 낯선 환경과 다른 룰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깊숙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놓인 먼로라고 해야겠다. 나약하다고 하는 이유는 기본적인 환영의 토대에 있고, 배척이 이뤄지기 전의 갸웃거림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거세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장 절실히 물어보는 질문은 “당신은 내 편인가요?” 다. 그 물음에 콜린은 “Yes!!!” 라고 답한다. 

콜린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를 가진 남자다. 그 열쇠는 간단했다. [Yes] 당신의 감정에 공감하고, 당신을 이해하고 있다고 동조해주는 것으로 일개 초보 조감독은 세기의 스타의 마음을 얻는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여자들이 원하는 정석에 가깝다. 멀리 있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되, 부르면 언제든 열과 성을 다해 달려온다. 전라의 그녀의 침대에 단 둘이 누워있을 때도 한 켠에 조심스레 몸을 뉘이고 잠들 뿐이다. 그녀의 고통을 개인의 욕망으로 덮으려 하지 않는다. 둘의 데이트 장면은 참 아름답다. 고풍스러운 곳에서 그녀를 한껏 들어올리고, 자유롭게 잔디밭을 달리고 호숫가에서 함께 수영하는 모든 장면은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고 개구지고 맑은 웃음이 가득하다. 콜린은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그녀가 그 순간에 원하는 것을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채워주고 있다.

그녀는 세 번의 결혼을 했는데, 전기에 의하면 그 남자들은 그녀의 상처에 소금을 문지른 꼴이었다고 한다. 그 남자들은 그녀의 이미지를 골랐고, 그녀는 이미지만이 아닌 덩어리를 가진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불행은 때마다 싹텄고, 간신히 벗어나도 한 순간이라도 사랑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마릴린은 또 다른 불행을 연이어 붙잡는 식으로 살아왔다.

콜린은 드디어 마릴린이 원하는 것을 다 채워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릴린은 콜린을 선택하지 않는다.
콜린이 말한다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사람들에게서 꺼내 내가 편안하게 해주겠다고”
마릴린은 말한다 “나는 행복해요. 지금도 행복해요”
이 대화 안에 콜린의 잘못이 들어있다. ‘사람들에게서 꺼내’ 마릴린 먼로는 한 사람의 절대적 사랑을 갖고 싶어 했던 방랑자였지만, 그 외로움의 크기는 실상 한 사람의 그 어떤 절대적 사랑도 채울 수 없는 것이다. 그 지난한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마릴린 먼로로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것. 빛나는 것. 가능한 한 많은 내 편이 있는 것이 바로 마릴린 먼로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콜린이 사람들에게서 분리된 마릴린 먼로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을 때, 한마디로 그는 아웃이다. 먼로가 먼로인 채로 또한 먼로가 아닌 채로 그 모든 존재의 요소를 통째로 껴안아야 그녀를 데려갈 수 있다.

콜린이 마릴린을 단숨에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콜린이 마릴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를 보게 된 나도 콜린처럼 마릴린에게 반했다. 그동안 난 이 여자를 조금은 싫어하기까지 했다. 마릴린 먼로에 대해 잘 몰랐다. 항상 알아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앤디 워홀의 작품에 나타난 반쯤 감은 눈, 살짝 벌린 입술 그리고 지하철 환풍구 위에 날리는 치마를 누르고 있는 그녀 등등. 그러고 보니, 나는 그녀의 드러난 이미지만을 상식처럼 습득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릴린이 왜 스타였는지 그녀가 없는 지금에서야 알겠다.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나 러블리하다. 그녀의 오래 묵은 애정 결핍을 채워주고 싶어 안달나게 만든다. 가능하다면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내가 너의 곁에 있겠다고 말하고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못내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아무래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거나 혹은 설명할 충분한 기회를 갖지 못한 듯하다는 거다. 현재 남아있는 그녀의 자료는 그야말로 부스러기들뿐이다. 살아 있다면 그녀에게 꼭 알리라고 해주고 싶다. 그래서 좀 더 오래 살리고 싶다. ‘무릎팍 도사’를 참 좋아했다. 이유는 이미지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었다. 고통스런 기억을 울음으로 쏟아내기도 하고, 억울했던 루머에 대해 해명하기도 하고, 가면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도 하는 시간을 ‘이미지’의 그들이 갖게 된 것이 좋았다. 그것이 또 다른 의도된 이미지의 창조로 이어지든 말든, 그것까지 꼬치꼬치 물어뜯고 싶지는 않다. 그건 시간 많고 잔인한 사람들이나 하라.

영화가 끝나자 마자, 아까 입구에서 봤던 초로의 어르신께서 크게 하품을 하신다. 우린 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다르다. 단지 다를 뿐이다. 큰 기대 없이 봤던 영화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나갈 때까지 주저앉게 했다. 그러고도 꽤 오랫동안 마음을 흔들었다. 미세하게 끊임없이. 그나저나 점점 맞고 틀리다 라고 말하는 것이 두렵다. 정말 그게 맞고 틀린 것일까? 답이 언제 내게 있었나. 내가 뭘 안다고 그리도 단호할 수 있었던 건지 부끄럽다. 시간이 지나서 돌고 돌아 내가 네가 되는 순간이 오면, 그제서야 너를 이해하고 미안해  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당신도 나를 이해해 줄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단지 몰랐고, 원래 달랐을 뿐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zJygETCXpR8

 

 

 

 

글 : 하루

편집 : Avant-In

 

 

 

 

디자이너도 목수도 아닌 그냥 가구장이, 조병주

길고 긴 4호선 여정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인덕원 역, 그 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계원대로 향했다. 조병주씨와 처음 섭외통화를 할 때, 계원대가 아닌 중간 지점으로 그를 불러내려는 나의 다크한 마음이 충만했건만… 계원대로 오면 자신의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다는 말에 나의 마음은 어둠을 벗고 기꺼이 의왕시까지 발걸음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직 방학 기간이라 조용한 학교의 토목 작업실, 금속 작업실, 나무재 보관방, 작품 보관실까지 꼼꼼히 보여준 친절함에, 지방이여도 KTX를 타고 왔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보관실에서 인터뷰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난방이 전혀 없는 그 곳에 자리를 하게 됐다. 춥긴했지만 안 그랬으면 아쉬웠을 정도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조병주씨는 해당하는 가구의 포장을 뜯어서 직접 보여주었다. 특히 인터뷰 전부터 조병주씨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의자에 앉아 취재를 하는 영광을 누리고, 조병주씨 탁자 중 하나를 골라 앞에 놓고 다시 본인이 만든 작은 의자에 앉아 자신의 가구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구에 의한, 가구를 위한, 가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조병주 작가

의도하지도 생각치도 않았던 가구의 길

어릴 적부터 가구를 만들고자 한 사람이겠거니 했다. 아직 작품이 다양하진 않지만 그의 사이트에서 전체적으로 가구에 대한 대쪽 같은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정류장에서 작업실로 향하는 길에 언제부터 가구를 만들기로 결심했냐고 물었다.

“가구를 할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가구를 만드는 쪽이 저한테 좀 맞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고른거니까요.. 하지훈 교수님을 만나면서 가구를 만드는 작업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의외로 초등학교 때 검도인의 길에 입문하여 고등부 선수까지 뛰었던 조병주씨는 (이 때부터 벌써 나무를 손에 쥐는 인연이 시작된 건지도 모르지만.) 진로를 정해야 하는 때가 오자 집의 반대에 부딪혀 디자인과로 “그냥”갔고, “반강제적으로” 디자인을 배웠다고 했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무언가를 만드는데 감각이 있었던건지 실업고에서 디자인을 배우면서 산업디자인 전람회나 국제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그 수상 경력은 대학 진학까지 할 수 있을 만큼이었다. 처음 선택한 건축공학은 영 맞지가 않아, 계원예술대학으로 재입학하여 가구 전공으로 바꾸고서도 심드렁한 채로 1학기만 마치고 군대를 갔다. 휴가 기간에 학교에서 우연히 하지훈 교수님을 돕게 되고 그 빈도수가 늘어갈수록 가구 만들기에 대한 흥미와 진지함이 생겨났다고 한다. 참 독특한 과정으로 가구를 만드는 길에 들어선 조병주씨였다. 동시에 조병주씨에게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을 알게 됐다.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알리고 있는 가구디자이너이자, 계원대 아트퍼니쳐 디자인 수업을 담당하고 계신 하지훈 교수님이다.


진지해졌기에 생겨난 진통

졸업 후에도 학교에 머무르며 작업을 하고 있는 이유는, 가구 만드는 맛을 알게 해준 하지훈 교수님의 작업을 도우며 함께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하고 사람 좋아보이는 조병주씨를 보니, 교수님의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 받아 무던히 작업을 해온 사람이려나 하는 재미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이러한 우려를 씼을 수 있는 “가구장이 사춘기 시절”얘기를 듣게 됐다.

“교수님이랑 일년 반 가량 수업을 들으면서 반항도 엄청 많이 했어요. 교수님이 틀리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생각한 가구가 좀 더 낫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고… 지적받으면 교수님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고 반항하고, 한 번은 앞에서 운 적도 있어요.”

몇 분 전, 교수님 옆에 있기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프로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에 감사하다는 의젓한 말을 했던 조병주씨의 과거다. 가구 만들기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면서, 오히려 교수님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일화를 들어보니 애초에 가구에 대한 지향점 자체가 다른 두 사람이었다. 아름다움과 조형미에 중점을 두었던 조병주씨와 실용성을 중요시하고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북유럽 유학파 출신의 하지훈 교수님이였다.

“제가 고집을 부리고 그래서 아이디어 단계에서 교수님이랑 신경전을 많이 벌였어요. 교수님이 하는 말은 다 싫게 들려서 질질 끌다가 결국 교수님과 저의 의견에 중점을 잡아서 합의를 본거죠. 처음 제가 하고자 했던 의자는 등받이 곡선도 더 휘고, 다리도 휘고 전체적으로 휘게 해서, 느낌 강하게… 저는 조형적인 걸 추구하고, 교수님은 힘을 빼라 좀 더 심플하게 가자 하셨죠…
그때 저는 정말 작가적인 걸 하고 싶었어요. 그때까지는 앉지 못해도 아름다우면 그게 가구고, 굳이 가구가 아니어도 조형적인 면을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강했어요. 하지만 교수님은 가구는 그 본래의 목적이 있고 거기에 예술성을 입히는 거지, 예술성에 가구를 껴 맞히지 말라고 하시는거였죠… 졸작 때부터 교수님께 호되게 부딪히면서 자제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결과적으로 가르침을 빨아들인 것에 만족한다는 조병주씨다. 그래서 이제는 실용성과 디자인을 50대 50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정확히 딱 반반이란다. 가구에 그 실용성을 살리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내 스타일을 뽑아내자가 조병주식 가구다.

의미있는 한 개의 테이블과 한 개의 의자

최장 작업시간을 기록한 의자의 탄생 후, 조병주씨는 자신의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가구를 만들어낸다. 바로 앞에서 말한 의자와 함께 전시된 테이블이다. 본래 의자만 나가기로 했던 졸업 전시였지만 막상 의자를 만들고 보니 테이블을 함께 놓고 싶어 ‘미춰버릴’ 거 같았던 조병주씨는, 의자만 집중해서 마무리 잘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에도 불구 테이블을 하나 만들었다. 교수님의 조언 없이 홀로 만든 이 테이블이 교수님께 인정을 받고, 원하던 두 마디를 들었다. “좋은데.. 같이 전시해!” 이 테이블은 작년 조병주씨가 참가한 전시회에서 볼 수 있었던 굽이(gube) 시리즈의 시작이 되었고, 2011이 새겨진 대부분의 굽이 시리즈 중 유일하게 2010의 번호를 몸에 새긴 테이블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가장 특별한 테이블로 남아있다.

거슬러올라가 가장 처음으로 만든 가구를 물었다. 남아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조병주씨가 원목 버진을 뗀 첫 가구는 인터뷰를 감상하듯 우리를 향해 있었다. 원목을 아직 다루지 않는 1학년 때 만들어본 첫 원목 가구이자, 가구 만드는 게 좋아진 특별한 의자… 휴가 짬짬히 교수님을 도우며 동기부여를 한껏 받은 후 컴백한 2학기, 뭔가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경복궁 답사를 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열정을 불태워 나온 의자다.

“지금 봤을 땐 좀 별로지만, 만들고 나서는 이게 너무 좋았어요. 아직도 못 버리고 간직하고 있어요. (보통 초기 과제들은 대부분 버린다고 한다) 마음이 가는 의자에요.”


Gube 시리즈

앞에도 잠시 언급이 되었지만, 그 동안 전시가 되었던 작품은 굽이(gube) 시리즈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스크린에서 나와 직접 본 가구들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굽이굽이 물결 같은 곡선을 타고 제각각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이런 느낌을 기본적으로 추구하나 물어보니 어떤 스타일의 가구를 딱히 추구하는 건 없단다. 그러면 어떤 과정으로 가구 하나를 완성해 나가는지 물어보았다.

“어떤 경우던 주제를 먼저 생각해요. 굳이 수학적으로 그려서 틀을 맞춰서 가는 건 아니고, 최소한의 테이블의 구조를 맞춘 다음 책상에서는 손을 놔요. 그리고 작은 스케일로 만들어 보거나 해서 좋다 하면 작업으로 들어가는 거죠. 의자 같은 경우는 기술의 힘을 빌어서 컴퓨터 목업기로 맞춰보고 조금 더 세밀하게 만드는 편이구요.
굽이(Gube) 시리즈 경우, 주제는 ‘곡선’이에요. 따로 뭘 그려보거나 하지 않고, 스케치를 직접 나무에 한 후에 갈아보았어요. 갈면서 계속 느낌을 보고 이렇게 저렇게 갈아보면서 모양을 찾은거죠. 그래서 다 모양이 달라요. 다리 형태는 나무 깔 맞춤을 싫어해서 같은 목재로 가지 않고, 가장 무난한 걸로.. 어느 정도 구조를 맞출 수 있는 공식에 맞춰서 테이블 다리를 만들어요. 제가 보여주고 싶은 주제는 가장 잘 보이는 상판에 표현해요.”

이와 같은 대답을 듣고 다리와 상판 두 부분이 하나로 만나 완성되는 테이블에서 다리가 주제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해서 조병주씨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사람의 시선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시각적인 모습, 그 조형적인 모습에 주제를 입혀 초점을 맞추는 것이 조병주씨가 자신의 작품에서 추구하는 방향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뒤로 바쁜 신진작가 조병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지만, 신진 작가로 꼽히는 조병주씨의 작품을 그의 블로그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히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원목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원목을 이용한 라이트 등…. 원목이 대부분이다. 원목 가구만을 추구하는 특별한 고집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얘기해보니 아직 나무밖에 모르고, 나무도 제대로 몰라서 원목 가구를 주로 하는 것일 뿐이라는 순수한 대답을 들었다. 이에 대해 조병주씨는 대답했다.

“절대 아니에요.
나무를 제대로 배우고 나서 그때 섞어 보고 싶어요. 믹스를 너무 해보고 싶지만, 전 어줍잖은 작가라서 아직도 공부 중이에요. 그래서 지금 가죽공예도 배우고 있고.. 우선 20대에는 무조건 많이 배우자라는 생각으로 현재수입은 거의 배우는 것에 쏟아 붓고 있어요.”

오호~ 호기심의 레이더에 다시 밝은 불이 들어왔다. 다른 재료를 본인의 원목 가구에 섞는다면 가장 먼저 시작할 재료는 가죽이 될 것 같단다. 단순히 의자 쿠션이나 좌석에 들어가는 가죽이 아니라 원목 자체에 함께 섞여 들어가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 가죽공예 뿐만 아니라 ‘스틸’ 역시 연마 중이다. 나무늘보처럼 푹신한 가구를 선호하는 필자이기에 페브릭 혼합 사용을 묻자, 기꺼이 그것 역시 해보고 싶단다. 심지어 색깔도 정해놓았다. 처음으로 쓰여질 페브릭의 빛깔은 회색이다. 욕심이 커져 간다. 현재 원목 가구도 멋스럽지만, 물먹은 솜처럼 녹아내리고 싶은 필자 같은 사람은 더욱 푹신푹신한 가구를 꿈꾼다. 그것보다 더욱 말캉말캉한 재료를 묻자 푹신한 가구는 자신과 맞지 않는단다.

“저는 형태를 만들고 싶어하는 편이라서, 형태가 구부러지거나 바뀌는 건 저한테 좀 답이 없는 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언젠가 정말 죽이는 재료를 봐서 해보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썩 하고싶지 않고 다가오지 않아요.”


가구장이가 던지는 반전의 메시지

요즘 한창 흔하게도 쓰이는 질문의 틀을 가져와 물었다. 조병주씨에게 좋은 가구란? 평생 써야하니까 질리거나 튀지 않고 무던하게 편히 쓸 수 있는 가구란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이 가정을 이룬다면 오히려 가구를 놓지 않을 거란다. 집이란 공간은 최소한의 가구를 두고 쾌적하게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며 자신의 경험까지 들어가며 말했다. 가구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 미치겠다는 가구장이의 의견이다. 참고하시라…
자신이 만든 가구 즉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격 책정은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그는 아직도 많이 혼란스럽다는 말을 했다. 본인은 사실 자신이 한 디자인은 부수적인 걸로 해서, 나무 값이 얼마고, 제작비가 얼마를 따져서 책정을 하고 싶단다. 몸값이라는 명분이나 허세가 별로 편하지 않은 눈치다. 그러면서도 가격을 떠나 자신의 작품을 일반 제품 취급하는 건 화가 나는 가구장이다. 작품 전시 중 작품 여러 점을 다 구매할 테니 가격을 퉁 쳐달라는 고객에게 결국 대들어버렸단다. 가격을 떠나서 작품 대접을 안 해주는 것에 화가 나는 거다. 작품에 허세는 없으나 진심은 담는다.

“제 가구를 팔고 나면 조마조마해요. 혹시나 시간이 지나 내 자신이 그 가구의 결점을 혹시나 발견하거나 하면, 팔려서 간 그 가구가 그 사람한테 하대받거나 할까 봐..”

가구로 돈을 벌고자 하는 생각은 별로 없단다. 돈 때문에 지금도 가끔씩 알바를 한다면서 그냥 돈이 모자라면 지금처럼 아르바이트하고 계속 가구만들고, 그러다 마흔이 되면 자신의 워크샵을 내고 싶단다. 여기서 조병주씨가 말하는 워크샵이란 자신이 만들고 작업하는 공간에 자신이 소속된 곳이라고. 하지만 궁극적인 원대한 꿈은 따로 있다. 바로 ‘순대국집 주인’이다. 엄마와 함께 자신이 만든 가구로 가득 차 있는 순대국집을 운영하고, 순대국을 끓이다 어느 정도 식당 일을 해놓으면 옆 작업실에서 가구를 만드는 순대국집 사장이다. 이런 괴짜 같은 순대국집 사장을 만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다. 가장 가까운 미래에 조병주씨의 목표는 공예트렌드 페어나 디자인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이라고 하니, 조병주 작가의 가구에 관심이 있다면 꼭 주시하길 바란다.


디자이너도 목수도 아닌 가구장이라는 표현은 조병주씨 자신이 블로그에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자신이 만들어 내놓는 결과물 “가구” 자체에 의미를 두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에, 블로그에 자신을 소개한 말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쉽게 가고 싶냐고 의심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만큼 자신에 대해서 확연히 외치고 있는데 굳이 새로운 묘사를 붙일 필요를 느끼지 못함이다. 굳이 만들자면 ‘순대국집 주인이 되고 싶은 가구장이’ 정도가 되겠다.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으니, 고생하는 국내 여행이 좋단다. 그냥 국내 여행 말고 거기에 고생이 양념으로 꼭 첨가되어야 한다. 좋아하는 가구 디자이너도 없고, 애초에 남의 것 자체에 별 관심이 생기지도 궁금하지 않다는 조병주씨는 대신 지방에 있는 장인을 만나 그들의 기술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가 보다. 조만간 떠날 나주 여행 일정에 소반만을 만들어오신 장인을 만나뵙기로 했다며 살짝 기대되는 얼굴을 보였다. 원목을 알아가며 기초 화장품을 바른 격이라면, 가죽 공예를 배우고, 페브릭 믹스를 구상하며 영양크림과 수분크림을 준비 중이더니, 여행 중엔 장인들을 만나며 에센스 팩을 하고 있는 격이다. 조병주씨 가구, 앞으로 점점 반하게 될 것 같다.

조병주 작가 홈페이지


#10. Hey Tonight – 노브레인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성우와 인터뷰를 하고 나니 당장 노브레인의 공연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마 여러분도 글을 읽고 난 뒤에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 커피 한잔 준비하시고 노브레인의 한 곡 토크 속으로! 아, 술이면 더 좋으려나?     

취재 및 글 : 김호준 Roll Sp!ke  (dafunk@daum.net)
사진제공 : 록스타뮤직
편집 : Avant-in

 

언제 처음 곡 아이디어가 떠올랐나요? 

성우) 2008년 아니면 2009년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멜로디를 먼저 완성하고 멤버들에게 들려줬는데, 같이 만들면서 뭔가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이 버전, 저 버전 정말 다양하게 편곡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꽤 오래전에 만들었던 곡이군요?

성우) 묵혀두었다가 2011년에 발표된 정규앨범에 실었어요. 마지막 편곡을 회사 대표가 듣더니, 뭔가 아쉽지 않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버버(정민준)가 단언 하더라고요. “이 곡의 기타리프는 아껴두고 아껴두었던 거고, 이 노래는 누구나 들어도 신나할 겁니다!”라고요. (웃음) 그때는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얘기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노브레인의 대표곡 중 하나가 되었죠.

 

타이틀 곡이 아니었는데,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했군요.

성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방송에 많이 노출되었던 곡이 아니었는데도 관중들과 주고받으면서 노래를 하는 부분도 있고, 같이 쉽게 호흡할 수 있어 공연을 통해 많이 알려졌죠. 특히 요새는 앨범 전체를 다 듣는 사람들이 적잖아요. 타이틀 곡이 아니면 홍보가 되기 어려운데, 이 곡은 공연을 하면서 탄생한 나름 노브레인의 히트곡이죠. 뮤직비디오도 계획이 없었다가 나중에 찍은 거예요.

 

‘한 곡 TALK’의 곡으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성우) 전율이 와서요. (웃음) 아마 앨범으로 들을 때는 그렇게 와 닿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공연장에서 관중들과 같이 부르는 부분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머리끝까지 솟아 제가 미쳐버리는 지경에 이르더군요. 앨범에는 없는 부분이니까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죠. 특별한 매력이 있는 곡이라서 골랐어요.

 

멤버들과 공연장에 왔던 팬들만 아는 느낌이군요.

성우) 버버가 그러더군요. ‘넌 내게 반했어’ 이후에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곡이라고요. 처음엔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공연을 하면 할수록 반응이 오는 거예요. ‘헤이 투나잇’은 반드시 공연장에서 들어야 되는 노래인거죠.

 

이제 가사 얘기를 해볼게요.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나요?

성우) 강조를 하려고 한 부분이 2절이에요. ‘나의 친구들아 나의 손을 잡아줘. 너와 내가 친구가 못될 이유는 없어. 너와 내가 태어난 곳 그딴 건 제발 잊어줘. 거친 기타 소리가 들려와.’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를 때 이 부분이 정말 강하게 다가와요. 무대 위의 노브레인과 무대 밑의 관객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죠.

 

가사를 만들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성우) 여행의 경험이 반영된 가사 같아요. 음악 하나로 통할 수 있다는 얘기죠. 재수 없는 인간도 재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음악이잖아요. (웃음)

 

가사는 쉽게 나왔나요? 보통 멜로디와 가사 중 먼저 만드는 건 어느 쪽인가요?

성우) 보통 멜로디부터 만들고 가사를 붙여요. 그리고 이 곡은 가사가 쉽게 나왔어요. 아! CCR이란 밴드의 ‘Hey Tonight’이란 곡이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즐겨듣는 곡인데, 제목을 똑같이 지어봤어요.

 

그럼 특별한 가제가 없었겠네요.

성우) 있었어요. 제목이 정해지기 전에 AC/DC라고 불렀어요. (웃음) 편곡이 AC/DC 같은 느낌이 있어서 그랬어요.

 

멜로디는 보통 어떻게 만드나요?

성우) ‘이제 만들어야지’ 하면서 기타를 잡고 시작하면 더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기분이 들떠 있을 때, 샤워를 할 때, 길거리를 걸어갈 때 즉흥적으로 나오는 멜로디가 더 좋더라고요. 보통 핸드폰에 녹음을 하죠.

 

녹음 할 때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성우) 노래 중간에 많은 사람들이 같이 코러스를 부르는 부분이 있어요. 고고스타 멤버들을 비롯해 사무실 사람들, 친구들을 불러놓고 진행했는데, 통제가 안되더라고요. (웃음) 음도 안 맞고, 엄청 고생했어요. 거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손짓 발짓 하면서 완성한 기억이 나네요.

 

만약 이 곡의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찍어볼 생각인가요?

성우) 록 페스티벌에서의 공연 장면으로 만들고 싶어요. 지금 뮤직비디오도 15주년 공연 장면으로 편집되어있는데, 록 페스티벌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오잖아요. 인종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장면을 담고 싶어요. 가사 랑도 잘 어울리고요. 아니면 태국 같은 더운 나라에 가서 촬영하는 것도 좋겠네요.

 

태국 좋네요. 여행을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외국에 나가서 느끼는 점이 있겠죠?

성우)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너무 각박하죠. 태국 여행에서 느낀 건데 그 나라 사람들이 훨씬 많이 웃더라고요. 그리고 어렸을 때 할머니랑 같이 절에 다녔던 기억 때문에 사원 가는 것을 좋아해서 특히 태국이 맘에 들더군요.

 

그런 경험이 곡을 만들 때 도움이 되겠네요.

성우) 영적인 체험? 뭐 이렇게 말하는 건 오버고, 그냥 사원에서 멍하니 있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해서 반성도 하고요. (웃음)

 

이제 인터뷰가 끝나가네요. 앞으로의 노브레인 계획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성우) 노브레인은 작년에 앨범이 나왔으니까 올해는 싱글 발표 정도로 활동을 할 것 같아요. 다른 뮤지션들과 공동작업한 곡들도 선보일 예정이고요. 4월 6일 상상마당에서 공연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에 K-POP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의 밴드문화도 있다는 것을 많이 알리고 싶어요.

 

올해 계획이 다 잘되길 바랄게요. 마지막으로 주로 듣는 음원 사이트는 어딘지 궁금하네요. 곡을 해당 사이트로 링크 시켜드리려고요.

성우) 특별히 이용하는 곳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보니까 벅스로 많이 하시던데, 그렇게 해주세요. 인터뷰를 곡 하나로 진행하니까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노브레인 한 곡 토크를 읽어보신 분들은 4월 6일 상상마당에서 만나요. (웃음)

 

 

 

http://music.bugs.co.kr/album/275000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 이 글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브픽션 (Love Fiction 2012)  : 로맨스, 코미디 / 한국 / 121분 / 15세 관람가 |  개봉 2012.02.29
감독 : 전계수
배우 : 하정우 (소설가, 구주월), 공효진 (영화 수입사 직원, 희진)

 

연애를 하는 동안, 종종 스스로 묻게 되는 질문 중 하나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있긴 한 걸까?” 상대방이 내게 말하는 “사랑해” 라는 말과 좋아 죽겠다는 눈빛과 안달 나있는 몸짓으로 상대의 사랑은 적당히 가늠하겠는데, 솔직히 나의 사랑은 ‘사랑’ 이기나 한 것인지 혼란스러운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자, 영화 <러브 픽션>은 내가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해볼 수 있는 중요한 기준 한 가지를 알려 준다.

하정우와 공효진이라는 매력지수 월등한 두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만으로 이 영화는 봐도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공책‘을 읽고 심히 공감하며 회사 자리 한 켠에 직화냄비를 들여 놓았으면 하고, 바라고 바라지 않았던가. 화학 조미료로 맛을 낸 회사 근처 식당에 줄서서 비싼 돈 내고 사먹느니 삼삼오오 모여앉아 고구마와 감자를 홀홀 까먹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그녀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담은 ’공책‘은 서점 한 켠에 서서 다 읽어버린 책 중에 제일 지속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여튼 다시 돌아와, 실물로 본 여배우 중 단연 최고의 느낌을 줬던 그녀와 절대 개인적 취향은 아니지만 궁금한 이 남자 하정우는 <충무로 대표 흥행보증수표>지 않나. 개봉 5일 만에 100만 돌파는 순전히 이 두사람 덕이다.

겨털 밖에 없는 영화 VS 겨털 밖에 없을 수 밖에 없는 영화

검색어에 [공효진 겨털]이 떴을 때만해도 영화 띄우려고 무리수를 둔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 영화의 주요 소재이자 결과적으로 주제는 바로 ‘겨털’ 이다. 오로지 겨털에서 시작해 겨털로 끝난다. 뭐야 겨털 밖에 없어? 싶다가, 그렇지 ‘겨털’ 밖에 없을 수 밖에 없지 한다.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 중에는 아내가 쭈그리고 앉아 서혜부를 닦는 모습을 본 남편이 듣게 된 굉음이 나온다. ‘순간적으로‘ 그들이 결혼 하기까지의 웃음과 울음과 깊숙한 사연들로 쌓아온 부부 생활이라는 두터운 벽이 쪼개지고 무너진 것이다. 이제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둘은 함께 살 수 없게 된다.

같은 일이 구주월에게도 일어난다. 생의 마지막 여신이자, 유일신이요. 구원의 빛이라 확신했던 희진과의 첫날밤. 그녀의 겨드랑이 털을 마주하게 된다. 한마디로 홀딱 깬다. 이 겨드랑이 털이라는 것이 그렇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극히 자연스러운 체모인데, 유독 여자들에게 금기시된다. 타인에 의해 웃음거리가 되게 된 이유도 불분명한 채 설명할 수 없는 민망함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것도 최근에야. 그리하여 희진에게는 억울할 수 있는 일이지만, 구주월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되었다. “니가 감자탕만 먹을 수 있었어도!” 라는 전 여친의 이별통보를 들은 이 남자는 감자탕과 겨털의 상관 관계가 자기 안에서 모순으로 엉키는 것도 모르고, 오로지 겨털에 사로잡힌다.

자, 이제 물어보자. 당신은 사랑하고 있습니까? 이석원은 결국 헤어졌다. 구주월은 혼란스럽다. 답은 바로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적용되는 대상이라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홀딱 깨는 면이 똑같이 갈등의 원인이 되더라도, 깨지고 부서져 둘이 하나로 섞이게 되는 시작이 되기도 하고, 섞이지 않고 각자의 조각을 다시 가져가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바싹 마른 목에 걸린 퍽퍽한 찹쌀떡을 꾸역꾸역 밀어 넣거나, 도로 뱉어내거나 그건 사랑의 관계에 놓인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곧 사랑의 농도다.

이 나쁜 *&^%#%&#라고 욕하면서도 눈물이 나고, 금세 다시 보고 싶고, 용서가 미움보다 더 빠르다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깊은 상처를 받고서도 내가 그 상처를 얼마나 놀라운 힘으로 치유하고 다시 웃자라고 있는지 깨닫는 순간이 사랑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후에라도 못나 보이던 그 어떤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을 아린다면 사랑했던 것이다.

 

구주월은 마침내 외친다 “나는 겨드랑이 털을 사랑해요”   

 

아내가 서혜부를 닦고 있다면, 송월 때타월 하나 손에 끼고 들어가 그녀의 등을 밀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서로의 등을 닦아주며 오늘 저녁은 메밀국수로 하자고 낄낄거리는 것이 부부다. 남편이 TV를 보다 방귀를 뿡뿡 낄 때, 뭐야~!하며 타박해도 속으로는 저 사람 속이 안 좋나 싶어 저녁 메뉴를 배려하는 것이 함께 사는 마음이다. 그래야 살 수 있다. 행복하게.

전계수 감독은 두 배우에게 큰 빚을 졌다. 편집이 최악이다. 늘어진 테잎같이 지루하다가 간질간질한 부분은 툭 건너 뛴다. 감독은 개인의 논리를 포기하지 못하면서 대중성을 유독 의식했다. 특히 ‘액모부인’ 은 이 영화의 겨털이다. 뭐라고 우기긴 그렇지만 이왕이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다만, 구주월의 깨알같은 내레이션은 좀 길어도 납득할 만했다. 이 남자는 오로지 말로만 매력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희진은 그야말로 태가 좋다. 그녀의 싱그런 바디라인과 보들보들한 결은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 감독이 대체 이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하는 도중에도 공효진은 멀리 보고 뚜벅뚜벅 제 갈길 간다. 감독의 인터뷰를 봤는데 이 남자 제대로 찌질하다. 말도 조금씩 다르고, 눈치도 많이 본다. 그런데도 솔직하다 싶다. 덕분에 영화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남자의 찌질함에 대해 말하는 김에 좀 더. 그대들 사랑을 할 때는 한껏 찌질하시길. 처음이라도 간절하게 매달려 주시길. 이벤트에 열을 올리고, 맞춤법 틀려도 좋으니 편지도 쓰고, 우연히 그녀의 손이 스치는 순간을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억으로 간직해주고, 그녀의 꿈을 꾸며 몽정을 하고, 그녀의 집 앞에서 눈물 콧물 쏟아가며 고백해주시길. 안 받아준다고 땡깡도 부리고 밥도 굶어 주시길. 그리하여 사랑을 열어주시길. 이것이 구주월이 희진의 마음을 얻은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 다음은 희진이 맡아줬다.

이희진이 구주월에게 하는 대사 중에 제일 좋았던 건 “너 참 사랑 쉽게 한다” 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할 때, 남자는 사랑을 시작하고 여자는 사랑을 유지한다. 그래서 남자보다 여자의 사랑이 대개 더 어렵고 무겁다. 그래서 남자가 어지간히 구애하지 않으면 여자는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왜냐면 두렵거든. 곧 무임 승차 할 저 놈은 또 얼마나 무겁고 이기적일지 알게 뭔가. 그러고 보니 이건 뭐 섹스와 임신과도 같구나. 하룻밤와 열달 플러스 알파.

여튼, 당분간 이 영화는 독주할 것이다. 함께 걸려있는 무시무시한 영화들 사이에 그나마 반짝이며 위치하고 있다. 긋고 찢고 으르렁대는 영화만 너무 걸려있었다. 마케팅보다는 배급 쪽이 영리했다. 마케팅팀이 제작했다는 영화 포스터 참 별로다. 카피도 사진도 다 어긋나있다. 그냥 꼬시기용 찌라시 정도. 차라리 쿨한 것에 대한 이야기였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을텐데, 쿨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별로 없다. 하긴 사랑은 어차피 쿨하게 못하는 거니까. 쿨하지 못해 미안할 필요는 없고. 뭐 그렇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글로 쓰고 나면 늘 미욱하다. 뭐 그렇다. 어차피 다 하지도 못할 이야기다. 그 누구라도.

 

 

티저영상

 

‘알라스카’ 뮤직비디오

 

 

 

글 : 하루

편집 : Avant-In

 

 

 

 

 

학자 본능과 만화 사랑을 결합시킨 만화가, Rudy-김재현

지식의 1부터 10까지 조목 조목 암기를 강요하고, 5지선다형으로 정확히 아는지 모르는지를 시험하는 한국 교육의 폐해로 나는 뭐든지 체계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알아 나가는 것에 무척이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뇌를 변호해 주기 위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꽤 오랜 기간 고기를 좋아해 왔지만 아직도 부채살이나 살치살이 어느 부위인지 잘 알지 못한다. 맛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단순한 인간인 것이다. 이런 나와는 반대로, 단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꽤나 좌뇌형 인간인 듯한 김재현씨를 섭외할 때, 나는 이유 없이 쫄고 있었다. 인터뷰 날짜를 앞두고 집 베란다에 있는 쌀통을 쳐다보았다. 얼마 전 생일 선물로 쌀을 받아 기쁘다는 김재현씨의 트윗을 보고, 인터뷰 전에 쌀 한 주먹을 선물하면 그의 좌뇌가 기쁨으로 말랑해져 덜 무섭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했던 우뇌형 인간이 김재현씨를 만나 나눈 인터뷰의 내용을 펼쳐 본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RUDY 김재현 작가

성실하고 내실있는 Humanbeing, 김재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묻고 싶은 질문은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였다. 김재현씨는 만화를 그리지만, 커피에도 박식하여 커피 책을 낸 사람이기도 하고, 모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밴드에서는 베이스를 튕기고 있고, 동시에 자전거 여행을 다니다 블로그에 자전거 전문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데 또 그 전문성이 비범하니 자기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전 만화가예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가장 자부심을 느끼고 잘하는 일이기에 김재현씨는 자신을 만화가라고 답했다. 고2 때 청소년 보호법 사태로 불태워지는 만화를 보며 분노의 짠 눈물을 흘렸던 소년의 마음은 여전히 김재현씨 안에 있었다. 중학교 때 만화를 잘 그리던 친구에게 자극을 받았던 김재현씨는 재미로 만화를 그리다 자신의 길로 결정하게 된 것은 고2 말이라고 한다. 만화를 좋아하는 둘째 아들이었지만 만화에 뛰어들겠다고 할지는 몰랐던 부모님은 강하게 반대하셨지만, 김재현씨는 결국 만화를 전공했다. 친구들과 작업실을 만들고 동기들과 신나게 만화를 그리고 공모전도 참가하던 그는 졸업을 일년 앞두고 만화 외적인 편집과 출판에 대한 흥미가 생겨 공부하고 강좌를 듣다가 출판사를 직접 경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냥 출판사 쪽에서 일하시는 지인 분께 저 좀 써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무급이여도 좋으니까.”

김재현이라는 이름과 함께 엮여 있는 여러 가지 화제를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는 단서가 되는 말이었다. 쿨한 좌뇌형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듯한 이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흥미 있는 것에 “진심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커피, 자전거, 만화, 나이프 등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분야에 대해 얘기를 하는 그의 모습은 사서삼경을 떼고 유학을 논하는 갓을 쓴 선비 같았다. 특별히 학문적이거나 아카데믹한 주제가 아니지만 그가 커피나 자전거를 대하는 마음가짐만은 학문에 매료되어 매진하는 학자의 열정과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기본 이론을 정립하고 싶은 편이에요. 제일 먼저 찾아보는 건 관련 서적이에요. 체계가 없고 잘못된 정보를 얻기 쉬운 만큼 인터넷으로 시작하진 않아요. 그냥 인터넷 서점에서 관련 키워드를 넣고 검색해서 읽고 싶은 책들을 선별해서 먼저 기초를 다지는거죠.”

덕분에 커피에 관심을 갖고 인터넷 서점 책을 싹쓸이하고 있을 때, ‘커피브레이크’ 라는 BL물(남자 동성애소설)이 섞여 온 적이 있다고.. 19금이라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서 그냥 주문을 했다는데, 분명 19금 커피 이야기는 어떤걸지 호기심(?)이 발동했는지는 몰라도, 배달 온 책을 본 친구들에게 두고 두고 놀림거리가 됐다고 한다.


인생은 환상을 깨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너구리, Rudy

직접 만나보니 팬더나 수달 캐릭터를 썼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 김재현씨에게 왜 하필 너구리냐고 물어봤다. 루디의 팬이라면 아마 궁금한 질문이 아닐까? 유치원 때부터 달고 다닌 불치병 눈 밑 다크와 군대 선임이 날린 ‘넌 눈 밑이 까만게 너구리같이 생겼다’는 말에 너구리가 되었단다. 현재 쓰고 있는 Rudy라는 필명은 ‘루드비히’에서 온 줄임이다. 만나기 전에 아는 척이나 할까 싶어 ‘루드비히’를 미리 검색해봤는데, 철학자부터 만화 캐릭터 이름, 레슬링 선수의 존재를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음악의 거성 베토벤의 풀네임이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란 것도 알게 됐다. 결국 무엇인지는 알 수 없게 되었으나, 만화가니까 애니메이션 케릭터 이름에서 왔을 거라는 마음 속 베팅 오천원을 한 나를 보기 좋게 무시하고, 그의 루드비히는 독일 철학자 루드비히였다. 판돈을 잃은 도박꾼의 분노 같은 심정으로 루드비히에 대해 설명해보라며 김재현씨를 시험에 들게 했다.

“루드비히는 군대 있을 때 [논리-철학 논고]를 읽고 당시에 좋아했던 독일 철학자에요. 현대철학의 입문이 되는 사상인데, 세상은 언어로 이루어졌다.. 생각도 언어로 하고, 생각은 언어에 규정된다는 개념에 쇼크를 받았어요. 그림을 그리니까 그림은 내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로 터진 김선비님께 굴복하고 다시 주제로 돌아갔다.

“만화를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만화 출판사 편집자 일을 해보니 어떻던가요? 신나지 않으셨어요?”

“음…그냥 환상이 깨진다고나 할까…작가 집단이라고 해서 다른 집단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실망을 하게 됐다고나 할까…”

“블로그에 칭찬 달리고 그러면 기분 좋지 않아요? 내가 본 몇몇 코멘트는 엄청 좋았을 것 같던데?”

“음….기분 좋거나 그런 건 별로 없어요. 그냥 본인들도 좋아하시는 화제니까 더 반응해주시는거라는 걸 알게 된 컨텐츠 제공자 입장이 되어버려서 그런지…”

“본인 이름을 단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무척 기쁘셨겠어요, 그쵸?”

“원래 출판사 일을 해서 특별히 “내 책”이 나왔다고, 별로 실감나지 않았어요. 컨텐츠가 만들어질 때부터 책이 나오기까지 전 과정을 알아서 그런 건지 몰라도… 아는 형이 (지상 회화로 유명한 남아메리카 페루의) 나스카에 다녀왔는데, 막상 직접 보니 그냥 그렇더래요. 다들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막상 닥치고 보면 의외로 아무것도 아닌 그런 느낌인지도 모르죠..”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글로 써 놓으면 엄청 건조한 사람으로 보이겠는데요…라며 우려 섞인 말을 하자, 김재현씨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훗!) 어쩔 수 없죠 뭐… 이런 사람인걸요…”

두 시간 동안 만난 김재현씨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그의 블로그나 트위터(@rudycafe)를 보는 사람들만해도 알 것이다. 우선 그가 그리는 일명 교육 만화의 성격을 띤 ‘벨로툰’이나 “루디’s 커피의 세계, 세계의 커피”만 봐도 그의 차분한 인내심과 꼼꼼한 자상함을 느낄 수 있다. 까칠한 척하지만, 옆에 앉아 차분히 기초부터 설명해주는 그의 만화가 좋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돈은 없지만 열정 가득한 커피계의 맥가이버

대학 시절 야간 작업하면서 줄기차게 마시던 커피가 좋아지고, 자판기마다 커피 맛이 달라 신기하다고 생각해왔던 김재현씨는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커피 전문 서적을 들고 부대 복귀를 했다. 그리고 그 이후 휴가를 나오면 커피가 유명한 곳을 찾아 다니며 커피를 맛 보았다고.. 맛 좋은 커피를 찾아 다녔던 이 헬리콥터 특공대원은 제대 후 자기 손으로 뽑은 홈로스팅 커피를 만들어 먹기로 결심했고 그것이 2005년 말이다. 그의 책만 접한 사람이라면 커피 전문 서적이 쏟아지고, 드라마 ‘커피 프린스’로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낯설지 않은 요즘 루디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지만.. 사실상 그 시기에 홈 로스팅을 결심했다는 건 무척 인상적인 일이다. 그 역사적인 초기 시절이 그의 블로그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비싼 드리퍼 대신 간장 종지로 드리퍼 효과를 연출하여 드립 커피를 내려 먹는 모습 등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친 “맛있는” 커피를 먹고자 하는 그의 순수한 열정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그 진지함에 만화의 신뢰가 더해진다. 커피에 입문하는 자신의 지식이 늘어가면서 김재현씨는 Rudy의 커피 만화를 블로그에 연재하게 되었고, 그것이 네이버 메인에 뜨면서 바리스타 사이트에 이 만화를 연재하자는 제의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3년 동안 연재한 이 만화는 ‘루디’s 커피의 세계, 세계의 커피’라는 제목의 책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1권 커피 입문서 반응이 좋아, 2권 홈카페, 3권 세계 커피 이렇게 3권의 시리즈로 구성된 이 친절하고 재미있는 커피 책은 지금도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커피 전문가의 얘기를 듣다 보니 얼마 전 아방인 커피 칼럼을 보며 동감 200%를 날렸던 자판기 커피의 고급 커피와 일반 커피의 차이를 꼭 듣고 싶어졌다. 커피 자판기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해놓은 세팅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지만, 실제로 일반커피와 고급커피는 내부적으로 따로 구분이 되어있어서 커피, 설탕 등의 재료가 더 들어가기도 하고, 고급 커피는 ‘동결건조식’ 커피를 쓰고 일반 커피는 ‘분무건조식’ 커피를 쓰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인스턴트 커피이기에 큰 차이를 논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분명 차이가 1그램도 없는 상술일거라고 불신의 콧방귀를 끼면서도 고급커피를 눌러 먹던 나는 앞으로 조금 더 나은 기분으로 고급 커피 버튼을 누를 수 있을 듯 하다.


까칠한 너구리의 한결같은 만화 순애보

블로그에 있는 다양한 습작을 보고 일러스트는 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만화가 더 좋단다.

“많은 사람한테 보이면서 유기적인 것을 만들고 싶어요. 그림은 잘 그릴 수 있게 되면 좋지만 저에게 그림은 만화라는 언어를 잘 사용하기 위한 근력이에요.”

김재현씨 블로그에는 현재 본격적으로 연재되고 있는 자전거 전문 만화 ‘벨로툰’ 외에도 버스(BUS)-지하철(METRO),걷기(WALKING)에 대한 만화 ‘BMW’, 사과회사 전자기기와 함께하는 생활툰 ‘iToons’등 꾸준히 자신의 만화가 업데이트 되고 있다. 한때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작업을 꾸준히 하고, 결과물을 부지런히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이야기를 해서 반응이 오는 것이 좋아요… 앞으로 이런 걸 올려서, 무엇을 해야겠다 라는 식으로는 일을 할 수 없어요.. 무언가 일이 되어가는 확신이 없이 정체 되었을 때도, 그냥 있는 것보다 계속 해 나아가는 것이 결국 좋은 것 같아요.”

무엇이 딱히 정해지거나 약속되지 않았음에도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묵묵히 지속해나가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는 얘기가 인상적이다. 김재현씨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에 대한 사랑이 깊고 한결같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턴으로 들어간 출판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졸업도 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사회 생활을 시작한 김재현씨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만화를 그리고 싶어, 퇴근 후 쉽게 그릴 수 있는 캐릭터에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를 넣어 그린 만화를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루디 커피가 시작되었고, 책이 나왔고, 지금은 자연스럽게 만화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자전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김재현씨가 앞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어떤 걸지 물어보았다.

“딱히 큰 목표는 없지만, 하나 있다면 지속 가능한 삶을 사는 거에요. 계속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적당히 일하지만 돈만을 위해서 일하지도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그것만 하지도 않는…밸런스를 맞추는 삶. 지금처럼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챙겨가면서 살아 나갔으면 좋겠어요.”

2시간여의 인터뷰 녹취를 다시 들어보니 김재현씨를 인터뷰했다기 보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했던 것 같다. 무엇이든 정답만을 말해줄 것 같은 저음을 타고 나오는 그의 만물상적 지식은, 얘기가 나오는 단어마다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거기다 취미는 사용 설명서 읽기와 상식책 보기란다. 그의 블로그에 누군가가 ‘이원복 선생님 이후 최고의 교육 만화가’라는 코멘트를 달아 놓았더랬다. 정작 본인은 심드렁했지만, 개인적으로 어울리는 묘사라고 생각한다. 만화가 유해물 취급을 받으며 불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의 의식을 바로 잡고 싶었던 그와 인터뷰를 끝낸지 얼마 되지 않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웹툰을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하는 발표가 있었다.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서, 2012년 지금도 사회는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상처를 내는 듯하다. 그의 생각이 어떤지 묻지는 못했지만, 만화를 좋아하는 마음과 편집자적인 마인드가 공존하는 그이기에 조금 시간이 지난 언젠가, 만화의 그레이트한 면을 보란 듯이 뽐내는 멋진 결과물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예전 많은 부모님들이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를 솔선수범해서 사주던 그 시절의 마법처럼…

RUDY 김재현 작가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