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인 : 인터뷰] 팝과 모던록의 색채를 가진 4인조 밴드 ‘안녕의 온도’

팝과 모던록의 색채를 가진 4인조 밴드 ‘안녕의 온도’. 밴드이지만 그들 안엔 고정적인 색을 가진 보컬은 없다. 2015년 4월 3일 발표한 싱글 [사랑의 한가운데]의 수록곡 2곡을 포함하여 앞으로 발표할 예정인 모든 곡들에 객원보컬 형태를 유지할 거라고 하는 ‘안녕의 온도’를 아방인에서 만나 보았다.

첫 싱글이라고 하는데, 작법이나 연주가 예사롭지 않다. 분명 신인은 아니다. 아니 그걸 넘어 확실히 보통이 아니다. ‘안녕의 온도’의 음악을 들어보았을 분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멤버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나와 있지 않다. 작사가와 작곡가 정도의 정보만 얻어서 알아보았는데, 작사와 드럼을 맡은 이소월은 이미 솔로 정규 앨범을 3장 발표하였고, 작곡과 베이스를 맡은 정상이 역시, ‘윤석철 트리오’, 그리고 ‘정상이 쿼텟’으로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하여 ‘안녕의 온도’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각 멤버들의 소개를 듣고 보니 역시나 만만찮은 내공의 소유자들이었다.

 

안녕의 온도의 멤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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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실 저희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개인 활동과 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건반을 맡고 있는 윤석철과 베이시스트 정상이는 ‘윤석철 트리오’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윤석철 트리오’는 현재 2장의 정규앨범(1집 [Growth], 2집 [Love is a song])과 1장의 EP [즐겁게, 음악.]을 발표하고 활동 중이고요, 윤석철은 이번 자이언티, 크러쉬의 곡 “그냥” 의 공동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드러머 이소월은 최근 3집 [Universe and I] 라는 앨범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3장의 개인 앨범(1집 [For the first time], 2집 [New outlooks])을 발표하며 작곡과 연주 두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뮤지션 입니다. 기타리스트 이수진은 자신의 개인 앨범을 준비하고 있고, 다양한 밴드 활동과 가요 세션의 경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베이시스트 정상이는 ‘정상이 쿼텟’으로 1집 [Inner eyes]를 발표했고요, 재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연주와 녹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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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안녕의 온도‘의 첫 싱글 [사랑의 한가운데]
2015년 4월 3일 발매

1. 사랑의 한가운데 (feat. 선우정아)
2. 늪이라 하여도 (feat. 박준하)

 

이렇게 다양한 음악적 경험과 경력이 있는 네 명의 뮤지션이 모여서 ‘안녕의 온도’를 구성하게 된다. 다양한 음악적 경험과 경력 그리고 평소 함께 연주하면서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의 만남은 싱글 [사랑의 한가운데]를 범작 이상의 것으로 완성시켰다.

 

팀명인 안녕의 온도?

“‘안녕’이란 단어는 이소월씨의 의견이었고, ‘온도’는 정상이의 의견이었습니다. 언제나 수시로 하게 되는 ‘안녕’이란 인사입니다만, 다신 볼 수 없는 정말로 끝나버린 이별의 안녕, 내일 또 할 수 있는 습관 같은 안녕 등 세상의 모든 안녕이란 인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의미와 함께 그 안에 담긴 슬픔과 기쁨의 온도가 다르지 않겠냐고 이소월씨가 말하는 순간,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온도에 맞는 각각의 보컬들과 함께 삶의 소소한 부분부터 크게는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까지 표현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 ‘안녕의 온도’를 팀명으로 정하였습니다.”

 

안녕의 온도의 보컬이 없는 구성과 앞으로의 활동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입니다. 한 명의 보컬에 중심을 두게 되면 아무래도 확실한 밴드의 색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네 명의 멤버들이 각자 재즈, 스카, 힙합, 대중가요 등 장르를 정하지 않은 다양한 프로젝트와 개인 활동을 하고 있고 또 기본적으로 재즈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보니 한계를 두지 않은 음악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의 곡에 맞는 목소리를 그때 그때 찾아가는 것이 방법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정하고 보니 작곡을 할 때도 폭이 훨씬 넓어지고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보컬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곡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싱글 [사랑의 한가운데]의 경우에도 첫 번째 곡인 “사랑의 한가운데”는 처음부터 선우정아씨를 염두에 두고 썼던 곡이었습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훌륭하게 소화해 주셔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두 번째 곡인 “늪이라 하여도”는 편곡의 컨셉이 나오면서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았는데요. 때마침 박준하씨의 노래들을 듣고 이 노래와 정말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준하씨가 보컬뿐만 아니라 편곡 쪽으로도 많은 아이디어도 주시고 분위기에 딱 맞게 불러 주셨답니다.”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악들

멤버들에게 좋아하는 음악을 팝 위주로 추천받아 보았더니 각 멤버들의 다양한 음악 스펙트럼을 알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가 완성되었다. 이 추천 리스트에 윤석철이 공동 작곡가로 참여한 “그냥”을 추가해 보았다. 음원으로 찾을 수 없는 곡들은 유투브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정상이 추천곡 : Coldplay – Midnight

이소월 추천곡 : Chance the rapper-Juice

윤석철 추천곡 : Kendrick Lamar – Momma

이수진 추천곡 : Priscilla Ahn – Fine on the Outside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하는 바는?

“곧 신곡 작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보컬은 미정이고요. 좀 더 밝은 곡이 될 것 같습니다. 한 곡 한 곡 최선을 다해서 싱글을 발표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고요. 발표할 때마다 기다려 주시고 각 곡마다 전하는 이야기들을 공감해 주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 곡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정규 앨범이 나올 때쯤엔 공연도 생각하고 있고요. 물론 참여한 보컬들에게 전부 출연을 탁하려면 쉽진 않겠지만요.”

지금까지 멤버 각자가 만들었던 음악과 ‘안녕의 온도’로 함께 모여서 만든 음악을 듣다 보면 앞으로 만들어 낼 음악이 더 궁금해진다. ‘안녕의 온도’의 음악세계는 어떤 곡과 어떤 연주와 어떤 목소리를 들려줄지에 대해 무한의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그리고 그것이 꾸준히 발표한 음악들을 기다림으로 듣게 하고 언젠가 있을 정규 앨범 발매 공연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안녕의 온도를 알고 싶으신 분들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방문해 보세요.
http://facebook/ahnonband

 

 

 

인터뷰 및 글 : N 

박준하의 추천 플레이리스트 #2 – 그 곳에 가고프다 <노르웨이편>

그곳에 가고프다<노르웨이 편>

노르웨이에는 개인적으로 아끼는 뮤지션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노르웨이어를 모국어로 부르기도 하지만 여느 유럽 뮤지션들처럼 대부분 영어로 발매되곤 한답니다.
살기 좋기로 유명한 나라.
그곳을 가고 싶은 마음에 이번 플레이리스트에는 노르웨이 출신 뮤지션들만 골라보았습니다.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건물들과 스칸디나비아의 풍경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충동에 빠지게 하네요.그래서 그런걸까요, 세련되고 도시적이지만 상당히 내추럴한 부분도 많습니다.
심지어 훈제연어 원산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 노르웨이 뮤지션들의 음악..
함께 들어보시죠 (얘가 노르웨이 사람이야? 하면서 들어보시면 더 좋고요!)

1. Silje Nergaard – I don’t wanna see you cry
오래전 거의 유일한 SNS였던 싸이월드에서 발견한 뮤지션입니다. 19살 때 세계적인 재즈기타리스트 Pat Metheny에게 발탁되어 데뷔한 그녀는 이 후 발표하는 음악들마다 매우 세련되고 듣기 편한 팝재즈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여성들의 미니홈피에 많이 걸려 있던 <Be still my heart>는 가수는 몰라도 노래만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눈물 셀카와 찰떡 궁합인 대표적인 감성 음악이었죠.

하지만 저의 추천 곡은 <I don’t wanna see you cry>입니다.

2. Kings of Convenience – Cayman island
매년 열리는 여러 음악 페스티벌에서의 라이브와 내한공연 등으로 친숙한 우리의 ‘편리왕’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입니다. 특히 이중 Erlend Øye 는 솔로로도 종종 찾아주어 Lasse Lindh에 이어 홍대 어느 오피스텔에 기거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됩니다. 어릴적 부터 친구사이였던 둘은 2001년 <Quiet Is the New Loud> 앨범으로 데뷔했습니다. 당시 심야 시간대의 라디오와 광고 음악 등으로 자주 흘러 나온 덕에 늦은 밤 잠 못드는 이들에겐 몹시 익숙하죠. 특히 방에서 연주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옅게 깔린 노이즈가 이들의 음악을 더욱 ‘편안하게’ 들리게 하는 요소인 것 같습니다.
추천 곡은 <Cayman island>입니다.
그리고 흥이 많은 Erlend Øye의 범상치 않은 솔로 활동도 링크 걸어 봅니다.
3. Dylan Mondegreen – Something to dream on
어느 날 카페에서 들려온 러블리한 전주에 반응해서 찾아본 Dylan Mondegreen.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2007년에 1집 <While I Walk You Home>으로 데뷔한 뮤지션입니다. ‘상냥함’으로 다가오는 그의 음악은 다 듣고 난 후 휴식 같은 느낌을 주곤 합니다. 노르웨이식 교회 오빠 일지도 모르겠어요.
앨범도 꾸준히 발표하는 등 성실한 뮤지션의 분위기도 물씬 풍깁니다. 추천 곡은 그의 첫 앨범에 수록된 <Something to dream on>입니다.
4. Sondre Lerche – Track you down
영화 “댄인러브(2007)”를 보았는데 저에겐 영화보다 음악이 더 많이 다가왔습니다. 한 뮤지션의 음악으로만 도배된 연출자의 패기도 놀라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음악이 아주 산뜻해서 연출자의 패기에 동감하게 되었죠. 작년에는 내한공연도 했었고요. 포스트 Jason Mraz라고들 하지만, 말하는 메시지나 음악에서 풍기는 무드는 누구를 따라하는 것이라기보다 독보적인 매력이 느껴집니다.
더구나 무심한듯 거칠지만 섬세한 그의 기타 연주와 목소리는 화려함으로 무장한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더욱 진정성있게 다가오고요. 추천곡은 <Track you down>입니다.
5. Eva & The Heartmaker – Told you
우연히 본 뮤직비디오에 이끌려 알게된 듀오 Eva & The Heartmaker.
독특한 보컬의 음색과 중독성있는 멜로디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은하철도 999의 메텔과 Nico(Velvet underground and Nico)가 동시에 생각나는 “Mr.Tokyo”의 뮤직비디오를 링크해봅니다
추천 및 글 : 박준하

박준하의 추천 플레이리스트 #1

첫 플레이리스트 입니다.

봄이 왔지만 황사와 변덕스러운 날씨로 고생하는 요즘,
날씨보다 몸을 먼저 풀기위해, 봄 기분을 낼 수 있는 음악들 추천해봅니다.

1. Camera Obscura – Tears for Affairs
사운드와 영상만 보고 깜빡 속아 넘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좋은 옛날음악을 발견했다고 말이죠. 1996년 결성하고, 2001년에 [Biggest Blues Hi Fi]를 발표하면서 데뷔하는데요. 국내에는 수입음반으로 조금씩 소개되다가 정식 라이센스 발매와 함께 광고음악으로도 사용되면서 매니아들 사이에서 조용히 회자되었던 팀이기도 합니다. 정확히 데뷔년도로만 보면 2000년대 밴드이면서 이런 70~80년대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는 것이 대단하죠. 저와 같은 사람들을 속아 넘어가게 하는 것이 노림수였다고 해도 말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Nmr6Fb9_9gg
2. Toploader – Dancing in the moonlight
제목부터 과한 달달함이 느껴지는 Top loader의 대표곡입니다. 펍에서 하루종일을 보내던 4명이 1997년 뭉쳐서 밴드 한 번 해보자! 를 외치고, 세컨 기타리스트가 한 명 더 영입되면서 Toploader가 탄생됩니다. 그런데 펍에서 놀다가 만든 밴드 치곤 시작부터 화려합니다. 싱글 한 개 냈을 뿐인데 유명 밴드들과의 투어와 굵직한 페스티벌도 척척 나갔죠. 그리고 바로 이 곡으로 메가히트를 기록합니다. 그렇게 한 때 Oasis, Charlatans UK와 함께 TV 프로를 나갔던 이들인데..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요. 해체했단 소문도 있었는데, 최근엔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고 말이죠.
3. Tahiti 80 – Come Around
프랑스 출신의 밴드 Tahiti 80. 스타일리쉬하고 화사한 분위기가 어떤 곡이든지 봄날과 잘어울립니다.
원래 추천하려 했던 곡은 이들의 대표곡 ‘1000 times’이지만,
이 곡도 좋습니다. 원래 2인조였던 Tahiti80은 외로움을 많이 탔는지 시간이 흐를 수록 멤버수가 자꾸 자꾸 불어납니다. 몇 번 내한도 하면서 한국팬들에게도 친숙하죠. 첫 내한 당시는 드러머가 객원 멤버였는데 몇년 전 정식 멤버가 되었어요. 아무래도 정이 많아서일까요? 오래 같이 하는 음악친구들을 전부 정식 멤버로 들이는게 아닌가 싶어요. 이러다가 엔지니어, 스탭, 영상작업하는 분들까지 멤버가 되는 건…
4. D’sound – Do I need a reason
한국에서 히트곡이 매우 많은 D’ sound. 한국으로 공연도 많이를 넘어 종종 와주고, 특히나 한국과 일본에서의 인기가 좋죠. 가끔은 이 팀은 아시아에서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이들의 음악과 특히 라이브가 좋음에는 여지없이 강한 긍정을 보냅니다.
5. Adele – Right as rain
아델을 처음 영접했던 곡입니다. 이 목소리가 19세의 목소리라는 것으로 더 이슈가 되었죠. Adele의 데뷔를 놓고 post Amy Winehouse라고 평하던 평단은 점점 그녀만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나중에는 오히려 전세계 음반사에서는 post Adele찾기에 나섰을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결국 post Adele은 그들이 찾아낸 이들 사이에서는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하여, 지금의 Adele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싱어송라이터가 되었죠. 그녀의 노래중 가장 빠른 곡으로 추천해 봅니다.
앞으로 격주로 수요일마다 소박한 추천리스트 소개해 드릴게요. 지금 막 나온 따끈따끈한 신곡부터 아주 오래된 먼지 쌓인 음악까지 다양하게 골라보겠습니다.
추천 및 글 : 박준하

봄을 위한 추천 앨범

 

2015년 3월 17일, 봄을 위한 추천 앨범 3개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해 밖을 나간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지만,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길에 많아진 것만 보아도 봄입니다. 특유의 청명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야 하는데, 매우 청명하지는 않군요. 하지만, 음악이 있다면 그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테죠. 아방인이 다시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봄에 듣기 좋은 음악들을 시기와 장르 나라를 가리지 않고 추천해 드립니다.

 

1. Rumer [Into Colour]
첫 추천 앨범은 Rumer 의 [into Colour]입니다. 2014년 10월 11일에 발매된 음반입니다.
한 때 아델의 열풍이 불었을 때 전세계의 음반사에서 아델의 뒤를 이을 여성 싱어송라이터 발굴에 혈안이 되었었죠. Rumer 역시 그 당시 등장한 신예였습니다. 카펜터스의 카렌 카펜터의 환생이란 극찬을 듣는 목소리와 빈티지한 멜로디 메이킹 능력으로 주목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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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데뷔앨범 역시 200만장이라는 높은 판매고와 평단의 극찬을 들었지만, 롤링스톤지에서는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며, 별 2개만 주는 수모를 겪게 했습니다.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Rumer는 한 동안 조울증에 빠져 괴로운 나날을 보냈죠. 음악도 잠시 쉬고요. 그 후 약 2년의 공백기 후 발표한 앨범이 바로 이 [into Colour]입니다. 그 동안 겪었던 힘들었던 지난 날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해요. 전반적으로 음반을 들어 보면, 그 힘든 날 동안 사랑으로 극복해 온 듯 보입니다. 추천곡인 “Dangerous”외에도 전곡이 데뷔때 보다 성숙하고 진한 색으로 담겨 있습니다.

 

 

* 음악은 Deezer에서 무료로 들으실 수도 있고, 자주 사용하시는 음원사이트에서 검색해서 들어보실 수도 있습니다.

 

2. Smallpools [Smallpools]
두번째 추천 앨범은 밝고 신나는 Smallpools의 음반으로 골랐습니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대단하지는 않은 편입니다. Passion pit따라쟁이라는 말도 듣고 뭔가 5% 부족하다고도 하죠. 하지만, 젊은 기운이 가득담긴 에너지 넘치는 음악을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학교 써클활동하면서 친구들끼리 끄적거린 것 같은 음악이라고 폄하당해도 아무생각없이 스트레스 안받고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들의 음악은 기분을 업시켜주는 에너지가 충분히 담겨 있죠. 극도의 팝스러움과 대중적 성향을 더 극한으로 끌어내서 Smallpools가 들려줄 수 있는 더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길 바래봅니다. 봄 날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음악 두번째 추천곡으로 Smallpools의 “No Story Time” 골랐습니다.

신곡의 뮤직비디오를 멤버 중 한 명인 Sean의 엄마 차를 몰래 타고 나가 찍는 식의 치기어림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아직 파릇파릇한 청춘들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곡 “Dreaming”의 뮤직비디오도 감상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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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4일 정규 1집이 나온다고 하니 기대됩니다!!

 

3. 꽃잠 프로젝트 [Smile, Bump]
여성보컬과 작곡하는 남성으로 이루어진 듀오의 전형적인 진부함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이들의 음악은 음악성, 대중성, 예술성 등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함을 보여줍니다. 이바디의 리더 임거정의 노련한 작곡 능력과 어쿠스틱한 연주에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녹아 있는 보컬 김이지의 목소리는 꽃잠 프로젝트의 음악을 계속 찾아 듣게 만듭니다. 특히 봄에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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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및 글 : N

달콤한 꽃을 빚다. 슈가크래프트 아티스트 신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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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꽃을 빚다. 슈가크래프트 아티스트 신주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의 인터뷰였다. 햇살을 맞으며 인터뷰 장소로 가는 동안, 과연 ‘슈가크래프트 아티스트를 만나는 날’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신주민 작가는 예의 그 봄과 어울리는 조근조근한 말투에 상냥함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할수록 슈가크래프트를 ‘예쁘다’, ‘달콤하다’는 감각의 영역으로만 연결시키던 것이 나의 무지임을 깨달았다. 부드러운 슈가케이크와 꼭 닮은 느낌의 그녀지만, 그 이면에는 단단하고 옹골진 아티스트의 속내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취재 및 글

: 오수미 / sueme212@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신주민 작가

 

신주민 작가에게 5월은 바쁜 시기이다. 어버이날, 스승의날처럼 슈가케이크를 필요로 하는 행사가 많기 때문이다. 작업이 많지 않을 때엔 그녀가 진행하고 있는 슈가크래프트 클래스에 사용될 샘플을 구상하거나 개인 작업을 한다.슈가크래프트 아티스트라는 직함은 애초에 그녀가 원하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패션디자이너를 지망해 미술고등학교까지 진학했었어요. 중학교 때에는 칭찬도 받고 상도 받고 하니까 많이 우쭐했었는데, 같은 전공의 학생들만 모인 고등학교에 다니다 보니 많이 위축이 되더라고요. 원래 성격이 오기 같은 게 없어요. 자꾸 움츠러드니까 미술 쪽에 재미를 못 느끼게 됐고 아무 의미를 못 찾겠더라고요.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알게 된 것이 푸드 스타일링이었다. 지인의 추천으로 우연히 알게 됐는데 미술 공부했던 것을 접목시켜서 하다보니 재미를 느끼게 됐다. 결국 그녀는 직업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직업학교에 다니면서 요리가 나와 너무 잘 맞는 걸 깨달았어요. 여기가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그 때부터 꾸준히 하게 됐죠.”

요리 공부를 계속하다가 디자인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슈가크래프트를 선택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아직은 생소한 슈가크래프트 아트. 유럽이나 호주, 일본에서는 대중화 됐지만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는 5년 남짓이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그 수요가 늘고 있고 인식도 많이 변하고 있다. “백 퍼센트 수작업이다 보니 슈가케이크는 가격이 비싼 편이에요. 예전엔 ‘먹는 것에 장식을 그렇게 비싸게 할 필요 있나’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요즘은 비싸더라도 오히려 더 화려한 디자인으로 의뢰하곤 해요. 슈가크래프트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졌고요.”

그래도 여전히, ‘먹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협소하다. 단 하나뿐인 케이크라는 점 때문에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긴 하지만 그 저변이 넓진 못하다. 이 좁은 인식의 폭이 슈가크래프트 아트가 더 성장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국내에도 실력이 좋은 아티스트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인정받고 보상받기에는 아직도 열악한 환경이죠. 수입 면에서 따라주지 않으니까 아까운 분들이 작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슈가크래프트의 발전은 늦어질 수밖에 없어요. 조금 더 보편화돼서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작업을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 오랫동안 앉아서 설탕반죽으로 모양을 만들다 보면 저절로 생각이 많아진다고 한다. “작업 중에 생각만으로 영화 한 편은 찍는 것 같아요. 나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 작업하는 것이 너무 좋아요. 물론 어깨, 팔 근육이 다 뭉치고 어디 가서 손 보여주기가 민망할 정도로 손이 못 생겨지긴 했지만요. 나에 대해 돌아보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작업을 즐기는 편이에요.”


대신 작업 중에 누군가 방문을 하거나 집중이 흐트러지면 그 날 작업은 끝. 오늘 하루 만들겠다고 작정하면, 그냥 한 번에 끝내야 한다. 몸은 고되지만 예쁜 색감의 케이크가 나오면 저절로 피로가 풀린다고 한다.

물론, 여느 작가들처럼 그녀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치열한 성찰을 한다. “‘잘 끝났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물이 마음먹은 대로 안 나오면 작품보다는 나에 대한 회의가 먼저 들어요. 나 스스로에게는 당근보다는 채찍을 사용하는 스타일이죠. 호되게 때리는 편이에요. 하지만 결국 받아들여요. 끝까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떤 일도 못 하게 되니까요.”

2년 전엔 극심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아예 슈가크래프트를 그만두려고 했었다. “재료도 플리마켓에 팔아버렸었어요. 요리도 하기 싫고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에 회의가 들었던 때죠. 근데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멍하니 누워있다 책꽂이에 꽂힌 슈가크래프트 관련 책들을 봤어요. 한 두 권 뽑아서 읽었는데, 갑자기 이게 또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이게 내 천직이려니 하고, 그 뒤로부터는 어떤 슬럼프가 와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코엑스에서 열린 푸드 박람회에 전시했던 작품. 두 달의 준비 기간 동안 체력적인 소모가 컸던 작업이다. “케이크 위에 웨딩 슈즈를 올린 디자인이었어요. 하이힐 뼈대를 만들고 작은 큐빅들을 일일이 손으로 하나하나 붙여야 했죠. 핀셋으로 밤새 붙였는데, 만들고 나니까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준비가 고생스러웠던 만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에요.”

클래스를 열어 수강생까지 받는 슈가크래프트 아티스트지만 그녀는 여전히 배움에 목이 마르다. 트렌드에 맞게 항상 새로운 것을 습득해 나가야 한다. 그녀는 더 알고 싶어 하고, 더 잘 하고 싶어 했다. “기회가 되면 내가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많은 일을 겪을 수 있을지 테스트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국내에서 일을 더 해 본 뒤에 유학도 가 볼 생각이에요. 워낙 오기가 없는 성격인데 슈가크래프트에 대해서는 오기가 생기는 걸 보면 진짜 내 일이다 싶어요.”



애초에 슈가크래프트를 시작할 때에도 별다른 불안감은 느끼지 못했다는 신주민 작가. 인지도가 낮다는 걸 알고 시작했고 지금 이 정도의 인식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만족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스무 살에 꿈을 찾았을 때처럼, 내가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녀에게 슈가크래프트 아티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 줄 말이 있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손재주나 미적 감각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꾸준히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상 국내에서 활성화되기엔 아직도 어려움이 많아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수월할 것 같아요. 너무 꿈이 큰 상태에서 인정을 못 받으면 그만큼 위축되잖아요. 끈기를 갖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슈가크래프트를 그저 파티의 장식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봐주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슈가크래프트에 대한 대중의 안목이 높아져야 국내 슈가크래프트 아트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그녀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서는 슈가크래프트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이런 모습을 보며, 그녀의 바람이 달콤한 현실이 되지 않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컬러로 말하는 작가, 이에스더

컬러로 말하는 작가, 이에스더

‘정직하다’고 느꼈다. 미사여구나 수식이 없었다. “컬러와 패턴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 혹은 아티스트예요.” 자신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에도 그녀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대답을 한다. 간결하고 소박한 대답들이 오히려 ‘겸손’이라는 꾸밈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에 돌아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가 가진 생각에 가감 없는 것임을 곧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정직함은 작업에서 보여지는 총천연한 컬러의 충돌들처럼 ‘산뜻’하고 ‘짱짱’했다. 결국 나는 컬러와 패턴을 대체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이 둘이, 이에스더와 그녀의 작업을 드러내는 최고의 수식이었던 셈이다.


취재 및 글 : 오수미 / sueme212@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이에스더 작가

경계에 서있는 아티스트의 모호함

캠퍼스에 활기가 동하는 이 시점, 이에스더 디자이너도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프로필엔 ‘홍대 판화과 재학’이라는 한 줄이 덧붙여져 있다. “판화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오랜만에 학생이 된 것 같아서 생소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그래요.” 원래 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녀가 현재 대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직함은 그래픽 아티스트와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하다. 정체를 가리기 전에, 우선 그녀에게 광고디자인에서 ‘전향’한 이유를 물었다. “전향했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개인작업을 선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인작업을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학생 때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고요. 결국 협업이 필요한 광고보다는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도 얻게 된 것 같아요.” 그녀에게 타이틀은 말 그대로 타이틀일 뿐이다. “나는 평면과 입체 속에 존재하는 시각이미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요. 아트와 산업디자인,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까지 포함해서요.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이다, 일러스트다, 따로 떼어서 이야기를 하는 건 특정분야에 규정지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뭐라고 규정되는 건 중요하지 않은데 말이에요.” 이런 ‘모호함’이 그녀가 평면부터 설치까지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는 이유이자 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편견이라 할지라도, 어떤 작업을 본 후 작가의 개인적인 성향을 내 나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단순화된 이미지들과 화려한 색 때문인지 이에스더는 직선적이고 유쾌한, 그러면서도 ‘복잡한 것 딱 싫어할 것 같다’는 ‘쿨’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의 성향은 어떨까? “성격적인 면을 본다면 우유부단하다고 할 수도 있을 듯 해요. 하지만 취향은 굉장히 분명하고,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선호도 뚜렷한 편이죠. 성격과는 다르게 이런 성향이 아무래도 작품에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색에 매료된 그녀의 세계

앞서 말했듯이, 그녀의 주요한 테마는 바로 컬러. 그녀의 작업들은 형태는 단순한 반면, 색 자체가 주는 메시지에 최대한 집중한다. 그녀에게 색이 특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본능적’인 것이었다. “단순한 형태와 단색이 만났을 때, 혹은 배색 되었을 때 컬러의 충돌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정말 좋아요. 엄청난 양의 컬러나 화면 상에 잘 조합된 컬러들을 보면 몸에서 즐거운 화학반응이 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이 때문에 그림에서 색을 가장 중요시하고, 이 색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하지만 색을 고르는 기준에는 특별할 게 없다. 그녀의 눈이 그 기준이라면 기준. 잘 어울리는 것을 그녀의 ‘본능’대로 그 때 그 때 골라낸다.

창조의 영역에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더라도 나름의 스트레스는 있게 마련이다. 아니, 끊임없이 틀을 깨야 하는 일이기에 그 고통은 더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잠, 수영, 영화를 꼽는(외치는) 그녀. 작업의 실마리를 푸는 영감을 얻는 방법도 물었다. “영감을 어떻게 얻는지에 대해 많이들 물어봐요. 전 영감은 ‘관심의 축적’이라고 생각해요. 관심이 쌓여 내제되어 있던 것들이 취향이 되고, 다시 그것들이 작업할 때 영향을 주는 거죠. 어느 날 갑자기, 번개처럼 생각지도 않던 기발한 착상들이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녀에게도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그녀도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에서 어려움을 겪곤 한다고 토로한다. 누군가를 ‘시각적 이미지’로 설득해야 하고, 그 설득이 또한 계약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니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도 배울 점은 많다. “라코스테나 카스같은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은 기억에 남아요. 콜라보레이션 작업은 마케팅적인 접근방식과 그 규모 면에서 개인 작업에서 할 수 없는 시도가 가능하거든요.” 개인 작업에서는 ’10ℓ Plastic Garbage Bag’, ‘Escape’, 그리고 가장 최근 작업인 ‘X-X-X N°30’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모두 각각의 시리즈로 이루어진 개인 작업이다. 설치작업은 평면을 넘어서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물론, 고생스러움도 배가 되긴 한다.

가능하면 빠르게 작업에 몰입하는 것이 이에스더의 작업 방식이다. 그 후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작업을 지켜보는 과정을 꼭 거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런 ‘치고 빠지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눈에 익은 자신의 작업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낯설게 작업을 보다 보면 작품에 온전히 몰입할 때와는 또 다른 점이 보이거든요. 내 작업을 객관적으로 대하게 되는 거죠. 때론 나의 시각적 선호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봤을 때도 작업이 좋다면 ‘덜 나쁜 작업’이라고, 좋은 작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바라는 삶

제인 버킨, 세르즈 갱주브르, 이세이 미야케, 알렉산더 칼더, 부르노 무나리.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묻는 질문에 ‘아주 많다’며 돌아온 ‘명단’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배울 점을 찾게 되는 인물들은 화려하지 않다. 어머니의 성실함과 부지런함, 친구의 삶에 대한 태도들이 그녀를 성장하게 했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답게, 그녀는 매회 개인 작업을 할 때마다 겪는 변화와 새롭게 얻게 되는 생각들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그녀가 현재를 여전히 ‘과도기’로 여기는 이유다. 언젠가 그 과도기가 끝나도, 강렬한 색에 경도된 그녀의 작업은 여전히 총천연함을 유지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언제나 어려운 질문이에요. 나이가 들어도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것이 제 바람인데요, 이것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일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하고 싶어요.”

‘정직하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오래’하는 것이 자신의 신조라는 이에스더의 소박한 대답이다.

프로필

Education
2006 홍익대학교 광고디자인
2013~홍익대학교 판화과 재학

Exhibitions 2011_____ “X-X-X N°30 _BMM gallery / Seoul

2012_____ “Lacoste Live x Esther Lee” ArtWall Project, Lacoste Live /Seoul
2012_____ “Ornaments” 서울문화역 284, 서울
2011_____ CASS Art Collaboration_ “Cass Escape”, Club Ellui, Cass/Seoul
2011_____ “Red Gentlemen” Doosan Art Center /Seoul
2010_____ designMADE 2010 My Dear Object “Odd Object Factory KDCF gallery/
2010_____ designMADE 2010 My Dear Object “Odd Object Factory Gallery Avenuel / Seoul
2010_____ Le Bon Marche Christmas Special Exhibition, Le Bon Marche/ Paris
2010_____ “Dance with Me” Maison& Objet / Paris
2010_____”Intimate Moments”Dong-wha Univ & shanghai korean culture /Shanghai
2010_____ “Dance” / 10 colors 10 Designers of Seoul, dongdaemun history & culture Park design gallery, /Seoul
2009_____ “Fanimals” / KT olleh/ / Kumho Museum of Art/ Seoul
2009_____ “Share Your Love” / Design Cube Inchon Inernational Airport / Inchon
2009_____ “Mr.Bobo” / Tent London F.A.S.T(team) /London
2009_____GALLERY AVENUEL “Love is Rainbow” / Seoul
2009_____ ARTE FIERA in BOLOGNA Escape #2, #6,#8,#17 / Edizioni Corraini / Bologna
2008_____100% DESIGN TOKYO”Escape”/ Tokyo
2008_____LONDON DESIGNER’S BLOCK”Escape”/ London
2008_____”Planet,Diamonds,Super Glue” Doosan Art Center /Seoul
2008_____DESIGN CUBE _”Mr. Thingamabob” Hangaram Art Museum / Seoul
2007_____SEOUL DESIGN WEEK”88 Dive into Life” COEX / Seoul
2007_____FUORI SALONE SDF in MILAN _INTERNI / Milan
2006_____ Illupop “10ℓ Plastic Garbage Bag” 쌈지/ Seoul

Project
2012 “Save The Penguin” 먼싱웨어 /Descentekorear
2011 CJ 캘린더 2012 작업 / 워크룸
2011 가이드덴탈클리닉, 내부벽면작품제작 “LEGO”, “FACES” / le sixieme
2010 디자인메이드 “My Dear Object” 아이덴티티디렉팅 / 한국디자인공예재단
2010 LE BON MARCHE 백화점 아트상품및 전 /Le Bon Marche, Paris
2010 Viva! My Neighbors. 홈플러스 펜스 그래픽 /가양갤러리
2010 유니클로 t-shirt 코리아아티스트콜라보레이션, /유니클로
2009 디자인메이드 “My Perfect Neighbours” 비쥬얼아이덴티티/ 한국디자인문화재단
2009 상상마당 아트스퀘어 윈도우 및 벽면일러스트레이션 / KT&G
2007 “UN SEDICESIMO” 작가 /Edizioni Corraini, Italy
2007 서울디자인위크 Information sign system /서울시


이에스더 작가 홈페이지

영감을 주고 싶은 작가. 최혜련

영감을 주고 싶은 작가. 최혜련

그녀는 영감이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영감’이라는 말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가리켰다. 전시를 할 때 반드시 영감이 오게 된 단계를 표현하는 작품을 만든다고 했고, 그 사진이 전시회에서 설치됐던 ‘영감’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그녀는 드문드문 영감이 찾아왔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전시에서 꼭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소 무표정한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특히 표정이 매우 밝았다. 자신의 설치물 안을 구석구석 보려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고, 그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조금이라도 영감을 받는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수줍게 말하던 그녀. 영감을 주고 싶은 설치 미술 작가 최혜련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취재 및 글 : 강민혜 / suremine@naver.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최혜련 작가
Q.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주세요. 언제부터 미술을 좋아했나요.

A.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워낙 자연스러웠어요. 그림 잘 그리면 칭찬을 듣고 그런 것에 익숙했어요. 슬슬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결정했죠. 하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재밌고 잘하는 것을 했지만, 입시는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재수할 때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혼자 알아서 하는 시기가 생겼어요. 그때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 1년이 괴롭지만 좋았죠. 처음 대학에 가서는 허송세월만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2학년 때 좋은 작가를 만나게 됐어요. 드로잉이랑 설치를 하는 작가셨는데 드로잉 수업에서 드로잉을 한 적이 없어요. 서로에 대한 이야기만 하게 됐죠. 수업이 통째로 계속 이야기 하는 거였어요. 2시부터 8-10시까지 계속 이야기만 했어요. 그때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작품을 하는 것에 대한,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해 나아가야 할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시작 할 수 있었던 고마운 시기였죠.



Q. 작품에 등장하는 ‘퉁샹’, 퉁샹을 설정한 이유는?

A.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하는 게 너무 쑥스러웠어요. 솔직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내 얘기를 하는 것은 좋지만. 나를 완벽히 드러내기는 그래서 나인데 내가 아닌 것처럼 뭔가를 만드는 스타일. 그게 작업의 첫 시작이 됐어요. 자연스럽게 퉁샹을 만들게 됐어요.

Q. 퉁샹의 의미는?

A. 작품에 이야기는 있었지만 이름은 없었어요. 이름을 고민하는데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중국 소수민족이 기억났어요. 그들은 말은 있는데 글이 없어서 말로 모든 것을 전달해요. 역사도 생활의 지혜모두. 근데 중국 본토에 나가서 한문이라는 문자를 알게 되죠.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하나 더 배우게 되면서 혼란스러워 하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 그 이상의 언어를 알게 되면 소통이 더 자연스러워질지 혼란스러워질지 궁금하기도 했고. 만약에 그것이 있다면 어떤 방식이 될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생각해낸 퉁샹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또 많이 들어보지 않은 이름이잖아요. 발음도 재미있고. 퉁샹이라는 애는 사람도 동물도 아니에요. 엄지도 생각을 가지고 눈, 코, 입 이런 게 다 자아를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에요.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이 서로 싸우는 이야기로 시작돼요. 퉁샹 안에 있는 눈, 코, 입, 심장, 팔, 다리 등등이 싸워요. 발언이 시작되니깐 갈등이 생기게 되고요. 자아가 여러 개 있는 하나의 생명체가 퉁샹이에요. 눈도 코도 입도 다 따로 살기를 원하지만 같이 살아야만 하는 거죠. 서로 고민을 계속해서 해요. 그러다가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찾아 가자고 결정하고, 그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 계속 갈등이 생기는 이야기예요.

Q. 사실 작품이 친절하지는 않은데요. 작품을 보고 보는 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A. 저는 주로 그 마음을 제목으로 줘요. 평범한 제목이에요. 하지만 최소한의 의미는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목을 보고 보는 이들이 생각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해요.

Q. 퉁샹에 대해 생각하면 절망적이고 슬픈 생각이 들지만, 작품을 보면 따뜻한 느낌이 드는데요.

A. 제가 그 퉁샹의 세계로 간 거예요. 막상 갔다고 생각해보니, 제가 퉁샹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상 생각하니 어떤 지 떠오르지가 않고 허허벌판만 보였죠. 결말은 항상 퉁샹이 죽어 있어요. 마냥 기다리는 모습만 상상해요. 언젠가 만나겠지, 라는 희망을 가지고 갔지만 절망하죠. 그렇게 생각하니 그 세계에 갔을 때 내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설명을 하니깐 참 유치해지는데. 따뜻한 분위기를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게 좀 회의적인 편인 것 같아요. 솔직히. 그것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아요. 내가 만드는 무언가는 굉장히 완벽하고 완전하면 좋겠어요.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소통이 뭘까. 사실 그게 쉽지 않잖아요. 자아가 여러 개 있고 하나로 모여 있으니깐, 비교적 퉁샹은 소통이 완전한 존재잖아요. 완전히 소통이 되는 생명체를 만들고 싶은 바람에서 나온 것이 퉁샹이에요. 퉁샹이 말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말을 하지 않아도 퉁샹은 한 몸이니깐 소통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죠.”

Q.완벽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A. 완전한 것에 대해 사로잡혀 있었어요. 완전히 이해되고 소통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언어가 아닌 텔레파시 같은 고차원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고 싶었죠. 나도 모르는 무언가로 만들고 싶다. 하지만 거기서 또 막혔어요. 완벽하지 못한 내가 완벽한 걸 만들 수 없다, 라는 좌절감을 느꼈고, 작품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졌어요. 작업에 대한 애착이 사라지게 된거죠.

“저는 혼자 상상하고 공상하는 것을 좋아해요. 기승전결이 있는게 아니라 의식의 흐름이에요.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어. 라고 하는 것을 계속 합치는 형식이 되는 것 같아요. 상상의 나래를 엮어가는 스타일. 이야기가 엄청 많지는 않아요.”



Q. 회화보다 설치를 더 많이 하게 된 이유?

A. 내가 생각한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게 어느 순간 어렵다고 느꼈어요. 퉁샹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그걸 보는 이의 상상에 넘겨주고 저는 그 주변의 것들을 만들어 주는게 더 좋았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설치를 하게 된 순간부터는 드로잉을 해도 설치를 위한 전개도 같은 그림을 더 많이 그리더라구요. 하지만 작업의 내용을 더 잘표현 할 수 있으면 언제든지 다른 장르의 작업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들은 설치로 하기에 부적합한 것이 분명히 있거든요.

Q. 설치 미술의 매력은?

A. 장소 특정적인 작품이잖아요. 전시가 끝나면 사라지고, 그래서 똑같은 내용의 전시를 한번 더 한다고 해도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회화 작가들보다는 전시공간에 오래 머물러야 하니까 공간에 대한 애착도 생기고 사진이나 영상 같은 기록으로만 남길 수 있으니까 전시끝나고 나면 그 기간이 꿈같이 느껴지고 허망하기도 해요. 만든 것들을 분해하면 그것들은 작품으로서의 힘이 없어지고 쓰레기나 짐이 되죠. 그걸 알면서도 만드는 과정에서는 엄청나게 에너지를 쏟아 부어요. 그래야 상상 속의 세계이긴 하지만 그것을 표현한 설치는 공간 안에서 내가 만든 것과 타인이 직접 마주 할 수 있잖아요. 그점이 짜릿한거죠.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이미 내가 다른 세계 속에 들어가 있어서 나도 작품의 일부라는 느낌도 들고요. 이건 저 뿐만 아니라 관객 또한 마찬가지 일거라고 믿고 싶어요.
작품들은 정말 보잘것 없는 것들을 재료로 사용해요. 장난감, 빨대, 이쑤시개, 솜, 천 이런거요. 주위를 둘러보면 볼수 있는 것들. 흙을 굽거나 나무를 깎거나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것들을 사용하려고 해요. 그게 제 작업에서 느낄수 있는 최소한의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죠.


“왜 하는 거지 싶을 때가 있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과 가상의 감정들이 충돌하면서 희열을 느껴요. 설치 작가들은 대부분 이런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좀 심한 것 같고요. 우울함 속에서 제 존재가치를 찾는 느낌. 점점 제가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벗어나고 싶어졌죠. 전시가 끝나고 나면 고민을 하게 돼요. 이 물리적인 짐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되나. 퉁샹 작품을 그만하고 다른 것을 하기로 최근에 결심했거든요. 퉁샹 관련 설치했던 그 짐 같은 것을 어찌해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버리기로 결심했어요. 버리니깐 더 후련하고 오히려 애착이 생겼고요. 이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죠. 잠깐 찰나 빛났던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이게 또 설치의 매력 같고요.”

“예전에 전시 했던 공간이 전시 때만 잠깐 쓰이고 전시 끝나면 집을 허물고 다시 짓기로 한 곳이었어요. 그때의 집이 없어지면서 내가 전시했던 공간, 작품이 정말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감동적이었어요. 무너지는 과정까지 봤어야 했는데, 못봐서 아쉬워요.”



Q.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뭔가요.

A. 사실 보는 사람이 퉁샹이 뭔지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현실과는 다름을 구분하려고 사람들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재료들을 써요. 흔히 쓰는 방법이에요. 거리감두기. 가상의 뭔가를 만들기. 나와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나름의 다른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영감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요. 그게 저의 바람이에요. 보러 온 사람들이 뭔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Q. 전시를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고 좋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A. 가끔 보러와 준 분들께 이야기를 해요. 제가 공을 들였던 큰 줄기 이야기보다는 구석진 곳에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장난치는 것을 좋아해요. 일부러 낙서를 해놓거나 해요. 보는 이들은 그것을 보면서 엄청난 의미가 있나 하면서 보거든요. 그런 것을 보는 사람들을 보면 좋아요. 제가 그래서 일부러 그걸 넣어요. 특히 설치물은 공간을 이용해서 만드는 거잖아요. 보는 사람들이 공간 안에 들어와서 무언가를 보는 것도 너무 좋아요. 제가 초대하고 그것을 응해서 들어와 주셨구나. 오셔서 나름의 다르지만 다양한 영감들을 느끼고 가는 구나, 하는 그 과정이 너무 좋아요.

“말을 안 할 뿐인지 사람들은 각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의 영감을 확장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크고 장기적인 바람이에요.”

Q. 퉁샹을 그만 하시고 다른 것을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해주 실 수 있나요.

A. 요즘 새로운 이야기를 또 쓰고 있어요. 섹시하다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섹시한 사진을 모으고 있는데요. 그런 섹시한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주인공을 설정했는데, 그 주인공의 별명이 ‘새 녀’예요. 새가 되고 싶은 여자. 그런데 하다보니 결국은 퉁샹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그 여자가 일상의 새를 보고 생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근데 생각보다 힘드네요. 섹시한 여자를 그리고 싶은데 잘 그려지지가 않아요. 저한테 섹시한 여자가 너무 많아서 잘 안 그려지나 봐요. 하나로 표현을 하려니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여자가 ‘새 녀’다 하면서 그리는데 아직 잘 안 되는데 이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내 작품의 새 녀가 매력이 철철 넘쳤으면 좋겠는데.

Q. 너무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힘든 게 아닐까요.

A. 사실 제 작품이랑 섹시한 이미지는 전혀 안 어울리거든요. 근데 왜 이런 이미지에 빠져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설치와 묶어서 이뤄내고 싶은 것이 제 욕구예요.

Q. 어떻게 보면 독특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새 녀’를 완벽한 느낌의 생명체라고 느꼈을 수도 있겠네요.

A. 어쩌면 그런 거 같기도 해요. 대학 다닐 때 안 친한, 오히려 싫어하는 괴짜 같은 애가 있었어요. 지켜보기만 했는데 너무 싫은 애였어요. 새를 너무 좋아하는데, 새를 그리지는 않아요. 졸업하고 나니, 그 친구의 작품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고 걔가 왜 새를 좋아했지? 만 생각나는 거예요. 그 친구가 굉장히 마이웨이 스타일이었거든요. 남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이미지였죠. 쟤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그 아이는 사람들의 시선에 무심했던 거 같아요. 어쩌면 제가 바라는 것이었던 것도 같아요. 새 녀를 멋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저런 깡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 라는 생각을 한거죠.

Q. 어쩌면 퉁샹을 또 하나 만든 거네요.

A. 새 녀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피곤하다기 보다는, 즐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자기에게 집중해서 분석을 하게 되면 너무 피곤해지고. 사실 전 나에게 집중하는 게 너무 쑥스러워요. 퉁샹이 가진 욕구가 나인데. 이거 혜련이네~ 하는 게 너무 싫어요. 거리를 두고 싶지만 결국은 내 얘기이고, 내 얘기를 하지만 내 얘기가 아닌 척 하는 것이 계속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새 녀가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바라는 욕망이죠. 근데 그걸 아니라고 하고 싶으니깐 새 녀라는 것으로 또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성격상 자유로운 것을 만끽하지 못해요. 전 좀 회의적인 편이라서, 자유로울 욕망도 없고 애매한 것 같아요. 그 애매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요.

Q. 작가님께 영감을 많이 준 작품이 있나요.

A. 「플랫 랜드」라고 최초의 SF 소설을 읽었는데 성당 신부님이 쓴 소설이래요. 저는 퉁샹의 세계를 하나씩 설정할 때 엄청 재밌었어요. 나름의 연구를 했죠. 숫자를 잘 아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그런지, 저도 그렇게 되고 싶나 봐요. 가상의 세계에서는 제가 수학자가 돼서 그 숫자로 세계를 구상해내는 것처럼 만들었어요. 구성을 할 때 제 나름의 공식을 만들어서 차근차근 그 세계를 만들었죠. 근데 그 소설을 봤는데 정말 너무너무 디테일 한 거예요. 2차원 점, 선, 도형의 세계에 대해서 여러 법칙이 있는데 그것이 굉장히 디테일하고 완벽한 느낌이었어요. 뭔가를 만들려면 이 정도는 빠삭하게 만들어야지. 나도 저렇게 디테일하고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작품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도 좋아해요. 주인공이 자기가 찍었던 영화를 다 불태우는 데 어떤 사람이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을 진짜 좋아해요. 만약에 한 번도 모나리자를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모나리자는 예술일 수 없잖아요. 발견되지 않았으면 예술인지 알 수 없는거죠. 그 발견의 순간이, 우연히 파고들어 예술을 발견한 게 정말 멋있어요. 저도 제 작품을 다 태우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하고 있어요.”



Q. 작가님의 일상은 어떤가요.

A. 쉴 때는 아무것도 안해요. 사람도 안만나고 가만히 있는 것을 참 좋아해요. 작업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문득 떠오르면 하는 스타일이에요. 무기력하게 봤던 것들이 쌓여서 그게 딱 폭발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 상태까지 가만히 있다가 하게 되죠. 안 보이는 게 보이는 순간이 생기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영감이 저에겐 소중하고 크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평소에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어느날 그냥 계단으로 내려왔어요. 거기서 아주 큰 이민가방을 발견했어요. 저게 왜 저기 있을까. 혹시 살인사건인가. 이사하는 짐인가. 저 무식하고 큰 덩어리는 대체 뭘까. 아무 생각을 안 하니깐 오히려 사소한 것이 좀 더 큰 것이 되는 것 같아요. 쌓였던 것이 떠오르는 것이 좋아요. 뭔가 하려고 하면 오히려 망치게 되거든요. 자연스러운 영감을 받는 순간이 좋아요.

Q. 자신의 설치물의 성향. 특징을 말해 본다면.

A. 그림도 좋아하는데, 설치가 더 좋아요.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설치를 하면 과학자인척 하는 스타일이에요. 과학자 이미지만 차용하는 거죠. 약간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과학실을 세팅하고 이미지를 차용하죠. 제가 아는 30대 중반 남성 작가는 실제 비행물체를 카이스트 사람들과 협업해서 만들었어요. 카메라 작동으로 떨어지면서 찍어 내려오는 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냈죠.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그렇게 해내는 성향과 저는 완전히 반대죠. 저는 실체화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차용해서 만들어 내는 소극적인 방식이예요. 그리고 미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 또한 저의 성향이죠. 예전에는 작품이 20대 여자같다는 말을 듣기 싫어했어요. 저를 폄하하는 말로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굳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20대 여자이니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걸 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요즘에 섹시한 여자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든 것 같아요.

Q. 10년, 20년 후는.

A. 지금과 똑같은 상태일 것 같아요. 사실 20-3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그때도 지금처럼 고민하고 있을 것 같아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내 작품을 정말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만들어 내고 싶은 것을 바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림을 할 때는 정적인데 만드는 게 동적이라 그 순간 집중하는 게 참 좋아요. 재료 욕심이 많아서 재료를 구하러 다니는 것도 굉장히 힘들어요. 준비할 것도 많고. 저의 예측 범위를 넘는 순간이 많아서 즉흥적으로 기지를 발휘해야 되는 상황이 많아요. 안될 때를 대비해 몇 개를 더 사야 되고, 대안을 만들어야 되고 여러 생각이 필요해요. 견고해야 돼. 무너지면 안 돼. 지금 보다는 더 능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예전보다 지금이 능숙해 졌듯이. 지금보다 더 신속하게 더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좀 더 프로가 되고 싶은거죠. 다른 것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조명이 굉장히 화려하잖아요. 그 안의 미묘한 씁쓸함을 보는 사람들이 느끼면 좋겠어요. 기쁜 느낌이 있지만 슬픈 느낌이 있음을 공감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가 제가 바라는 거예요. 세련되지 않게 이야기를 많이 해요. 수식어도 많고, 하나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주변부만 이야기해요. 세련되게 정확히 하나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제 성향이 그런 것 같아요.”

소통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야 말로 소통을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열망이 있으니, 그것을 비극이라고 느끼는 것이니까. 필자가 본 최혜련 작가는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것에 대한 추구를 작가 내부에서 구축된 다른 세계로 치열하게 표현하고자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은 작가였다. 세상을 너무 좋게 만들고 싶고, 세상을 너무 이해하고 싶어서, 그래서 세상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작가. 계속 회의적이라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가장 희망을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은 굉장히 많은데 그것을 놓치고 있다고, 자신의 설치 작품에 가까이 다가와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이들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다는 그녀. 그녀가 치열하게 만들어낼, 그리고 지속될 그녀의 작품세계가 너무도 기대된다.

색색의 영혼으로 모노의 풍경을 창조하는 설박 작가

색색의 영혼으로 모노의 풍경을 창조한다, 설박

설박 작가를 알게 된 건 지인과 만나는 자리에 함께 하면서였다. 만나기 전부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들었던 터였다. 동양화를 하는 친구로, 인터넷을 통해 그녀의 작품을 보기도 했었고, 지인의 온라인 SNS를 통해 얼굴을 보기도 했었다. 그녀를 픽업하러 가는 길, 작품을 통해 미루어 짐작한 이미지의 여성이 머리 속에 뚜렷했다. 살짝이 어색한 첫 만남이 이루어진 차 안으로 올라탄 그녀의 모습은 나의 추리력을 비웃었다. 손톱에는 각기 다른 원색의 매니큐어가 발려 있었으며, 그녀가 들고 있는 가방에도 화려한 원색과 패턴이 가득했다. 한 눈에 봐도 그녀는 색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이런 그녀가 어떻게 흑백의 동양화를 그려내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뚜렷한 동양화가로써의 행보를 걷고 있고, 많은 곳에서 인정을 받으며 알려지는 중이다. 현재 ‘송은 아트큐브’에서 하는 개인 전시로 서울에 올라와 있는 설박 작가를 만나보았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설박 작가

어렸을 때, 아빠가 동양화를 수집해 집안 여기 저기 걸어두는 게 싫었다. 그 때는 무작정 ‘좀 더 서양틱하고, 컬러풀하면서, 캐릭터가 뚜렷한 그림을 걸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며 애정을 담아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한 적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내 자신이 그림을 보러 다니고 수집하고 싶은 나이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근래 강한 구매욕을 느꼈던 작품 2점이 전부 동양화의 매력을 기본으로 한 작품이었다. 문득 이러한 공통성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예전 인터뷰이였던 분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결국 원류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인터뷰 대상인 설박 작가의 작품은 또 다시 나를 자극한다. 먹과 붓이 아닌 ‘먹과 손’으로 태어난 그녀의 한국화 꼴라주는 신선한 오리엔탈리즘을 보여준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처음 그녀의 작품을 인터넷을 통해 봤을 때는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 못했었다. 동양화를 꼴라주로 풀어놓은 점이 흥미로울 뿐이었다. 이러한 무미건조했던 나의 감상을 바꿔 놓은 것은 2장의 사진이었다. 하나는, 그녀의 그림에 맞춘 멋진 디스플레이와 작품 프리젠테이션의 진수를 보여준 설박 작가의 베이징 개인전 모습이었다. 흔히 농담으로 말하는 ‘대륙의 스케일’은 커다란 화폭에 담은 그녀의 모노톤 풍경을 멋지게 끌어안았다. 광주 비엔날레에 방문했던 중국 ‘T art Center’ 관계자들이 그녀의 작품에 반해 초대한 전시였다. 당시 비엔날레 공연을 위해 초청됐던 중국 악기 연주자 분이 14m폭의 설박 작가의 작품을 당시 구입하기도 했다. 이 연주가가 그 엄청난 사이즈의 그림을 베이징 ‘王鵬 음악홀’에 걸어 놓은 사진이 바로 그 두 번째다. 이 두 장의 사진은 설박 작가의 그림을 하루라도 빨리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폈다.

실제로 본 그녀의 작품은 꽤나 큰 사이즈를 자랑했다. 무엇보다도 감히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감동의 여부를 왈가왈부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작품들이다. 모든 그림이 그렇지만, 그녀의 작품은 직접 보고 느끼는 감동이 유난히 다르다. 실제 풍경의 일부분이 담겨있는 듯한 크기 덕분에 더욱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근래에 내놓은 것은 대부분 산수화로 전시 타이틀은 ‘어떤 풍경’이다. 특별히 좋은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산 꼭대기나, 섬 고지대에 가서 직접 보며 그려내는 풍경이 아니다. 화선지에 담묵과 농묵을 먹이고 말라가는 과정에서 흘러내린 먹이 또 다시 스며들며, 특유의 동양적 멋을 만들어낸 종이를 탄생시킨다. 잘 말린 그 종이들은 그녀의 손에서 해체되어, 다시 마음 속 풍경으로 조합되며 재 탄생한다. 몇몇 작품들을 보면서 어렸을 때 가족여행 중에 보았던 잊혀진 풍경들이 되살아 나기까지 했다.

특별한 사진이나 풍경을 보지 않고 이런 작품들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라는 의문이 들다가도 그녀의 성장 과정을 고려하면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 문인화가이신 시원 박태후 선생님을 아버지로 둔 그녀는, 우리가 미디어에서 보았던 전라도 나주 ‘죽설헌’에 사는 장본인이다. (‘죽설헌’은 박태후 선생님 부부가 40년 넘게 직접 조경을 하며 가꾸어온 집과 정원으로, 여러 종의 유실수와 과실수, 화초, 대나무 숲이 어우러져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식 정원으로 평가 받아 많은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다.) 일반인들에겐 ‘the 죽설헌’인 곳이, 그녀에겐 ‘그냥 집’인 것이다. 어릴 적부터 집 밖으로 나온 그녀를 둘러싼 자연과 동양 감성이 물씬 베어 있는 풍광을 상상하면, 그녀가 마음으로 풍경을 그려낸다고 해도 수긍이 가는 성장 배경이다. 그렇게 그녀 안에 포개져 간 풍경들이 그녀 마음 한 켠에 누적되어 그녀만의 죽설헌이 있을 것이다. 그 일부분이 그녀의 작품으로 피어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명 문인화가이자 동종 업계의 대선배이신 아버지의 그늘이 부담되고 싫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 장점을 감사할 줄 아는 나이가 된 설박 작가다. 그녀의 가족 배경 덕분에 인터뷰에서 흔히 들어왔던 예술계의 입문하게 된 이야기는 그 누구보다 싱거웠다. 집에서 작업을 하시는 아버지, 그 밑에 제자들 그리고 아버지 지인들을 보면서 어린 그녀의 눈에 비췄을 세상이 어땠을지 조금은 상상이 간다.

“당연히 저도 동양화를 할 거라고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생각했어요. 아버지도 딸이 같은 길을 가는 것에 대해서 좋아하셨구요. 언니도 예술 학교를 다니며 자연히 코스를 밟고 있었고, 저도 언니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갔어요. 그렇게 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구요. 오히려 그림을 그만두고 싶다고 느낀 건 한국화를 전공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였어요. 그림을 그만두겠다고 집에 폭탄 선언을 하고 방황하다 캐나다로 갔어요. 캐나다에서 보낸 초기 2-3달은 너무나 좋았어요. 웃긴 건 그림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을 6개월도 못 버티겠더라구요.”

그렇게 그녀는 미련 없이 남들의 로망인 캐나다 어학연수를 접어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은 그림을 하는 게 즐거운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린 이상, 다시 시작할 준비가 필요했다. 그녀는 ‘창작 스튜디오’ 입주를 목표로 삼았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이 기간에 그녀의 ‘꼴라주 작품’이 탄생했다. 광주 대동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며 다른 작가들과 교류를 하고 작품활동을 하며, 작가 설박이 즐거움을 느끼는 활동 둥지를 만들었다. 꼴라주 기법의 산수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어느덧 자신의 연작이 되어갔다.

그녀의 작품들을 요리조리 뜯어보면 이런 산수화 안에 꼴라주 방식으로 많은 산들이 연결되어 산맥을 만들어내고, 구비구비 이어진 풍광들이 완성됐다는 것이 신기하다. 무엇보다 이런 크기의 작품들을 거침없이 해낸다는 점도 놀랍다. 특히 (이미 중국으로 가버린) 14미터 폭의 작품은 그 숫자만 들어도 입이 벌어진다. 다 완성된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은 작업실에서 홀로 그 작업을 만들어냈을 작업 과정을 상상하면 그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제 장점일지도 모르는데.. 전 별로 겁이 없어요. 그냥 해볼까 하면 앞뒤 생각 안하고 우선 하고 보는 타입이에요. 작품들이 제 키보다 큰 경우도 많아서 (참고로 그녀는 나름 장신이다.) 사다리에 올라가서 하기도 하는데… 이런 걸 하려면 이런 어려움이 있겠지? 라는 생각을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구구절절한 고생담도 자신을 미화시키는 묘사도 없이 그냥 자신은 그렇다고 얘기해버리고 만다. (문득, 한국에서 가장 폭이 넓은 꼴라주 개인 작품의 크기가 몇일까 궁금해졌다. 잘 하면 한국 기네스 한 구석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을까?) 앞 뒤 상황을 고려하고,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를 상황의 대처 시나리오까지 생각하는 나란 사람으로선 믿기 힘들만큼 담백한 대답이다.

산과 섬이 굽이굽이 차 있는 그녀의 작품 안에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또 다른 앵글들이 나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즘 그녀는 최대한 빼는 여백의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예전 작품을 보다가 곧 바로 최근 작품을 보게 되면 그 반전의 차이가 너무 커서 보는 사람으로써 배고픔이 느껴질 정도다. 이런 그녀를 보고 있자면 자유분방함은 입으로 떠벌리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 것임을 느낀다. 전통 기법을 중시하는 동양화 세계에서 붓을 쓰지 않는 것부터 그렇다. 화선지를 손으로 찢어 조각조각 내어 ‘붙이고, 덧대고’하는 것 역시 net세상 표현으로 동양화 계에선 ‘청년 작가의 패기’로 묘사할 수 있겠다. 붓으로 문인화를 그리는 아버지를 지켜 보며 성장한 그녀로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더불어 ‘2m 40cm 높이의 작품을 해볼까’ 라고 생각하고, 그게 마음에 들어 복수 연작을 뽑아내는 배포는 앞으로 그녀에게 좋은 엔진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녀의 영혼을 물들인 자연의 색부터 문인화가의 딸로 성장하며 그녀에게 배였을 한국화의 색깔들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색색의 컬러감이 베어있는 그녀의 스타일까지, 누구보다 색으로 물든 설박 작가는 흑과 백을 통해서 그녀 자신을 내보이고 있다. 이런 모순이 설박 작가를 흥미롭게 한다. 현재 삼성동 ‘송은 아트 큐브’에서 그녀의 초대전이 한창이다. 모든 작품을 볼 수는 없지만, 앞서 언급되었던 2m 44cm의 연작 시리즈를 멋지게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다. 전시는 2월까지 볼 수 있다.

전시 안내 : http://www.songeunartspace.org/programs/user/cube/cube_ex_c_ex.asp

설박 개인전: 어떤 풍경
2013. 1. 11- 2. 26
관람시간
월-금요일 9:00am~6:30pm, 주말, 공휴일 휴관 / 무료관람
(2월은 토, 일 개관 13:00-18:00)

Delicate Normal, ‘비올레따그리조’ 박상국

Delicate Normal, ‘비올레따그리조’ 박상국

2012년에 했던 마지막 인터뷰였다. 꽤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인터뷰를 게재하게 되었지만, 박상국 씨의 인터뷰로 2012년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것은 어쩌면 괜찮은 마침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박상국씨는 자신의 브랜드를 걸고 가방을 디자인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 그의 브랜드 VIOLETTA GRIGIO(www.violettagrigio.com)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이다. 디자이너이자, 제작 책임자이며, 브랜드 디렉터이자 홈페이지 운영자이며, 경리이자 회사 사장이다.

아티스트들과 만나면서, 자주 화제에 오르내리는 것은 ‘안정적인 생계’ 혹은 자신이 창조해낸 디자인의 ‘상업화’ 그리고 그 일을 브랜드화하고 운영해나가는 것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이다. 그들의 재능을 보면서, 앞으로 펼쳐진 그들의 현실과 예술이 공존할 수 있는 케이스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고 응원하는 마음에서 이 인터뷰는 시작됐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박상국 작가 / 먼슬리맨션

작업 중 알아볼 게 있어서 “또” 열어버린 인터넷 창에서 마음에 드는 가방을 보게 됐다. 빅백의 사이즈 감과 컬러풀한 색감이 눈에 들어와 클릭한 가방은 나를 “또” 샛길로 빠지게 했다. 가방 디자인은 미니멀하지만, 디테일과 컬러를 쓰는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자세히 가방 사양을 읽어보니, 가죽 가방이 아니고 무게감도 훨씬 덜 하지만, 외관상 보이는 텍스처가 고급스러운 것 같아 도대체 이 가방은 어디 것인가 궁금하게 됐다. ‘비올레따그리조’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름에 다시 샛길로 들어서 검색을 해보니, 이 가방은 개인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였다. 마침 디자이너의 블로그를 발견하여 들어간 그 곳엔, 그가 처음 ‘비올레따그리조’를 만들게 된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발자취가 허심탄회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순간부터 블로그는 시작된다. 그 뒤로 회사 이름을 고민하고, CI를 만들어보고, 마음에 드는 원단을 찾으러 방황하고 첫 샘플을 어머니의 손바느질과 스테이플러로 만들어본 날, 자금 부족에 아쉬움이 남는 순간과 제작 공장을 찾아 헤매고, 원하는 디자인이 구현되어 첫 가방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짤막짤막하게 박상국 디자이너 특유의 유머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한 청년 디자이너의 창업기일지도 모른다. 박상국씨와 그의 브랜드가 나의 흥미를 잡아 끈 이유는 별도의 홍보나 마케팅 활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품이 꽤나 팔리고 있고, 특히 외국 잡지에 실리거나 혹은 촬영협찬 요청이 들어오는 점이다. 신사동에 판매 위탁을 했던 상점을 통해 구매를 한 일본, 홍콩, 중국 등 외국인 구매자들도 많다. 또 한가지는, ‘습식폴리우레탄’이라는 특이한 소재로 가방을 제작했다는 점이다. 빅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죽으로 만든 빅백은 무게감 때문에 많은 물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는, 부피와 상충된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하지만 ‘비올레따그리조’ 가방은 특별한 소재를 이용해, 색다른 특색과 아이덴티티를 부여한 점이 여타 다른 브랜드 가방을 제치고 경쟁 속에서 자리잡게 했다. 아직은 신진 디자이너의 신생 브랜드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진 않지만, ‘비올레따그리조’는 얼마 전 두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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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따그리조(VIOLETTA GRIGIO).. 이탈리아어인데 이렇게 쓰는 게 문법적으로 맞는지 아닌지도 몰라요. 원래 제가 원했던 이미지가 ‘보라빛회색’이예요. 그런 느낌의 제품을 하고 싶어서 했는데, 영어로 하다 보니 너무 직접적이어서, 구글 번역기에 넣고 온 나라 언어를 다 돌려봤죠. 걔 중에 이탈리아어가 제일 어감이 좋더라구요.”

본래 제품디자인을 전공한 박상국씨는는 핸드폰 디자인을 준비해오던 중 터치폰의 등장으로 꿈을 접었다. 디자인이 좋아서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던 그였건만, 점점 디자인 본연의 가치보다 말로 푸는 마케팅 비중이 커지는 풍조와 정답이 없는 디자인의 호불호가 싫어지던 무렵, K항공사에 가벼운 마음으로 내본 입사지원이 최종합격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차라리 정답이 있는 곳으로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디자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난 그 곳은 너무나 정답 속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곳이었다. 7개월을 채우고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형태로 승부할 수 있는 걸 찾아보니, 자동차랑 패션 쪽이 자신에게 선택으로 남았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구두였다.

“원래 구두를 먼저 하려 했는데, 제가 여자 힐을 신어본 적이 없어서요… 주위에서 만류도 많고. 그래서 가방을 먼저 시작하게 됐죠. 학창시절부터 모더니즘, 미니멀리즘을 좋아했어요. 가방을 무척 좋아했는데 마음에 드는 가방을 찾기가 힘들어서, 심지어 3개국을 다니면서 찾았는데 없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 게 쌓이다 보니 가방을 시작했는데… 제 성향이 극단적이어서 아주 심플하거나 아주 화려하거나에요. 장식보다 형태가 화려한 걸 좋아해요. 처음이니까 우선 심플하게 가자고 결정했죠.

섬세한 까칠한..식의 제가 원하는 의미가 모두 포함된 델리케이트라는 단어를 붙여서 컨셉도 델리케이트 노말이에요. 20대 초반에서 30대 직장인.. 명품 가방도 있지만, 특이한 가방도 갖고 싶은 사람을 타겟으로.. 스케치를 그려놓고 컨셉을 고려해가면서 계속 가지치기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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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비올레따그리조’ 상품 라인은 그리지오/비올라/네로 3가지로 나뉘어 있다. ‘그리조’ 라인에서 습식폴리우레탄으로 제작된 스테디 상품들이 포진하고 있다. ‘비올라’는 상위 여성 라인이 될 예정으로 아직 상품이 소개되지 않았고, ‘네로’는 ‘그리조’라인과 함께 처음부터 같이 진행되어 왔던 라인이지만 사용하던 원단 가죽들이 더 이상 한국에 수입되지 않아 보류 중에 있다. 가방을 좋아하는 그가 자신이 들고 다니고 싶은 가방을 우선으로 만들다 보니, 모델도 디자이너 자신이 되어 가방의 사이즈감도 남성 자신의 사이즈를 기준으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박상국 디자이너 가방을 구매하는 남녀 고객의 비율을 2:8로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습식폴리우레탄의 강렬하면서도, 고운 컬러감과 세련된 빅백 디자인은 오히려 여성 빅백 매니아들을 끌어당겼다.

“처음 시작은 남자 가방이었어요. 근데.. 망했죠..(웃음) 저한텐 사실 큰 문제에요. 남자 가방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제 성향이 여성스러움이 있는건지, 남자분보다 여자분들이 훨씬 많이 구매하시더라구요. 처음에 강조를 했어요 ‘남자 가방입니다~’ 근데 지금은 ‘공용입니다~’ 라고 하죠. 처음에 눈에 띄게 하려고 핑크색이랑 노란색을 넣었는데 그랬더니 여성분들이 더 좋아하시는 듯해요. 남자가방으로 만든 거여서 5킬로 추를 달아서 퀄러티 체크를 하는데, 의외로 여성분들이 많이 사시고, 제가 예상하는 것보다 여성분들은 훨씬 더 많이 뭘 넣고 다니시더라구요. 그래서 두 세번 AS가 들어왔었는데, 여자분들이 그렇게까지 무겁게 들고 다니시는지 몰랐어요. 지금은 그 경험을 살려서 가방을 업그레이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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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박상국씨의 꿈은 연봉 높은 월급쟁이 디자이너였다고 한다. 그만큼 사업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가방을 만들어온 사람도 아니었다. 디자인을 떠나 일반 사무직을 했던 몇 개월 동안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돌아와 과감히 자신의 사업을 하기로, 그것도 잘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가방을 하기로 하면서 기꺼이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다.

“제 브랜드만의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제 스스로 미니멀한걸 좋아하는데 소재까지 비슷한 걸 사용해버리면 변별력이 없을 거 같아서 소재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많은 분들이 가죽이라고 아시는데, 저는 가죽이 아닌 것 같이 보여서 이 소재를 선택했거든요. 가끔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어요. 가죽이 아니라는게. 처음에는 가죽이 아니고, 색감도 이쁘고, 촉감도 좋구나..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잘 받아들이겠구나.. 했는데 주위 디자이너들이 가죽을 사용하고 그러니까 피해의식 같은 게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이 소재를 계량하느라 바빠서요 그런걸 느낄 새가 없어요. 이 원단을 살려야 하니까, 부끄러워할 틈은 없는데… 그래도 언젠가 가죽으로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스타일리쉬한 정장에 컨템퍼러리하게 들 수 있는 라인이고, 가죽은 좀 더 다른 느낌으로 하겠죠.”

마음에 드는 소재를 찾아내기까지 신설동 원단 가게를 2달동안 돌아다녔다. 본인 말을 빌리자면 ‘무식한 질문’도 많이 하고 다녔단다.

“가죽을 계속 찾아 다녔는데 머리에 딱 오는 가죽이 없고, 우연히 폴리습식우레탄 소재를 발견하고 나서 고민이 사라졌죠. 원래 가방용 소재가 아니고 앨범이나 다이어리 커버용이어서 가방으로 불가능한건데, 추가 공정을 거쳐서 가방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됐어요. 보통 가방을 보면 와이어가 들어가서 형태를 잡는데 그게 제 가방에는 너무 굵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일이 손으로 접고 붙이고 테이핑하는, 전부다 손으로 잡아서 완성해야 나오는 가방이에요. 한 마디로 만들기 아주 까탈스러운 가방이죠.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낼 수 있는 공장을 찾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카피가 나오는 것까지 고려한 공정이기 때문에, 왠만한 정성으로는 같은 퀄러티로 짝퉁이 나오긴 힘들어요.”

실제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그리조’라인의 빅백은 이미 카피가 나왔다. 언젠가 박상국 디자이너가 블로그에 ‘내 가방도 시간이 흐르면 카피가 나오는 날이 있을까’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에 의해 카피 제품을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격이 자신의 가방에 비해 무척 낮았지만 동시에 퀄러티도 무척 낮았다. 위기감도 들었지만 짝퉁이라도 너무 신경을 안 쓴거 같아 섭섭하기까지 했단다.

자본주의 국가의 영세업자. 힘 없는 영세디자이너 브랜드

가끔 박상국 디자이너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말이다. 가장 크게는 자본의 한계 그리고 영세 브랜드로써 욕심날만한 판매 채널의 장벽이다. 특히 신진 디자이너를 지원한다는 명분과 함께 그들의 제품으로 채워진 멀티 샵을 컨셉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모 판매처에선 ‘비올레따그리조’ 가방 입점을 거절하고 나서, 얼마 후 카피 가방을 입점시켰다. 물론 퀄러티나 완성도 면에서 다르긴 해도, 개인 디자이너로써는 상처가, 힘없는 영세 디자이너 브랜드로써 화가 나지 않는 일일 수 없다.

2,30대 청년들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자본이 빡빡하기 마련이다. 녹록치 않은 자금 능력은 많은 아쉬움을 키워내지만 그만큼의 절실함이 에너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비올레따그리조’ 역시 한번의 몇 백 개의 가방을 생산해 낸다거나, 동시에 다른 라인의 신제품을 척척 선보이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알려져 이 상황이 감당이 되지 않을 때도 많다고 한다. 제품이 순식간에 품절이 되도, 다시 해당 제품에 물량을 채우기까지는 일반 브랜드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덕분에 새로운 제품에 쏟아야 할 에너지가 제작/물량 관리로 분산된다.

“브랜드 관리를 고려하는 생산과 판매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요, 제 입장에서는. 소량으로 조금씩 뽑다 보니 단가 맞추기도 힘들고, 현재 가방도 제가 원하는 가격보다 높아요. 십 만원 중반 대를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팔면 결국 운영을 하는데 탈이 나더라구요.”

‘내가 가방 하나를 팔면 다른 가방 하나를 만들 돈과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을 돈은 나와야 하지 않겠나.’ 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블로그에 써있는 글귀는 그의 심경을 잘 대변해 준다. 수익을 떠나 운영면에서 디자인, 제작은 자신이 기꺼이 원했던 일이더라도, 유통을 비롯해 손에 익지 않은 웹사이트 제작과 운영, 제품촬영까지 모든 일을 본인이 도맡아 하고, 그 모든 결정을 홀로 해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다.

“저는 이걸 1-2년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저는 브랜드로 만들려고 멀리 보고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래서 판매 채널을 늘리고 하는데 아직 주력하고 싶지 않아요.”

박상국씨는 브랜딩 관리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공부해온 터라, 왠만큼 좋은 제안이나 판매 채널도 브랜딩을 고려해서 쉽사리 결정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철옹성이다. 그리고 가방에 대한 자기 소신 그리고 미래의 자신에 대해 원하는 부분도 뚜렷하다.

[찾기 어려운데 사기는 쉬운 가방, 부담없고, 튀진 않는데, 싼티 나지 않고, 가방만 놓고 보면 예쁜 가방]

“가방은 사람보다 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가방 개별로 봤을 때 멋진 것이 좋아요. 가능하면 디테일과 장식을 줄여서 멋진 가방을 만들려고 해요. 앞으로도 박상국은 빼고 브랜드로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현재 하고 있는 잡다한 일들을 하나씩 내려 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궁극적으로는 브랜드 디렉터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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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홀로 일어서고자 하는 청년 창업인들과 디자이너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리스크를 많이 고려하고, 브랜드가 정말 많기 때문에 이젠 차별성을 갖기가 정~말 힘들어요. 예를 들어서, 어떤 가방을 봤는데 그런 가방이 하고 싶어서, 좋아서 시작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에 변별력이 없고, 제작가격을 맞추는 부분에선, 막상 닥쳐보기 전까지 잘 몰라서 그냥 우선 시작해보는 경우를 많이 봐요. 인터넷으로 판매하지 뭐.. 하고 쉽게 말씀하시는데 홍보가 굉장히 중요하구요. 타겟팅 등을 명확하게 하고… 우선 재미는 있으니까요. ㅎㅎ

정말 생각하지도 못하는 일이 터져요. 방법이 없어요 그냥 터지면 그때 막아야지. 멘붕 몇 번 겪으면, 견딜 수 있는 충격의 강도가 점점 세져요. (후훗)”

올해에는 경기가 더 안 좋아질거라는 얘기가 무성하다. 기업들은 또 다시 인원감축에 들어갔고, 퇴사지원을 받고 있다. 올해에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혼돈스러워 할 것이다. 누군가는 재능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자본이 넉넉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없어도 있어보이고 싶어하고, 있는 사람은 더 있어보이고 싶어하는 세상에서, 박상국씨는 가방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도 허세나 허풍이 없다. 몰랐던 것은 몰랐었다고 기록하고, 어려운 대로 해나가고 있는 현실까지도 터 놓는다. 몇 번 간판 내릴 뻔 했다지만, 투자를 하겠다는 투자자의 제안은 자유롭게 일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거절했다. 너무나 해보고 싶은 여성 상위라인 ‘비올라’도 남아있으니, 앞으로도 그는 열심히 달릴 것 같다. 어김없이 멘붕이 오고, 간판을 내릴 것 같은 위기들이 올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그어 놓은 브랜드의 그림을 지키며 살아남아 모두가 알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런 소박하고 건강한 성공 신화들이 있어야 경제는 어려워도 우리 모두 힘내서 살아가지 않겠나.. 2013년에도 ‘비올레따그리조’의 깔끔하고, 깔고운 신상을 기대한다.

박상국 작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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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싶은, 감성 싱어송라이터 강아솔

 

‘겨를 없이 여기까지 오느라 손 한 뼘의 곁도 내어주지 못해 불안한 그대여, 나 그대 대단치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오.’

담담한 목소리, 서정적인 가사. 나는 ‘그대에게’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그 깊은 목소리가 마치 나에게 속삭이며 엄청나게 위로를 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깜짝 놀랐다. 이 여인은 누구지? 하고 말이다.
그 후 나는 그녀의 음악들을 자주 들었고, 주변에 나는 자동적으로 ‘강아솔’ 들어보세요. 라는 말을 했다.
그러다 홍대에서 공연을 보러 갈 기회가 생겼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됐다.
순전히 ‘팬心’에서 나온 인터뷰라고 할 수 있다.

 

취재 및 글 : 강민혜 / suremine@naver.com
편집 : Avant-in

 

 

“음악은 진짜 좋아했었어요. 막연히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하셨어요. ‘너희들은 공부하면서 해가 뜬 걸 본 적이 있니.’ 그때는 이해를 못했어요.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고, 작곡을 하고 싶어서 실용음악학원을 다녔는데 그때 숙제를 하고 있는데 해가 뜨는 걸 봤죠.
그 순간 느꼈어요. 제가 음악을 진짜 좋아하나보다. 그때 고등학교 선생님이 떠오르면서요.” 

 

 Q. 어렸을 때 이야기 해주세요. 음악을 하면서 살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A. 바이올린을 했어요. 중학생 때 우연히 사촌언니가 오보에 연주를 하시고 오케스트라를 했었는데,
사촌언니 연주를 보고 바이올린을 너무 하고 싶어서 엄마 졸라서 배웠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재밌지 않다고 생각하다가 저도 오케스트라를 해볼까 하고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게 됐었어요.
근데 그때 굉장히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클래식을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오케스트라 가서 하다 보니
클래식에 관심이 많아지고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2명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다 음악을 잘했어요.
한 친구는 노래 잘 부르고, 다른 한 친구는 피아노 잘 치는 친구였어요. 3명이서 친하고 음악실에 놀러 다니면서 더 친해졌어요.
친구들과 더 잘 어울리고 싶어서 저도 음악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한 명이 노래를 잘하고, 다른 한 명은 피아노를 잘하니 나는 작곡을 열심히 배워봐야겠다.
나는 음악할거야. 작곡 배워서 진짜 작곡을 잘 할 거야. 라고 단순히 생각했어요.
나는 대학가면 작곡을 배울 거야, 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학생활을 하면서 실용음악학원도 다녔던 것 같아요.

 

 Q. 그런데 왜 처음에 음악이 아닌 유아교육과로 전공을 택하신 건가요.  

A. 그때는 음악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그만큼의 용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아교육과로 택했어요.
현실적인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1학년 때는 너무 안 맞아서 자퇴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론 현실적인 직업이니깐 놓을 수는 없었어요.
학교 다니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다가 2학년 때 영어영문학과를 복수전공을 하게 됐는데 너무 좋았어요.
어떻게 책을 읽는지를 배우게 됐던 것 같아요. 너무 재밌었어요. 계속 수업을 듣고 싶었어요.
그리고 4학년 때 유아교육과 실습 나갔을 때 너무 좋았어요. 아이는 가장 순수한 존재잖아요. 하나도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말들.
너무 행복했어요. 중단을 안 하고 한 것은 굉장히 좋았어요. 힘든 적이 많았는데, 열정이 없어 보일까봐 걱정했는데
이런 것들이 저의 감성을 키워주고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역시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다며, 강아솔은 자신의 대학시절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유아교육과를 다닌 것도 그러면서 문학 수업을 들은 것도 결국엔 다 지금 음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깊이 있고 매력적인 감성은 어쩌면, 현실적인 대안으로 택했던 대학생활에서 더욱 더 튼튼하게 다져진 것이 아닐까.

 

 Q.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음악을 놓치지 않고 따로 계속 배운 것이네요. 

A. 학교를 다니면서, 클래식 작곡으로 학원을 다녔어요. 언젠가는 클래식 작곡과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대로 배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때 감사하게도 너무 좋은 클래식 작곡 선생님을 만났고, 재밌게 음악을 배울 수 있었어요.
‘어느 봄날’이 그때 만든 곡이에요.

 

 Q. 어떻게 보면, 그때가 학교생활은 지속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망도 계속 갖고 있던 것이니까
가장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였을 수 있겠네요.

A. 네. 그때가 가장 힘들었었어요. 클래식 작곡 학원을 배우다가,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던 시기죠.
그래서 학사편입을 준비했는데, 처음엔 편입에 대한 결과가 안 좋았어요.
유재하 경연대회도 나갔는데 2차 때 피아노를 치다가 실수를 해서 트라우마도 생겼고, 그때 되게 막막하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데, 어떻게 내가 어떻게 해야 음악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던 시기였어요.
‘그때는 모든 게 다 끝났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고향이 제주도인데, 그때 그래서 다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제주도에 무작정 내려갔어요.

 

 “그렇게 무작정 제주도에 내려가서 가족과 함께 먹는 첫 밥상에서, 아빠가 말씀하셨어요. ‘아솔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다.’
저는 아버지가 제가 음악을 하는 걸 싫어하시는 줄 알았거든요. 깜짝 놀랐어요. 그때 너무 감동을 받고 감사했던 것 같아요.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걸 듣고 너무 감사했지만, 그때까진 제가 누군가에게 제 음악에 대해 객관적인 평을 들은 적이 없어서,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음악에 대한 마음을 많이 접은 상태였죠.”

 

Q.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신 건가요.  

A. 마음은 많이 정돈 된 시기였어요. 제주도에서 안정감을 찾았지만, 음악에 대한 목표는 사라졌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된 상황에서 갑자기 영화 일을 하는 사촌언니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혹시 영화음악을 하고 싶다면, 음악을 보내보라는 것이었어요.
전에 만들었던 노래를 보냈어요.. 연락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중에 한 명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때 연극영화과 대학원생 작품 음악을 맞게 됐는데 너무 기뻤어요. 마음을 놓고 있는 시기였는데 기회가 온 것이죠.
컴퓨터 안 쓰고 실제 연주도 다하고 정말 열심히 만들었는데 굉장히 뿌듯했어요.
몇 주 후에 유아교육과 교수님에게도 전화가 왔어요. 동요를 좀 만들 수 있겠냐고.
교수님께도 음악을 하겠다는 어필을 계속 했더니 그게 기억에 남았나 봐요.
동요일은 그쪽에서도 마음에 든다고 해서, 지금도 계속 하고 있어요.

 

더 이상 음악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으니, 기회가 자꾸 오는 것이 신기하고 너무 감사했다고
그때를 떠올리며 강아솔은 약간은 떨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마치 음악을 그만하면 안 된다고 그녀는 계속해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접었던 음악에 대한 열망을 그때 다시 꺼낸 것이다.

 

 “안하려고 하고 마음을 놓으니, 자꾸 기회가 오더라고요.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그때 제가 계속 음악을 해야겠다고 진정으로 결심하게 됐어요.
그러다 제가 만들어 온 자작곡들을 앨범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죠.
사람들에게 그냥 지인들에게 선물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만든 거였어요.
그래서 무작정 친구들에게 줄 CD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스튜디오에 갔어요.”

 

지인들에게 선물 할 CD를 만들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찾은 스튜디오에서 그녀는 또 다른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던 나도 영화를 한 편 보는 느낌이었다. 지인들에게 나누어 줄 노래 선물이었던 앨범이 지금의 강아솔의 앨범이라니,
감동적이지 않은가.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운명적으로 앨범을 만드는 기회를 얻게 된다.

 

 “지인들에게 선물 할 CD 만들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갔어요. 제 노래를 제가 부른 적은 없었어요.
근데 스튜디오 사장님이 제 노래를 처음 부른걸 보시고 되게 맘에 들어 하셨어요. 작업 제대로 할 생각 없냐고 하셨죠.
저는 노래 부르는 사람 아니라고 괜찮다고 첨엔 거절했어요. 근데 다시 연락이 또 왔어요.
제주소년 블루스 사장님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던 데모를 우연히 들으셔서 음반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다고요.
투자해 주시기로 한거죠. 기왕 이렇게 된 거 만들어 보기라도 할 까, 해서 만들어진 앨범이 지금의 앨범이에요.
상업적인 의도 없이 그냥 단순히 내기만 하는 기회니 너무 감사했죠.”

 

 Q. 지금 대학원에 다니고 계시죠. 

A. 저는 학교 의존도가 있는 사람인거 같아요. 음악에 있어서 멘토도 만나고 수업도 듣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도 했고,
좀 더 음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싶어서 음악 전공으로 꼭 학교를 다니고 싶었어요.
이정도면 잘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걸 막기 위해, 공식적인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고 싶었어요.
또 영상 음악 쪽에도 관심이 많아서 지금 다니는 대학을 선택했고, 지금 다니게 됐어요.

 

Q. 음악을 하게 된 과정에서, 많은 좋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아솔 씨를 도와주셨다는 느낌이 들어요.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A. EBS 헬로 루키에 나갔을 때 심사위원 중 한 분이 네이버 온스테이지 일하시는 분이셨는데, 저를 기억해 주셨어요.
그때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소개가 됐어요. 덕분에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 때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저를 알릴 수 있게 됐어요.
제가 혼자 조용조용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감사했죠. 네이버 블로그에 리뷰를 써주신 분도 있었어요.
그 분도 우연히 온스테이 팀 분의 블로그에서 음악을 듣고 리뷰를 써 주셨어요. 음악을 듣고 좋아서 CD도 구입했다고.
주변에 좋은 분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다 말하기 힘들정도로 많은 분들이 계셨어요. 매순간이 꿈같고 너무도 감사한 순간이었어요.
좋으신 분들이 저의 음악을 주변에 많이 알려주셨죠.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분들도 많았구요.
그래서 점차 조금씩 같이 공연도 하게 되고, 모든 과정이 꿈같고 신기해요. 제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생긴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죠.

 

Q. 아솔 씨가 음악을 하고, 아솔 씨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생기고. 어떻게 보면 꿈을 이룬 것이네요. 요즘 기분이 어떠세요. 

A. “계속 음악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을 팬에게 들었어요. 너무 감사하고 제일 기분이 좋은 말이에요.
예전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돼서 유명해지고 싶다, 라는 마음. 근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그냥 이렇게 계속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조금씩 소망들이 있는 거죠. 누구랑 음악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 영화음악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조금씩 소망들을 이뤄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음악을 하는 게 너무너무 좋아졌어요.
진정으로 음악이 좋아진 것 같아요.

 

Q. 팬들과 소통 많이 하시나요.

A.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팬들이 ‘그대에게’ 악보를 갖고 싶다고 너무 미안해하시면서 많이들 말씀해주셨어요.
전 오히려 너무 감사했죠. 흔쾌히 그 요청을 받아서. 시험 끝나고 나서 악보 열심히 만들어서 SNS 통해서 전해 드렸어요.
덕분에 더 많은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악보를 만들어서 드렸죠. 제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 늘 너무 감사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Q. 아솔 씨의 노래를 들으면 정말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솔 씨의 감성을 이끌어 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신은 사람에게 고통과 시련을 줘요.
누구나에게 힘듦을 주는 데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더 큰 복을 주는데, 그것을 못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 더 큰 복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 음악 소재나 감성은 거의 다 사람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부모님의 사랑, 친구들의 사랑 등 나와 소통하는 사람들에서 나오는 감성들이 음악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을 만나고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는 편이에요. 사람들을 너무 잘 만나서 더 감사해요.
최근에 들어가게 된 소속사 사람들과도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주변 분들이 다 너무 좋으세요.

 

‘강아솔 – 4년 전 5월 그때의 우리’ 유투브 영상 

 

Q. 아솔 씨 앨범의 노래들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A. ‘4년 전 5월 그때의 우리’ 는 재수시절 친구와 추억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예요. 제주도 탑동 방파제 밤바다를 너무 좋아해요.
재수시절에 친구랑 저녁에 탑동 밤바다를 보며 이야기를 했던 순간들이 지나고 나니 너무 소중한 거예요.
그때 친구랑 나눴던 순간들, 그 때 느낌을 기억으로 써낸 곡이에요.
그 친구랑 따로 떨어져 있게 돼서, 보고 싶고 그런 마음을 노래로 만들었어요. 그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준 곡이에요.
‘신영이’라는 곡에서의 신영이는 초등학교 친구에요. 처음으로 저에게 장문의 편지를 준 친구죠.
신영이와 초등학교 때 집 방향이 같아서, 방과 후에 늘 같이 집에 갔어요.
버스를 같이 타서 집 앞에서 안 내리고 늘 2 정거장 정도 더 가서 내렸죠. 그때 그 친구와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걸어 내려 왔어요.
차가 많이 안 다니는 길이었는데 같이 걸어오던 그 추억을 23살에 만들었어요. 신영이를 찾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신영이가 전학을 가서 지금은 연락이 안 되거든요. 신영이를 낭만적인 방법으로 찾고 싶어서 이 노래를 만들었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만나고 싶어서 만들어진 곡이에요. 로맨틱한 곡이네요. 참.

 

 

“‘그대에게’는 작년에 만든 노래에요. 친구가 울면서 전화가 왔어요. 친구가 좌절하고 힘들어하던 시기 같았어요.
취업 준비를 하고, 시험도 많이 보는 과정에서 친구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제주도에서 평화롭게 있던 시기였는데 친구에게 곡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너가 대단하지 않아도 뭘 해도 사랑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말을 하긴 했지만,
좀 더 이야기 해주고 싶어서 친구에게 주려고 쓴 곡이 ‘그대에게’예요.”

 

그럴 수 없이 사랑하는 나의 벗 그대여. 오늘 이 노래로 나 그대를 위로하려 하오. 

하루하루 세상에 짓눌려 얼굴 마주보지 못해도 나 항상 그대 마음 마주보고 있다오. 

겨를 없이 여기까지 오느라 손 한 뼘의 곁도 내어주지 못해 불안한 그대여, 

나 그대 대단치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오.

– by 강아솔, ‘그대에게’  

 

Q. ‘그대에게’를 듣고 저도 위로를 많이 받았고, 그래서 아솔 씨의 앨범을 찾아보고 더욱 좋아하게 됐죠.
오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쩌면 이 노래는 아솔 씨가 자신에게 하고 싶던 말들을 친구에게 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A. 대단해져야 사람들이 날 봐주는 게 아니라 나 자체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데,
제가 결과가 안 보이던 그 때 왜 그렇게 힘들어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느꼈던 걸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원래 1절만 있는 노래였는데, 노래 짧다 그래서 더 지은 것이 지금의 ‘그대에게’예요.
만들어봤더니 제가 굉장히 대단한 말을 쏟아 했더군요. ‘그대에게’ 가사를, 제가 쓴 것을 지키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 그 가사처럼 사람, 관계를 대하며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그대에게’ 가사는 저도 듣고 싶은,
그래서 해주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아요. 가사가 되게 직설적이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가사도.

 

‘강아솔 – 들꽃’ 유투브 영상

 

 

Q. 노래를 들을 때 상상했던 모습은 나이가 많고 조용한 사람일 것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 젊고 매우 발랄한 모습이군요.  

A. 노래에서 성숙하고 조용한 느낌, 7080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음을 꾸밈없이 불러서 그런지, 목소리가 낮아서 그런지. 만나는 분들마다 의외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노래만 들었을 때는, 나이가 많은, 혼자 음악을 오래 하다가 나온, 신인이 아닌 느낌이 많이 든다고들 하세요.
내성적이고 그런 사람일 줄 알았는데 직접 보니 개그욕심이 많고 밝다고. 노래에서 차분하지만 따뜻한 느낌이 나는데,
사실 저를 오래 알고 대하면 그런 면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근데 전 이렇게 반전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좋아요.
공연할 때랑 평소에 다른 분들 많으시잖아요. 사람들 만나면 재밌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어요.
노래할 때랑 이야기 할 때랑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도 들고요.

 

Q. 십년 후는.

A. 지금이랑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요. 지금 계속 조그만 소망들을 만들고 살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것이 진짜 많긴 해요.
어떤 감독님의 영화 음악을 하고 싶다. 어떤 가수의 곡을 쓰고 싶다. 동요를 만들고 싶다. 이렇게 조금 조금 있는 바람들을 이뤄 나가고 싶어요.
큰 목표라기보다는 음악을 계속 해 나가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좋은 음악을 하면서요.
음악을 계속 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은 기타만 쓰고 있는데, 앞으로는 세션들도 많이 쓰고 싶어요.
다양한 악기로, 음이 풍부하게 쓰인 곡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제 앨범에 있는 ‘Dance for me’처럼 밝고 들을 때 기분 좋고 신나는 곡들도 만들고 싶고요.
듣는 이가 ‘춤추게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홍대에서 공연을 할 때 강아솔의 ‘엄마’라는 노래를 들었다.
2집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라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지만, 강아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감성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온 노래로 기억한다.
나는 그게 참 고마웠다.

그녀가 음악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나도 인터뷰 내내 그녀에게 전했다.
아름다운 음과 목소리, 깊이가 느껴지는 표현력을 가지고 그녀는 그녀가 살아가는 순간들을 노래로 우리에게 전해줄 것이다.
그것이 참 감사하다.

“ 저 아직 어리잖아요. 앞으로 계속 더욱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더 쌓이면 쌓였지, 라는 희망이 있어요.
계속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싶어요.” 

그녀는 공연에서 말했다.
“제 노래는 밤에 조용히 혼자 있을 때 들으면 더 좋거든요.
주변 분들에게 낮에 말고 자기 전에 한번 강아솔의 노래를 들어봐,라고 말씀해 주세요.”
위로가 되는 강아솔의 노래를 지금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강아솔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계속해서 듣고 싶은 마음을 담으면서 팬心으로 이끌어 온 인터뷰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