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하늘 아래 작은 미술가를 지향한다, 김선혁

커다란 하늘 아래 작은 미술가를 지향한다, 김선혁

오랜만에 야성미 넘치는 길거리 캐스팅과 흥신소마냥 연락처를 알아내는 방법에 벗어나, 우아하게 박준상 작가(이전 인터뷰어)님의 소개로 김선혁씨를 알게 됐다. 소개해준다고 무조건 인터뷰하는 은은한 여자가 아닌 관계로 ‘제가 먼저 작품 좀 보고 싶어요!’라는 양해를 구하고, 강력한 검지 손가락으로 김선혁씨 작품을 탐구하러 www세계로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웹을 통해 본 그의 작품은 나무 뿌리와 줄기를 모티브로 거리낌없이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본인이 생각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반면, 장식성도 있는 작품들이 많아, 여자인 나로써는 작품에 바로 호감을 갖게 됐다. 그런 와중에 두 번째 개인전시가 열리는 중이라고 하니, 작품을 함께 맞대어 보면서 인터뷰를 해봐야겠다는 욕심과 함께 휴대폰을 잠금해제 시켰다.


취재 및 글 : 김남림 / namrim.kim@gmail.com
편집 : Avant-in
작품 제공 : 김선혁 작가

비 오는 정오, 인사동 노암 갤러리에서 그의 두 번째 개인전 ‘Simple Truth’를 만났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흐린 날보다 더 어두운 실내가 관람객을 반겼다. 예상과 다른 전시장 풍경에 조금 놀랐지만 오히려 더 큰 호기심을 품고서 전시장을 스캔했다. 조소 작품이 주를 이뤘던 그의 첫 개인전과는 다르게 어두운 실내공간 이곳 저곳에 그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설치 작품들이 숨어있었다. 당근을 싫어하는 나의 고질병으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는 것에 시간이 걸렸지만, 제일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천장에 위치한 사다리였다. 바닥에 마련된 계단 같은 단상에 올라가 사다리가 에워싼 천장을 올려다 보니 그 곳엔 나무 위로 햇살 좋은 청명한 하늘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 나는 지금 땅속에 있는거구나…’ 땅속에서 그 틈으로 바라보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하지만 그러기엔 사다리는 너무나 제 구실을 못하는 듯한) 닿기 힘든 이상공간을 표현한 것이었다. 땅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나무 뿌리의 시선으로 두 층의 전시 공간을 지면 아래와 위로 나눈 것이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막막하다 어둡다고 느끼는 현실이 있잖아요, 현실에 멀어졌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상이나 꿈을 바라보는 시선이에요. 그리고 기능을 상실한 천장에 박힌 ‘사다리’가 오를 수 없는 주저하게 되는 요소에요. 나의 꿈 같은 것들이 이미 멀어진 이상이고, ‘내가 저곳에 오를 수 있을까.. 오를 수 없을거야..’라고 현실에서 타협하게 하는.. 하지만 저는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이 작품은 현재 김선혁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작품을 둘러 보고 나면, 그가 세상을 보면서 느끼는 많은 안타까움과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교차로’, ‘가로수’ 같은 생활 정보지 보관함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십자가와 ‘Like a human-being’이라는 제목 아래 비닐에 싸인 경사면을 수없이 미끄러져 내리면서도 끝없이 오르려 하는 곱등이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자본주의와 탐욕이 가득한 21세기 속, 미래에 대한 불안이 팽배한 대한민국 땅에서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한 젊은이가 마주 본 세상을 투영하고 있다.

“작업비라도 충당할까해서 소일거리를 찾으려고 교차로 등을 꽤 봤었는데 통이 비어있을 때가 많았어요. 그만큼 찾는 사람들도 많고, 힘들게 현실에 치어 사는 사람이 많구나.. 현실 이상으로 삶의 가치를 둔다면 잘 먹고 잘사는 건 문제 될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먹고 잘 사는 게 좋긴 한데, 그렇다고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진짜 가치 있는 삶이 뭘까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됐어요.
특히 청년들이 이 십자가를 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나 되돌아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원래 꿈꿨던 이상적인 삶이 뭐였는지, 현실에 치어서 오늘도 힘들다 하고 살고 있지 않은지.. 눈앞의 현실적인 근심들에 잡혀 사는 모습, 근심을 신앙적인 요소로 표현해서 그런 근심들은 헛된 믿음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죠.
곱등이 영상은 작업실 한 구석에 경사진 곳을 계속 오르려는 곱등이를 발견하고 찍어봤어요, 보면서 ‘사람의 모습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이런 이야기를 써 놓고 있었거든요.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눈 앞의 현실적인 것만 바라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작년 여름부터 이 전시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시기에 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에 많았어요.”

예고를 나오고, 조각을 전공해 석사 과정을 마무리한 그로써 진로와 삶에 대한 생각은 그의 인생에서 여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현실과 직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시선을 주변으로 돌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걸까 라는 의문으로 조금 더 진지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곤 한다.

“입시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우선 목표는 대학이고, 전공도 점수에 맞춰서 선택해요.. 요즘 우리들이 사는 삶이 지향점이 없는 거 같다는 걸 느끼면서, 오히려 나는 행복한 삶을 사는 거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미술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더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느껴지니까 돈이 좀 모자라더라도 작품을 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선혁 작가 개인은 단순하게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이 길을 가겠다’라는 결정을 했던 반면, 주변 친구들에겐 ‘먹고 살기 위한 길’과 ‘원하는 길’이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었던 현실이 이번 전시에 반영됐다. 그가 다른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던 그의 내면적 자아는 그의 작가 노트를 통해 또 한번 느낄 수가 있다.

‘나는 이처럼 작은 존재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새삼 깨닫는 이 소박한 진리는 끊임없는 경쟁, 치열한 전장과 같은 근시안적(myopia) 현실에서 벗어나, 보다 상위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모든 것의 우선순위, 즉 진리적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다…- 2011 작업노트 中 –

김선혁 작가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신의 존재 아래서 이 세상과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그리고 신이만들어낸 커다란 자연 속에 있는 자신은 작고도 작은 존재임을 느낀다.

“카메라 들고 자주 다녀요. 그런 걸 찾다 보니까 하나님을 찾고.. 하늘을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적인 변화를 좋아해요. 그런걸 보면 아주 미세한 존재처럼 느껴지면서 전 너무 평안해지더라구요. 더 작고 낮아지는 과정 그래서 땅속까지 들어와서 하늘을 바라 볼 때의 느낌을 살린 거예요.”

이번 전시 작품을 통해 그가 느끼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운 실내에서 밝고, 높은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한껏 위로 젖히면 어떤 예술 작품도 범접할 수 없는 커다란 푸른 하늘이 많은 감정을 끌어내준다. 그런 기분을 맛보고 고개를 내려 이 현실을 보면 분명 그런 기분을 느끼기 전과를 다른 눈으로 이 엉켜있는 세상이 보일 듯 함에 공감한다.

처음 ‘조각가’ 김선혁으로 소개를 받았음을 고려하면, 예상치 못한 전시이자 체험을 하게 됐다. 덕분에 조각이란 어디까지 조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표현 방법의 선택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됐다.

“조각가라는 말이 이제 불필요하다고 느껴요. 아티스트는 너무 광범위하고, 저는 미술가라고 얘기해요.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게 미술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시각미술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모두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에 묶여있는 거 보다는… 저는 미술가라는 말을 원해요.”

체험과 설치 미술 전시가 주를 이룬 이번 전시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봤던 그의 첫 개인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조각가의 전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식물의 줄기와 뿌리를 모티브로 한 [Drawn by Life]라는 첫 전시에서는 식물의 삶을 대지의 밖으로 끌어내며 인간의 삶에 대입하여 시각화 하였다.

“나무라는 형태의 조형성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나무가 끝없이 뻗어가는 걸 계속 그렸던 거 같아요. 2학년때부터 왜 내가 계속 나무를 그릴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거기서 느껴지는 생명력 그런걸 표현하고 싶어서 그때부터 나무를 쓰기 시작했어요. 기본적으로 내가 느꼈던 거 나무형태, 뿌리형태에 느꼈던 감정을 하나하나 풀어서 주제에 담았었는데, 작업하는 동안에 이번 전시보다 형태적인 거에 더 집중을 한 건 맞죠. 이게 뿌린데 사람처럼 더 잘 보여야 돼 이런 거에 더 집착을 했었어요. 뿌린데 혈관이네, 가지인데 사람이네 식으로..
교수님들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너무 설명적이다 라고 얘기해주셨는데, 고집이 있어서 나는 그래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게 하겠다라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미술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미술은 쉬워야 돼 더 쉽게 다가가고 잘 보여야 돼’ 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에게 더 여지를 주는 걸로, 상상하고 생각하게 하는 걸로 바뀌었죠.”

김선혁 작가는 첫 개인전을 열면서 사진과 글로 자신의 전시회 자료를 만들고 씨디로 구워 월간지 회사에 가서 직접 전달하고, 일간지 주간지에도 메일로 보냈다. 당시 자료를 보고 관심을 가진 기자 덕에 신문 한 면을 차지하는 보람찬 결과를 얻기도 했다. 당시 첫 전시를 통해 만났던 인연으로 노암 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각각 판이하게 다른 전시 모습이지만, 김선혁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작품을 연결하는 고리는 하느님과 자신의 신앙이다. 하느님이라는 절대자와 그의 피조물 중 하나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차이를 기꺼이 떠안고 자신의 예술을 펼쳐가고자 함은 김선혁이 추구하는 작가의 길이다.

“작품을 통해 예전보다는 지금의 신앙이 조금 더 심화된 거 같아요. 하느님이 만든 창조물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다 해서 나의 한계성이나 그런 것들을 보여주면서 하느님을 드러내야지 했던건데, 지금은 하느님을 대변하면서 작품에 넣으려고 해요. 제 자신이 하느님을 찾는 과정이랄까요.
기본적인 베이스는 다 하느님을 드러내야지 하는 게 있어요. 음악 쪽도 일반 가수가 있고, CCM가수가 있잖아요. 저도 같은 아티스트여도 CCM계열같은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나님을 안고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그에게 또 하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작가로써 사는 길이다. 자신도 앞일은 모르는 거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럽다며 말을 최대한 아끼는 김선혁 작가였지만, 예술이 인생의 주가 아닌 취미적으로 간다면 그것은 작품에서 티가 날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고로 그의 작품 욕심은 작품 활동을 삶의 주연으로 놓는 작가일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너무나 존경하는 선배 작가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꼽아보라 채근하니 이용백 작가님과 전준호 작가님을 꼽는다.

“일단 작업을 하는데 사회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작업하는 것도 그렇고, 발상 같은 것도 너무나 배울게 많아요. 그런 모습들도 그렇고, 그분들이 제가 시작하는 발걸음을 겪고서 그런 내공이 쌓인 거잖아요.. 그렇게 살아갔다는 자체가 너무 존경스러워요. 그런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계속 작업을 하고 계신다는 건, 막막한 길인데 그런 길을 걷고 계신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진지하고, 뚝심 있다. 이제 막 발 돋움을 시작한 그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미약함 속에서 출발하여, 주위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그의 모습은 거짓이 없다. 자기 세계에만 빠지기 보다는 사회가 흘러가는 흐름과 함께 하며 작업을 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앞으로도 세상을 향해 많은 이야기를 던질 포부가 느껴진다. 인터뷰 글을 정리하고 작성하는 동안에 인간으로서 작가 개인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감을 느꼈다. 오히려 만났을 때보다 그와의 만남을 글로 정리하고 작품을 보고 그가 꼼꼼히 보내준 작업 노트들을 들여다 보면서 그를 더 이해한 기분이다. 자기 생각과 철학을 고스란히 작품에 닮고 싶어하는 그이기에 다시 작품에 이해로 넓혀져 간다. 작가의 길을 걸어가며 40대가 되었을 김선혁이 무척 궁금하다.

김선혁 작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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